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식(농구)

파일:/image/003/2008/12/04/NISI20081204 0000333843 web.jpg

이름김상식(金商植)
생년월일1968년 3월 14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서울특별시
출신학교양정고등학교 - 고려대학교
포지션슈팅 가드/스몰 포워드
신체 사이즈182Cm, 78Kg
실업입단1990년 기업은행 농구단 입단
소속팀기업은행/광주 나산 플라망스(1990~1998)
안양 SBS 스타즈(1998~2003)
국가대표팀1993 자카르타 ABC - 3위
지도자[1]안양 KT&G 카이츠(2006)
대구 오리온스(2007~2009)
서울 삼성 썬더스(2014.1.27~2014.4.13)

1 개요

대한민국농구 선수이자 지도자. 농구인 2세로 기업은행의 간판 슈터였고, 프로 출범 후, 나산, SBS에서 활약했으며 이동 미사일이란 닉네임으로 유명했다. 은퇴 이후, KT&G의 감독 대행과 오리온스의 감독을 역임했고 2014년 현재 서울 삼성 썬더스의 코치.

2 선수 생활

부친은 1950년대와 60년대 한국 농구를 책임졌던 명 선수이자, 한국프로농구의 출범에 크게 기여하고, KBL 2대 총재를 역임한 김영기. 아버지의 뒤를 따라 농구 선수가 되었고, 고려대 시절에 외곽슛을 주무기로 비록 한 시대를 풍미한 아버지의 명성만큼은 아니더라도 제법 실력 있는 선수였다. 청소년 대표를 거쳐 고려대의 주포로서 활약했다.

졸업과 함께 일찌감치 기업은행으로 진로를 정하고 입단하는데, 이유는 역시 부친인 김영기의 영향. 그래서 기업은행의 주포로서 농구대잔치 무대에서 꾸준한 득점력을 선보였다. 군복무 시절인 1993-94 농구대잔치에서는 정재근, 오성식과 함께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지만, 당시 엄청난 돌풍을 일으킨 연세대학교에게 패하면서 농구대잔치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리고 기업은행이 금융팀인지라 다른 팀과의 스카우트 경쟁에서 밀리면서 실업농구 시절의 김상식은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약팀에서 고군분투하는 고독한 에이스로 각인되었다. 상무 시절이던 1993년,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1993 자카르타 ABC에 참가하였다.

프로 출범 후에는 기업은행을 인수해서 출발한 광주 나산 플라망스 소속으로 원년에 평균 20득점을 넘기면서 용병 에릭 이버츠, 이민형과 함께 팀을 6강 PO로 이끌었다. 이듬 해인 1997-98 시즌에도 괜찮은 모습을 보이면서 팀의 주포로서 활약했지만 당시 나라를 뒤흔든 1997년 외환 위기의 여파 속에 모기업이던 나산그룹이 부도가 났고, 재정빈곤 등으로 농구단 운영에 차질을 빚으면서 결국 팀의 간판이던 김상식은 현금 2억원에 팔리며 안양 SBS 스타즈로 이적하게 되었다.

안양에서의 성과는 다소 미흡했다. 이적 당시 김상식은 이미 30줄에 접어들었고, 과거와 같은 폭발적인 득점력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적은 출장시간에도 불구하고 장기인 3점슛과 외곽슛을 무기로 가드진을 이끌며 알토란 같은 활약을 했고 결과적으로 이 때의 활약을 통해 SBS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받는 스타가 될 수 있었다. 2003년을 끝으로 은퇴한 후, SBS가 코치 연수를 보내준 것이 대표적인 근거라고 할 수 있겠다.

3 지도자 생활

코치 연수 후에는 SBS의 코치로 부임해서 팀의 KT&G로 넘어간 후에도 계속 그 자리를 지켰다. 2006-07 시즌 도중 김동광 감독이 해임되자 감독 대행을 맡아 잠시 팀을 이끌기도 했다. 하지만, 신임 감독으로 유도훈 감독이 임명되면서 코치로 남은 시즌을 치룬 후, 결국 팀을 떠났다. 그리고 대학 선배인 이충희 감독의 부름을 받아 2007-08 시즌부터 대구 오리온스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오리온스에서 이충희 감독이 4승 22패로 부진한 성적을 내고 자진 사퇴하자 그 자리를 물려받아 감독 대행으로 남은 시즌을 치룬 후, 정식 감독이 되어 2008-09 시즌을 맞이하게 되었다. 한국 농구 역사상 처음으로 농구인 2세 감독이 탄생한 것. 하지만 이 당시 오리온스는 프런트가 개판을 치고, 김승현은 골골대고, 나머지 선수는 없는 한 마디로 막장 중의 막장. 여기에 혼혈 드래프트에서 1순위냐, 꽝이냐를 뽑는 확률 1/2의 상황에서 꽝을 뽑으면서 혼혈 드래프트 1순위도 놓치는 불운까지 겹쳤다. 이 때 김상식 감독이 1순위를 놓치고, 1순위를 가져간 사람은 끝 번호로라서 뽑기 자체를 안 한 뽑기의 끝판왕허재 전주 KCC 이지스 감독이다. 이 때 박장대소하는 허재와 머리를 감싸쥐고 좌절하는 김상식이 찍힌 사진이 꽤 유명하다.(...) 허재 감독 항목에도 있는


바로 이거...

결국 김상식 감독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자진 사퇴하면서 감독 생활을 끝냈다.

그 후, 한동안 야인으로 지내다가 선수와 코치로 같이 활동했던 김동광 감독이 서울 삼성 썬더스 감독이 되자 2012년부터 서울 삼성 썬더스의 코치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김동광 감독이 2014년 1월 27일부로 자진 사퇴하자 감독 대행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감독대행만 세번째

시즌 이후 이상민이 감독을 맡게 되면서 감독대행직을 내려놓게 되었다. 2015년 창사 아시아선수권 남자 국가대표 농구팀에서 김동광 감독을 보좌하여 코치로 활동하였다.

4 여담

부친 김영기 현 KBL 총재가 이민형의 부친 故 이경우 선수와 국가대표 시절부터 친구였다. 이경우 선수가 37세의 젊은 나이에 뇌졸증으로 사망하면서, 김영기가 이민형의 후견인이 되어 진학 등을 책임졌고, 3살 터울인 이민형과 김상식은 형제나 다름 없는 사이가 되었다. 이후 이민형과 김상식은 나란히 고려대-기업은행에 입단하면서 1998년 김상식이 안양SBS로 현금 트레이드 될때까지 선수생활을 함께 했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김상식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div></div>

  1. 감독대행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