런-D.M.C.

(Run DMC에서 넘어옴)

우리가 알고 있는 힙합의 기본을 만든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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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un-D.M.C. 왼쪽에서 부터
조지프 "런" 시먼스
대릴 "DMC" 맥대니얼스
故 제이슨 윌리엄 "잼 마스터 제이" 미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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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활동

조지프 시먼스는 매니저로 일하던 형 러셀 시먼스를 따라 커티스 블로의 공연무대에 DJ로 서면서 음악을 자신의 길로 삼게 되었다. 살고있던 뉴욕 퀸스의 동네 Hollis의 친구 맥대니얼스와 미젤을 끌어들여 Run DMC를 결성하고 형의 연줄을 통해 레코드계약도 얻어냈다. 이렇게 만든 싱글 'It's Like That'과 앨범 <Run-D.M.C.>는 기존의 올드스쿨힙합과는 다른 단순하고 강렬한 비트위에 강하게 끊어 내뱉는 소리지르는듯한 랩으로 힙합의 새로운 조류, 뉴스쿨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뒤이은 2집 <King Of Rock>도 하드록 기타를 앞세운 타이틀트랙과 댄스홀/레게를 랩에 도입한 'Roots, Rap, Reggae'등을 통해 연속 히트를 얻어낸다.

러셀 시먼스와 데프잼 레코드를 공동 창립한 릭 루빈을 프로듀서로 맞아 제작한 1986년의 3집 <Raising Hell>로 Run DMC는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첫 싱글인 'Walk This Way'는 원작자인 에어로스미스의 스티븐 타일러와 조 페리가 직접 참여하여 랩과 록이라는 흑인음악과 백인음악이 교류-융합을 이뤄낸 기념비적인 작품이며, 차트에서의 성공으로 힙합이라는 신생장르가 미국 팝의 메인스트림에 안착하는 시발점이 되었으며 힙합의 전성기 "골든에라"의 시작으로 평가받는다.[2] 더불어 에어로스미스도 기나긴 부진에서 벗어나 새로운 팬을 얻었으며, <Permanent Vacation> - <Pump> - <Get A Grip> -'아마게돈 주제가' 로 이어지는 10년의 전성기를 맞게 해주었다.

이후 시대의 조류에 맞게 업데이트한 4집으로 성공을 이어갔지만 뉴 잭 스윙과 R&B를 도입한 5집이 상업적 비평적으로 실패하고 멤버들의 알콜 약물문제과 사건사고가 터지면서 휴식에 들어갔다. 이후 1993년 Pete Rock & CL Smooth, Q-Tip, EPMD, Naughty by Nature, 퍼블릭 에너미의 프로듀서 봄 스쿼드(Bomb Squad), 크리스 크로스를 성공시킨 저메인 듀프리,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톰 모렐로 라는 호화 참여진을 내세운 <Down With The King>앨범으로 컴백에 성공한다. 이후 런은 목사로, DMC는 가정으로, 잼마스터 제이는 후배양성으로 시간을 보냈다.

오랜 침묵후 다시 스튜디오에 모였지만 이번에는 앨범의 방향성을 놓고 갈등이 일어났다. 런은 당시 유행하던 뉴메탈에 맞춰 강하고 록적인 사운드의 유지를 원했지만 DMC는 좀더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싱어송라이터'스러운 변화를 원했다. 회사가 런의 손을 들어주면서 DMC는 아예 앨범참여를 거부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완성된 앨범은 림프 비즈킷의 프레드 더스트, 키드 록, Nas 등의 호화게스트를 자랑했지만 'DMC와 잼마스터 제이가 없는, 시대를 따라잡기 급급한 이벤트 앨범'이라는 혹평을 들으며 망했다. 에어로스미스와 함께한 합동투어는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런마저 음악활동에 염증을 느끼며 나가 버렸다.

그리고 2002년 10월 30일, 퀸스의 자기 스튜디오에서 잼-마스터 제이가 총격을 입고 사망하면서 런-디엠씨는 해산하게 되었다.

발표앨범

Run–D.M.C. (1984)
King of Rock (1985)
Raising Hell (1986)
Tougher Than Leather (1988)
Back from Hell (1990)
Down with the King (1993)
Crown Royal (2001)

2 업적

일단 이후의 모든 랩/힙합음악을 하는 사람은 Run DMC의 영향아래에 있다고 말할수 있다. 이 말이 과장이 아닌게, 기존의 올드 스쿨 힙합이 소울이나 펑키 음악의 반주나 브레이크를 잘라 그 위에 랩을 얹었다면 이들은 직접 신시사이저 기본 루프를 만들고 드럼머신으로 비트를 찍은 다음 턴테이블로 스크래치를 넣는 힙합의 기본 작법을 완성시켰다. 그리고 'Walk This Way'의 랩록퓨전은 퍼블릭 에너미+앤스랙스, 페이스 노 모어의 랩메탈,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펑키/얼터너티브, RATM, 콘, 림프 비즈킷의 뉴메탈로 이어졌다.

패션에서도 큰 변화를 가져왔는데 기존의 경우 펑키그룹의 의상을 그대로 들고와 색색의 반짝이옷을 입었다면 이들은 거리의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여 아디다스 체육복에 검은 중절모, 끈없는 아디다스 운동화[3]를 유행시켰으며, 이후에는 티셔츠, 청바지, 가죽 재킷, 커다란 금목걸이 라는 힙합의 기본 패션을 확립했다. 무대에서도 Grandmaster Flash and the Furious Five, Afrika Bambaataa 등의 대규모 편성에서 벗어나 "턴테이블 2대와 마이크"를 잡은 "1DJ & 2MC"체제를 만들었다.

최초의 골드, 플래티넘, 멀티플래티넘 앨범, 최초의 MTV등장, 롤링스톤즈 표지등장, 최초의 거대기업 후원(아디다스) 등 힙합음악사에서 수많은 '최초'를 달성했다.

런의 형 러셀 시먼스는 데프잼의 공동창립자로 힙합계 최고의 부자중 한 사람이며 아들 대니얼도 '디지(Diggy)'라는 예명으로 래퍼로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잼마스터 제이는 50cent를 언더에서 처음으로 발굴하였다.[4]

우리나라에서는 80년대 코미디프로 쇼 비디오 쟈키의 코너 '씨커먼스'에서 이들의 'You Be Illin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레슬링팬들에게는 DX의 테마곡을 랩으로 바꾼 The Kings'로 알려져 있다.

2009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It's Tricky

King of Rock

Walk This Way

뮤직비디오, 사진등 많은 내용 추가바람
  1. 사진에 나온 RUN DMC 티셔츠는 탑텐에서 판매중이다.
  2. 끝은 비즈 마키가 길버트 오'설리반의 소송에서 패하면서 샘플사용시 원작자의 동의을 얻고 사용료를 내야하는 판결이 난 1991년으로 꼽는 사람이 있다.
  3. 감옥에서 흉기로 사용될까하여 끈없는 신을 주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4. 한때 제이의 죽음이 50와 머더 inc의 갈등때문이라는 루머가 있었다. 머더 in는 범죄집단과 연루되어 있으며 여기에 디스를 걸면서 50는 블랙리스트에 올라있었는데 제이가 이를 무시하고 픽업했기 때문이라는 것. 50의 9발 총격의 배후에도 머더 inc가 있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