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구 관련 인물(KBO)
- 동명이인의 정치인은 김동철 항목으로.
1 프로필
이름 | 김동철(金東喆) |
생몰 | 1960년 6월 5일~1983년 4월 1일 |
출신지 | 인천광역시 |
학력 | 동산고-인하대[1]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소속팀 | 삼미 슈퍼스타즈(1982) |
한국의 전직 프로야구 선수. 한국 프로야구 원년 최악의 약체팀인 삼미 슈퍼스타즈의 창단 멤버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빛을 못 본채 불과 입단 1년만에 팀에서 방출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운의 인물.
2 현역 시절
동산고 졸업 후 인하대로 진학하여 선수로 활동하던 중 프로야구가 출범했고 인천 연고 팀으로 삼미 슈퍼스타즈가 창단되었는데, 당시 삼미는 고질적인 투수난에 시달리고 있던 탓에 쓸 만한 투수를 끌어오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2] 당시 인하대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동철은 삼미의 스카웃 제의를 받고 학교를 중퇴한 채 프로에 발을 들였다.
당시 프로야구는 알다시피 선발이나 중간, 마무리 같은 개념은 눈씻고 찾아봐도 없었고 하물며 허약하기 짝이 없는 마운드를 자랑하는 삼미로서는 가용 인원 전부 보직 그런거 가릴 것 없이 돌려야만 경기를 그럭저럭 꾸려나갈 상황이었다. 물론 김동철도 예외는 없었고 선발, 중간, 마무리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던지며 1982년 한해동안 총 32경기 등판에 15번을 선발로 마운드에 오르며 93이닝 투구로 규정이닝(80이닝)을 넘겼지만, 1승 9패 1세이브, 평균자책 7.06 이라는 처참한 성적을 남겼다(...).[3] 특히 이 해 김동철의 평균자책 기록은 아직도 역대 한 시즌 규정이닝 진입 투수 중 최악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참고로 2009년 한화 이글스의 김혁민이 7.87의 평균자책을 기록했으나 투구이닝이 116과 3분의 2이닝에 그치면서 규정이닝 133이닝을 채우지 못하여 다행히(???) 기록 갱신에는 실패했다(...).
아무튼 성적은 안좋았을 지언정 마당쇠처럼 열심히 던진 김동철 이었지만, 원년 시즌 후 삼미에서 대대적인 선수단 정리가 있었고, 김동철도 방출 선수 리스트에 끼어 있었다. 그렇게 김동철은 불과 1년만에 허무하게 프로 무대를 떠나야 했다(...).
김동철의 1982년 시즌 유일한 1승, 그리고 프로통산 첫 승이자 마지막 승리는 그 해 5월 5일 춘천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 와의 홈 경기에서 따낸 것이다. 이날 선발로 등판한 김동철은 6이닝 동안 5실점으로 롯데 타선에 두들겨 맞았으나 삼미 타자들이 뜬금없이 안타 22개로 무려 16득점을 뽑아낸 덕분에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통산 1세이브는 바로 감사용의 승리[4]를 구원하면서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