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문

1 신라의 인물(김인문)

1.1 정보

이름金仁問(김인문)
출생629(진평왕 51)∼694(효소왕 3).
나라신라
직업장수/외교관
인수((仁壽))
혈통태종 무열왕의 둘째 아들/문무왕의 친동생
업적태종 무열왕김유신을 도와 백제, 고구려 정벌

1.2 소개

어릴 때부터 유가 서적을 읽으며 학문에 관심이 많았다고 하며 부왕의 친당정책에 의해 23세 때 처음 당나라로 넘어가 당나라와 신라를 왔다갔다하며[1] 신라와 당나라 간 중재에 힘썼다. 668년 고구려 공격 때는 항복한 보장왕을 당의 군영 앞에 데려다 놓고 당의 이적 앞에서 보장왕의 죄를 세었다고 되어 있다.

당고종이 김인문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나당전쟁이 터지자 당나라는 신라의 국론을 내부에서 분열시키기 위해 문무왕이 멀쩡히 있는데도 동생 김인문을 문무왕 대신 신라왕으로 책봉해 보내버리기도 했는데 정작 문무왕이나 김인문이나 상호 의심이나 욕심 없이 쿨하게 넘어간 것 같다. 마지막에도 당나라 장안에서 죽었다. 이후 신라로 이장되었고 사후 신라 천 년 역사상 두 명밖에 못 받은 태대각간 관직에 추증됐다.

김인문의 무덤은 지금도 무열왕릉 바로 앞 도로변 맞은편에 김양의 묘와 함께 있어서 접근성이 좋다. 바로 옆에 중앙선 철길이 달리고 있어서 기차를 타고 경주에 오는 사람들은 차창 밖으로 지나가면서 지름 29.9m, 높이 6.5m의 거대한[2] 김인문의 고분을 얼핏 보고 경주에 왔음을 실감한다. [3] 이 무덤은 오랫동안 각간묘(角干墓)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무덤 앞에 있는 서악서원 문루 밑에서 발견된 쪼개진 비석 조각이 현재 이 무덤 앞에 남아 있는 귀부[4]의 이음매와 일치하고, 또 비석이 김인문의 것으로 판명나면서 김인문묘라고 불리게 되었다. 다만 이병도김인문묘야말로 진정한 김유신의 무덤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김유신 항목 참조.

영화 황산벌에서는 신라 왕자의 신분보다 당나라 관리의 신분이 더 좋다며 당나라에 빌붙는 인물로 묘사됐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하는 말을 통역을 하면서 사투리로 하는 말들이 하나같이 가관인데, 끝에 당나라군에게 먹일 식량을 신라군은 7월 10일까지[5] 사비성 앞까지 운반해 오라는 소정방에게 버럭하며 항의하는 김유신에게 "우리는 보급부대도 없이 전투병력만 왔다. 이 작전은 신라왕 김춘추가 황제께 애걸해서 결정한 것이다. 당장 김춘추에게 전하라. 우리는 배를 돌려 돌아가겠노라고!"라고 하는 소정방의 그 긴 대사(중국어)를 가만 듣고는 깐죽거리는 얼굴로 "배 돌려 그냥 가까?"로 아주 간결하게(...) 초월번역으로 통역했다. 소정방의 심기가 안 좋은 상황으로 아주 적절하게 통역을 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긴 대사로 저렇게 단순한 말을 했을 리가 없다 싶어서 멍하니 김인문을 쳐다보는 김유신 및 신라 장군들에게 "와 보는데? 통역 다 했구마."라고 대답하는 것은 나름 명장면.

후속작 평양성에도 나오는데 당나라에서 섭섭한 대접을 받았는지 신라 군복을 입고 신라 선봉대의 지휘관 일을 하는데... 중간에 낀 중간관리직의 안습함을 보여준다. 본대 오라는 당의 압박과 본대 가지 말라는 김유신 사이에 끼여서 고생하고, 마지막에 다 해결되면서 김유신과 문무왕이 뒷처리를 다 인문이게 맡기자는 말에 왜 나는 설거지만 하노!라며 분노하지만 씨알도 안먹힌다. (...)신라/인물

2 대한민국배우

1939년 4월 13일 - 2011년 4월 25일

본명 김인륜
신체 173cm, 70kg
소속사 디앤지스타
가족 슬하 2남
학력 동국대학교 농업학과 학사
데뷔 1967년 영화 '맨발의 영광'
수상 1990년 제2회 서울시 시민대상 장려상
종교 개신교

드라마들로는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첫사랑, 몽실 언니 등에 출연하였다.
순박한 아버지 등 친근한 이미지 배역을 많이 맡았으며, 특히 장기간 방영한 대추나무 사랑걸렸네에서의 역할은 전원일기의 최불암과 동급.
사극에서는 노회한 중신 역할도 잘 어울렸던 배우.

2011년 4월 25일, 지병인 방광암 투병중 별세하였다. 향년 73세.
  1. 당나라에 7번 넘어갔고, 체류한 시기를 합하면 22년이다.
  2. 물론 경주에 있는 신라 왕, 귀족의 무덤치고는 약간 작은 편이지만 경주 아닌 곳에서는 이만한 크기의 무덤은 보기 힘들다.
  3. 더 큰 무열왕릉은 담벼락과 숲 뒤에 있어서 바깥 도로와 철길에서는 잘 안 보인다.
  4. 비석을 받치기 위해 거북 모양으로 만든 받침돌.
  5. 원래는 12일까지였는데 "내가 살(쌀)배달꾼이가?"하며 발끈하는 김유신의 태도에 소정방이 10일까지 낮춰버렸다. 물론, 이것도 김유신의 발끈해서 하는 막말들을 또 옆에서 김인문이 (얄밉게) 통역을 다 해준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