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강읍

安康邑 / Angang-eup

안강읍
安康邑 / Angang-eup
국가대한민국
광역단체경상북도
행정시경주시
면적138.67 km
하위법정리 15, 행정리 45
시간대UTC+9
인구29,368명
(2015년 5월 기준 주민등록인구)
인구밀도212명/km
읍사무소 소재지(안강리 346-7번지)
읍장(이진섭)
홈페이지

1 개요

앙앙(AngAng)읍[1]
경주시 북서쪽 에 위치한 . 면적은 138.67km 인구는 29,368명이다.[2] 동쪽으로는 경주시 강동면, 남쪽으로는 경주시 현곡면, 북쪽으로는 포항시 기계면, 서쪽으로는 영천시 고경면에 접해 있다.

경주시 북부의 중심지. 안강리에 읍사무소가 있다.

안강읍은 기계천이 형산강에 유입하는 평야 지대에 위치해 있다. 지리적으로 경상북도 남동부의 세 도시인 포항시, 경주시, 영천시의 중간점에 위치하여[3][4], 교통의 요지로 일찍이 시가지가 발달되었다. 꽤 이른 시기인 1949년 강서면에서 안강읍으로 승격된 것이 이를 증명한다.

안강읍 일대는 경북 남동부에서 제일 큰 평야 지역이다(강동면, 포항시 기계면 일대 포함). 기계천이 형산강에 유입하는 곳 주변으로 비옥하고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으며, 그 규모는 경주평야(경주 시가지 주변), 흥해평야(포항시 흥해읍 일대) 등보다 더 넓다.

경주시 제일의 쌀 주산지이며, 토마토, 단감 등 특산물과 전국 최대 규모의 한우사육 등 축산이 발달된 전형적인 도시 근처 살기좋은 시골이다. 또한 동해남부선 철도, 국도 28호선, 국지도 68호선, 포항~건천간 산업도로, 포항~구미간 고속도로 개설 등 교통요충지이며 (주) 풍산 대기업과 70여 중소기업체가 활발한 생산활동을 하고 있으며 기업유치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안강일반산업단지 조성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읍내와 가까운 곳에 동해남부선 안강역이 있으며, 이외에도 간이역인 청령역사방역이 있다. 포항시내버스[5]가 이 곳까지 드나들기 때문에 사실상 생활권은 경주권보다는 포항권에 속한다. 포항시 안강읍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는 말도 있다. 안강터미널[6]에서 경주가는 것은 시외버스처럼 표 끊고 타고 포항가는 시내버스는 교통카드 삑!

2 유래

원래 안강은 무인 하천 지역이었으나 칠평천 유수의 변천으로 민가가 형성되었다. 원삼국시대에는 음즙벌국이었고 초기 파사 이사금 때 음즙벌국왕 타추간이 신라(=경주 사로국)에 대들다가[7] 정복되어 복속되었다. 통일신라 경덕왕때 주민의 평안함을 염원하는 뜻에서 “안강”이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속시끄러운 서라벌에서 떨어졌으면서 살기좋다고 지은 듯 하다 요즘말로 개꿀

3 교통

3.1 버스 터미널

안강 시외버스 터미널
안강 동부 터미널

3.2 기차역

안강역이 있다

3.3 간선 도로

수정바람

4 시설

해당 읍 소속의 리에 관해 서술한다. 다만 안강읍 자체가 도심지에 해당하는 곳이 안강리, 양월리, 산대리 뿐이고 인구밀도도 안강, 양월, 산대리가 가장 높다. 나머지는 깡촌이다. 이쯤되면 인구가 줄어드는 것도 당연해보인다. 그리고 땅은 무식하게 큰데 논 아니면 산지라서 도심지가 생겨나기 힘들다. 잘 알려진 관광지 마저도 없다. 그나마 옥산 서원, 구강 서원, 흥덕 왕릉 등, 나름 의미 깊은 사적 or 유적지가 있긴 하나, 경주의 다른 문화재에 비해서 워낙 인지도가 낮아서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요즘에는 근처의 양동마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상황이 조금 나아진 편.[8] 어차피 양동 마을이 안강에서도 동쪽 끝자락이라 안강읍 전체의 입장에서 볼때는 계륵같다는 의견도 있다.

  • 안강리
마을 동쪽으로 형산강이 흐르고 있으며, 그 지류가 마을 남쪽으로 흐르고 있다. 북쪽에는 양원들이, 북동쪽에는 얄동들이 넓게 펼쳐져 있으며, 농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이다. 자연마을로는 안강 마을 등이 있다.
  • 양월리
마을 중앙으로 하천이 흐르고 있으며, 마을 남쪽에 금성들, 대못들 등이 펼쳐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양월, 구강, 창마을 등이 있다. 양월 마을은 약 70여년전 마을 주위에 버드나무가 우거진 숲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달을 보면 마음이 쾌활하였다고 하여 양월이라 불려지게 되었다. 구강 마을은 마을의 동남쪽에 거북을 닮은 산이 있어 붙여진 지명이며, 창 마을은 신라시대부터 이마을에 군량창고가 있었다고 하여 명명되었다. 문화재로 시도유형문화재 233호인 익재집책판 (益齋集冊板), 문화재자료 90호인 익재영정 (益齋影幀), 문화재자료 188호인 구강서원 (龜岡書院)이 있다.
  • 육통리
마을 서쪽에 도덕산이 위치해 있으며, 마을 남쪽에 대곡지, 원당못, 대통지 등이 분포해 있다. 자연마을로는 원당, 능골, 존당 마을 등이 있다. 원당 마을은 고려시대때 원절이라고 하는 큰절이 있었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며, 능골 마을은 신라 흥덕왕릉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능골 마을이라 불린다. 존당 마을은 서당이 있었던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명명되었다.
  • 노당리
마을 서쪽에는 노당지가 있으며, 동쪽에는 노당들, 뒷들, 배알이들이 펼쳐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노당, 산대 마을 등이 있다. 노당 마을은 신라시대부터 안강에서 의창군으로 통하는 관문으로 신라이후 조선시대까지 오래된 가옥이 많다하여 노당 마을이라 불린다. 신기 마을은 주민이 늘어남에 따라 새로 집을 짓고 사는 사람도 늘어나서 마을이 새로 하나 더 생겼다하여 조선시대 말엽부터 새터라고 명명되었다. 문화재로 문화재자료 91호인 종덕재정당 (種德齋正堂)이 있다.
  • 산대리
마을 동쪽에는 안전지못, 산우골못, 산수골못, 백장못 등 이 분포해 있으며, 북쪽에는 어래산이 위치해 있다. 자연마을로는 산대 마을 등이 있다. 산대 마을은 조선시대 정종 때 권사악 선생이 처음 개척할 때 황지에 암석과 오대가 산과 같다하여 산대(山垈)라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주) 풍산 총알공장이 여기에 있으며, 이로 인해 로드뷰나 위성사진을 보면 모자이크 처리되어있다. 이외에 안강종합운동장이 있다.
  • 옥산리
마을 동쪽에는 어래산이, 서쪽에는 도덕산이 위치해 있으며, 마을 중앙에는 옥산지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삼거리, 서원 마을 등이 있다. 삼거리 마을은 자옥산, 어래산, 무학산 3개의 산이 보이는 중앙지점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며 붙여진 지명이며, 서원 마을은 선조7년(1574) 이언적 선생을 추모여형하는 옥산서원을 하사 받은후 이곳을 서원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
  • 하곡리
강교와 두류 사이에 있는 마을이다.
  • 강교리
대부분의 지역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요광지, 장전곡지, 금동지, 갈곡지, 제사곡지, 내평지, 고용지 등의 많은 저수지가 분포해 있어 수원이 풍부한 지역이며, 마을 동쪽으로 하천이 유입해 들어오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강교 마을 등이 있다. 강교 마을은 섬촌과 계곡마을을 건너다니는 교량을 널빤지 로 설치하였다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특산물로 찰토마토와 참단감이 있다.
  • 두류리
마을 중앙으로 하천이 흐르고 있으며, 남쪽에 산이 있다. 자연마을로는 널구미, 점마을 등이 있다. 널구미 마을은 산밑에 신령님께 제사지내는 풍습이 있으며 오래지속되는 좋은 마을이란 뜻에서 널기미라 부르게 되었다. 점 마을은 신라때부터 옹기굽는 마을로 조선을 거쳐 광복직전까지도 옹기굽기가 성행했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문화재로 문화재자료 97호인 금곡사지원광법사부도탑 (金谷寺址圓光法師浮屠塔)이 있다.
  • 근계리
산대리와 접경하고 있고 마을 북동쪽으로 칠평천이 흘러가고 있으며, 그 주변에 뒷똥못과 새뜨못이 위치해 있다. 마을 남서쪽에는 산이 있으며, 그 옆에 안마골못, 안마들못이 분포해 있다. 자연마을로는 근계 마을 등이 있다. 근계 마을은 시내의 근원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지명이다. 문화재로 문화재자료 98호인 경주근계리입불상 (慶州根溪里立佛像)이 있다.
  • 갑산리
평지가 대부분의 지역을 이루고 있는 마을이다. 시가지가 발달해 있으며, 마을 남쪽으로 칠평천이 흐르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대, 사평, 박동마을 등이 있다. 대 마을은 백제군이 침입하여 왔을 때 신라군이 패하자 말을 대밭에 숨겨서 피신하였다고 하여 대 마을이라 명명되었으며, 사평 마을은 홍수가 나면 이 마을에 모래가 많이 쌓인다고 해서 조선 순조때 박종식이라는 선비가 사평이라는 이름 붙이게 되었다. 박동 마을은 한골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박이 잘 되는 곳이라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특산물로 찰토마토와 참단감이 있다.
  • 대동리
마을 서쪽에는 한골못이 있으며, 그 옆으로 무릉산이 위치해 있다. 마을 동쪽으로 형산강이 흐르고 있으며, 그 주변에 들판이 조성되어 있다. 자연마을로는 대동 마을 등이 있다. 대동 마을은 개척당시 골짜기라 넓다하여 한골이라 칭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대동리라 개칭되었다.
  • 검단리
마을 서쪽을 무릉산이 감싸고 있으며, 동쪽에는 형산강이 흘러가고 있다. 마을 동쪽으로 하천이 유입해 들어오고 있으며, 그 주변에 많은 못이 분포해 있다. 자연마을로는 검단 마을 등이 있다. 검단 마을은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솥모양 같다하여 금당이라고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검단리로 개칭되었다. 특산물로 찰토마토가 있다.
  • 사방리
마을 동쪽으로 형산강이 흐르고 있으며, 그 지류가 남쪽을 가로질러 흐르고 있다. 형산강 안쪽으로 큰보들이 넓게 펼쳐져 있으며, 비옥토로 조성되어 있다. 자연마을로는 사방 마을 등이 있다. 사방 마을은 형산강에서 범람하는 홍수를 막는다는 뜻에서 붙여진 지명이다.
  • 청령리
현곡면 나원리와 마주하고있다.

나머지는 추가바람

5 역사

삼한시대
삼한진한음즙벌국으로 성립

신라시대
파사이사금 23년에 비화현이라 칭함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16년 안강현으로 개칭
의창군(현 영일군)으로 귀속

고려시대
현종 9년 경주군 안강현으로 복현

조선시대
태조때 귀성현으로 개칭
정종때 안강현으로 복현
태종 13년 경주부에 속함
고종 32년 경주부를 경주군으로 개칭

근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경주군 강서면으로 개칭
1949년 안강읍으로 승격
1955년 경주읍이 경주시로 승격 군명칭을 월성군으로 함
1973년 천북면 청령리를 안강읍으로 편입
1995년 경주군을 시로 편입

6 기타

한때는 인구가 5만 명에 육박했던 적도 있었지만, 계속 조금씩 인구가 감소하여 현 상태에 이르렀다.

경상북도청을 이전할 때 경주시와 포항시가 함께 도청 소재지로 밀었으나, 광탈하고 말았다.

문화재로는 금곡사지 원광법사 부도탑, 구강서원, 흥덕왕릉, 성산서당, 수재정, 정혜사지 13층 석탑, 독락당, 옥산서원, 양동마을 등이 있다. 28번 국도를 통해 영천시 고경면과 접한다.

2014년 새 읍사무소를 기존 안강읍사무소 자리에 보건소와 함께 완공했다.

여러모로 벌교읍과 비교된다. 보성읍보다 순천시내가 더 가까운 벌교읍, 경주시내보다 포항시내가 더 가까운 안강읍. 그리고 둘 다 인구가 5만 가까이 간 적도 있고, 주먹(or 조폭)으로 유명하다는 부분도(...)[9] 다만 벌교는 조선시대까지 보성군이 아니었던 것과 다르게, 안강은 조선시대에도 경주부 소속이었다. 물론 당시 경주부의 영역이 지나치게 넓게 설정된 건 감안해야겠지만.

6.25전쟁당시 꽤나 격전지여서 곳곳에서 유해나 불발탄이 발견되기도 한다.
  1. 빌리를 로컬라이징하면 여기 출신이라 카드라
  2. 2015년 5월 기준. 경주시의 읍면동 중 가장 인구가 많다. 참고로 2번째로 인구가 많은 황성동은 28,769명.
  3. 참고로 경주 시내보다 포항 시내가 더 가깝다.
  4. 포항에서 영천으로 갈 때 포항-안강-영천을 잇는 28번 국도를 이용한다. 포항에서 경주로 갈 때는 안강은 약간 비껴가며, 경주서 영천을 갈 때는 길(4번 국도)이 전혀 다르다.
  5. 600번과 700번이다. 600번은 산대리의 한동그린타운이 기점이며 700번포항시가지로 가거나 기계면으로 갈 때 중간에 거쳐가게 된다.
  6. 터미널에서 버스를 탈 때는 경주 방면이라도 표를 끊고 타야 한다. 물론 교통카드의 사용이 가능하다.
  7. 신라 귀족을 죽인 범죄자를 보호해 줬다. 자세한 내용은 음즙벌국 문서 참조
  8. 양동 마을은 강동면에 속하나, 안강과 강동(부조리)의 중간 쯤으로 보면 된다.
  9. 경주, 포항, 영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포항으로 깡패 유망주를 수출한다 카더라 실제로 위키니트의 학창시절 일진들과 양아치들 상당수가 현재 포항 지역 건달로 활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