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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설. 작가는 김동인. 제목이 감자이기는 하지만 이는 Potato가 아닌 고구마를 의미한다. 원래 옛 한국어에서는 감자(Potato)는 저(藷) 혹은 북저(北藷)라 불렀고 고구마(sweet potato)를 달콤한 저, 즉 감저(甘藷)라고 불렀다. 따라서 한국어의 여러 사투리 가운데는 감자가 고구마를 뜻하는 경우가 많다.#
가난하지만 정직한 농사꾼 집안의 딸인 복녀(福女)는 나름대로의 도덕심을 가진 소녀다. 15살이 되던 해에 그녀는 80원이라는 돈에 팔려 동네 홀아비에게 시집을 가게 되지만, 복녀의 남편은 극도로 게을러서 동네 사람들은 물론이고 처가에서조차 민심을 잃게 된다.[1] 결국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칠성문 밖 빈민굴로 쫓겨난 부부는 힘든 생활을 하게 된다.
어느 날 칠성문 주변에 송충이들이 들끓자 관청에서는 빈민구제사업을 위해 송충이잡는 알바(…)를 모집하고, 제법 큰 일당을 받기에 복녀는 그 일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곳 감독의 눈에 띄어 그에게 성매매를 하게 되면서 복녀는 성매매를 하면 돈을 쉽게 벌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결국 아무에게나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면서 기존에 있던 도덕심마저 무너지고 만다.
어느 날 밤에 중국인 왕서방의 고구마 밭에서 고구마 서리를 하던 복녀는 왕서방에게 들키지만, 그의 마음에 들어 그 뒤로 그와 불륜을 하면서 돈을 받는다. 남편 역시 복녀가 왕서방과 하룻밤을 지낼때마다 큰 돈을 만지게 되었기 때문에 그녀의 그런 외도를 묵인한다. 하지만 그러던 어느 날, 왕서방이 한 처녀를 신부로 들여 혼인을 하자, 복녀는 질투심에 왕서방의 신혼방에 낫을 들고 찾아가 두 사람을 협박한다. 결국 몸싸움 끝에 오히려 복녀가 낫에 찔려 사망하고, 왕서방은 복녀의 남편과 한방 의사에게 뇌물을 건네주고는 복녀가 뇌일혈로 사망한 것으로 사건을 묻어두기로 한다. 복녀의 시신은 이후 공동묘지로 실려가 매장된다.
사실상 왕서방과 복녀 사이의 육체관계는 어디까지나 돈으로 맺어진 단순 매춘행위에 가까웠기 때문에, 정황상 복녀가 왕서방의 새 아내에게 질투를 느낄 이유는 없었다. 어디까지나 정황상으로만 보자면 그렇다는 얘기지만…
무기와 주인공의 이름을 생각해볼때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에 직접 영향을 주었다. 복녀/복남 이라든가 무기로 낫을 쓴다든가... 큰 줄거리는 다르지만…
1968년 김승옥 감독, 박노식, 허장강, 윤정희 주연으로 영화화되었다. 무진기행의 작가인 그 김승옥이 맞다. 1987년에는 변장호 감독이 강수연, 김인문, 이대근 주연으로 다시 한 번 영화화하기도...- ↑ 애초에 복녀를 사온 80원도, 그가 물려받았던 유산을 흥청망청 쓰고 마지막으로 남은 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