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왕사

< 백제

백제의 역대 왕에 관련된 정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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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는 사계절출판사 한국생활사박물관 백제 편에서 나오는 백제 건길지와 왕비의 복식.

1 설명

678년동안 31명의 왕이 있었다. 평균 재위기간은 21년.

백제들은 다수가 이름을 그대로 붙인 경우가 많다. 온조왕[1]이 대표적이며 예외도 있지만 적다. 개루왕, 진사왕, 근초고왕, 근구수왕, 아신왕, 개로왕, 성왕, 무왕 정도가 예외다.

성씨는 부여씨인데, 간혹 여씨라고도 한다. 이는 동명성왕온조왕부여의 왕족에게서 갈라져 나온 것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 중 하나라는 말이 있다. 현재 백제의 왕족의 후손은 부여 서씨[2]라고 한다.

한국의 왕사중 가장 불행하고 피비린내 나는 왕사를 가지고 있다. 조선왕 독살설 뺨친다 백제 역사가 제대로 파악이 가능한 근초고왕 이후부터의 왕들은 근초고왕과 근구수왕 양대 전성기를 제외하고 이후로는 대부분이 정쟁에 휘말려 살해당했다. 게다가 대부분 생년이 불확실하다. 지못미... 중흥에 성공한 무령왕 이후에야 왕이 천수를 못 누리고 죽는 현상이 줄어들었다(무령왕은 웅진백제에서 즉위한 다섯 왕 가운데 유일하게 살해당하지 않은 왕).

31명의 왕 가운데 16명이 비명횡사했다. 기록이 불분명 한 것을 감안하면 사실 그 숫자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살해당한 왕은 초기 6왕을 제외한 중반기에 집중되어있는데, 중반기에서도 익히 알고 있는 고이왕- 비류왕 - 근초고왕, 근구수왕 - 전지왕 - 무령왕, 위덕왕 - 무왕 - 의자왕인 아홉 왕을 제외한 대부분의 왕이 그렇다(...). 더구나 고이왕 앞 왕들은 사실상 기록이 분명치 않기에 고이왕이 사실상의 건국자로 거론되는 판이며, 의자왕 때 나라가 망한걸 생각하면 정말 제대로 천수를 누린 왕은 8명이다(...).

2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따른 가계도

2.1 계보도

  • 왕호대신 이름만 기재되어 있으며 여러 의견이 있는 왕의 계보는 《삼국사기》의 계보를 우선으로 기입했습니다.
고주몽(고구려)
비류1.온조 유류
2.다루 고구려/왕사
3.기루
4.개루
6.고이(비류계?)5.초고6.고이(?)[3]
7.구수9.책계
8.사반11.구태10.분서
 13.12.계(?)[4]
 14.
 15.침류16.[5]
 17.아신
 18.
 19.구이신(?)[6]
 20.
 21.경사
 22.모도[7]곤지
 23.삼근24.모대
 25.사마
 26.명농
 27.28.
 아좌태자(?)29.
 30.
 31.의자
 32.

2.2 가계도

주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기록에 따른 가계도로, 그대로 믿기는 곤란하지만 백제사 연구에 있어 기초가 되는 자료이다. 다른 가설들도 있으므로 상세한 이야기는 각 해당 항목을 참고.

동명성왕───소서노
.................├──────┐
........1.온조왕...........비류
.................
........2.다루왕
.................
........3.기루왕
.................
........4.개루왕
................├──────┐
........5.초고왕..... 8.고이왕
................
........6.구수왕
................├──────┐
........7.사반왕..... 11.비류왕

2.2.1 고이왕계

4.개루왕

8.고이왕

9.책계왕

10.분서왕

12.계왕

2.2.2 초고왕계

5.초고왕

6.구수왕

11.비류왕

13.근초고왕

14.근구수왕
├──────┐
15.침류왕 16.진사왕

17.아신왕

18.전지왕

19.구이신왕

20.비유왕

21.개로왕
├────┐
22.문주왕 곤지

23.삼근왕

2.2.3 동성왕계

21.개로왕

곤지

24.동성왕

25.무령왕

26.성왕
├─────┐─────┐
27.위덕왕 28.혜왕 임성태자?[8]

2.2.4 법왕 이후

29.법왕 혹은 진이왕?

30.무왕

31.의자왕
├─────┐────┐
부여융 부여태 부여풍

3 연표

잘 보면 한성을 도읍으로 삼은 기간이 압도적으로 길다...

댓수명칭재위기간비고
<<한성백제시대>> BC 18 ~ AD 475(483년)
1대온조왕(溫祚王)온조BC 18∼AD 28
2대다루왕(多婁王)다루28∼77
3대기루왕(己婁王)기루77~128
4대개루왕(蓋婁王)개루128~166
5대초고왕(肖古王)초고166~214소고왕(素古王), 속고왕(速古王)
6대구수왕(仇首王)구수214~234귀수왕(貴須王)
7대사반왕(沙伴王)사반234(살해추정)
사비왕(沙沸王), 사이왕(沙伊王)
8대고이왕(古爾王)고이234~286
9대책계왕(責稽王)책계286~298전사
청계왕(靑稽王), 책찬왕(責贊王)
10대분서왕(汾西王)분서298~304암살
11대비류왕(比流王)구태304~344
12대계왕(契王)344~346요절
13대근초고왕(近肖古王)346~375조고왕(照古王), 초고왕(肖古王), 속고왕(速古王)
14대근구수왕(近仇首王)375~384
15대침류왕(枕流王)침류384~385단명[9]
16대진사왕(辰斯王)385∼392횡사[10]
17대아신왕(阿莘王)아방392~405[11]
18대전지왕(腆支王)영,전405~420
19대구이신왕(久爾辛王)-420~427(살해추정)
20대비유왕(毗有王)427~455(살해추정)
21대개로왕(蓋鹵王)경,경사455~475패전 후 살해
근개루왕(近蓋婁王)
<<웅진백제시대>> 475 ~ 538(63년)
22대문주왕(文周王)모도475∼477암살
문주왕(汶洲王)
23대삼근왕(三斤王)삼걸477∼479(살해추정)
임걸왕(壬乞王), 삼걸왕(三乞王), 문근왕(文斤王)
24대동성왕(東城王)모대479∼501암살
모대왕(牟大王)
25대무령왕(武寧王)사마501∼523사마왕(斯麻王)
<<사비백제시대>>[12] 538 ~ 660(122년)
26대성왕(聖王)명농523∼554패전 후 처형됨
성명왕(聖明王), 명왕(明王)
27대위덕왕(威德王)554∼598[13]창왕(昌王)
28대혜왕(惠王)598~599암살 혹은 단명추정
29대법왕(法王)599~600암살 혹은 단명추정
30대무왕(武王)600~641
31대의자왕(義慈王)의자641~660당나라로 압송, 병사
<<부흥운동시기>> 660 ~ 663(3년)
32대풍왕(豐王)660~663풍장왕(豊障王)
백제 자치정부(소백제)-융왕(隆王)660~682?[14]대방군왕(帶方郡王)
백제 자치정부(소백제)-경왕(敬王)682 ~ ?대방군왕(帶方郡王)

총 햇수로 BC 18~ AD 660까지 678년. 뒤의 풍왕이나 융왕의 기간을 더하면 694년이다.

4 백제왕 씨

백제 말기에 백제 왕족은 덴노로부터 백제왕이라는 성을 하사받는다. 고대 일본의 가문과 족보를 집대성한 신창성씨록에 비다쓰 덴노의 손자가 백제왕이었다는 구절이 있어 이를 천황가가 백제계라는 근거로 쓰곤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백제왕은 백제의 왕이 아니라 백제왕(百濟王, 구다라노코니키시(くだらのこにきし))씨라고 한다. 그런데 가문 백제왕씨를 말한다고 보기엔 문장이 어색한데....

5 이모저모

  • 백제는 다른 국가에 비해 유독 재위기간이 짧은 왕들이 어럿있다.
    • 가장 짧은 재위를 한 왕은 사반왕으로 1년도 채 재위하지 못했다. 그 덕에 《삼국사기》에도 항목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 그 뒤로 1년간 왕위에 있었던 혜왕(598년 음력 2월 ~ 599년), 2년간 재위한 계왕(344년 음력 10월 ~ 346년 음력 9월), 법왕(599년 ~ 600년 음력 5월), 침류왕(384년 음력 4월 ~ 385년 음력 11월)이 뒤를 따른다.

6 누락된 왕!?

일본 속일본기에 의하면 백제 귀수왕(근구수왕, 근귀수왕)은 제16대왕으로 태조 도모대왕(주몽)의 10세손이라고 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 근구수왕은 14대왕인데 여기서는 16대왕이라고 하고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백제가 기원전 1세기 무렵에 건국한 건 분명한데 누락된 대수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백제인들이 온조가 아닌 주몽을 백제의 태조라고 하는 걸 볼 수 있는데 이에 따르면 백제의 제1대왕은 온조가 아닌 주몽이다.

이는 온조가 주몽의 친자라는 걸 확실히 입증하는 기록이다. 비류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온조가 주몽의 친아들이 아닌 이상 백제가 주몽을 태조로 모실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제왕운기에는 온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형 비류(은조)가 5개월 동안 재위에 있다가 병들어 죽고 온조가 왕위를 물려받은 것으로 나온다. 이에 따르면 백제 제2대왕은 다루왕이 아닌 온조의 형 비류왕이다.

일본 속일본기, 신찬성씨록 그리고 제왕운기 등에 의하면 온조는 백제의 1대왕이 아닌 3대왕이다.

그리고 일본 신찬성씨록에 문주왕을 24대왕, 혜왕을 30대왕으로 적고 있어서 삼국사기와 대수가 2대 이상 차이가 난다.

제왕운기에서는 백제의 왕이 총 34명이 있었다고 말하며 삼국사기의 31명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르면 혜왕~의자왕 사이에도 누락된 왕이 1명 더 있다는 것이다. 위덕왕의 아들이자 무왕의 생부라고 전하는 진이왕이 추존왕이기 때문에 삼국사기에서 누락되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백제 시조 동명왕은 삼국사기에서는 주몽이라고 묘사하고 있으나 일본서기 등을 보면 백제의 시조는 북방의 색리국(고리국)에서 나왔다고 함으로 이는 주몽 신화가 아닌 부여 동명왕 신화와 관련이 있으므로 백제 시조 동명왕은 주몽이 아닌 부여의 시조 동명왕일 가능성이 높다.

7 참고항목

  1. 다만 온조왕의 경우 온조(溫祚)라는 한자가 가진 의미때문에 이름이 아닌 묘호로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2. 당나라의 고종이 백제의 왕자 부여융에게 서씨라는 성을 하사했다고한다.
  3. 삼국사기》에는 초고왕의 동생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로 비류계인지 다른 쪽인지 알 수 없다. 이 표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우선시해 작성한다.
  4. 신라 초기 국왕들처럼 이름을 왕호를 사용한건지, 아니면 시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5. 본인 아들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6. 신라 초기 국왕들처럼 이름을 왕호를 사용한건지, 아니면 시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7. 삼국사기》에는 아들로 등장하나 최근 학계에서는 일본서기의 동생이라는 설이 더 주목받고 있다. 항목 참조.
  8. 오우치(大內) 가문 족보의 기록.
  9. 정쟁으로 죽었다는 설도 있다.
  10. 삼국사기》에는 사인없이 그냥 사냥 중 머물던 행궁에서 죽었다고만 기록되어 있지만 일본서기에서는 살해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11. 분사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역시 정쟁에 휘말려 죽었다는 설도 있다. 이후 왕실 갈등이 벌어져 전지왕 즉위까지 대리를 하던 훈혜가 혈례에게 죽었다. 혈례는 왕이 되어 전지왕까지 죽이려고 했으나 혈례가 대신 살해당했다.
  12. 성왕 16년(538년) 사비 천도.
  13. 재위 45년. 향년 일흔넷. 연도추정과 생몰년이 확실한 백제왕 가운데는 가장 장수했다.
  14. 백제지역에선 672년을 전후로 축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