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브랜드 시절
저니맨의 시작보스턴 시절
필리스 시절
저 부르셨어여?
이름 | 그래디우스 사이즈모어 3세 (Gradius Sizemore Ⅲ) |
생년월일 | 1982년 8월 2일 |
국적 | 미국 |
출신지 | 워싱턴 주 시애틀 |
체격 | 189cm, 91kg |
포지션 | 외야수 |
투타 | 좌투좌타 |
프로입단 | 2000년 몬트리올 엑스포스 3라운드 지명 |
소속팀 |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2004~2012) 보스턴 레드삭스 (2014) 필라델피아 필리스 (2014~2015) 템파베이 레이스 (2015) |
2006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득점왕 | |||||
알렉스 로드리게스 (뉴욕 양키스) | → | 그래디 사이즈모어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 → | 알렉스 로드리게스 (뉴욕 양키스) |
1 소개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사이버 야구선수. 야구계의 오언 하그리브스
2 전성기
고교 시절에는 타고난 운동신경으로 풋볼과 야구를 병행했는데, 졸업할 즈음에는 수많은 대학이 그를 풋볼 장학생으로 데려가려 했다. 워싱턴 대학행이 유력했지만, 2000년 드래프트에서 그를 3라운드 지명한 몬트리올 엑스포스가 무려 200만달러의 계약금을 제시하면서 사이즈모어는 야구선수의 길을 선택한다.
하지만 몬트리올에서의 생활은 길지 않았는데, 2002년 6월 몬트리올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바톨로 콜론을 데려오면서 사이즈모어를 포함한 유망주 패키지를 넘기게 된다.[1]
클리블랜드로 이적한 사이즈모어는 순조롭게 성장했고 2003년에는 더블 A 이스턴리그에서 11개의 3루타로 리그 1위를 기록, 퓨처스게임에서는 MVP까지 수상하며 일약 팀 내 최고 유망주로 발돋움한다. 2004년에는 트리플 A를 거쳐 드디어 메이저리그로 콜업되어 43경기를 뛰었다.
사이즈모어는 2005시즌부터 주전 중견수가 되었고 0.289 22홈런 81타점 22도루를 기록하며 맹활약했는데, 이에 고무된 마크 샤피로 단장은 역대 2년차 최대인 6년 2,345만 달러의 장기계약을 선물한다.[2] 2006시즌에도 0.290 28홈런 76타점 22도루를 기록했는데, 특히 이 시즌에는 2루타 50개, 3루타 10개, 홈런 20개, 도루 20개를 모두 달성하는 진기록을 세운다.[3] 2007시즌에도 0.277 24홈런 78타점 33도루로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골드 글러브까지 수상했으며, 2008시즌에는 0.268 33홈런 90타점 38도루로 30-30을 기록하며 실버 슬러거와 골드 글러브를 동시에 수상한다.
클리블랜드 내 최고의 인기 스타인 그의 이름이 박힌 저지와 티셔츠는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메이저리그에서도 주목받는 5툴 플레이어로 각광받았다. 얼굴까지 포함하면 가히 6툴 플레이어...
3 유리몸
하지만 그렇게 잘 나가던 도중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나는데 바로 부상이었다.
2006년과 2007년에는 전 경기를 출전했고, 2008년에도 고작 5경기만 결장했을 정도로 건강함의 상징이었던 그는 2009 시즌 내내 사타구니 부상에 시달리며 108경기 출장에 0.248 18홈런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남겼다.
이 때부터 유리몸화가 급속하게 진행되었고, 2010 시즌에는 33경기에서 0.211의 타율을 기록하다가 무릎 수술을 받으며 일찌감치 시즌을 접었다.
2011 시즌을 부상자 명단에서 출발한 그는 4월 중순에 팀에 합류했고 연일 장타를 뿜어내며 건재를 과시하는 듯 했으나...
복귀한지 불과 한 달만에 2루 슬라이딩을 하다가 무릎 타박상을 입으며 부상자 명단에 올랐고, 7월에도 무릎 통증 때문에 부상자명단에 올랐다(...). 시즌 성적은 71경기 0.224 10홈런 32타점으로, 정확도는 개나 줘 버린 타격을 한데다 도루는 단 한 개도 없었는데, 시한폭탄 같은 무릎 때문에 운동능력을 많이 상실한 상태였다. 비슷한 처지로 무릎부상을 당했던 카를로스 벨트란처럼 중견수 자리를 상실할 것이라는 의견도 꽤 많은 편으로 비관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는 심지어 1루수 전향 떡밥까지 나왔...지만 사이즈모어보다 큰 몸과 많은 나이인 랜스 버크먼도 무릎 부상으로 잠깐 고생하다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35세 우익수로서 정상적인 시즌을 보냈다는걸 생각하면 아직 서른도 안된 선수에게 1루 전향 떡밥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대체로 코너 외야로 옮기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실제로도 그가 잠깐이라도 건강했던 2011 시즌 중반에 그런 시도가 있었는데, 사이즈모어의 빈자리를 치고 올라온 마이클 브랜틀리와 중견수-좌익수를 번갈아가면서 보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베이스볼 모굴의 2011년 버전에서 그의 건강(Health)은 84로, 어느정도냐면 커티스 그랜더슨과 동급이다. 최근 몇년간의 데이터를 종합해 능력치를 책정하다보니 이렇게 된거지만 이제 유리몸의 대명사가 된 그를 생각해보면 너무도 동떨어진 상황...
4 그 이후
2011 시즌을 끝으로 6년 계약이 만료되었고 클리블랜드가 다음 시즌 옵션 계약을 거부하면서 그는 FA로 풀리게 되었다. 텍사스 레인저스, 뉴욕 양키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시카고 컵스, 콜로라도 로키스, 보스턴 레드삭스, 필라델피아 필리스 등 많은 구단들이 그에게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면면에서 알 수 있듯이 중견수 수비보다는 장타력을 기대하는 팀들이 많은 편으로, 자신의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1년 계약으로 FA 재수를 선택할 것이란 추측도 많았고, 결국 인디언스와 1년 $5M으로 재계약하여 2012 시즌에도 인디언스에서 뛰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부상을 털고 일어나 2012년 다시 활약할 것이라 기대되었으나...또 허리를 삐끗하고 말았다. 훈련을 언제 재개할 지 알 수 없다는 트레이너의 말로 미루어 보았을때 이 부상 역시 꽤나 심각한 편인듯.#
결국 2012 시즌 한 경기도 안나오고 그대로 500만불을 적립했다.[4] 팀과의 재계약은 사실상 물건너간 상황이며 FA 시장에서도 그다지 관심을 끌 수 없는 유리몸 이미지를 굳혔다.
2013 시즌에 앞서 FA자격을 얻었지만 당연하게도 새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고, 그의 에이전트에 따르면, 완벽히 플레이할 준비가 되지 않으면 어쩌면 미드시즌까지 새 팀을 구하는 것을 미룰 것이라고 밝혔다.
2014년 보스턴 레드삭스와 1년 계약을 맺으며 드디어 메이저리그로 복귀하게 되었다. 그리고 2년 동안 쉰 것이 무색하게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레드삭스의 수준급 외야 유망주 재키 브래들리 주니어를 밀어내며 레드삭스의 개막 중견수로 낙점받았다.
그리고 개막전부터 홈런을 쳐냈는데 이는 무려 991일만에 기록한 홈런이다. 1000일은 안 넘겼다
4월 7일(한국시간 4월 8일) 텍사스전에서 외야수비 도중 타구가 그의 키를 넘어서 펜스에 부딪치고 3루타가 되었는데, 그 타구를 친 타자는 추신수였다. 그리고 이는 14시즌 추신수의 첫 3루타였다. 추신수는 인터뷰에서 "부상 이전의 그였다면 틀림없이 잡아냈을 것이다. 부상 때문에 펜스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라고 말하면서 "그는 반드시 보스턴에서 부활할 것이다"라고 말했다[5].
하지만 시즌 초반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성적이 점점 내려가더니 결국 6월 17일자로 40인 로스터에서 제외됨과 동시에 지명할당 조치되었다. 그리고 6월 24일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다. 완전 노인정이 된 필리스 타선에서 나름대로 많은 기회를 받았고, OPS 701로 보스턴 시절보다 성적도 올랐다. 이런 성적에 힘입어 2015 시즌에도 필리스에서 활약하게 되었다. 계약은 2M 기본에 인센티브에 따라 최대 5M까지 수령 가능하다.
2015년 시즌도 필라델피아에서 시작했으나 6월 2일(현지시간) 방출되었고 그후 템파베이 레이스와 마이너계약을 맺었다. 이후 메이저리그로 콜업되었고 시즌이 끝날때까지 템파베이에서 보냈다.
시즌 후 FA가 되어 팀과 결별했다.
5 이모저모
- 여자친구의 이메일이 해킹당해 자신의 누드사진이 유출당하는 일명 패프닝 사건이 터진 적이 있다. 구글에 쳐도 바로 뜰 정도. 과연 검열삭제가 크고 우람해 이름에 걸맞는 최고의 자질(을) 갖췄다고(...)
괜히 Size More가 아니다.
- 백인이 태닝한 피부색처럼 보여 백인같아 보이는데, 실은 뉴욕의 황제님처럼 흑백 혼혈(물라토)이다. 아버지가 흑인, 어머니가 백인이라고 한다.
- 한국에서는 추신수와의 인연이 종종 화제가 된다. 인디언스 시절 서로 식사초대를 할 정도로 상당히 절친한 사이였다고. 당시 추신수의 입장에서 보면 마이너에서 고생하고 부상에 시달리고 팀을 옮겨다닌 끝에 겨우 메이저에 정착하기 시작할 무렵 동갑내기이며 포지션도 같은 외야수인데 이미 팀의 중심이자 수퍼스타인 사이즈모어는 동경의 대상이었으며, 그런 그가 허물없이 친절하게 대해 주어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추신수가 자리를 잡은 2009년 이후로는 사이즈모어는 부상으로 여러 팀을 떠돌아다니며 근근히 선수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추신수는 2008~2013년 보여준 정상급 공격력으로 비싼 몸이 되었으니 그야말로 인생무상.
- 스캇 사이즈모어(Scott Sizemore)라는 85년생 내야수가 있는데, 성이 같을 뿐 아무 관계도 아니라고 한다.
- ↑ 몬트리올이 넘겨준 선수는 사이즈모어 외에 클리프 리, 브랜든 필립스도 있었다.
- ↑ 이는 2008년 6년 3,100만달러의 계약을 맺은 트로이 툴로위츠키에 의해 경신.
- ↑ 이는 1932년의 척 클라인 이후 70년 만의 기록이었다.
- ↑ 5월 복귀 예정→6월→7월→8월→9월→시즌아웃 이런식
- ↑ 추신수曰 전 사이즈모어가 더 이상 아픔 없이, 고통 없는 삶 속에서 야구를 통해 온전한 행복을 느끼길 바랍니다. 그 숱한 부상 속에서도 이렇게 다시 우리들 곁으로 돌아온 건 그가 훌륭한 인성과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인내와 기다림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길고 우리가 야구할 수 있는 시간은 짧지만, 사이즈모어는 분명 보스턴에서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