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dth=50 백제의 역대 국왕 | ||||||
33대(?) 융왕 부여융 | ← | 34대(?) 경왕 부여경 | → | 작위 폐지 |
왕호 | 경왕(敬王) / 대방군왕(帶方郡王) | |
성 | 부여(扶餘) | |
휘 | 경(敬) | |
생몰년도 | ? ~ ? | |
소백제 통치(?) | 682년 ~ ? |
扶餘敬
생몰년도 미상
백제의 왕족. 의자왕의 증손자로, 할아버지는 부여융. 아버지는 확실치 않다.[1]
677년 당은 요동 건안성 웅진도독부로 백제 유민들을 이주시키고 부여융을 웅진도독·대방군왕으로 삼아 다스리게 했다. 이렇게 한 이유는 백제 전역이 이미 671년 전후로 신라가 차지했기 때문. 682년 부여융이 사망한 후, 측천무후가 그에게 왕위를 계승하게 했다.[2] 하지만 웅진도독은 이미 명목상 지위에 불과했고 이후 백제의 국계는 끊어지게 되었다.
이후 건안성의 백제 유민들에 대한 기록이 전무해서 이들이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다. 이도학 교수는 해당 지역이 발해가 8C중반~9C초에 진출하면서 사라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 부여융의 아들로 부여문사, 부여덕장이 확인되지만 부여문사의 경우 부여효의 아들로 보기도 하며 부여덕장 외에도 아들이 더 있을 가능성이 높다.
- ↑ 동국통감 권9 신라기에 따르면 686년 보장왕의 손자 고보원이 조선군왕을 받은 시기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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