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조에 대해서는 불사조 문서를, 피닉스에 대해서는 피닉스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주작에 대해서는 주작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봉(鳳)은 수컷, 황(凰)은 암컷을 뜻한다 |
사령 | |||
응룡 | 봉황 | 기린 | 영귀 |
1 설명
봉황(鳳凰)이란 동아시아 전설에 나오는 상상 속의 새다. 갑골문자에서 봉황은 벼슬과 긴 꼬리깃을 달고 있는 새 모양의 문자로 표현된다. 갑골문자의 자형으로 보면 鳳은 공작, 혹은 그와 비슷한 종류의 조류나 긴 꼬리를 가진 새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문자로 추측되고 있다. 지금은 멸종하고 없는 아름다운 깃털의 새를 나타내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본래 이 문자가 가리키던 새가 멸종하면서 점차 상상의 동물로 바뀐 것으로 추측된다. 처음에는 봉(鳳) 자만 사용했으나, 나중에 수컷을 봉(鳳), 암컷을 황(凰)으로 나누어서 표기하였다. 한국에는 중국에서 도래되었다고 하나 그 이전부터 있었던 새 토템신앙(솟대, 삼족오 항목 참조)을 근거로 이전부터 있었던 신성한 하늘새(닭으로 보기도 한다) 신앙에서 연관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서봉총 금관의 새 장식. 봉황이랑 비슷하다. |
또한 봉(鳳)자에서 바람 풍(風)자가 나오게 된다. 본래는 발음이 같았기 때문에 바람이라는 의미가 같은 문자에 덤으로 붙어 있었고, 풍은 봉의 이체자에 불과했으나 후세에 이르러 봉에서 풍이 완전히 분리된다. 역으로 이것 때문에 봉과 바람의 관계가 생겼다.
도교 세계관에서는 붕(鵬)과 함께 조류로서는 최상 랭크에 위치한 환상종이다. 용과 비슷한 역할을 담당하는데, 다만 어떤 상서로운 징조로서 나타난 기록은 있으나 막상 전투에 참전했다는 내용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해가 뜨면 우는 특성 때문인지 닭을 존대하는 표현이기도 하며 흔히 닭으로 만든 요리를 추켜세울 때도 쓰인다. 예를 들자면 BBQ용봉탕(龍鳳湯). 용봉탕은 보양을 위해 잉어와 닭을 이용해 끓여낸 요리로, 잉어를 용에 비유한 것은 등용문의 고사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지역별로 잉어 대신 자라나 메기를 넣거나 함께 넣어 요리하는 것도 있다.
그 탄생에 대해서는 용과 학 사이에서 나왔다는 출처불명의 설이 있다. 한국어 위키백과에서 이와 같이 설명하고 있으며 국외 웹사이트에서는 탄생에 관해 찾을 수 없다. 위키백과 설명의 출처를 아시거나 다른 설을 아시는 분은 추가바람.
왠지 모르게 서양 쪽에서는 불사조하고도 연결되기도 하며, 특히 봉황과 주작의 영어식 번역어로서 본래는 서양의 불사조를 의미하는 단어인 피닉스(Phoenix)를 아예 그대로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유래를 따지고 보면 봉황과 주작은 서양의 불사조인 피닉스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봉황이나 주작의 경우 옛 중국 신화인 산해경에서 유래되었지만, 피닉스는 이집트 신화의 불사조인 벤누(Bennu, Bnn)에서 유래되었다.
중국에선 황후의 상징. 용 중의 용인 황룡은 황제가 쓰는데 반해 새 중의 새인 봉황이 그 아내인 황후에게 쓰인 것이다. 봉황이 함부로 산짐승을 먹지 않는 점에서 유래하여 인과 덕을 뜻하여 그것이 황후의 덕목으로서도 요구된 것. 《장자》 소요유편에 의하면, 봉황은 벽오동 나무가 아니면 깃들어서 쉬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고, 예천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고 하였다. 얘네가 멸종한 이유 며느리인 태자비도 봉황을 쓰지만 문장이 황후에 비하여 작다.
시각에 따라서는 봉황은 주로 용을 잡아먹고 산다는 인도 신화와 불교의 가루다(금시조) 이미지로 받아들인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런 경향도 있다 하는 정도지 옛 미술품에 보면 금시조는 봉황과 엄연히 다르게 그려진다. 금시조는 거의 인면조로 그려진다. 다만 금시조가 봉황이 전해져 결과적으로 봉황으로부터 발전된 형상이라는 설도 있다.
봉황 그 자체는 대단히 좋은 상징성을 갖고 있으며, 신체의 각 부위는 인(仁)·의(義)·예(禮)·덕(德)·신(信)을 나타낸다고 하며, 죽었다가 부활하는 서양의 피닉스와는 달리 신선이나 성천자(聖天子)의 상징이라서인지 죽음과 관련된 것은 아예 이렇다 할 언급이 없다. 하기사 천자의 상징인데 봉황의 죽음 운운하면 봉황 목숨보다 그 사람의 목숨부터 위험하겠지만.[1]
일본어로는 호오(ほうおう)라고 읽으며, 포켓몬 중 하나인 칠색조의 이름은 여기서 따왔다.
순우리말로는 아시, 아시새라고 한다.
그런데 봉황은 정작 중국이 아니라 중국 동쪽 군자국[2]에 산다는 언급이 《설문(說文)》에 나온다.
봉은 신조(神鳥)이다. 동방의 군자국(君子國)에서 나는데, 사해(四海)의 밖에서 날아올라, 곤륜산(崑崙山)을 지나서 지주(砥柱)에서 물을 마시고 약수(弱水)에서 깃을 씻고, 저녁에는 풍혈(風穴)에서 잔다. 이 새가 나타나면 천하가 크게 태평해진다.
출처
또한 《산해경》을 보면 남산경에 봉황이 나오는데, 기록을 보면 중국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동쪽으로 500리를 가면, 단혈산(丹穴山)이 있는데 그 산 위에는 금과 옥이 많이 있다. 단수(丹水)가 이곳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흘러 발해(渤海)로 흐른다. 새가 있는데 그 생김새가 닭과 같고 오색의 채색된 무늬가 있으며 봉황(鳳凰)이라고 한다(민음사판 산해경 65쪽)". 물론 산해경의 지리에 대한 기록은 개판인데다,[3] 어디까지나 신화를 기록한 책이니 그냥 그렇구나 하는 정도 이상의 의미는 없다.
조선시대부터 용을 상징하는 천조국 명나라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왕의 상징으로도 쓰였다. 서구에서는 Phoenix Throne이라는 표현도 있고... 물론 왕의 상징으로는 용도 많이 썼다. 두루 썼다는 것이다. 또한 봉황 역시도 훌륭한 군주의 상징으로서 딱히 이것만으로 조선 왕의 권위가 너무 낮니 할 필요는 없다. 심지어 청나라가 조선에 지정한 국기도 청색 바탕에 용을 그리는 방식의 깃발이었다. 물론 고종은 그에 반발해 태극기를 만들었다.[4] 하지만 조선 시대 왕실유물에서 용이 많이 나오는 것도 사실. 왕실이 용의 후손이라는 고려 시절에도 봉황문은 많이 쓰였다. 조선 왕의 흉배 문양에 있는 용의 발톱이 중국보다 적은 4개라는 루머가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실제로 세보면 5개 맞다. 조선 왕실에서 쓰인 용 문양의 발톱은 그때그때 수가 달라지는데 흉배에는 5개가 쓰이기도 했고 그림에는 4개가 그려지기도 했으며 경복궁이나 경희궁 정전의 천장에는 황제국의 5조룡도 뛰어넘는 7조룡을 조각하기도 했다. 왜 그런지는 그저 왕실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가 아닐까 라는 막연한 추측이 있을 뿐 자세한 것은 불명.
여하튼 우리나라는 예부터 새를 숭상하던 풍습이 있어, 용을 숭상하던 중국과는 다른 문화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이유인지 한국의 신화나 설화 등을 볼 때, 한국에서 용은 중국과는 달리 하위신에 위치하는 듯한 내용의 설화가 많다(인간에게 속아서 여의주를 뺏긴다든지).[5]
대한민국 대통령의 휘장에 쓰인다. 청와대의 대통령실에는 벽면에 한 송이 무궁화와 그 좌우에 1마리씩 총 2마리의 금봉황이 장식되어 있다. 국군 장성들이 타고 다니는 관용차에 번호판 대신 성판을 부착하는 것처럼, 대통령도 국군의 날과 같은 공식 행사에 참석할 때는 전용차에 이 '봉황 휘장'을 붙이며 이와 같은 공식적인 행사 때 쓰이는 곡인 "대통령에 대한 경례"는 제목이 봉황이다.
한편 봉황이 한국의 상징으로 쓰이기 시작한 건 일제강점기가 최초라는 창작물주장이 있다
해당 링크 문서의 내용을 요약하면, "일제강점기 이전에 조선 왕실을 상징하는 것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용이었고 봉황은 보조적인 역할이나 충신의 상징으로서만 활용되었다. 그러나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한 이후 창덕궁 인정전에 원래 있던 '일월오봉도' 대신 조잡한 퀄리티의 봉황도를 놔두었고 해방 직후 이승만 대통령이 인정전에 있던 일제의 봉황도를 보고는 대통령의 권위를 상징하는 문장으로 이용한 듯하다."는 것으로, 수정전 본문에는 (링크된 문서에도 없는) 이승만이 창덕궁 인정전에서 집무할 당시 이 곳의 봉황 상징을 조선 고유의 것으로 착각해 그대로 대통령 취임식의 엠블렘으로 채택했고 그것이 지금가지 이어지는 것이라는 내용까지 적혀있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사실로 조선말기 과거시험에 응시했을 정도로 유학을 깊게 공부했던 이승만이 봉황을 조선 고유의 상징이라 착각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을 뿐만 아니라 인정전에서 집무했던 사실도 없다.[6]
링크된 문서 또한 이승만이 가장 먼저 봉황문을 대통령의 상징으로 사용했음을 사진자료를 통해 제시했지만 이것이 일제강점기 인정전에 설치된 봉황문과 어떠한 관계를 갖는지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였다. 좀 거칠게 말하면 "일제가 갖다놓은 봉황문이 인정전에 있었고 이승만이 봉황문을 (대통령의 상징으로는)[7] 처음 사용했으니 이승만은 일제의 봉황문을 보고 그냥 가져다 쓴게 아닐까?" 하는 수준의 창작을 기술하고 있을뿐이다. 헌데 여기에 더해 (여러 역사문헌에 의해 고증되었듯 우리 한민족이 고대에서부터 봉황, 삼족오와 같은 신조(神鳥)를 숭상한 사실을 비롯해 당장 인정전을 비롯한 조선 궁궐의 답도에도 봉황이 흔히 사용되었던 점 등을 무시하고) 만들어진 전통이니 하는 말로 글을 끝 맺으니 글쓴이의 수준이 의심될 지경이다.
오히려 위에 서술되었듯 청나라가 조선에 지정한 국기에 용을 그려넣었던 점, 오랜 역사 속 신조를 숭상해왔던 문화적 기반 등을 생각했을 때 우리 한민족의 상징으로는 봉황이 더 적합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8]
그냥 정치적으로 이승만이 싫으면 싫은 것이지 이렇게 소설까지 써가며 우리 민족의 상징을 스스로 까내리는 글쓴이를 이해할 수가 없다 이승만이라면 다른 깔 것도 많거늘
이와는 별개로 봉황을 두고 사대주의의 상징으로 해석했던 의견들이 없지는 않다. 1940년에 ≪문장≫지에 발표된 조지훈의 시 <봉황수(鳳凰愁)>에서는 고궁 옥좌 위 천장에 새겨진 봉황이 '여의주 희롱하는 쌍룡'과 대조되어 유약하고 보잘것 없는 이미지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벌레 먹은 두리 기둥, 빛 낡은 단청(丹靑), 풍경 소리 날아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玉座) 위엔 여의주(如意珠) 희롱하는 쌍룡(雙龍)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른 하늘 밑 추석(甃石)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패옥(佩玉) 소리도 없었다. 품석(品石) 옆에서 정일품(正一品), 종구품(從九品) 어느 줄에도 나의 몸 둘 곳은 바이 없었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천(九天)에 호곡(號哭)하리라.
물론 조선의 정궁(법궁)은 경복궁이었고, 고종이 대한제국 황제를 선포한 뒤 사용한 곳은 덕수궁이었지만(두 궁궐 모두 정전 천정에 '여의주 희롱하는 쌍룡'이 버젓이 새겨져 있다!) 굳이 조지훈이 봉황으로 표현하려 했던 이미지를 위해 굳이 봉황이 있는 고궁[9]을 골라서 작품을 썼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전라북도를 연고로 하는 전북 현대 모터스 축구단 엠블럼의 심볼로 백제 봉황문전의 봉황문을 사용중이다.
한 치킨 프랜차이즈에서 양식에 성공한 듯 하다
2 대중문화 속의 봉황
주작이나 불사조(피닉스)와 얽메여서인지 대중문화에서는 불 속성이 붙는 경우가 많다.
2.1 개별 항목
- 라이징 모드가 봉황의 형태를 하고 있다.
- 이쪽은 모티브가 봉황.
2.2 삼국지 7에 나오는 성수 중에 하나
전투 중 계략창에서 사용할 수 있는데 봉황의 경우는 적의 군량을 상당수 불태우고 모든 적에게 화계를 걸어 피해를 입힌다. 실질적으로 큰 타격을 주지는 못하나 봄이나 가을에 사용할 경우 전장이 순식간에 불바다가 될 수 있다. 얽히고설킨 난전 상황에서 봉황을 발동할 경우 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다른 성수들과 마찬가지로 성흔 특기를 습득한 장수가 길가던 호랑이에게 삥을 뜯으면 얻을 수 있다. 한 번 뜯어낼 때마다 전투 중 한 차례씩 사용할 수 있으므로 성흔 특기를 얻고 일기 특기를 가지고 있는데다 무력도 높다면 열심히 사냥 다니며 뜯어내자.
2.3 그외
- SNK의 횡스크롤 슈팅 게임인 사이코 솔져의 1P 캐릭터
정의 바보아사미야 아테나는 봉황으로 변신할 수 있다. - SNK의 대전 액션 게임에 나오는 인물
갱생왕김갑환의 초필살기이름엔 봉황이 꼭 들어간다.봉황은 정의빠의 상징인가 - 만화 바람의 나라에서는 호동왕자의 신수로 등장한다. 고모인 세류가 준 것이다. 즉, 작중 고구려 왕실 내의 갈등의 한 원인을 세류가 제공한 셈이다. 호동의 부친인 무휼과 상극이라 한 번은 무휼에게 정체가 들켜 죽을 뻔한 적도 있다. 함부로 신수를 해치면 그 주인에게도 생명에 지장을 줄 정도의 해가 돌아가는데, 그것조차 아랑곳하지 않고 처단하려 들었다. (비록 호동을 간병하면서 기가 느슨해진 틈을 타 도망쳤지만) 이후 무휼과 호동 간의 골육상잔의 운명을 암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본인도 무휼을 싫어해서 틈만 나면 호동에게 고구려를 떠나자고 부추긴다. 초반엔 봉황의 병아리 상태이지만, 후반에 들어 성체가 된다.
- 이나즈마 일레븐 GO 크로노 스톤의 등장인물 알파의 화신이
코알라닮은 머리와 안어울리게봉황이다.화신 암드가 상당히 촌스럽다(...) - 천년구미호 의 주인공 이소윤의 애완닭 꼬꼬의 정체가 봉황 이다.
- SD건담 삼국전에서 조조 건담이 삼어의 영혼 중 봉황의 영혼을 이어받았다는 설정이 존재한다.[10]
2.4 기타 봉황을 상징으로 쓰는 단체
3 관련 항목
- ↑ 민담 레벨에서는 있긴 한데, 봉황이 나타나던 한 마을에서 어떤 청년이 호기심에 봉황을 죽이자 인재가 많던 그 마을에 인재가 나지 않아 폐촌이 되었다고 한다. 다만 이런 이야기는 신화집이나 도교 경전류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신이 죽는 경우도 있는 게 민담인지라 어련하겠느냐만은 - ↑ 한국의 별칭으로도 쓰였다.
- ↑ 동진의 인물 곽박은 아예 남산경에 언급된 발해는 해안선이 굴곡진 곳이라는 주석을 달기까지 했다.
- ↑ 첨언하자면 청나라가 지정해준 용기는 중국 황실에서 쓰던 오조룡보다 격이 낮은 사조룡에, 중국 동쪽에 한국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동방의 수호신인 청룡, 즉 사조청룡이었다. 또한 태극기 이전에도 조선 왕실에서는 어기(御旗)를 사용했다. 모양은 문왕팔괘에 태극도설의 태극문양
다트판을 그려넣었으며, 이와 유사한 좌독기는 군대에서 사용했다. - ↑ 근데 사실 용을 숭상한다는 중국에서도 불교와 도교의 영향으로 용왕은 고전소설에서 자주 동네북으로 등장한다.(...)
- ↑ 1948년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경무대에서 근무했다.
- ↑ 옛날부터 왕의 상징으로 쓰여왔다.
- ↑ 중국의 왕망이 한나라의 왕위를 찬탈하고 신나라를 건설하였을때 이새가 나타났다고 한다. 그러나 당대의 백성들은 이새를 흉조라고 생각하였다.
저 새는 해로운 새다 - ↑ 애초에 정전에 용이 아닌 봉황을 새긴 곳은 창경궁과 창덕궁밖에 없다.
- ↑ 정확히는 그의 무기인 성황검(칠성검)이 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