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신의)

츤데레 커플

SBS 월화드라마 신의의 등장인물. 고려 31대 공민왕이다.

기본정보

공민왕. 다만 여기서는 재위 초기라 반원정책이나 개혁적 성향은 드라마가 전개되면서 등장할 듯.[1] 금슬 좋은 부부였다는 노국공주와는 상당히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그건 겉으로 드러난 거고, 공주가 위험에 처했을 때 모습을 보면 속으로는 내심 좋아하는 듯. 하지만 고려와 원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래선 안된다고 여기는 것 같다.[2] 일단 공주가 원의 세력을 업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반감을 갖고 있지만, 눈물 한 방울에 약해진다든지, 궁을 나갔다는 말을 듣고 노심초사하다가 우달치 부대장[3]에게 직접 데려오라고 하는 걸 보면, 확실한 츤데레다(...). 7회에서는 부부싸움(?) 중에도 위기 상황이 닥치면, 본능적으로 부인을 먼저 보호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싸움의 원인도 폭풍 질투(...)때문.

드라마에서는 유약하고 예술적 성향이 강했던 모습으로 나오는데, 사실 이게 공민왕의 실제 성격이었다고 한다[4]. 현재 고려는 기황후를 배경으로 한 기씨 일가와 권문세족 등이 정권을 장악한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 원나라에서는 노국공주와의 정략결혼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와중에 고려 출신으로 보이는 한 여인 앞에서 직접 울분을 토해내기도 하는데, 정작 그 여인이...당사자(...)였다...:;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열의와 자질은 있지만, 오랜 볼모 생활로 아직까지 국내에 제대로 된 기반이 없고, 정치경험도 부족하여 아직까지는 신료의 말에 잘 휘둘리고... 신료들이 왕을 믿는지 안 믿는지 여부를 편집증적으로 집착하는 (...) 어린 왕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여러모로 장래가 기대되는 인물. 궁으로 돌아와서는, 명민함과 카리스마적인 모습도 함께 보여준다. 지금까지는 페이크였다, 이놈들아!!! 4회에서는 은수의 역사 폭풍 네타로 인해 자신감도 좀 붙은 것 같다... 일단 자신의 시호에 원의 내정간섭의 증거인 '충(忠)'이 붙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기뻐하는 듯 보인다. 그렇지만 기꺼이 자신의 편이 되어줄 줄 알았던 최영유은수가 떠나가자, 안그래도 좁은 입지와 기철의 세력때문에 힘든 상황에 직면했다. 원의 속국이라는 외부적 상황과 뜻대로 풀리지 않는 고려 조정의 내부적 상황 때문에, 열등감과 분노에 사로잡혀서 주변 사람들을 의심하거나 오해하기도.

한 때는 최영이 폐위된 충정왕을 옹립하려 했다는 기철의 말에 흔들려, 어명을 어기고 최영을 만나러 갔던 주석에게, 내통했으니 죽음으로 죄를 갚으라고 한다. 그러나 최영이 전하라 한 말을 듣고나서, 그가 선왕이 아닌 자신의 명을 따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오해를 풀었다. 그리고는 친국을 빙자한 독대로 자신의 진심을 전했고, 드디어 최영의 마음을 얻게 된다. 그 앞에서 자신의 용기를 보여주기 위해 정면돌파를 실행, 8회에서는 원의 호복을 벗어던지고 고려옷을 입음으로써 반원정책과 개혁정치의 시작을 알렸다. 여담으로 그 전에 노국공주에게 도움을 청하러 가셨는데, 전에 없던 여유와 부드러움까지 선보이셨다(...)

9회에서는 드디어 노국공주의 진심을 알게 된 듯하고, 10회에서는 장빈과 유은수까지 보는 앞에서 살짝 웃어주기까지 하신 엄청난 변화를 보였다. 그러나 거기서 은수가 또 다시 역사 폭풍 네타를 조선 태조 드립 시전했고, 기철도 개혁정치에 제대로 반기를 들기 시작해서, 앞날은 아직... 게다가 의선이란 자는 기철에게 언제 누구에게 죽는 지조차 말해버리는 대형 사고를 치는 바람에... 망했어요. 결국, 본래 역사라면 1356년 기철이 죽임을 당하자 열받은 기황후가 1364년 고려왕으로 세우려 했던 덕흥군이, 1352년에 등장해버리게 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1, 12회에 노국공주와의 사이가 폭풍전개되었다는 것. 술상드립 13회에서는 고백도 하신다(!)

그나저나, 왕이면서도 일개 무관에게 존댓말을 한다 (그것도 합쇼체로) 읭? 물론 드라마 상에서는 진짜 주위에 최영말고는 믿을 인간이 없기에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참고로 공식 홈페이지 인물소개에서는 '사촌이, 숙부가 고려왕의 자리에 올랐다가 힘없이 쫓겨나는 것을 보았다.'라고 나오나, 공민왕의 사촌, 숙부는 왕위에 오른 적이 없다. '쫓겨났다'는 대목만 보면 친형 충혜왕과 조카 충정왕이 모티브인 듯.[5][6] 실제로 4회에서 충혜왕[7]이 정신병자 왕으로 나오긴 하는데, 극 중 모습을 보면 싸이코패스가 아니라 정신분열증 비슷하게 나온다.[8] 결국 8월 20일자로, 인물소개는 '친형이, 조카가'로 바뀌었다.

여담으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10회에서 유은수에게 이성계와 이씨조선에 대해 역사 네타를 언뜻 들어버렸는데, 만약 이 사람이 그 둘을 연결시킨다면 앞으로 어찌 될지 알 수 없다. 이성계 지못미. 본의 아니게 충수염 걸렸다가 사망 플래그를 세워버렸다. 본격적으로 역사가 바뀌는 소리... 12화에서 유은수에게 조선에 대해서 물어본다. 하지만 유은수가 조선을 동남아 어디(...) 있는 나라라고 뺑끼를 치는 기지를 보여주고 중간에 최영과 유은수가 말다툼을 하면서 흐지부지 넘어갔다. 알면 다칩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13회에서 드디어 노국공주에게 절절하게 고백을 하며, 본격 로맨스를 펼치고 있다. 나름 반전인데, 공민왕은 3년 전 만났던 그 고려 여인이 사실 노국공주였다는 사실을 진작에 알고 있었고, 그 때부터 좋아했던 것 같다. 회상 장면[9]에서는 정말로 첫눈에 반해서 청혼하신 걸 그대로 인증하셨는데, 3회 때 나왔던, 공주가 분노한 당시 강릉대군을 잡아준 장면 다음에'어느 가문의 여식(딸)이어도 상관없다'면서 바로 프로포즈 하신 듯. 그녀가 원나라 공주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그에 따른 배신감이나, 자기가 한 맹세[10]때문에라도 공주에게 더 차갑게 대했지만, 그녀가 했던 가리개(스카프)를 지금껏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을 볼 때, 이미... 이 분은 진정 로맨티스트였습니다.

18화에서 마침내 환궁을 했지만 이런저런 문제들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상태. 19화에서 노국공주가 하루에 하나씩 문제가 생긴다고 은근히 디스를 했다. 바로 뒤이어 노국공주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고 헤벌쭉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화에서 노국공주가 납치당하자 멘붕해서 덕흥군에게 왕위까지 내걸고 거래를 제의하지만 거절당해서 정신줄 놓기 직전까지 갔다가 최영에 의해 겨우 마음을 다 잡는다.[11] 그 후 원나라 사신에게 원나라 옥새를 돌려주며 강단있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원나라 사신에게 의선에 대해서 변명을 하늘나라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해 옆에서 듣던 기철을 빡치게 만들었다. 그 후 유산한 노국공주를 껴안으며 위로한다.

  1. 8회에서는 드디어 원나라 호복을 벗어던지셨다. 또 19화 무렵에는 필요하다면 원과 전쟁이라도 할 것을 선포한다.
  2. 고려말을 하는 노국공주를 우연히 만난 뒤, 고려 여인이라고 착각하고 청혼하셨다. 아무리 '공녀'와 '볼모'라는 처지에 대한 동질감이나 미안함, 연민에서 나온 처사라고 해도... 첫만남에 프로포즈까지 간다는 건...?!
  3. 우달치란 왕의 근위대다. 현재 대장 최영이 없으니 부대장이야말로 가장 상관이자 최측근인데, 그를 보냈다는 것은 그 순간 자신의 신변보다는 왕비의 신변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때의 대사를 들어보면...:;
  4. 업적을 보면 반대인 것 같지만, 사실이다. 홍건적의 침입 때 노국공주에게 말타기를 배웠다니... 뭐. 사실 공민왕의 개혁적 성향은 노국공주의 정신적 지원에 힘입은 바가 컸다. 공주의 죽음 이후 완전히 망가진 것도 무리는 아니다.
  5. 충선왕은 쫓겨났지만 다시 복위되었다. 실은 충혜왕도 한 번 폐위, 복위되었다가 다시 폐위되어 귀양을 가 죽었다.
  6. 충혜왕은 1315년 생, 공민왕은 1330년 생이지만, 아버지는 충숙왕, 어머니는 공원왕후 홍씨로 친형제 간이다. 여담으로 조카 충목왕과 충정왕은 1337년 생.
  7. 공민왕은 극중 최영에게 형님이 했던 짓을 듣고 당황스러워한다. 그리고 분명히 '형님'이라고 부른다.
  8. 믿기지는 않지만, 사실 충혜왕은 제정신으로 저런 막장짓을 저질렀다.(...) 그의 성정은 세자시절부터 유명했다.
  9. 3회에서 나왔던 회상과 연결된 나머지 장면들이다.
  10. 원나라 여인 따위는 마음에 품지 않겠다.
  11. 상심한 모습이 마치 노국공주가 돌아가신 후 상황의 오마주같다. 최영이 반드시 왕비를 살려서 데려오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을 다잡는 게 가능했던 것 같은데, 만약 돌아가셨다면... 추스르지도 못하고, 고려는 더 일찍 망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