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에드거 앨런 포가 1845년에 발표한 시. 제목인 "더 레이븐"이 한국에서는 갈가마귀로 오역되었으나 고유명사로 굳어진 탓에 수정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미국인들에게 매우 친숙한 시로, 한국으로 치면 별 헤는 밤 정도의 대중성을 가지고 있다. 시 전체에 걸쳐 반복되는 "Nevermore"[1]라는 말이 특히 유명하다. 까마귀, 혹은 갈까마귀를 원형으로 하거나 관련된 캐릭터가 등장한다 싶으면 열에 아홉이면 같이 딸려오는 단어. --실사판 등장--
내용 외에 그 구조로도 주목받는 시이기도 하다. 시 전체는 강약 8보격 (Trochaic octameter)의 운율을 띄고 있는데, 한 행에 8번의 운율이 등장하고 그 안에서 강약 구조가 반복되는 운율이다. 즉 딴 단딴 단딴 단딴 단[2]과 같은 구조.
오늘날은 미국 시문학의 걸작으로 꼽히며 높이 평가받는 작품이지만 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포는 맨 처음 이 시를 간행물 출판자이자 친구 조지 그레이엄에게 가져갔지만 거절당한다. 이후 1845년 2월 이 시는 처음으로 'The American Review' 지에 가명으로 실리게 되었는데, 포가 이 시를 팔고 받은 돈은 단돈 9달러였다.[3] 이를 계기로 포의 작품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받게 되었지만, 포는 5년도 채 지나지 않아 세상을 뜨고 만다.
2 전문과 해석
크리스토퍼 워컨의 낭독
제임스 얼 존스의 낭독
크리스토퍼 리의 낭독
길이상 전문은 링크로 갈음하고 해석본만 수록한다. 시를 번역하면서 원본 그대로의 운율을 살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에 내용만 번역되었다.
어느 음울한 한밤중, 쇠약하고 지친 내가 생각에 잠겼을 때, 잊혀진 설화를 담은 수많은 진기하고 신비로운 책을 읽으며 내가 졸다가, 거의 깜박 잠들었을 때, 갑자기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누군가 부드럽게 두드리는 듯한, 내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방문객이로군," 나는 중얼거렸다. "내 방문을 두드리는 것은— 그저 방문객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아, 똑똑히 생각나는데 그건 고달펐던 12월이었고 죽어가는 불씨가 마루 위에 그림자를 던지고 있었다. 나는 간절히 내일이 오기를 바랐고—덧없게도 책을 통해 슬픔을—죽은 레노어에 대한 슬픔을—잊으려 노력했다. 천사들이 레노어라 이름지은 그 귀하고 빛나는 아가씨를— 이곳에서는 영원히 그 이름 없을 아가씨를 그리고 자줏빛 비단 커튼의 슬프고도 불분명한 바스락거림은 나를 오싹하게 했다—전에 느껴본 적 없는 환상적인 공포가 나를 채웠고 그리하여 이제, 두근거리는 내 가슴을 잠재우려, 나는 일어나 다시금 말했다. "들어오기를 청하는 방문객이 내 방문에 있을 뿐이다— 어느 늦은 방문객이 내 방문에서 들어오기를 청할 뿐— 단지 그것뿐, 아무것도 아니다. 곧 내 영혼은 힘을 얻었고, 더이상의 망설임 없이 나는 말했다. "신사, 혹은 부인, 참으로 당신의 용서를 구합니다. 사실 나는 깜박 잠들었는데, 당신이 너무나 부드럽게 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당신이 너무나 희미하게 문을, 내 방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그래서 그 소리를 들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답니다."—여기서 나는 문을 활짝 열었다— 그곳에는 어둠뿐, 아무것도 없었다. 그 어둠속을 깊이 응시하며, 나는 오래도록 서 있었다. 의아해하며, 두려워하며, 의심하며, 어떤 이도 감히 꿈꿔보지 못한 꿈을 꾸며. 그러나 침묵은 깨지지 않았고, 어둠은 아무런 징표도 보이지 않았으며, 유일하게 들리는 말이라고는 내가 속삭인 이 말뿐, "레노어!" 내가 이렇게 속삭이자, 메아리가 되돌려준 이 말뿐, "레노어!" 단지 이 말뿐,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고 나서 방으로 되돌아오자, 내 안의 모든 영혼이 불타올랐고, 곧 나는 다시금, 이전보다 더 크게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분명히," 나는 말했다. "분명히 내 방 창문 창살에 무언가가 있구나. 그럼 어디 보자. 거기 무엇이 있는지, 이 수수께끼를 풀어 보자— 내 마음 잠시 진정시키고, 이 수수께끼를 풀어 보자— 단지 바람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겉창을 홱 열어젖히자 요란스럽게 퍼덕이며 성스러운 옛적의 위엄 있는 까마귀 한 마리가 들어섰다. 녀석은 아무런 인사도 없이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지체 있는 자의 의연한 태도로 내 방의 문설주에 올라앉았다. 방 문 바로 위에 있는 팔라스 여신 흉상에 올라앉았던 것이다. 올라가, 앉은 채, 그뿐이었다. 이 새까만 새가 준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바람에 나는 슬픈 가운데에도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말했다. "그 머리는 깎여 헐벗었으나 겁쟁이는 아니로다" 밤의 해안을 떠나 방황하는 무서운 노(老) 까마귀여-- 밤의 명부(冥府)의 해변에서 그대의 고매한 이름이 무엇인지 말해다오.” 까마귀가 말하였다, “영영 없으리.” 이 볼품 없는 새가 그토록 분명히 말한 것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그 대답이 별 의미가 없기는 했으나—별 연관성이 없기는 했으나 지금껏 지구상의 어떤 이도 방문 위에 자리잡은 새를 볼 기회를 누리지 못했다는 데에 다들 동의할 것이기에— 새인지 짐승인지, 방문 위 흉상에 자리잡은, “영영 없으리“ 같은 이름을 지닌 것을. 그러나 까마귀는 창백한 흉상 위에 고고히 앉아서, 단지 그 한 마디를 했을 뿐, 마치 그 한 마디에 온 영혼을 쏟아낸 듯, 더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깃 하나 퍼덕이지 않았다— 내가 간신히 이렇게 중얼거렸을 때까지. "다른 친구들은 예전에 떠나가 버렸으니— 내일이면 저 새도 나를 떠나겠지. 내 희망이 예전에 떠나가 버렸듯. 까마귀가 말하였다, "영영 없으리." 그토록 적절한 대답으로 정적이 깨진 것에 놀라며 "틀림없이," 나는 말했다. "이 새가 말하는 것은 이놈이 유일하게 주워 익힌 것일 뿐이다, 어느 불행한 주인에게 배운 것일 뿐이다. 그는 무자비한 재앙에 쫓기고 또 쫓겨—그래서 그가 희망을 바랐을 때조차, 그가 감히 바란 달콤한 희망 대신 엄한 절망이 되돌아와— 이 슬픈 대답을 했으리라, "영영 없으리!" 그러나 그 까마귀는 여전히 내 슬픈 영혼을 웃음으로 바꾸어 놓아, 나는 곧장 새와, 흉상과, 문 앞에다 쿠션 있는 의자를 굴려다 놓고, 그 벨벳에 기대어 앉아, 공상에 공상을 연이으며 생각해 보았다. 이 불길한 옛적의 새가— 이 암울하고, 볼품없고, 섬뜩하고, 초췌하며, 불길한 옛적의 새가 "영영 없으리"—라고 까옥거린 의미를. 이런 생각에 빠져 나는 앉아 있었다. 이제 그 불같은 눈이 내 가슴 깊숙히 타들어 오는 그 새에게는 한 마디 말도 건네지 않고, 이렇게 계속 나는 짚어보고 있었다. 램프 빛 흘러내리는 쿠션의 벨벳 테두리에 내 머리를 편히 기대고서. 그러나 램프 빛 흘러내리는 쿠션의 자줏빛 벨벳 테두리에, 그녀가 기댈 일은, 아, 영영 없으리! 그러자, 내 생각에, 천사들이 양탄자 바닥에 희미한 발소리를 딸랑이며 흔들고 다닌, 보이지 않는 향로에서 향이 뿜어져 나온 듯, 공기가 더욱 짙어졌다. "가엾은 것," 내가 외쳤다. "너의 신께서 너를 보내셨구나—이 천사들로 하여금 네게 진통제를—레노어의 기억을 잊을 진통제와 망각의 약을 보내주셨구나! 내가 이 고마운 망각의 약으로 죽은 레노어를 잊게 해 다오! 까마귀가 말하였다, "영영 없으리.“ "예언자여!" 내가 말했다. "악한 자여—그러나 예언자인, 새든 악마든 간에— 유혹의 악마가 그대를 보냈든, 폭풍이 그대를 이곳 기슭까지 날려 보냈든, 마법에 걸린 이곳 황량한 땅—공포에 사로잡힌 이 집에서도 외로이, 그러나 의연한 그대여—이렇게 간청하건대, 진실을 말해 다오— 그곳에는—길르앗의 향유가 그곳에는 있는가? 말해 다오, 이렇게 간청하건대, 말해 다오! 까마귀가 말하였다, "영영 없으리." "예언자여!" 내가 말했다. "악한 자여!—그러나 예언자인, 새든 악마든 간에— 우리를 굽어 살피는 저 하늘의 이름으로—우리 둘 모두가 섬기는 신의 이름으로— 슬픔에 가득 찬 이 영혼에게 말해 다오. 혹, 저 머나먼 에덴 동산에서나마 천사들이 레노어라 이름지은, 그 성스러운 여인을 안을 수 있을지— 천사들이 레노어라 이름지은, 그 고귀하고 빛나는 여인을 안을 수 있는지." 까마귀가 말하였다, "영영 없으리." "그 말을 작별 인사로 하자. 새든 악귀든!" 나는 벌떡 일어나 절규했다— "폭풍 속으로, 밤의 저승세계로 돌아가라! 네 영혼이 말한 거짓의 징표, 검은 깃털은 하나도 남기지 말라! 내 고독을 깨뜨리지 말라! 문 위의 반신상에서 썩 꺼져라! 내 심장에 박힌 네 부리를, 내 방문에 앉은 네 모습을 거두어라!“ 까마귀가 말하였다, "영영 없으리." 그리하여 그 까마귀는, 결코 날아가지 않고 여전히, 여전히 앉아 있다. 내 방문 바로 위에, 아테나 여신의 창백한 흉상 위에. 그 눈은 꿈꾸고 있는 악마의 모습과도 같고, 그 위의 등잔빛은 까마귀를 비추어 바닥에 그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마루 위에 드리워 떠도는 그 그림자로부터 내 영혼이 벗어날 일은—, 영영 없으리라! |
3 트리비아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이지만 포는 실제 존재한 레이븐에서 이 시의 영감을 얻었다. 그리고 그 레이븐의 주인은 다름아닌 찰스 디킨스. 그립(Grip)이라는 이름의 이 새는 디킨스의 애완동물이었는데, 그립이 죽고 난 후 아이들의 요청으로 디킨스는 쓰고 있던 소설에 말하는 레이븐을 등장시킨다. 그리고 포는 이 소설에서 영감을 얻어 이 시를 썼고, 그립은 영미문학의 거장들에게 영감을 준 새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심슨의 첫번째 할로윈 에피소드(Treehouse of Horror)에서도 나왔다. 리사 심슨이 무서운 이야기라며 낭독하는데, 여기서 화자는 호머 심슨이고 레이븐은 바트 심슨이며 마찬가지로 'Nevermore'만을 반복한다. 어린 바트는 이야기를 다 듣고 이게 뭐가 무섭냐며 투정을 부리지만, 리사는 옛날 사람들은 우리랑 무서움의 기준이 달라서 그랬을 거라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옆에서 몰래 듣던 어른 호머는 무서움에 벌벌 떨면서 밤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Nevermore"라는 구절을 도타 2의 영웅 그림자 마귀가 이름으로 사용한다. 로어에서 말하는 '시인의 영혼'은 이 시의 작자를 의미하는 말이다.
새를 얹고 다니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챔피언 스웨인의 기술 중에는 Nevermove라는 이름의 기술이 있다. [4]
2연 마지막 4구절은 애너벨 리의 원형으로 보인다.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는 포의 작품을 여럿 번역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가 번역한 유일한 시가 바로 이 시다.
포가 볼티모어를 대표하는 시인이다보니 볼티모어 레이븐스의 이름이 여기서 유래됐다.
최강의 군단의 캐릭터 갈가마귀의 모티브 역시 여기에서 따왔다. 갈가마귀의 무기 이름도 "Nevermore(네버모어)"이다.
틴 타이탄 애니메이션 시즌 1에는 레이븐에 관련된 Nevermore라는 제목의 에피소드가 있다.[5] 레이븐이라는 캐릭터가 주가 되는 에피소드에 Nevermore라는 제목인 것을 보면 거의 100%. 에피소드 내에 까마귀들이 다수 등장해 울기도 한다.
영국의 프로그래시브록 그룹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alan parsons project)"의 "The Raven"[6] 은 이 시를 바탕으로 만든 노래이며 후렴구도 "Nevermore"다.
오버워치의 영웅 리퍼의 밤까마귀 스킨의 영문명이 "Nevermore"다.
워해머에 나오는 레이븐 가드의 프라이마크 코르부스 코락스가 사라지기 전 한 말이 Never more..다.- ↑ "끝났어", "더 이상은 없어", "이젠 끝이야"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된다.
- ↑ 시의 첫 줄을 여기에 맞추면 Once up- on a mid- night drear- y, while I pon- dered weak and wear- y 가 된다.
- ↑ 물론 인플레이션을 반영한다면 오늘날의 가치로 200달러를 조금 넘지만 그래도 시의 가치에 비해 부족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 ↑ 원래 Nevermore로 나올 계획이었는데 말장난으로 r을 v로 바꿔 내놓은 것이 굳어진 것이다.
- ↑ 기존에는 시즌 4에 포함됐다고 잘못 기재되어 있었기에 수정. 시즌 4가 레이븐이 주역이 되는 시즌인 것은 사실이나 에피소드 Nevermore는 원판 기준 시즌 1에 나왔다.
- ↑ 수록된 앨범 자체가 Tales of Mystery and Imagination, 즉 앨범의 전곡이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