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문서 : 구미시
구미시 행정구역 변천사 | ||||||||||||||
일선군 (一善郡, 삼국) | → | 숭선군 (嵩善郡, 757) | → | 선산군 (善山郡, 1895) | → | 선산군 (1914) | → | 선산군 | → | 선산군 (1978) | → | 구미시 (1995) | ||
선산군 구미읍 (1963) | 구미시 (龜尾市, 1978) | |||||||||||||
사동화현 (斯同火縣, 삼국) | 인동현 (仁同縣, 757) | 인동군 (仁同郡, 1895) | 칠곡군 인동면 (1914) | 칠곡군 인동면 |
1 삼국시대 ~ 후삼국시대
백제와 신라의 영토 확장으로 인한 각축장이 되었다가 점차 신라의 영역에 편입되었다. 이후 1914년까지의 선산군 지역인 일선군(一善郡)과 1914년까지의 인동군(특히 구 인동면) 지역의 사동화현(斯同火縣)이 있었다. 616년(진평왕 38) 일선군은 일선주로 승격하였다.
통일신라 때인 757년(경덕왕 16)에 일선주는 숭선군(嵩善郡)으로, 사동화현은 인동현(仁同縣)으로 개칭되었다.
2 고려
995년(성종 14)에 숭선군이 선주(善州)로 승격하였다. 그러다가 1143년(인종 21)에 일선현으로 강등되었다.
3 조선
1413년(태종 13)에 일선현서 선산군(善山郡)으로 승격되었다. 이 때 선산군의 중심지가 현재의 선기동(법정동)에서 선산읍 동부리, 서부리로 이동하였다.
1895년 23부제 때 선산군, 인동군은 대구부에 속하였다. 그러다가 1896년 선산군, 인동군은 다시 경상북도에 속하였다.
4 일제강점기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인동군이 폐지되어 칠곡군에 병합되었고 선산군은 존속되었다.
5 대한민국
- 1963년 1월 1일
- 선산군 구미면이 읍으로 승격
- 선산군 구미읍 원평동이 원평1~6동으로 분리
- 1973년 3월 10일
- 선산군 구미읍 신평동이 신평1~3동으로 분리[1]
- 1973년 7월 1일
- 칠곡군 북삼면 낙계리가 선산군 구미읍에 편입
- 선산군 산동면 도산리가 군위군 소보면에 편입
- 1977년 2월 15일
- 선산군 구미읍, 칠곡군 인동면에 경상북도 직할 구미지구출장소 설치
- 광평지소(공단동[2],광평동,비산동,사곡동,상모동,신평1동,신평2동,신평3동,임은동)
- 선주지소(선주동,원남동)
- 원평지소(도량동,송정동,원평1동,원평2동,원평3동,원평4동,원평5동,원평6동,지산동,형곡동)
- 인동지소(신구동,양계동,인동동,진미동,포전동)
- 1978년 2월 15일
- 1979년 5월 1일
- 선산군 선산면이 읍으로 승격
- 1983년 2월 15일
- 양계동과 포전동이 양포동으로 통합
- 신구동과 인동동이 인동동으로 통합
- 칠곡군 북삼면 오태리가 임은동에 편입, 임은동이 임오동으로 개칭.
- 선산군 옥성면 봉곡리,포상리가 선산읍에 편입
- 금릉군 감문면 봉남리,소재리가 선산군 선산읍에 편입
- 1987년 1월 1일
- 의성군 단밀면 용산리가 선산군 도개면에 편입
- 선산군 도개면 청산리가 의성군 구천면에 편입
- 선산군 장천면 석우리가 칠곡군 가산면에 편입
- 1988년 7월 1일
- 선산군 해평면 낙산3리와 도개면 신림리를 조합하여 해평면 일선리 신설
- 1989년 1월 1일
- 칠곡군 가산면 신장리가 선산군 장천면에 편입
- 1990년 1월 1일
- 공단동이 공단1동과 공단2동으로 분리
- 신시동이 형곡동으로 개칭
- 1995년 1월
- 구미시와 선산군이 합병되어 통합 구미시 출범, 구 선산군 지역에 선산출장소 설치
- 1995년 3월 1일
- 도산동이 도량동과 지산동으로 분리
- 1997년 11월 1일
- 고아면이 읍으로 승격
- 1999년 3월 2일
- 사곡동과 상모동이 상모사곡동으로 통합
- 선주동과 원남동이 선주원남동으로 통합
- 원평2·3동이 원평2동으로 개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