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창

장안국의 역대 국왕
건국초대 김헌창멸망
시호없음
김(金)
헌창(憲昌)
생몰년도? ~ 822년
재위기간822년

金憲昌
(? ~ 822)

1 개요

신라 말기의 귀족. 무열왕계의 유력 인물이자 원성왕과의 왕위다툼에서 밀려나 명주로 좌천된 김주원의 아들이자 김헌창의 난의 주도자. 장안국의 왕.

2 생애

애장왕 대에 이찬이었다가 807년 봄에 시중이 되었으며, 이후 다시 이찬을 지내다가 813년 봄에 무진주(지금의 광주광역시) 도독이 되었다. 가을 8월에 중앙으로 부름을 받아 시중이 되었다가 816년 봄 정월에 외직으로 나가게 되면서 청주 도독이 되었다.

821년에는 웅주(지금의 공주시, 옛 백제 웅진) 도독이 되었고 822년에는 아버지 김주원이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군사를 일으켜 장안국을 건국해 무진, 완산, 청주, 사벌 등의 네 주의 도독, 국원경, 서원경, 금관경의 사신들과 여러 군현 수령을 위협해 부하로 삼는 등 크게 세력을 확대시켰다.

그러나 한산주, 우두주, 삽량주, 패강진, 북원경 등의 여러 성에서 김헌창이 군사를 일으킨 것을 알고 각 성을 지켰으며, 헌덕왕이 군사를 파견한 신라군과 맞서 싸웠지만, 도동 고개, 삼년산성, 속리산, 성산 등 여러 차례로 패해 도망가서 웅진에서 농성했다가 열흘 만에 함락되려고 하자 패배를 직감하고 자결했다.

청주 태수의 청사 남쪽 연못에 이상한 새가 나타나 사흘 만에 죽었는데, 이는 김헌창이 패망할 징조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