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利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오나라의 무장.
215년에 2차 합비 공방전에서 오군은 열흘이 지나도 합비를 함락시키지 못하고 또한 역병이 돌아 손권은 퇴각을 결정했는데, 이 때 손권은 선봉이 먼저 퇴각한 상태에서 소요진에서 진무, 능통, 감녕, 여몽, 장흠과 1천기만을 이끌고 있었다. 장료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급습해 진무가 전사하고 능통의 부대가 전멸하는 등의 피해를 입었으며, 설상가상으로 진교 남쪽이 철거되어 한 길 남짓해 널판지가 없어 퇴각할 길조차 막힌 상황이었지만 이 때 손권을 옆에서 모시는 급사로 있던 곡리는 말 뒤에서 안장을 꼭잡고 고삐를 늦춰잡게 한 다음에 채찍으로 말이 뛰는 것을 도와 드디어 진교를 건너뛰게 해 목숨을 건진 손권은 그를 도정후로 봉한다.
손권이 무창에 있을 때 장안이라는 큰 선박을 만들고 시험운행에 들어갔으며, 그 때 바람이 세차게 부니 곡리는 사공들에게 명해 번구로 가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에 손권이 나주를 향하도록 하라고 말하니 곡리가 칼을 뽑아들고 사공들에게 말하길
번구에 배를 대지 않으면 목을 베겠다!
곧바로 배는 방향을 틀어 번구에 닿았고, 바람이 너무 맹렬하게 불었기 때문에 더이상 배는 운행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시험운행을 포기했으며, 일이 다 끝난 뒤 손권이 곡리에게 곡리가 물을 너무 무서워한 것 아니냐고 묻자 곡리가 무릎을 꿇고 답한다.
대왕께서는 만백성의 주인으로 깊이를 알 수 없는 곳에서 경망스럽게 격랑이 부는 바람앞에서 놀다가 화려하게 꾸민 누각이 만약에 전복하는 일이 생긴다면 이것은 사직이 우려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나는 굳이 죽음을 무릅쓰고 만류했습니다.
이 말에 손권은 곡리를 소중히 여겨 두 번 다시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경의를 담아 곡(谷)이라 불렀다.
충의에 마음이 두텁고 외곬이었고, 말함에 있어서 쓸데없는 말을 안했기에 손권이 곡리에 대한 총애와 신뢰는 상당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제2차 합비 공방전에서 아장으로 관직이 변경되어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