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폴드 고도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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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프스키가 연주한 쇼팽의 장송행진곡.

1 개요

피아노 학살자

레오폴드 고도프스키 Leopold Godowsky 1870.02.10~1938.11.21

폴란드계 미국인,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별명은 피아니스트 중의 피아니스트(The Pianist of Pianists)[1]

2 생애

유태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5살 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게다가 9살때 첫 연주회(...)를 가졌다. 하지만 당시 시대를 살펴보면...일반인보다 훨씬 대단하긴 하다 [2] [3]

더욱 놀라운 것은, 피아노 레슨이나 정식 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성공했다는 점(...)[4][5]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의 은행가 파인버그가 고도프스키가 베를린의 고등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주었다. 고도프스키는 1884년까지 베를린에 머물러 있다가 미국 연주여행에 나섰으며, 1887년 유럽으로 돌아와서는 3년간 생상스와 친하게 지냈다. 이윽고 생상스가 고도프스키에게 양자로 들어올 것을 권유하고 이를 고도프스키가 거절하자 둘 사이가 매우 나빠졌다고 한다. 1904년에서 1914년까지 비엔나의 음악 아카데미 Akamedie der Tonkunst의 교수로 재직했고,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미국에 정착했다.

1930년 런던에서 음반을 녹음하던 도중 뇌일혈로 쓰러졌으며, 이 후유증으로 오른손이 마비되어 쓸 수 없게 되었는데, 설상가상으로 2년 뒤인 1932년에 아들 고든 고도프스키(Gordon Godowsky)가 자살하였고, 그 후 1년 뒤 아내마저 심장발작으로 사망하게 되면서 그 충격으로 공식적인 공연에서는 완전히 손을 떼게 되었다.[6] 이런 예상치 못한 악재가 겹치게 되면서 당시 추진중이던 '음악 및 음악가의 세계 회의(World Synod of Music and Musicians)'와 '음악 및 음악가의 국제 의회(International Council of Music and Musicians)'의 건립이 모두 무산되었고, 1938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3 음악 성향

이 세상에 존재했던 가장 뛰어난 피아니스트 중 하나, 전성기가 막 시작될 무렵의 젊은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조차 '내가 고도프스키의 기교를 모방하려면 5백년이 걸려도 모자를 것이다 (...)' 라고 고도프스키의 실력을 인정했다. [7]

너무나 복잡하고 자세하게 수식된 데다가 내성부가 너무 많이 교차되어 있어 당시 고도프스키말고는 아무도 그 곡을 연주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그의 음악의 대부분은 사라졌지만 테크닉이 굉장히 좋은 피아니스트들이 때때로 '박쥐'나 '예술가의 생애'에 쓴 패러프레이즈를 연주해 보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그의 생존시 사람들은 그가 미래 세대의 피아니스트들을 위한 작곡을 한다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아직 그 세대는 오지 않은 것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최근 아믈랭이 그 시대를 열고 있다!

그가 가장 정교하게 쓴 곡들이 시리즈로 있는데,쇼팽 에튀드에 대한 연습곡집이 그 중 하나다. 이 곡들은 엄청나게 힘든 연습곡으로 프란츠 리스트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고난이도 테크닉으로 가득 찬 곡[8]으로 피아노 테크닉을 올려 놓았다. 특히 쇼팽의 Op.25 No.11 연습곡(부제:겨울바람)을 편곡한 곡은.. 유튜브에도 완주 동영상이 거의 없다. 사실상 유일한게 아믈랭의 연주..[9]

고도프스키는 왼손만을 위한 곡[10]도 몇 곡 썼다. 쇼팽의 혁명, 추격, 나비, 흑건, 대양이 모두 왼손 하나로 클리어되는 위엄(...)흠좀무 [11]

쇼팽의 Op.10을 편곡한 연습곡들은 David Stanhope라는 피아니스트가 간단한 해설과 함께 두 곡을 비교할 수 있도록 직접 연주한 영상을 업로드 해놓은 것이 있다. 참고

또 Gb Major로 된 에튀드 2곡,'나비'와'흑건'을 '농담'어딜 봐서 농담이냐!!! 이 곡에 도전하겠다는 소리가 농담이라는 뜻이다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로 합치기도 했다. 아믈랭에 의하면, 이렇게 2개 이상의 에튀드를 대위적으로 융합한 연습곡이 계획상으로는 하나 더 만들어질 예정으나 소실[12]되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쇼팽의 모든 에튀드 중 가 단조(A Minor)인 10-2, 25-4, 25-11을 대위적으로 합체(!)한 곡이며, 아믈랭이 이를 재현하는 데에 도전한 바 있다.[13] 연주 영상[14] 어느 에튀드는 베이스를 오른손으로 멜로디는 왼손으로 옮긴 것도 있다. 한마디로 양손 음형 바꾸기.
고도프스키는 자기가 쇼팽 에튀드에 손을 대면 많은 음악인특히 쇼팽 빠들이 항의할 것이라는 점본인의 변태스러움[15]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26곡의 쇼팽 에튜드에 기초한 53연습곡은 다양한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피아노 연주의 기계적,기교적,음악적인 가능성을 향상시키는데 목적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다성음악적이고,복리듬적이며,복다이나믹적인 작품을 다루게 할 뿐만 아니라
피아노 음색에 있어서도 다양성의 가능성을 넓히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변태 인증본인의 말

하나의 에튀드를 다른 에튀드와 결부시키는 다성음악적 재주, 피아노 테크닉이 전부 한결같이 독창적인 점, 다양한 음색을 활용할 수 있는 비범함이야 말로 고도프스키의 천재성의 증명이다.

고도프스키의 패러프레이즈들은 피아노가 무엇인지를 말해 준다.

그리고 낭만 다성음악의 치밀함이 갖고 있는 논리성의 정점을 이루고 있다.
프란츠 리스트프레데릭 쇼팽 이래로 피아노의 악기로서의 특색을 그렇게 잘 살려 쓴 곡은 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의 패러프레이즈 곡들이 끔찍하게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묘기(기교)를 과시하는 곡으로 연주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러면 곡을 쉽게 쓰면 되지[16] 무슨곡을 치던 자기가 존나 잘친다는 점을 보여주는게 함정 그러나 불행히도 이 패러프레이즈 곡들은 20세기에 들어서자 미학상의 획기적인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 한,지금으로부터 한 세대 이후에는 완전히 잊혀질 상태에 처해 있다. 다행히 아믈랭의 등장으로 다시 고도프스키의 수많은 작품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그리고 대다수의 연주자들은 좌절한다.
-까지 헤럴드 쇤베르그의 '위대한 피아니스트'에서 인용

4 작품 목록

4.1 관현악

  • 12개의 인상중 12곡 '비인' (12 Impressions no.12: Viennese)
  • No. 11 옛 빈 - "트리아콘타메론" 중에서 (No. 11 Alt Wien - from Triakontameron)

4.2 실내악

  • 피아노연탄을 위한 미니어처 (Miniatures (46) for Piano 4 hands)

4.3 독주곡

  • "왈츠마스크" 모음곡 ("Walzermasken" suit)
  • "트리아콘타메론" 모음곡 ("Triakontameron" suit)
  • '박쥐'에 의한 연주회용 파라프레이즈 (Concert paraphrase on 'Die Fledermaus')
  • 18세기의 아리아 (Airs of the Eighteenth Century)
  • J. 슈트라우스 II의 "술과 여자와 노래" 주제에 의한 교향적 변용 (Symphonische Metamorphosen Johann Strauss’scher Themen "Wein, Weib und Gesang")
  • J. 슈트라우스 II의 "예술가의 생애" 주제에 의한 교향적 변용 (Symphonische Metamorphosen Johann Strauss’scher Themen "Kunstlerleben")
  • R. 슈트라우스 세레나데 편곡 (R. Strauss Ständchen (No.2) from 6 Lieder, Op.17 — concert arrangement for solo piano (1922))
  • 르네상스 2권 (Renaissance, book II)
  • 마지막 왈츠 (Die letzte Walzer (with Oscar Straus))
  • 박쥐 주제에 의한 교향적 변용 (Symphonic Metamorphosis on Themes from Die Fledermaus)
  • 비제 아를르의 여인 모음곡 1번 중 아다지에토 편곡 (Bizet Adagietto (No.3) from L'Arlésienne Suite No.1 — concert arrangement for solo piano (1927))
  • 생상스동물의 사육제 中 백조 (Le cygne(from Le carnaval des animaux)
  • 쇼팽의 에튀드에 대한 연습곡(The Complete Studies on Chopin's Etudes)
  • 슈베르트 가곡에 대한 12개의 피아노 편곡 (Schubert Song Transcriptions (12) for Piano)
  • 슈베르트의 로자문데 중 발레 음악 편곡 (Schubert Ballett (No.9) from Rosamunde, D.797 — concert arrangement for solo piano (1922))
  • 왼손을 위한 엘레지 B단조 (Elegy in B minor, for the left hand (1929))
  • 자바 모음곡 (1925) (Java Suite (1925))
  • 토카타 op 13 (Toccata for Piano, Op. 13)
  • 파사칼리아 (Passacaglia for piano)
  • 폴로네이즈 C장조 (Polonaise for Piano in C major)
  • 피아노 소나타 (Piano Sonata in E minor)
  • 피아노를 위한 2개의 왈츠 시 (Waltz Poems (2) for Piano)
  • 피아노를 위한 3개의 소품 op 12 (Pieces (3) for Piano, Op. 12)
  • 피아노를 위한 3개의 소품 op 14 (Pieces (3) for Piano, Op. 14)
  • 피아노를 위한 3개의 소품 op 15 (Pieces (3) for Piano, Op. 15)
  • 피아노를 위한 4개의 시 (Poems (4) for Piano)

5 사족

작품목록에서 느꼈겠지만 상당수의 작품이 편곡들이다.
혹시라도 위의 곡들을 연주할 생각이 있으면 일찌감치 접는 것이 좋다. 아마추어 연주자에게는 한두 곡을 제외하고는 넘사벽이고, 프로에게도 힘들다. 고도프스키 님이 학살중입니다. 고도프스키 님을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보리스 베레조프스키가 이분의 쇼팽 에튀드에 대한 연습곡집 중 일부를 연주했다. '추격', '혁명' 왼손으로 편곡시킨 곡들을 주로 연주하였다. 마르크 앙드레 아믈랭은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고도프스키 음반낸 연주가다.[17][18] 워낙에 넘사벽인 테크닉변태스러움덕분에 연주자가 그리 많지는 않다. 이 문서를 보고 있으며 피아노 실력이 뛰어나다고 자부하면 쉬운 곡부터 찾아서 시작해보자. 그리고 털린다

6 여담

고도프스키는 음악 외에도 영화, 과학 등 다방면에 관심을 보였고 특히 찰리 채플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도 매우 친했다.[19]

한 때 호로비츠가 고도프스키의 '파사칼리아'를 시도했는데 '희망이 없다, 손가락 6개가 필요하다.'라는 말과 함께 포기한
사례가 있다그리고 치프라 빠들이 호로비츠 빠들을 깔때 쓸 좋은 구실이 되었지[20]

이에 대해선 유튜브에 아믈랭이 쓴 말을 번역해 놓은 블로거가 있다. 일독을 추천. 링크
  1. 사실 피아니스트들의 별명은 의미가 별로 없다. (...) 고도프스키의 이 별명 또한 고도프스키를 수식해줬던 '건반 위의 브라마', '왼손의 사도' 등 무수한 별칭 중 하나였을 뿐이고, 다른 피아니스트의 별명도 '건반 위의 어쩌고저쩌고' 식의 뻔한 것들이 대부분이라 딱 들으면 그 피아니스트가 떠오르는 별명...같은건 사실상 별로 없다.
  2. 고도프스키는 물론 대단한 피아니스트였지만 그의 경력과 대등하게 섰던 사람들이 상당히 있었기 때문이다. 고도프스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비르투오조였던 요제프 호프만 또한 9 살에 데뷔해 10 살에 이미 그 당시의 정상급 피아니스트들과 대등히 인정받은 음악적 창의성(프레이즈 구성력,음영 처리 능력 등의 음악 구성력)과 테크닉을 지녔고(그가 가졌던 당시 레퍼토리를 보면 이를 짐작할 수 있다. 당장이라도 연주할 수 있는 협주곡만 6 곡에, 독주곡만 수십 곡이나 달했는데(...), 레퍼토리 범위는 대략 모차르트 부터 자신의 자작곡까지의 곡이였다고 한다. 이외에 자신이 작곡한 미국 폴로네이즈란 곡을 관현악으로 편곡하고 직접 지휘할 정도였다고(...), 라울 폰 콕잘스키는 4 살 때 데뷔해서 11 살 때 이미 일천 회 째 기념연주를 했을 정도(...)라고 한다. 이 외에도 그 당시 활동하던 신동의 수는 꽤 많았는데 그 또한 놀라운 신동이었던 안톤 루빈스타인이 자서전에 '신동은 한창 유행중이었다...'라고 하면서 그 당시에 활동하던 신동들을 상당히 많이 기록한 것처럼 신동열풍은 피아니스트를 우상화하는(쉽게 말해서 아이돌 팬덤처럼 피아니스트를 떠받드는) 관례를 상당히 배제하는 시기였던 20세기까지도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3. 참고로 지휘계의 거장이었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경우도 4살때 피아노로 처음 대뷔했었다. 그것도 고작 반년정도 배운 실력으로....(...) 나도 해볼까 우리는 천재가 아니니까 안될거야
  4. '위대한 피아니스트'를 읽어보면 부조니도 비슷한 맥락에 있기는 하지만 부조니의 독학 성공은 기록상 여러가지로 엇갈리는 면이 있어서 신중히 대해야 된다. 그렇다고 부조니가 고도프스키보다 절때 실력이 후달리진 않는다. 그가 남긴 음반이 적긴 하지만 그의 연주력을 평가하기에 모자를 정도까진 아니고 기록 등까지 종합해서 따져보면 부조니와 고도프스키는 업적,실력 등 모든 면에서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던 당대의 라이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 정확히 말하자면, 정식으로 배운적은 없지만, 간간이 여러 음악가들에게 레슨을 받은 기록이 있다. 물론 어린 나이와 거쳐간 선생님이 많은 데다가 정식 레슨을 받지 않아 교육방식의 일관성이 낮앗을 점을 감안하면 굉장한 성취긴 하다..
  6. 하지만 피아노 연주 자체를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7. 이 멘트가 루빈스타인이 전성기 이전과 비교햇을 때 상당히 나태하다고도 말할 수 있는 당시 자기의 생활방식을 그 때 합리화하면서 언급한 내용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땐 과장이 좀 섞여있다고 말할 수 있을듯
  8. 사실상 그 당시에는 연주가 거의 불가능한 클래스로 볼 수 있다. 아니 현대에도 연주하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잘못 쳤다가 망하기라도 하거나, 곡이 취향이 아니거나.. 주로 묻혀 있는 곡이나 새로 나오는 신곡을 파제끼는 아믈랭의 변태적인 취향 덕분에 사실상 고도프스키가 부활한 거지, 전에 그의 곡을 즐길 만한 마니아는 거의 없었고 지금도 곡에 관심이 있는 정도지 곡 자체를 즐겨 듣는 마니아들은 거의 없는 정도이다. 좀 쉬운곡은 듣는사람 있으려나?
  9. 카키 켄킨의 연주도 있기는 하지만 미스가 너무나도 많다. 연습이 덜 된 듯하다
  10. 주로 쇼팽 에튀드를 편곡한 곡들. 웬만한 피아니스트들도 양손을 다 써도 힘들 곡을 왼손 하나로 연주한다(...)
  11. 단, 혁명을 편곡한 곡은 그나마 좀 쉬운 편이다. 고도프스키 곡 치고 쉬운 편일 뿐이지 절대적으로 쉬운게 절대 아니다
  12. 아믈랭은 제 2차 세계대전이 원인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13. 1996년 뉴욕에서 열린 리사이틀에서 ‘삼중 연습곡(Triple Étude)’이라는 앙코르곡으로 선보였으며 이 곡은 고스란히 아믈랭 에튀드의 제 1번에 수록된다.
  14. 전반부에 나오는 작곡 동기에 대한 설명 중 ‘감히 재현하라고 권유한 어떤 친구(a friend of mine……DARED me to reproduce that stunt)’는 바로 소라브지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은 알리스테어 힌톤(Alistair Hinton)이다. 힌톤 역시 삼중 연습곡의 재현에 도전한 바 있다.
  15. 시기상 현대악파(한마디로 악보를 신성시하는 악파다)가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쇼팽 스스로가 곡에다가 멋대로 편곡을 붙이는 점을 매우 혐오했기 때문에 패러프레이즈 같은 편곡 양식들은 쇼팽을 존경했던 사람들에게 비판당할 만 하다.
  16. 쉽게 말해서 고도프스키는 테크닉은 단순하게 음악적 가능성을 열어주는 도구로서 여겨지지 원했지, 자뻑용으로 과시되길 원치 않았던 셈.
  17. 아믈랭은 그래모폰 어워드(그래미상) 기악부문을 고도프스키 음반으로 수상하셨다.
  18. 그런데 정작 리사이틀에서 쇼팽 에튀드에 대한 연습곡집 전곡 연주에 성공한 카를로나 리베타는 아믈랭보다 그다지 유명하지가 않은 듯. 하긴 아믈랭의 음악관이 좀 변태스러워야지(...)
  19. 채플린은 딸인 다그마 고도프스키(Dagmar Godowsky)가 헐리우드에 데뷔하면서 친해졌고, 아인슈타인은 생전에 고도프스키의 팬(!!)이었다.
  20. 허나 이 한마디로 호로비츠를 평가절하하기엔 지나친 비약이다, 잠깐 변호해보자면 그 당시 많은 신뢰할 만한 평론가들과 동료들에게 호로비츠는 미켄란젤리,볼레 등과 어깨를 겨루거나, 보통은 그들보다 업적을 높게 평가받았다. 또한 그의 편곡 버젼은 매우 어렵고, 실제로 그의 전성기 음반을 들어보지 않은 이상은 절때 그런식으로(누가 더 뛰어난지) 단정짓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