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
2 제 1차 경주성 전투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박진이 의병장 권응수, 정세아의 5천명의 병력과 관내 읍병을 합쳐 1만여 군사를 거느리고 1592년 음력 8월 20일 일본군이 차지한 경주성을 탈환하기 위해 공격했지만 오히려 일본군이 북문으로 나와 조선군 600명을 사살하면서 실패로 끝났고 박진은 안강의 본진으로 후퇴했다.
3 제 2차 경주성 전투
- '한달 뒤인 음력 9월 8일에 박진은 다시 군사를 정비한 후 관군 5천명을 이끌고 경주성을 다시 공격했다.[1] 이때는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와 화차 등을 이용해 경주성을 탈환하는 데 성공하고 영남 지역의 왜군들을 해안 쪽으로 압박하는 데 성공했다.[2] 당시 일본군은 이 비격진천뢰의 위력에 상당히 놀란 모양인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적진에서 괴물체가 날아와 땅에 떨어져 우리 군사들이 빙 둘러서 구경하고 있는데 이것이 갑자기 폭발하자 소리가 천지를 흔들고 철편이 별가루같이 흩어져 맞은 자는 즉사하고 맞지 않은 자는 폭풍에 날아갔다. 기이하고 놀라서 서생포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