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목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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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역대 국왕
28대 충혜왕 왕정29대 충목왕 왕흔30대 충정왕 왕저
원의 역대 심왕
왕고왕흔왕저
묘호없음
시호충목현효대왕
(忠穆顯孝大王)
능묘명릉(明陵)
왕(王)
흔(昕)
몽골식 이름바스마도르지
(八思麻朶兒只)
배우자없음
아버지충혜왕
어머니정순숙의공주(貞順淑儀公主)
생몰년도음력1337년 4월 15일 ~ 1348년 12월 5일
양력1337년 5월 15일 ~ 1348년 12월 25일(약 12세)
재위기간음력1344년 2월 정미일 ~ 1348년 12월 5일 (4년)
양력

고려의 제29대 왕. 충혜왕의 아들로, 어머니는 쿠빌라이 칸의 고손녀가 되는 덕녕공주다. 정식 시호는 충목현효대왕(忠穆顯孝大王)으로 원에서 내려준 시호 '충목'을 빼고 '현효왕' 혹은 '현왕'이라 부르는 경우도 있다.

1 소개

어린 시절은 원나라에서 보내다가 아버지 충혜왕이 숱한 막장짓 끝에 폐위되자 고려로 돌아가 8세의 나이로 왕이 되었다. 왕이 되기 직전에 당시 황제였던 순제 토곤 테무르를 만났는데, 그가 "그대는 아버지를 닮겠는가, 아니면 어머니를 닮겠는가?"라고 물었다. 왕은 고자되기"어머니를 더 닮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하니 이 대답을 들은 토곤 테무르는 "그대는 그대의 어미를 닮아 영특하고 선하군."이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사실 어린아이의 대답이라곤 하지만 아버지의 막장 짓을 너무 잘 알았는지도 모르는 대목이다.

왕이 되었지만 나이가 어린 나머지, 어머니 덕녕공주가 섭정을 했다. 어머니의 섭정을 받으면서 나름 치적을 쌓았는데, 충혜왕 대의 정치 폐단을 수정하는 데 힘썼고 정치도감을 설치하여 주로 권문세족들의 토지 제도를 개혁하는 데 노력했다. 또한 이들이 독점하던 녹과전의 폐단을 시정하여 원래 주인들에게 돌려줬으며, 양전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또한 나라에 기근이 들자 이를 구제하기도 했다. 그리고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3대 실록의 편찬을 시작했으며 서연을 열어 학문 진흥에도 힘을 기울였다.

이렇듯 어머니의 섭정 속에서도 치적을 확실히 쌓았으나 9대 임금 덕종처럼 수명은 짧았다. 아니, 그 이상으로 짧았다. 재위 4년만인 1348년 10월 병이 들었고 12월에 김영돈이란 사람의 집에서 죽었는데, 이 때 나이가 12세였다. 수명이 조금 길었으면 선정을 베푼 기록으로 미뤄 보건대 명군, 나아가 성군이 될 기질도 보였지만 워낙 어린 나이에 죽어 아쉬움을 남긴다. 그러나 설령 오래 살았더라도 제 뜻대로 정치를 펼칠 수 있었을지는 미지수. 실제로 왕권이 약해서 재위 말엽에는 외척과 환관의 전횡이 심해졌다.

사실 8세에 즉위한 아이가 선정이고 뭐고 베풀 여지라도 있었을까. 그의 치세는 충목왕 본인의 업적이라기보단 섭정 덕녕공주를 중심으로 한 내각팀이 주도했다고 보는 편이 설득력을 가진다.

2 대중매체에서의 모습

드라마 신돈에서도 초기에 등장하는데 여기서는 병약한 설정으로 나와서 자주 골골대며 쓰러지다가 죽음을 맞는다.

3 기타

충목왕의 휘가 昕(아침 밝을 흔)이었기 때문에 해당 성씨였던 사람들은 송두리째 성씨를 바꾸게 되었다. 예천 권씨 전부와 안동 권씨 일부의 본관이 바로 이 흔씨이다. 아래가 그 내용이다.

예천 권씨 시조 흔적신(昕迪臣)은 고려 중엽 보승별장을 지냈다. 예천 권씨는 본래 흔(昕)씨였는데 고려 명종 때 '흔승단'이 안동 권씨 '권백서'(權伯諝) 집안에 장가을 갔고, 그의 아들이 어머니 성을 따라 '권섬'(權暹)이 되어 예천 권씨 득성조라고 한다. 안동 권씨 족보에는 '권백서'(權伯諝)가 아닌 '권백시'(權伯時)로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신종 원년에 고려 명종이 예천의 흔씨(昕氏)에게 권성(權姓)을 내렸다고 내용이 있다. 또는, 예천 권씨 무진보(戊辰譜)에 따르면 예천 권씨는 '충목왕'(忠穆王)의 휘 "흔"(昕)을 피하여 외가 였던 '권'(權)씨로 개성했다고 한다. 안동, 예천 권씨는 고려 초기 내외손 관계를 시작하여 조선, 현재까지 통혼을 하고 있다. 예천 권씨는 안동 권씨와 같이 고려 초기에 시작되어 매우 오래된 한국 토본이다. 흔씨는 고려 초기에 시작된 성본인데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