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한의 역대 황제 | |||||
신 1대 가황제 왕망 | ← | 1대 경시제 유현 | → | 후한 16대 광무제 유수 |
묘호 | 없음 |
시호 | 무순(武順) |
왕호 | 회양왕(淮陽王) |
연호 | 경시 (更始, 23 ~ 25) |
성 | 유(劉) |
휘 | 현(玄) |
생몰기간 | ? ~ 25년 |
재위기간 | 23년 ~ 25년 |
능호 | 패릉(霸陵) |
경시황제 유현(更始皇帝 劉玄, ?~25)은 왕망의 신나라를 멸망시킨 뒤 한나라를 부흥시키고 황제가 된 사람이지만 짧은 재위(서기 23~25) 끝에 죽음을 당하고 정권이 몰락했으므로 정통 황제로는 인정받지 못했다. 그가 잠시 재건한 한나라 정권을 그의 이름을 딴 현한(玄漢)이라고 부른다.
유현의 자는 성공(聖公)이며 형주(荊州) 남양군(南陽郡) 채양현(蔡陽縣) 사람이다. 전한 경제의 6대손, 장사정왕(長沙定王)의 5대손, 용릉절후(舂陵節侯)의 4대손이며, 후한을 세우는 광무제 유수의 족형이다.
유수의 형 유연은 신나라에 대항해 거병하고 평림병·신시병과 세력을 합쳤는데, 나중에 이 반란군 연합이 황제를 추대하려 할 때 유연과 평림병 소속의 유현이 후보로 거론됐다. 둘은 같은 장사왕 후손이긴 하지만 유현 쪽이 큰집으로, 유현은 후작을 계승한 용릉대후 유웅거의 증손이고 광무제는 유웅거의 동생인 울림태수 유외의 증손이었다. 평림병과 신시병이 유연을 꺼려 나약한 유현을 밀어주자 유연 측에서 이를 받아들여 유현이 황제로 추대됐다.
'경시(更始)'는 시호가 아니고 그의 재위 기간에 사용했던 연호이다. 후한을 비롯한 후대 왕조에서 정통 황제로서 인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황제로서의 묘호와 시호를 받지 못했다. 대신 후한 광무제 유수가 그를 회양왕(淮陽王)으로 추증하고 무순(武順)의 시호를 올려 회양무순왕이라고 불리게 되었고, 그의 무덤을 황릉처럼 능호를 주어 패릉(霸陵)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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