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훈

한국프로농구 현재 감독
추일승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이상민
(서울 삼성 썬더스)
조동현
(부산 kt 소닉붐)
문경은
(서울 SK 나이츠)
유재학
(울산 모비스 피버스)
김승기
(안양 KGC인삼공사)
김영만
(원주 동부 프로미)
유도훈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김 진
(창원 LG 세이커스)
추승균
(전주 KCC 이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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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감독
유도훈(劉都勳)
생년월일1967년 4월 28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서울특별시
출신학교용산고 - 연세대학교
포지션가드
신체사이즈173cm, 70kg
실업입단1989년 현대전자 농구단 입단
소속팀현대전자/대전 현대 다이넷/걸리버스 (1989~2000)
지도자전주 KCC 이지스 코치 (2001~2005)
창원 LG 세이커스 코치 (2005~2007)
안양 KT&G 카이츠 감독 (2007~2008)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수석코치 (2009)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감독 (2009~)[1]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농구 선수, 現 농구 지도자. KCC, LG의 코치를 역임했고, KT&G의 감독을 거쳐 현재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의 감독으로 재직 중이다.

별명은 야마꼬. 꼬마야를 뒤집은거다(....) 키가 고작 173cm인지라 붙여진 별명.[2]

2 선수 시절

선수 시절에는 키가 173cm로 정말 작았지만 뛰어난 농구 센스와 리더십으로 용산고의 우승을 이끌면서 주목을 받았다. 연세대 진학 후에는 한동안 중앙대학교의 그늘에 가려있던 연세대학교의 정상 재등극에 기여하면서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패스 센스와 슛이 좋은 편에 리더십을 갖췄고, 수비력도 괜찮은 편이라 능력을 인정받은 선수. 다만 키가 작은 것이 늘 한계가 되었다.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현대전자로 스카우트되어서 실업 선수로서의 경력을 시작하는데, 주전 가드로서 괜찮은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유도훈이 입단할 당시 농구대잔치의 패권은 기아자동차에게 있었고, 기아의 패권을 끝낸 것은 그의 모교였던 연세대학교였지 현대전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유도훈은 농구대잔치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어쨌든 중간에 상무에서 군 복무를 할 때를 빼고는 주전으로서 활약하다가 1997년에 이상민이 들어오면서 주전 자리를 내주고, 식스맨으로 보직을 변경했다.

프로 원년에는 이상민, 조성원이 군 복무 중이었고, 추승균이 입단하기 전이라서 주전 포인트가드로 뛰면서 활약했지만, 아무래도 현대의 약한 전력을 커버하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1997-1998 시즌부터 이상민, 조성원, 추승균이 들어오고, 외국인 선수 조니 맥도웰의 활약이 겹치면서 현대는 일약 우승권으로 도약했다. 유도훈은 식스맨으로 벤치에서 이상민을 보좌하는 역할을 잘 수행하면서 두 차례 챔피언결정전 우승의 한 축을 맡았다. 1999-2000 챔피언결정전에서 서울 SK 나이츠에게 패한 것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접었다.

3 지도자 시절

3.1 코치 시절

은퇴 후, 그를 아끼던 신선우 감독에 의해 코치로 발탁되어 현대-KCC의 코치로 보직을 맡아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미 1999-2000 시즌부터 플레잉코치였기 때문에 코치로의 이동 자체가 자연스러웠던 상황. 코치로서 2004-2005 시즌까지 활약하면서 한 차례 우승을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신선우 감독이 2004-2005 시즌을 끝으로 KCC를 떠나 창원 LG 세이커스로 이적을 발표하자 유도훈 역시 신선우 감독을 따라 LG의 코치로 이동했다. LG에서 코치로 활동하던 유도훈은 2006-2007 시즌 도중에 김동광 감독을 해임하고 김상식 대행 체제로 운영되던 안양 KT&G 카이츠에서 새 감독으로 러브콜을 보냄에 따라 2007년 시즌 도중에 감독으로 부임했다.

3.2 KT&G 시절

흔들리던 KT&G를 추스르면서 유도훈은 그간 자신이 받았던 주목이 허명이 아니었음을 입증했다. 다소 쳐져있던 KT&G를 2006-2007 시즌 6위로 올려놓으면서 6강 PO 진출에 성공한 것.황당하게도 이전 시즌에는 27승하고도 탈락한 것에 비해 승률은 오히려 떨어졌다 비록 PO에서는 KTF에게 2전 2패로 물러났지만 갑자기 부임한 감독 치고는 상당한 성과를 냈다.

2007-2008 시즌에는 한 단계 더 진보한 운영, 특히 주희정과 마퀸 챈들러의 2:2 플레이를 기반으로 한 빠른 농구를 앞세워 시즌 내내 2위 싸움을 벌이면서 치열한 접전을 벌였지만, 결국 30승 24패로 4위로 만족해야 했다.(2위와 3위간의 승차가 1게임, 3위와 4위간의 승차가 1게임, 즉2게임차로 4위를 했단소리이다.) PO에서 SK를 만나 먼저 2승을 거두면서 4강에 올랐지만, 4강 PO에서 만난 상대는 당대 최강이었던 원주 동부 프로미. 결국 1승 3패로 패하면서 탈락의 고배를 들었다.

그래도 2년 연속 PO에 팀을 올리면서 젊은 나이이기 때문에 미래가 기대되는 상황이었는데, 돌연 2008-2009 시즌 개막을 앞두고 갑자기 사임했다. 표면적으로는 건강상의 이유였지만, 실제로는 리빌딩을 명목으로 팀 투자에 소극적인 팀 수뇌부와의 갈등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KT&G에 재임하였을 때, 이현호가 그의 손을 거치며 성장하였다.

3.3 전자랜드 시절

애당초 진짜 건강 문제라기보다는 다른 이유였기 때문에 야인 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 5개월만에 KBL 기술위원으로 컴백하더니, 2009-2010 시즌부터 전자랜드의 수석코치로 부임한 것. 그리고 박종천 체제의 전자랜드가 2009-2010 시즌 개그랜드의 진수(...)를 보여주면서 12경기에서 1승 11패를 기록하며 10연패에 빠지자 박종천 감독이 경질되고, 유도훈은 감독 대행으로 시즌을 치르게 되었다. 2009-2010 시즌에서는 초반 부진을 반전시키지 못하고 하위권에 머무르며 시즌을 마쳤다. 2010년 4월 1일에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었으며, 전자랜드와 3년 계약을 맺었다.

감독 승격으로 전자랜드의 지휘봉을 잡은 후 맞은 첫 시즌인 2010-2011 시즌, 문태종의 영입을 기점으로 조직력을 정비하면서 돌풍을 이끌었다. 전자랜드를 창단 후 최고 성적인 정규 시즌 2위로 올려놓으면서 지도력을 다시 인정받았다. PO에서 KCC에게 패하면서 창단 후 첫 챔피언결정전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어쨌든 한 시즌 만에 전자랜드의 개혁에 성공했다는 점으로 유도훈의 능력은 재평가받았다.

2011-2012 시즌에서도 비록 5할 승률에는 미치지 못한 26승 28패를 기록했지만, 다시 PO으로 이끌면서 6강 PO에서 부산 KT 소닉붐과 치열한 명승부를 치르면서 존재감을 알렸다. 거의 다 잡았던 5차전에서 승리를 결정짓지 못하고 2차 연장 끝에 패한 것이 아쉬웠던 대목.

2012-2013 시즌에 구단의 매각설에 휘말리며 암울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를 정규시즌 3위, 4강 PO에 올리며 다시 한 번 자신의 능력을 입증했다.

2012-13 시즌 종료 후 전자랜드와 4년 재계약에 합의했다! # 모기업의 구단 매각설에 시달리며 재계약 여부가 불투명했던 것에 대해 걱정했던 팬들에게는 가뭄에 단비와 같은 소식.

2013-14 시즌에는 팀의 주포였던 문태종창원 LG 세이커스로 이적하고 강혁이 은퇴하면서 6강 PO에는 진출하지 못할거라는 예상이 많았으나 젊은 선수들 위주로 팀을 개편하고 용병인 리카르도 포웰에게 주장 역할을 맡기면서 다시 한번 6강 PO에 진출했다. 이로써 본인은 부임 이후 4시즌 연속 6강 PO 진출이라는 대업을 일구어냈다. 이제 우승만 하면 된다. 지금이라도 시간과 예산을 조금만 더 주신다면..

2014-15 시즌에는 역대 감독 9번째로 200승을 달성했으며, 6위로 6강 PO에 진출하여 서울 SK 나이츠를 업셋하면서 4강 PO에 진출하였으며 원주 동부 프로미에 막히긴 했으나 5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다.

여담으로 유도훈 감독은 전자랜드 팬들이 구단 역사상 유이하게 정상적인 감독이라고 평가하고 있을 정도로 전자랜드 팬들에게 깊은 신뢰를 받고 있는 몇 안되는 감독이다. 이 팀을 거쳤던 전임 감독들이 워낙 무능했던 탓도 있었지만 최희암은 어디있지? [3]

하지만 2015-16시즌에는 최하위까지 쳐지는 등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내고 있어 포웰빨이라고 욕먹고 있는데 특히 디시인사이드 농구 갤러리 등에서는 "돌도훈"으로 조롱하며 비난의 화살을 꽂고 있는 모양. 그래도 6라운드 막판 4연승까지 질주하며 탈꼴지를 노렸지만 마지막 2경기를 내리 패하며 결국 17승 37패로 감독 부임 후 처음으로 최하위를 겪고 말았다.

4 기타

작전타임 도중 자주 하는 멘트는 "오늘 지면 끝이야? 내일부터 농구 안할거야?", "야! 이번에 오펜스 저거한번해!!" ,'"질 때 지더라도 너희들의 가치를 보여줘야 될 거 아냐!"[4], "지금 스코어 영대영이야! 지금부터 해서 지기만 해 봐"[5], 이현호 상대는 너를 우습게 보고 있어, 엉덩이로 싸워 등이다. 보다시피 지장일 뿐만 아니라 덕장의 면모도 보여주는 발언이 많다. 전자랜드 경기 때마다 경기뿐만 아니라 작전타임 때 무슨 말이 나올지도 기대하게 만드는 감독. 그리고 15-16시즌 6라운드 삼성전에선 작탐으로 역대급 장면 찍으셨다

야구 해설가인 이병훈과 친분이 있다. 어렸을 때 농구부에서 같이 농구를 했다고.
  1. 대행 시절 포함.
  2. KBL 현직 감독 중 최단신이다.
  3. 그나마 최희암은 감독생활 말년에 팀을 5년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다.
  4. 특히 구단의 해체설이 나돌던 2012-13 시즌 울산 모비스 피버스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선수들에게 이 멘트를 하는 것이 방송을 타면서 많은 농구팬들을 가슴아프게 했다.
  5. 팀이 큰 점수차로 지면서 가비지타임이 됐을 때 하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