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星煥
- 관련 문서 : 만화가 및 일러스트레이터 목록/한국. 실향민/대한민국
1932년 경기도 개성 출생. 독립운동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만주에서 살다가 서울로 내려와 경복고등학교에 진학. 경희대학교를 다녔고 중앙대학교 대학원을 다녔다. 시사만화가로서 거의 평생에 걸쳐 고바우 영감을 연재했다. 1950년 12월 30일 전쟁 와중에 사병만화란 군대 잡지 만화로 고바우 영감을 처음 그렸으며 이후로 전쟁과 여러 문제로 연재와 휴재를 되풀이하다가 1955년 2월 1일부터 동아일보에서 첫 연재를 시작하여 문화일보로 옮겨가면서 2000년까지 4컷 만화를 연재한 이 기록은 기네스북에도 등록되어 있다. 일단 20대부터 데뷔부터가 대단한 기록.
시사만화를 그리다 보니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젊은 시절에는 6.25 전쟁에 참전하였고, 벌금형에서 금고형까지 질리게 겪었다. 경무대 똥통 사건이 대표적인 예. 그럼에도 결코 기죽지 않고 이승만과 자유당 시절, 박정희와 군부 독재시절에도 날카로운 만화를 계속 그렸다. 다른 에피소드 내용은 고바우 영감을 참고할 것.
전쟁 당시 주한미군 부대 바로 곁에 주둔한 부대에서 군복무를 했다고 한다. 이 때 미군들의 행패 등 문제를 많이 보았다고. 한국군들이 죽어라 훈련할 때 미군들은 느긋하게 노는 걸 보면서 "저들도 어디까지나 외국인이구나", "하긴 다른 나라 전쟁와서 미쳤다고 기꺼이 죽어 줄까"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래서인지 그의 만화에서 주한미군에 대하여 좀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그들의 범죄를 비판하는 것도 그려 논란을 빚기도 했다. 그렇다고 당연히 북한을 옹호하는 짓 따위는 절대 한 적이 없다.
거듭된 시사만화로 정부를 까다보니 벌금이니 일시적인 투옥이 아니라 아예 박정희 군부 정권시절에는 중앙정보부로 끌고와 정말로 코렁탕을 된통 먹일까 논의가 되었는데 우습게도 6.25 당시 미군이던(당시 미군은 징병제) 신문사 간부가 김성환과 그나마 어찌 알던 사이라서 한국이 독재가 악랄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시사만화가까지 독재와 부조리를 비난한다고 쓴소리를 하여 이게 미국에 보도된 탓에 미국에게 찍히는 거 아닌가? 해서 없던 일로 되었다고 한다. 김성환 화백은 웃으면서 이 때 내가 끌려가서 호되게 고문당했더라면 미국 쪽에서 보도하여 박정희 정권은 어찌되었을지도 모르지라는 말도 한 바 있다...
사실 고바우 영감 단 하나만 그린 것은 아니고, 소케트 군 등 어린이 만화도 그렸지만 고바우 영감이 너무 오래 연재된 작품인데다가 소케트 군이 그리 유명한 만화는 아니다보니... (그래도 만화일기 시리즈로 나오긴는 했다.)
고바우 영감의 연재가 종료되고나서 한국만화가협회의 회장을 지냈지만 현재는 임기가 끝나서 물러난 상태다. 5.16 군사정변이전에는 현대 만화가 협회라는 단체에서 회장직을 지냈는데 현대 만화가 협회가 5.16 군사정변 이후 강제해산 당하고(...) 1968년 한국만화가협회가 창설된 다음에 소속되었고 거기서도 회장을 하게 된 것.
- 관련 문서 : 경무대 똥통 사건
- 참고 자료 : 네이버 캐스트, <한국 현대만화의 출발점, 만화가 김성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