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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7년 발생한 버스 추락 사고. 당시 해방 후 최대의 버스 사고로 불리웠다.
2 상세
1967년 10월 16일 오후 2시 40분 경, 서울에서 모인 관광객들을 태우고 합천 해인사로 향하던 삼룡여객 소속 관광버스가 경상북도 금릉군[1] 고갯길에서 마주 달려오던 김천행 버스를 피하려다 높이 15m의 낭떠러지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 중 42명이 죽고 12명이 중상을 입는 대 참사가 발생했다.
사고 지점은 30도의 급커브에 폭이 5.2m밖에 안되는 비좁은 고갯길이었는데, 설상가상으로 기사 이우석(36)이 술에 취한 상태였고, 버스의 브레이크도 불량했다.
사고발생 1시간 뒤 급거 경찰이 출동했지만 마땅한 장비가 없어서 속수무책으로 있다가, 왜관 주둔 미군에게 크레인이나 트럭등을 빌려 간신히 구조작업을 실시하였다고.
3 결과
사고를 낸 삼룡여객은 유족에게 사망자 1인당 20만원의 위자료를 지불하였다. 한편 당국은 정비가 불량한 차량을 무리하게 운용한 삼룡여객의 버스 10대를 모두 폐차 처분하는 강경한 조치를 취했다.
운전사인 이우석에게는 과실치사 혐의로 5년형이 구형되었다.
(사고 발생을 보도한 1967년 10월 17일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