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군면 통폐합

府郡面統廢合

1 개요

부군면 통폐합은 일제강점기 초기인 1914년 4월 1일에 조선에서 실시된 대규모의 행정구역 개편을 가리킨다. 실시 주체는 조선총독부였다. 백과사전 등에서는 주로 군면 통폐합이라고 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기초적인 행정구역 명칭과 영역, 경계선의 틀이 정립된 계기가 바로 이 부군면 통폐합 정책이다. 다만 일제가 강제로 시행한 정책답게 실제 생활권을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고을 간 통합이 일어나기도 했고, 도시화된 지역과 농어촌 지역을 분리하는 도농분리제가 도입되어 81년 동안 새로 생기는 시는 기존 군과 분리되도록 행정구역을 설정해왔기 때문에 한동안 문제가 되었었다. 1995년에 도농복합시 제도가 도입되면서 일부 해결되었지만, 아직도 부군면 통폐합의 잔재가 일부 시군에 남아서 지역 간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일례로 부군면 통폐합 때 생활권이 생판 다른 괴산군과 청안군을 통합했다가 결국 청안군의 일부를 계승한 증평군이 2003년에 분군되기도 했고, 무안부를 목포부와 무안군으로 나눴다가 1995년 이후 목포시-무안군 통합이 지속적으로 시도되었는데 통합 반대측이 허위선동과 폭력까지 일삼기도 했고, 시흥군·과천군·안산군을 통합했다가 서울 편입과 분리승격이 계속되어 조선시대 시흥군과 아무 상관이 없어진 시흥시가 생기기도 했다.

조선시대까지는 행정 기능이 없는 단순한 지역 구분이었던 '면(面)'에 면사무소와 주재소를 설치하고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 때도 바로 부군면 통폐합을 전후해서이다. 여러 모로 현 대한민국 행정구역의 기틀이라 할 수 있다.

부군면 통폐합 이전, 아니 경술국치 이전에도 통감부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이 여러 번 이루어졌다. 행정구역 개편 참조.

통폐합과 관련된 정보를 얻고 싶다면 내고향 역사 알기 참조.

2 의도

1914년 4월 1일자로 조선총독부에 의해 실시된 조선 전국에 걸친 행정구역 개편의 목적은 조선 통치의 효율화였다. 토지 조사 사업을 통해 획득한 방대한 조선 국토의 자료가 바탕이 되었다.

조선 시대 고을들은 이미 1906년에 대대적으로 월경지 정리를 한 번 거쳤음에도 면적과 인구 편차가 너무 심하게 났기 때문에 각 고을의 규모를 최대한 동등하게 맞추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통합 조치가 필요했을 수 있다.[1] 또한 군이 아닌 개별 읍면을 시로 승격시키는 도농분리제는 미국, 일본에서 시행되는 시·읍·면 자치제도[2]를 시행하고자 만든 밑천이라 볼 수 있고, 실제로 제1공화국제2공화국 시기에는 시·읍·면을 기초자치단체로 두었다. 하지만 이 조치들은 폐지되는 고을의 중심지가 몰락하는 데 대해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았으므로 문제가 되는 것이다.

당시 행정구역 변경의 법적 근거는 조선총독부령 제111호 '도의위치·관할구역변경및부·군의명칭·위치·관할구역변경에관한규정' (1913년 12월 29일 공포)이다.

읍(행정구역)/목록을 참조하면 알 수 있지만 통합 이후 폐지되어 사라진 군의 중심지였던 지역들은 대부분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쇠락하여 대부분 인구 1만 명 이하의 면으로 남아 있다. 예외적으로 수도권(대한민국) 지역에서 과천군과 안산군은 과천시, 안산시로 부활했고, 양천군과 부평군은 서울특별시 강서구/양천구, 인천광역시 부평구/계양구부천시로 부활했다. 그리고 충청도에서는 괴산군과 합쳐졌다 일부만 다시 독립한 증평군이 있다.

남한에서는 1914년 이전에 존재했던 군이 부활한 사례는 거제군(1953년), 신안군(1969년)[3], 태안군(1989년), 기장군(1995년), 과천시, 안산시(이상 1986년)다. 다만 두 시의 경우 원래의 과천군, 안산군의 영역을 온전히 부활시킨 것은 아니지만, 원래 각 군의 중심지에 해당되는 곳은 현재 각 시가 모두 점유하고 있다. 극히 드물지만, 북한에서는 1952년 12월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하면서 사라졌던 군이 상당수 부활되었다. 물론 1914년 이전의 경계와 100% 일치하지는 않는다.

3 방향

  • 중, 남부 지방에 존재한 수많은 군들을 2~4개씩 묶어 하나의 군으로 통합하였다. 함경도나 평안북도 같은 북부 지방이나 중부 지방의 강원도는 대부분 산간지방이라 인구밀도가 적어 방대한 면적의 군들이 많아서, 통폐합되지 않고 대부분 그대로 유지되었다. 오히려 함경남도의 경우 함흥군에서 신흥군이, 북청군과 갑산군 일부를 분리하여 풍산군이 신설되기도 했다.
  • 군뿐만 아니라 면, 동리(洞里)들도 몇개씩 통합하여 하나의 면, 동리로 만들었다.
  • 통합된 2~3개의 군들 중 중심 역할을 하는 군의 명칭을 통합된 군의 명칭으로 정하였다. 통합된 군들의 규모가 대등했거나, 중심 역할이 누구인지 애매한 경우에는 두 군의 명칭에서 하나씩 따서 합성하거나, 아예 새로 짓기도 하였다. 전자의 예로는 부천군(평군+인부), 연백군(안군+천군[4]), 후자의 예로는 평원군(영유군+숙천군+순안군) 등이 있다.
    • 일본어 발음 상 혼동의 우려가 있어 새로 짓기도 했다. 주군(洪州郡)과 결군(結城郡)을 합한 곳은 홍주가 중심이었으므로 '홍주군'이 되어야 했으나, 같은 충남 내에 일본어 발음이 こうしゅう로 동일한 공주군(公州郡)이 있어서, 결국 두 군에서 한 글자씩 따서 홍성군이 되었다.
    • 우리말 독음마저도 같은 곳이 있어서 새로 짓기도 했다. 영천(榮川)군+풍기군+순흥군에서는 영천이 중심이었으므로 '영천군'이 되어야 했으나, 하필이면 경북에 영천(永川)군이 또 있었기 때문에 영천(榮川)군을 영주(榮州)군으로 바꾸었다.
    • 원래 명칭이 약간 변하거나 역사적 명칭을 끌어와 쓴 경우도 있는데, 연일군+장기군+흥해군+청하군에서는 연일이 중심이었으므로 '연일군'이 되어야 했으나, 연일의 역사적 이칭(異稱)인 '영일'이라는 명칭을 부여하여 '영일군'이 되었다.
    • 철도 부설 등 교통의 발달로 인해 새로운 시가지가 발달한 지역은 해당 철도역 및 시가지의 명칭을 전체 고을의 명칭으로 채택하기도 했다. 대전군(회덕군+진잠군)[5], 논산군(은진군+연산군+노성군)[6], 김천군(김산군+개령군+지례군)[7] 등이 그 예이다.
  • 면이나 동리의 명칭은 대부분 통합된 면이나 동리들의 각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것들이 많다. 의왕면('의'곡면+'왕'륜면), 신월동('신'기리+'월'정리), 신갈동('신'촌리+'갈'천리) 등이 대표적 사례.
  • 1915년에는 울도군제주군의 행정구역 단위명을 '도(島)'로 바꾸고(경상북도 울릉도, 전라남도 제주도), 군수(郡守)를 도사(島司)로 개칭했다. 이러한 행정구역으로서의 '도(島)'는 해방 이후인 1949년 다시 군(郡)으로(도사 역시 군수로) 명칭을 바꾸면서 사라졌다.
  • 오늘날의 (市)에 해당되는 (府)의 영역을 시가지(또는 개항장) 일대로 축소시키고, 그 잔여지역을 별도의 (郡)으로 분리하거나 인접 군과 병합하는 이른바 도농(都農) 분리제 역시 이때 도입되었다. 경성부의 영역을 사대문 안 및 용산 일대로 축소시키고 잔여지역을 고양군에 편입시킨 것, 인천부의 영역을 제물포 일대로 축소시키고 잔여지역을 부평군과 통합하여 부천군으로 신설한 것, 부산부의 영역을 부산항 일대로 축소시키고 잔여지역을 동래군으로 분리시킨 것, 목포부의 영역을 목포항 일대로 축소시키고 잔여지역을 무안군으로 분리시킨 것 등이 그 예이다.
  • 기존 군의 중심지가 되는 읍이나 면이 인구 5만 명을 넘으면 부로 승격시켜 원래 군과는 별개의 행정구역으로 신설되도록 하였다. 이러한 제도는 해방 이후에도 그대로 적용되면서, 1995년 이전까지 역사적으로 원래 같은 지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지역인 '시'와 농촌지역인 '군'으로 행정구역이 분리된 곳이 매우 많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농복합시 제도를 만들고 1995년 대대적인 시군 통합(도농통합)이 이루어진 것이다.
  • 부와 군이 분리될 경우, 양쪽의 명칭을 다르게 부여했다. 이 때 명칭을 짓는 규칙이 있었다.
① 해당 지역의 옛 이름 차용.(대전부→대덕군(대전의 '대'에 과거 행정구역이었던 회덕의 '덕'에서 한 글자씩 차용), 대구부→달성군, 광주부→광산군, 전주부→완주군(전주의 옛 이름인 '완산주'에서 차용) 등)
② 해당 지역 이름의 일부에 성(城), 천(川), 주(州), 원(原), 양(陽), 산(山) 등을 붙여 변형.(함흥부→함주군, 진주부→진양군 등) 이 글자들은 지명에 예로부터 많이 쓰여온 글자들이다.
③ 해당 지역의 유명한 것의 이름을 차용.(평양부→대동군(평양 한가운데를 흐르는 대동강에서 차용))
④ 기존 지명에 신(新)자를 붙임.(의주부→신의주부와 의주군으로 분리)
단, 분리되어 나가는 부가 원래 군의 중심지가 아닌 경우에는 분리되는 지역의 명칭을 그대로 부의 명칭으로 쓰고, 군의 명칭은 그대로 유지되었다.(동래군 부산포 일대→ 부산부)
  • 수원군, 광주(廣州)군, 강릉군, 충주군, 공주군, 안동군 등 당시 면적이 비정상적으로 넓었던 도시들의 월경지땅거스러미, 기타 원래 소속 중심지보다 인근 군이 더 가까운 지역들은 인근 군으로 편입되었다. 경술국치 이전인 1906년에 이루어진 월경지 정리 때 정리되지 못한 곳을 마저 정리한 것이다. 실제 생활권을 무시하고 무분별한 통합을 강행하는 성격이 강했던 부군면 통폐합이라는 대병크 속에서, 비정상적으로 넓은 군들의 땅을 할양하는 이 조항만은 그래도 매우 개념적인 일이었다. 물론 부군면 통폐합 자체는 병크가 맞다.

4 개편현황

아래의 도(道)별 정리된 행정구역 개편 현황을 보면 비교적 인구가 많고 면적이 작은 군이 많았던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지역의 군이 많이 통폐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반대로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으면서 면적이 넓은 강원도, 평안북도, 함경도 지역은 통폐합된 곳이 적은 편이다.

아래 목록에서는 군 단위의 통합, 폐지 및 분할내역만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다.

4.1 경기도

개편 전개편 후
경성부, 고양군경성부(도청 소재지), 고양[8]
인천부, 부평군, 강화군 일부, 남양군 일부인천부, 부천
개성군, 풍덕군개성
수원군, 남양군, 광주군 일부, 안산군 일부수원군
시흥군, 과천군, 안산군시흥군[9]
진위군, 수원군 일부, 충남 평택군진위군[10]
용인군, 양지군, 죽산군 일부용인
김포군, 양천군, 통진군김포
파주군, 교하군파주
강화군, 교동군강화군
포천군, 영평군포천
안성군, 양성군, 죽산군안성
연천군, 적성군, 마전군, 삭녕군연천군
이천군, 음죽군이천

파일:Attachment/부군면 통폐합/1914.png
통폐합 후의 경기도 행정구역도.

4.2 강원도

개편 전개편 후
철원군, 경기 삭녕군 일부철원군
고성군, 간성군간성[14]
울진군, 평해군울진군[15]
김화군, 금성군김화군
이천군, 안협군이천군

4.3 충청북도

개편 전개편 후
청주군, 문의군청주군(도청 소재지)
제천군, 청풍군제천
괴산군, 청안군, 연풍군괴산군[21]
음성군, 충주군 일부음성군[22]
단양군, 영춘군단양군
영동군, 황간군영동군
보은군, 회인군보은군
옥천군, 청산군옥천군

4.4 충청남도

개편 전개편 후
회덕군, 진잠군, 공주군 일부대전
천안군, 직산군, 목천군천안
홍주군, 결성군홍성군
서산군, 해미군, 태안군서산[24]
은진군, 연산군, 노성군, 석성군 일부논산
서천군, 한산군, 비인군서천군
청양군, 정산군청양군
당진군, 면천군당진
부여군, 임천군, 홍산군, 석성군부여군
예산군, 덕산군, 대흥군예산군
아산군, 온양군, 신창군아산
보령군, 남포군, 오천군보령
연기군, 전의군, 공주군 일부연기군[25]
  • 공주군(도청 소재지)[26]은 큰 변동이 없다.

4.5 경상북도

개편 전개편 후
대구부, 현풍군대구부(도청 소재지), 달성군
안동군, 예안군안동[27]
연일군, 흥해군, 장기군, 청하군영일군[28]
영덕군, 영해군영덕군
의성군, 비안군의성군
영천(榮川)군, 풍기군, 순흥군영주[29]
예천군, 용궁군, 안동군 일부예천군[30]
봉화군, 안동군 일부봉화군
청송군, 진보군청송군
영양군, 진보군 일부영양군
김산군, 지례군, 개령군김천
상주군, 함창군상주
칠곡군, 인동군칠곡군
군위군, 의흥군군위군
경산군, 자인군, 하양군경산
영천(永川)군, 신녕군영천
경상남도 울도군경상북도 울도군[31]

4.6 경상남도

개편 전개편 후
부산부, 기장군부산부, 동래[33]
울산군, 언양군울산
마산부[34]마산부, 창원
거제군, 용남군통영[35]
거창군, 안의군 일부, 삼가군 일부거창군
함양군, 안의군함양군
창녕군, 영산군창녕군
고성군, 용남군 일부고성군
사천군, 곤양군사천
합천군, 초계군, 삼가군합천군
산청군, 단성군산청군

4.7 전라북도

개편 전개편 후
전주군, 고산군전주군(도청 소재지)
군산부, 임피군군산부, 옥구군
익산군, 용안군, 여산군, 함열군익산
남원군, 운봉군남원
김제군, 만경군, 금구군김제
정읍군, 고부군, 태인군정읍
진안군, 용담군진안군
고창군, 무장군, 흥덕군고창군[38]
금산군, 진산군금산군[39]

4.8 전라남도

개편 전개편 후
곡성군, 창평군 일부,[42] 구례군 일부곡성군
나주군, 남평군나주
목포부, 지도군목포부, 무안군[43]
여수군, 돌산군여수
담양군, 창평군 일부[44]담양군
능주군,[45] 동복군화순군
영광군, 지도군 일부영광군
제주군, 정의군, 대정군제주[46]
전라북도 구례군전라남도 구례군[47]

4.9 함경북도

개편 전개편 후
청진부청진부, 부령군

4.10 함경남도

개편 전개편 후
원산부원산부, 덕원군
갑산군 일부, 북청군 일부풍산군 신설
함흥군 일부, 장진군 일부신흥군 신설

4.11 평안북도

개편 전개편 후
의주부신의주부(도청 소재지), 의주군
정주군, 곽산군정주[56]
박천군, 가산군박천군

4.12 평안남도

개편 전개편 후
평양부평양부(도청 소재지), 대동군
진남포부, 용강군진남포부, 용강군[57]
중화군, 상원군중화군[58]
영유군, 숙천군, 순안군평원군[59]
강서군, 증산군[60]강서군[61]

4.13 황해도

개편 전개편 후
연안군, 배천군연백군[64]
금천군, 토산군금천군[65]

5 관련 항목

  • 조선/행정구역 : 조선 개국 초기부터 1895년까지 설치되었던 조선의 행정구역에 대해 다루고 있다.
  • 행정구역 : 현대 대한민국의 행정구역에 대해 다루고 있다.
  • 북한/행정구역 : 1945년 이후 변화된 북한의 행정구역에 대해 다루고 있다.
  1. 예컨대 서로 인접한 포항과 경주는 둘 다 면적이 크고 아름다운 편인데, 포항시(당시 영일군)는 4개 고을(연일/흥해/청하/장기)이 서로 통합되어 생긴것이기에 그 정도 면적이 나오지만, 경주시(당시 경주군)는 부군면 통폐합 이전에도 경주라는 1개의 고을이었는데 고을 4개 합친 포항보다 더 넓은 면적이 나온다. 더욱 후덜덜한 것은, 1906년 이전에는 흥해군 기계면(+기북면), 청하군 죽장면도 경주 땅이었다. 아주 극단적으로 보면 부군면 통폐합 이전에는 강계군이나 무산군처럼 5,000-6,000km²를 넘어가는 괴물같은 군들도 있었지만, 평택군(現 팽성읍)이나 용안군(現 용안·용동면)처럼 면적이 40-50km²대에 불과한 군도 있던 상황이었다.
  2. 미국의 City-Town-Village와 일본의 시정촌 제도가 바로 이것이다.
  3. 구 지도군이 명칭만 바뀌어 부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지도가 군의 중심지 역할을 회복하지 못하고 목포에 종속되어버렸으니 좀 애매하다.
  4. 한자를 白川(백천)이라고 쓴다.
  5. 회덕군 산내면 대전리가 경부선 대전역의 부설로 근대적인 시가지가 형성되면서 회덕군의 새로운 중심지가 되었고, 1914년 회덕군+진잠군 통합 시 '회덕군'이 아닌 '대전군'이란 명칭을 채택하게 되었다.
  6. 은진군 화지산면 논산리가 호남선 논산역의 부설로 근대적인 시가지가 형성되면서 은진군의 새로운 중심지가 되었고, 1914년 은진군+연산군+노성군 통합 시 '은진군'이 아닌 '논산군'이란 명칭을 채택하게 되었다.
  7. 김산군 김천면이 경부선 김천역의 부설로 근대적인 시가지가 형성되면서 김산군의 새로운 중심지가 되었고, 1914년 김산군+개령군+지례군 통합 시 '김산군'이 아닌 '김천군'이란 명칭을 채택하게 되었다.
  8. 세부개편 내용은 서울특별시/역사, 경성부, 고양시/역사 항목을 참조.
  9. 1986년에 안산시, 과천시 부활.
  10. 1938년에 평택군으로 개칭.
  11. 의곡면과 왕륜면을 의왕면(현 의왕시)으로 통합하고 수원군(현 화성시)으로 편입하였다.
  12. 영근면(현 연천군 전곡읍)을 연천군에, 고양주면(현 서울 광진구 일원, 송파구 잠실·신천동)을 고양군에 편입하였다.
  13. 1908년에 양근군, 지평군 통합.
  14. 1919년에 고성군으로 개칭.
  15. 1963년에 경북으로 편입.
  16. 임계면, 도암면(현 평창군 대관령면)은 정선군으로, 진부면, 봉평면, 대화면은 평창군, 내면은 인제군으로 각각 편입되었다.
  17. 1910년에 흡곡군 병합.
  18. 강릉으부터 진부면, 봉평면, 대화면을 넘겨받았다.
  19. 강릉으로부터 임계면과 도암면을 넘겨받았다.
  20. 강릉으로부터 내면을 넘겨받았으나, 1945년에 남북분단으로 홍천으로 다시 넘겨주었다.
  21. 청안군의 일부지역이었던 증평읍, 도안면이 2003년에 증평군으로 분리.
  22. 충주로부터 금왕면, 소이면, 맹동면, 대소면, 삼성면, 생극면, 감곡면을 넘겨받았다.
  23. 법왕면, 금목면(금왕면으로 통합) 등을 포함하여 현 음성군 지역 중 음성읍과 원남면을 제외한 구역이 음성군으로, 감물면, 율지면은 괴산군으로 편입되었다.
  24. 1989년에 태안군 복군.
  25. 2012년에 세종특별자치시로 승격.
  26. 유성면을 대전으로 넘겨주었다.
  27. 내성면, 법전면, 소천면, 재산면은 봉화군에, 감천면은 예천군에 편입되었다.
  28. 양북면, 양남면을 경주로 넘겨주었다.
  29. 1923년 상리면, 하리면을 예천에 넘겨주었다.
  30. 감천면을 안동으로부터 넘겨받았다.
  31. 1915년에 울릉도로 개칭.
  32. 양북면, 양남면을 장기군으로부터 넘겨받았다.
  33. 1995년에 기장군 복군.
  34. 1908년에 진해군과 웅천군을 창원부에 병합, 1910년에 창원부를 마산부로 개칭.
  35. 1953년에 거제군 복군.
  36. 1925년에 경남도청이 부산부로 이전.
  37. 1908년에 칠원군 병합.
  38. 1907년에 전남에서 전북 소속으로 변경.
  39. 1963년에 충청남도에 편입.
  40. 부남면을 금산으로부터 넘겨받았다.
  41. 영광군으로 위도면이 이관되었으나 1963년에 다시 환원됨.
  42. 1908년에 창평군에 병합된 옥과군 일대이다.
  43. 1969년에 구 지도군에 해당되는 무안군 도서지역을 신안군으로 분리.
  44. 1908년에 병합한 옥과군 일대를 제외한 오리지날 창평군 일대이다.
  45. 1908년에 화순군 병합.
  46. 1915년에 제주도로 개칭, 1946년에 전라남도에서 제주도가 분리되면서 제주군을 북제주군(구 제주군), 남제주군(구 정의군+대정군)으로 분리.
  47. 고달면 제외. 고달면은 곡성으로 넘어갔다.
  48. 회천면, 웅치면을 보성으로 이관.
  49. 1908년에 낙안군 일부 병합(벌교읍 등), 1914년 장흥으로부터 회천면, 웅치면 편입.
  50. 도초면 등을 무안에 넘겨주었다.
  51. 추자면을 제주도에 넘겨주었다.
  52. 1914년에 흥양군에서 개칭하였다.
  53. 1908년에 낙안군 병합.
  54. 목포부로부터 엄다면, 학교면 편입.
  55. 1940년에 도청소재지인 나남읍이 청진부에 편입되어 도청소재지가 청진부로 자동 변경.
  56. 1952년에 곽산군 복군(북한 한정).
  57. 진남포부 중 개항장을 제외한 교외지역(삼화면 등)을 용강군에 이관.
  58. 1952년에 상원군 복군(북한 한정).
  59. 1952년에 숙천군, 순안군 복군(북한 한정, 순안군은 1972년에 평양으로 편입되어 순안구역이 됨).
  60. 1908년에 함종군이 폐지되고 강서군, 증산군, 용강군에 분할 편입됨.
  61. 1952년에 증산군 복군(북한 한정).
  62. 1908년에 은산군, 자산군 병합, 1952년 은산군 복군(북한 한정).
  63. 1908년에 삼등군 병합.
  64. 1952년에 연안군, 배천군 복군(북한 한정).
  65. 1952년에 토산군 복군(북한 한정).
  66. 1909년에 강령군 병합, 1952년 복군(북한 한정).
  67. 1909년에 풍천군 병합, 1952년에 복군(북한 한정, 원래 명칭이 아닌 과일군으로 복군).
  68. 1909년에 장련군 병합.
  69. 1909년에 문화군 병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