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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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 소재지 / 별표는 특례시.,,|<#a9a8a2><-5><:> 충청남도 기초자치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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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州市 / Gongju City/ 고마나루(고유어/지명)

공주시
公州市 / Gongju City
국가대한민국
면적864.27㎢
광역시도충청남도
하위 행정구역1 9 6
시간대UTC+9
인구110,145명
(2016년 6월 기준 주민등록인구)
인구밀도122.81명/㎢
시장오시덕
초선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홈페이지 페이스북 트위터 블로그


공주시청

  • 본관, 제1별관 및 봉황동별관 : 충청남도 공주시 봉황로 1(舊 봉황동 319번지)
  • 교동별관 : 충청남도 공주시 봉황로 125(舊 교동 120번지)
  • 중동별관 : 충청남도 공주시 국고개길 20(舊 중동 279번지)
공주시 구형 로고공주시 구형 브랜드[1]공주시 구형 마스코트[2]
공주시 로고공주시 브랜드공주시 마스코트[3]

1 개요

충청남도 중동부에 위치한 . 동으로는 세종특별자치시, 동남으로는 대전광역시계룡시, 서로는 청양군, 남으로는 논산시부여군, 북으로는 천안시아산시, 예산군에 접한다.

1995년 1월 행정구역 개편 때 공주군을 통합하여 도농복합시가 되었다. 인구는 2016년 기준 11만여명으로 인구가 계속 줄고 있는 상황이다. 면적은 940.58㎢으로 충청남도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시(市).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할 때 공주시 장기면을 편입(편입과 함께 장군면으로 개칭)하여, 면적이 다소 줄어들었다.

대동강을 낀 평양직할시, 한강을 낀 서울특별시는 굴지의 도시로 성장했지만 충청도 최대의 강인 금강을 끼고도 주저앉은 비운의 도시.(...)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충청감영이 설치된 도내 최고의 고을 중 하나였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주저앉아버렸다. 구한말 일본경부선을 건설할 때 공주를 경유하도록 돌아가려고 했으나, 양반 및 유생들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호남선마저 피해갔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 일본이 유생들의 반대를 그리 신경쓰지는 않았다. 다른 곳에서도 유생의 반대가 있었으나 일본은 밀어붙였다.[4] 사실 유생 반대라는 게 진짜 있었는지도 확실치 않다. 진짜 문제는 러일전쟁을 눈앞에 둔 일본군부의 요구였다.

비슷한 기믹의 도시로는 전라남도 나주시가 있다. 역시 전통적인 도내 주요도시였지만(전라도의 '라'가 바로 나주), 바로 옆에 일제강점기 동안 새로운 대도시(광주광역시)가 성장하여 쇠퇴한 케이스. 다만 나주에게 가려져서 그렇지 광주가 대전처럼 근대에 갑툭튀한 신흥도시는 아니다. 이래봬도 남도 3목(나주, 광주, 능주) 중 한 곳이었으며 충청도가 공홍도나 공충도로 개칭된 것처럼 전라도도 나주가 강등될 때 종종 전광도 등으로 개칭되기도 했다. 그래도 공주시가 나주시보다 사정이 약간 낫긴 하다. 공주시는 시가지(동 지역) 인구가 시 승격 기준인 5만 명 이상은 유지하고 있는 데 반해(2013년 기준 65,091명), 나주시는 시가지 인구가 5만 명, 아니 4만 명 이하로까지 떨어졌다(2013년 기준 36,229명)! 심지어 나주는 호남선 철도가 지나감에도 공주보다 더 심하게 쇠퇴하였다. 저 정도면 일개 읍 수준이고 실제로 나주시내를 가봐도 도시라기보단 쇠락한 읍 분위기다.태백시 다만 나주시는 혁신도시의 영향으로 인구 자체는 늘고 있다. 나주시의 인구 증가 속도로 볼 때 근 시일 내에 인구가 역전될 수 있다. 그리고 세종시로 인해 공주도 안 좋은 쪽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 그래도 근 50년간 인구가 계속 줄어 온 상주시보단 낫다.


2 역사

백제 문주왕 때 처음 백제의 수도가 되어 성왕에 의해 천도할 때까지 짧은 기간 동안 백제의 중심지가 되었다. 신라의 통일 이전에는 웅진(熊津)이라 불리었고[5](그래서 위의 마스코트도 이다), 고유어로는 고마나루, 즉 곰나루로써 불리워졌다. 통일신라의 통일과 행정지역 개편으로 인해 웅천주로 개칭되었다가[6], 조선시대 이후로는 쭉 공주라 불렸다. 공주의 '公'은 '곰'을 한자로 음차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충청도 전체를 관할하는 충청감영과 관찰사가 주재하던 곳으로 명실상부한 충청도의 중심도시였다. 그래서 한 때는 충청도 지역을 공청도[7], 공홍도[8]라고 한 적도 있었다.

1931년 충남도청의 대전 이전이 결정된 직후 공주면이 공주읍으로 승격되었다. 병주고 약주네 1986년 공주읍이 공주시로 승격되었다. 1995년 공주시와 공주군이 다시 공주시로 통합되었다. 2012년 7월 1일 장기면 일부, 의당면 일부, 반포면 일부 지역이 세종특별자치시에 편입되었다.

곰나루에 얽힌 전설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암컷 곰이 인간 남자를 좋아해서 그를 쮸쀼쮸쀼납치해서 다리를 부러뜨리고는 감금한다.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으나 몇 년 후 남자를 가두어두었던 동굴 입구를 막고 있던 바위를 다시 굴려 동굴 입구를 폐쇄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남자가 도망을 가는 바람에 곰이 쫓아 나와 아이들을 강물에 하나하나 빠뜨리는 식으로 돌아오라 호소하나 남자가 뒤도 안 돌아보는 바람에 같은 마누라는 다 싫어하나? 매우 슬퍼하여 나루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곳이 곰나루로 불리었고 나중에는 한자로 웅진이 되었다고 한다.

어린이에게는 차마 저걸 그대로 표현하기 뭐했는지 여우처럼 둔갑해서 같이 살다가 본 모습이 들켜서 남자가 도망갔고 그 남자를 쫓다가 강에 빠져 죽었다고 소개한 바 있다. 시간이 지난 요새는 아동용에도 곰나루 원전 내용 그대로 기술하는 경향이 많아졌다. 흠좀무

여담으로, 조선시대에 공주목은 유성-둔산-은행동으로 이어지는 현재의 대전 중심가에 해당하는 자리들까지도 직접 관할했다. 전형적인 땅거스러미의 예시. 이 땅은 1895년에 한 번 조정되어 회덕군으로 상당수 넘어갔으나, 유성 지역은 계속 공주에 잔류하다 결국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가 되어서야 옆의 진잠군, 회덕군과 합체되어 현재의 대전광역시 시역을 형성한다.

현재는 세종특별자치시로 편입되어 장군면이 된 옛 장기면은 1970년대 후반 유신체제 시절 행정수도 후보지로 선정했던 곳이기도 하다. 개발계획 최종안까지 완성했으나, 1970년대 말 경제위기10.26 사건으로 결국 백지화되었다. 지금의 세종 행정중심복합도시보다 좀 더 공주시내에 인접한 곳인데다가 행정수도 시가지의 서쪽 지역(현 신관동 일대)이 공주시내와 연담되는 위치였기에, 행정수도 이전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면 공주시의 모습도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3 행정


4 교통


5 정치

공주시15대공주시-
연기군
16대17대18대공주시19대공주시-
부여군-
청양군
20대
정석모/6선
자유민주연합
정진석/초선
자유민주연합
오시덕/초선[9]
열린우리당
심대평/재선
자유선진당
박수현/초선
민주통합당
정진석/4선
새누리당
정진석/재선
무소속

과거에 정석모가 6선을 한 지역이다. 은퇴 후 아들인 정진석에게 지역구를 물려주었으며, 18대에는 충청권의 맹주를 꿈꾸던 심대평이 당선되었다. 하지만 심대평은 19대 선거에서 세종시에 출마하였고 이해찬에게 발린다.(...) 그리고 무주공산이 된 공주시는 박수현 후보가 당선되면서 다시 민주당 계열 당선자가 나오게 되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공주시, 청양군, 부여군 3개 시군이 인구 부족에 의해 하나의 선거구로 합병되었다. 그리고 새누리당으로 출마한 정진석 후보가 현임이었던 더불어민주당 박수현 후보를 48.1%:45%, 3.1%차로 간신히 누르고 지역구를 탈환하게 된다. 공주에선 박수현 후보가 앞섰으나, 부여와 청양의 표로 정진석 당선자가 역전한 것. 참고로 정진석 의원은 18대 당시 한나라당 소속으로 비례대표 의원을 역임하였기에 20대에 당선되면서 총 4선 의원이 되었다.[10]


6 경제

농업과 양잠‧낙농‧양돈 따위가 성하다. 이 특산물이다.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는 정안면의 정안 밤이 등록되어 있다. 다만 많은 유적지가 있음에도 이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지 못해 관광쪽으로는 큰 수익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이다.[11] 1년에 단 9일 정도밖에 열리지 않는 백제문화제에서만 간신히 체면치례를 할 정도.

한편, 공주시의 주된 부가가치 창출은 단연 '원룸업'에서 이루어진다. 강북의 공주대학교를 중심으로는 수많은 원룸과 여러 상권이 발달해 있으며, 강남의 공주교육대학교를 중심으로도 수 많은 원룸이 자리하고 있다. 원룸과 별개로 이들 두 대학교는 공주의 경제를 지지해주는 엄청난 기반으로, 2011년 두 대학교가 통폐합되어 세종시로 이전하려 하자 인근 상인들이 대학교 본부에 난입해서 총장과 면담을 하는 등 물리적 충돌도 있었다. 특히, 공주교육대학교에 있는 강남 지역의 경우 총장을 면담한 상인들이 학교 바로 옆에 있는 시청에도 난입하여 시장 면담을 요구하였고, 시장 면담이 불발되자 바로 옆에 있는 시의회 의장실에 들이닥쳐 시의회 의장과 면담을 하기도 하였다.

두 대학교의 실질 재학생을 단순히 1만여 명이라고 한다면 1인당 하루에 쓰는 금액을 최소 1만원씩만 잡아도 일일 최소 1억원의 돈이 공주시에 풀리는 것이다. 방학을 고려한다면 1년동안 이 두 대학교로 하여금 공주에 풀리는 돈은 최소한 200억원정도인 것이다. 또 이러한 수입의 대부분은 시민들의 실질적인 소득으로 돌아가므로, 웬만한 기업체나 공장이 들어와 있는 것보다도 도시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그만큼 공주시의 경제적 기반이 매우 취약하다는 반증이 된다. 공주대 정도 규모의 대학이라면 어느 도시가 되었건 간에 지역 상권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지만, 일부 타격 정도가 아니라 아예 도시 경제의 흥망을 좌우할 정도면 문제가 좀 심각하다. 무슨 학원도시도 아니고... 하다못해 안성시도 이 정도로 대학 상권에 목숨 걸 정도는 아니다. 게다가 똑같은 1만명이라고 해도 공장이나 기업 등 일자리로 인해 유입된 1만명과 대학생 1만명은 구매력부터가 완전히 다르다.

사실 공주는 역사적으로 중심지라는 인상이 강해서 그렇지, 당장 백제가 공주에 도읍을 둔 것부터가 일종의 임시수도 성격이 컸다. 전근대에 무려 배수임산으로 도시를 건설하지 않나, 수도 존속 기간이 고작 63년밖에 안 되지를 않나.... 근대 이후로만 생각해봐도 현 공주시가지는 물론이고 인접한 의당, 우성, 지금은 남의 동네지만 장기 등지의 평지들을 죄다 합해서 확보 가능한 개발부지가 해봐야 현 청주 시가지 정도에 불과하다.[12] 게다가 충남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다고는 하지만 사방이 산줄기로 막혀서 교통로 개설도 상대적으로 영 쉽지 않은 문제도 있다.[13] 정 안되면 주거지야 어떻게 언덕 위로 올라갈 수 있다고 해도 산업시설 등의 일자리는 그게 안된다. 당장 부산이나 대구 등의 대도시들이 점점 생산기능을 인근도시에 빼앗기고 소비도시로 변해가는 이유도 심각한 부지난 때문이다.

결국 2000년대 들어서 무려 5방향(!) 고속도로망이 건설된 지금도 현실은 안습. 서산시백제 멸망 이래 가장 활기가 도는데... 하다못해 연기 산업단지가 공주에 있는 어느 산업단지보다도 큰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대학생 소비에 그야말로 목숨을 거는 경제구조가 만들어졌는데, 이러면 해당 주민들의 수입은 어느정도 보장될지 모르지만 세금 걷어서 써야 하는 시청 입장에서는 죽을맛이 된다. 애초에 생산성이 제조업에 비해 낮은 업종이 서비스업인데, 그나마도 기업은 고사하고 해봐야 원룸업이나 식당 같은 저차원 영세 서비스업으로만 도배되니 충분한 행정서비스를 제공할 재정을 확보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안 그래도 자영업자는 철통지갑이라 답이 없다.

게다가 장기면이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으로 편입되면서 지역에 얼마 안되는 큰 공장 중 하나였던 남양유업 공주공장까지 함께 세종시로 편입되어버려서 안 그래도 안 좋은 공주시의 재정상황에 엎친 데 덮친 격인 상황이다.

7 상권

금강을 기준으로 남서(아래)쪽의 구 시내는 롯데리아가 패스트푸드 상권을 독점하고 있다. 또한, 이 롯데리아는 패스트푸드를 넘어 시민들의 전형적인 외식 장소로도 자리잡았다. 이러한 롯데리아의 위상은 중구난방으로 나 있는 강남의 교통망에서 접근성이 매우 좋은 입지에 있기 때문이다[14]. 반면, 강북의 신관 쪽은 나름 계획 도시로서 아파트 단지가 밀집해 있고 도로망도 잘 갖추어져 있어 이러한 입지 조건이 큰 영향을 발휘하지 못해 딱히 한 업체나 한 업종이 독점하는 형태를 보이지 않고 있다.

참고로, 2001년 말 중동에 맥도날드가 입점하였으나 롯데리아 햄버거에 익숙한 사람들의 외면으로 인해서인지 1년여만에 롯데리아와의 경쟁에서 패퇴하여 다시 롯데리아가 독점중이다.

2010년에는 시내에 던킨도너츠가 입점, 대학교 근방에 까페가 성업하면서 엔젤리너스, 까페베네, 탐앤탐스 등이 입점했다. 다만, 시 당국의 규제[15]로 인하여 롯데마트이마트 등과 같은 대형 할인 마트는 없다. 하지만 배산임수의 지형의 이점을 많이 본다. 2010년 하반기, 신관동에서 롯데리아를 유일하게 견제하던 패스트푸드점, 파파이스문을 닫았다. 대신, 롯데리아 근처에 맘스터치가 있다.

공주 요식업 중 가장 성업하는 것은 카페 산업으로, 투썸플레이스의 대단한 성업에 이어 마침내 스타벅스가 입점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로써 공주의 카페 산업은 정점을 맞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16]

사실 공주시에 대형 할인마트가 없는 이유는 공주시의 독특한 정책 때문이다. 현재 시 당국은 ‘5도 2촌’이라는 도시와 농촌을 조화시키려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이 정책의 일환 중 하나가 전통시장을 활성화하고 전통시장에 위해를 줄 수 있는 대형 할인마트의 입점을 원천 봉쇄하는 것이다. 실제로 신관 신도시가 개발 될 때 롯데마트나 이마트의 입점 시도가 있었지만 시에서 허가하지 않아 무산되었다. 공주터미널의 금흥동 이전 추진에도 대형마트 입점을 요구하여 협상이 결렬된 것도 그런 이유다.

이러한 시의 규제로 대기업들이 약간의 트릭을 써서 입점을 하고 있는데, GS슈퍼마켓은 법정업종 상 대형 할인마트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 입점을 시도하였다. 시에서 이러한 입점을 막으려 했지만 조례 상으로는 막기가 어렵기 때문에 기존의 농협 하나로마트 앞에 두어 전통시장에 대한 영향력을 떨어뜨리는 조건을 내세우는 식으로 타협을 보았다. 대신 GS슈퍼마켓 신관점은 이런 점을 이용해서 규모를 더욱 줄인 끝에 신관동 아파트촌 근처에 입점 성공했으며, 신관동의 유일한 대기업 마트로 자리잡았다. 자연대 방향으로 내려와서 아파트촌까지 가야해서 공주대학교 학생들은 대부분 모르는 실정.

또다른 트릭은, 기존에 존재하는 중소형 마트를 이용하는 것이다. 최근에 시내에 새로 생긴 이마트 에브리데이는 원래 중동마트라는 공주시민이 운영하는 중소형마트 자리에 입점하였다. 이러한 입점은 이마트 자체자본으로 입점한 것이 아니라 이마트와 중동마트가 합동 투자하는 형태로 입점한 것이다. 이에 따라 점포의 소유와 운영은 중동마트가 하고 상품의 공급은 이마트가 담당한다고 한다. 결국 이러한 조례때문에 공주시민들은 가까운 세종과 유성에가서 장을 본다고한다[17]

농담 삼아서 공주에서 가지 말아야 할 곳이 세 군데 있다고 한다. 사진관, 미용실, 병원. 정작 가야된다면 공주서 쭉 살아본 분들한테 추천받는게 낫다. [18] [19]


8 관광명소

명승고적으로 공산성, 송산리고분군, 무령왕릉[20] 등 백제의 여러 유적지가 있고, 대표적인 시설로는 국립공주박물관, 휴양지로는 계룡산국립공원 등이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의 말에 의하면, '괜찮은 유적지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유적발굴과 관리를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문화적 관광도시로 발전하지 못한 도시' 라고 했다.

발로 한 발굴로 유명한 무령왕릉과 현재도 발굴이 진행중인 공산성[21], 시가지에서 참 멀리도 떨어져있는 변두리의 국립공주박물관[22] 등, 유적지 관리 실태를 보면 맞는 말이지만 공주시에 거주하는 사람이 듣기에는 참 씁쓸한 말일 것이다.

비슷한 문화재가 많은 경주시와 비교해보면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경주하고 비교하기에 공주는 일단 역사적인 중심지였던 기간부터 시작해서천년수도 vs 60년 수도? 정부 및 학계 차원에서의 지원, 세간의 관심까지 워낙 차이가 많이 나는지라...게다가 대한민국 수립시까지 남아있거나 일제에 의해 조사라도 된 유적의 절대량부터가 넘사벽이다. 유적지 발굴이나 관리가 잘 되었다고 다 관광도시 되는 것도 아니고. 까놓고 서울의 백제 관련 유적이나 부여는 그렇게 잘 되어있나? 그래도 공주보단 낫다

그래도 1박2일 손님이 많은지 박물관 근처에 고마아트센터, 한옥마을 등 여러가지 체험거릴 놓아두었다.

오죽하면 이런 말도 있을까.
"경주는 수학여행에서 유적지를 보고 자고 가는 곳, 공주는 수학여행에서 유적지를 보고 지나가는 곳"

이 외에도 사립 박물관도 있으며, 지당자연사박물관 등이 있다.

그래도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송산리 고분군과 공산성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됨에 따라 이전보다는 나은 상황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이 동네 꼬라지는 면하게 생겼다


9 교육

초등교사를 배출하는 공주교육대학교, 사범대학으로 유명한 공주대학교가 있다.

충남에서는 천안과 함께 최고의 고등학교 라인을 자랑한다. 인구수에 비하면 놀라운 일.

  • 별다른 설명이 필요없는, 특수목적 고등학교인 충남과학고등학교는 전통적인 강호이며,
  • 2000년대 들어 전국 TOP급으로 성장한 자율형 사립고[23] 한일고등학교가 있다. 한 학년이 160명 정도인 비교적 작은 학교이며,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한다. 교복이 없이 전교생이 사복 생활을 한다. 2000년대 초반에 거창고 등과 함께 농어촌 자율학교로 선정되었으며 농어촌특별전형의 혜택을 받아오던 학교였다. 엄밀히 따지면 이명박정부때 대두되었던 자율형사립고와는 다른 학교분류에 속하며, 기존에 존재하던 상산고,해운대고,민사고 등이 자립형사립고에서 자율형사립고로 전환된 것과도 무관하다고 볼 수 있다. 종종 언론에 나오는 서울대 입시 상위100교나 수능성적 상위 학교 분석자료 등에는 자사고가 아닌 일반고로 분류되고 있다.농어촌특별전형의 브로커[24]
  • 충남 일반계 최고등급인 공주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공주사대부고)가 있다.
  • 거기에 공주고등학교. 이름만 놓고 보면 다른 시 같으면 동네 학교 포지션에 불과한데, 공주고는 결코 무시 못 할 급이다. 옆 지역의 청양고와 비교해보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중 근래 특별히 강세를 보이는 두 학교가 한일고와 공주사대부고이다. 한일고는 특목고는 아니지만 모집단위가 한일고는 개교 당시(1987년)부터 '전국 단위'였고, 사대부고는 '충남 전체'였다가 2010학년도부터 전국모집으로 전환했다. 다들 중학교 때 공부 좀 해 봤다는(전교 1~10등) 놈들을 닥닥 굴려대는 통에, 두 학교 모두 진학 현황은 이미 지방권 외고 정도는 뛰어 넘는 수준이다. 사대부고는 은근히 한일고에게 경쟁심을 불태우고 있지만, 한일고는 2000년대 중반 이후 특목고, 민사고를 포함해도 진학률 전국 TOP 5~10 안에 들어갈 정도로 막강한 전력을 과시하는 중으로 사대부고를 앞서고 있는 상황이다.

헌데 문제는 정작 공주시 자체에서 위의 학교들에 들어가는 진학률이 상당히 떨어진다는 것. 충남과학고 같은 경우 몇 되지도 않는 중학교에서 1년에 2~3명 가기 일쑤이다. 한술 더 떠 한일고등학교는 역대 공주 지역에서 진학한 학생 수가 손으로 꼽힐 정도이다. 그나마 공주 학생들이 좀 가던 공주사대부고도 모집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공주시 중학생의 진학자 수가 현격히 떨어졌다.

아무래도 전국단위로 뽑는 학교들이다보니 어쩔 수 없는 문제이다. 오히려 공주시 학생들을 편중해서 뽑으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 공주시 출신 학생들이 주로 진학하는 학교는 인문계의 경우 공주고등학교, 공주영명고등학교, 공주여자고등학교, 공주금성여자고등학교가 있고 전문계 고등학교의 경우 공주생명과학고등학교, 공주정보고등학교가 있다. 인문계 고등학교는 남학교, 여학교가 깔끔하게 2대2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 남학생 한정으로 인문계 고등학교인 사(S)대부고, 공(K)주고, 영(Y)명고를 묶어 SKY 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공주고는 천안북일고나 대전고 만큼은 아니지만 충청팜의 야구. 명문으로 손꼽히며 텍사스 레전드 박찬호, 시카고 레전드 안승민, 조동찬, 조동화, 오재필, 김광림, 신경식, 김경문 등의 프로야구 선수를 배출하기도 하였다.

금강을 기준으로 강남에 중/고등학교가 몰려있기 때문에[25] 아침 출근길이 버스와 자가용으로 상당히 빡세다. 신관동엔 아파트가 계속 세워지고있는 상황이지만 중/고등학교는 새로 안 지어지고 있는 상태.


10 치안

공주시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신관동은 밤에는 치안이 많이 안 좋다고 한다. 공주대학교#s-2.1 문서 참조. 다른 지역은 추가바람.


11 출신인물


12 기타

특이한 점은 대규모 주택지역으로 재개발이 이루어진 강북지역은 제외하곤 일제시대에 지어졌던 도시 구획이 거의 바뀌지 않고 그대로 있다는 점이다.

이런 보수적인(?) 풍조는 공주시의 식당에서도 볼 수 있는데, 공주시민들은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평소에 가던 식당을 일평생 가기 때문에 주인과 주인의 가족까지도 그 사람과 친한 경우가 많다. 때문에 외지인이 공주 지역의 식당에 가면 홀대받기 쉽다. 한 사례로, 강남 지역의 한 유명한 중식당에서는 주인이 맛객 블로거로 보이는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주문을 무시하고 아예 받지 않은 적도 있다. 이건 보수적인게 아니라 걍 기본예의가 없는거 아닌가

대학교 근처의 식당들도 주인들이 학생들의 얼굴을 익혀두고 자주오는 사람에게는 음료수를 서비스로 주거나 식대를 할인해 주기도 한다. 이는 공주시의 사회가 좁기 때문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즉, 자주 가는 사람에게 못해주면 지역사회에 안좋은 소문이 나기 때문이다.(...) 세상 살기 쉽지가 않구만

공주는 다른 충청남도의 시군에 비해 유독 개발이 덜 된 모습이 눈에 띄는데 이게 다 개발만 하려 하면 향로가 나오고 무덤이 나오고 금관이 나온 터라 그렇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상술했듯이 관리소홀과 지자체의 무관심에 관광 산업으로도 성장하지 못하여서 현재 '시'딱지는 붙이고 있으나 주변 시군에 비해 발전도가 확연히 떨어지고 있다. 심지어 군딱지 붙이고 있는 부여군이나 청양군보다도 더 떨어지는거 아니냔 우스갯소리 푸념도 나온다.

충청남도 지역의 향토방위를 담당하는 육군 제32향토보병사단이 위치한 곳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지역 일대가 세종특별자치시로 합쳐졌다.

세종특별자치시 문제 때문에 연기군과 마찬가지로 주민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사실 이 문제는 오랫동안 공주시를 지켜오던 분들에게는 충청남도청이 다른 곳으로 뺏겨버린 탓에 다른 행정수도로서의 기능이 온다는 소식으로 일개 도시에서 다시 한번 도약 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갑자기 나온 수...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또한 이에 대한 여러 삽질를 저지르게 되고 결국에는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완벽하게 발라버리게 된다. 여기에 대해서는 혹자들은 절반의 성공이라고 평가했다.

아무튼, 세종특별자치시는 공주시민들로서는 마냥 웃을 수 있는 이득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세종특별자치시의 출범이 수도권 인구 분산의 효과가 아닌 세종특별자치시가 망하느냐 아니면 인근 충청 도시들이 망하느냐를 결정하는 단두대 매치로 변질되는 양상을 보일까 염려하는 것. 특히 인접 도시 중 인구가 제일 적은 공주시의 경우 타격이 커서 [상생 위기]라는 기사도 나왔고, [통합 떡밥]도 나왔으며, [도지사까지 개입하기 시작]했다. 여담으로 세종특별자치시에는 세무서가 없고, 공주세무서가 세종특별자치시까지 관할 구역으로 두고 있다.


13 관련문서

  1. 2000년대 초에 유행하던 영어를 이용한 브랜드를 제작하여 사용했으나 최근 로고를 변경하면서 함께 변경
  2. 효돌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3. 이름은 고마와 공주.
  4. 심지어 다른 철도건설지역에서는 대놓고 철도 건설을 사보타주하는 활빈당 사건까지 있었다. 점잖은 유생들 반대 정도는 일본에게는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었다. 3년 후 국채보상운동의 중심지가 된 대구 같은 도시에서도 철도는 잘만 놓았다.
  5. 대한민국의 재벌그룹인 웅진그룹이 여기서 따와서 이름을 지었다.
  6. 이 시기 최대의 난이었던 김헌창의 난이 바로 웅주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7. 공주와 청주의 머릿글자를 따서.
  8. 공주와 홍성(당시엔 홍주)의 머릿글자를 따서.
  9. 05.1.27 의원직 상실(선거법 위반)
  10. 2012년 19대 총선 땐 서울 중구 선거구로 나가 잠시 수도권 진출을 꿈꾸기도 했으나 장렬히 낙선했고(...), 2014년엔 충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했으나 토론회에서의 뻘짓(...) 끝에 안희정 도지사에게 패하며 연이은 낙선으로 곤욕을 치루기도 했다. 그러다 4선이 된 2016년엔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당선되며 인지도를 넓히게 된다.
  11. 특히 이웃한 부여와 비교하면 공주는 수도로서의 역사는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공산성이나 무령왕릉 등 쓸만한 유적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관광지로서의 기능은 그게 그거라....
  12. 그나마 청주는 시 외곽에 개발가능부지가 넘쳐흘러서 역 주변도 개발 못하고 쩔쩔매는 판. 욱여넣으면 400만도 불가능하지 않지만, 공주는 그냥 저게 다다.
  13. 하술된 철도 항목에서도 언급했지만 조치원-보령 철도는 공주 서쪽이 워낙 첩첩산중이라 공사비 폭발로 때려쳤을 정도다. 충청남도라고 만만하게 볼 지역이 아니다.
  14. 실제로 롯데리아가 있는 장소는 공주 시내 전 지역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지역이다.
  15. 시 조례에 따른 것이다. 시 조례에서 대형마트의 입점을 제한하고 있다.
  16.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신관초등학교 주변 4차로 이상의 도로와 연결도로 등을 다니다보면 다 보인다. 물론 대학로 방면이 해당되는거지, 아파트 단지나 법원 일대는 없다...
  17. 물론 세종이나 유성의 상권이 상대적으로 매우 좋아도 공주시 내에도 웬만한 중소규모 마트나 슈퍼 등이 아파트 단지에 있다.
  18. 그 이유가 있는데, 우선 사진관의 경우 강북 기준으로 단 2군데이며, 학교 후문 근처가 아닌 다른 사진관의 경우 임용고시를 치는 사범대생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임용고시 응시용으로 원서 사진을 찍고, 임용고시 원서를 넣고 보니 원서 사진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연락이 올 정도로 일처리가 미숙하다. 그래서 사범대생들은 보통 학교 후문 근처의 사진관만 이용하거나, 대전 혹은 출신 지역에서 찍어온다. 미용실도 상권인 대학교 밀집지역 외에는 매우 적다. 터미널 인근의 미용실도 대학 근처의 다숲아파트 후문 쪽에 위치한 미용실 하나 뿐. 그리고 깎는 속도도 느리다 또한 병원이 극심하게 적은데, 강북에는 유일하게 응급실을 운영하는 공주현대병원이 있는데, 이 건물은 과거 예식장과 뷔폐로 활용되던 곳이다. 그래서 의외로 건물 자체는 오래된 곳이며, 강남 역시 유일하게 응급실을 운영하는 공주의료원이 있다. 하지만 24시간 응급실은 공주의료원만 유일한데, 현대병원은 22시에 닫는다. 매일 22시면 끝!!!
  19. 공주에는 종합병원이나 응급실을 운영하는 병원은 별로 없고 외과나 치과,피부과 같은 전문병원이 많다.
  20. 정확히는 송산리고분군 중 하나
  21. 공산성 발굴은 1980년부터 시작됐으며, 현재도 공주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 진행중. 최근 화제가 된 백제의 옻칠된 갑옷이 이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22. 거기다 박물관과 공주시내를 오가는 시내버스(108번)는 평일60분/주말120분(!!!) 간격이다. 본래는 강남의 비교적 시내에 있었으나, 이전시 멀리 가버렸다. 그나마 배차간격이 짧은 101번이나 125번을 타고 와도 되는데... 고개를 넘어야한다. 거리는 약 600m. 예전에 국립공주박물관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 충남역사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23. 자립형 사립고가 생겨나기 이전에 이미 자율학교라는 분류로 인가를 받았고 2010년에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 언뜻 그게 그거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전혀 다르다. [#참조.]
  24. 대학들이 농어촌특별전형 지원 대상에서 특목고자사고 출신을 제외시키고 있기 때문에 이는 더 이상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25. 강북 봉황중학교, 생명과학고등학교, 정보고등학교 제외
  26. 정확한 출생지는 대전으로 초중학교는 유성초, 갈마중 등 대전에서 다녔다가 고교부터 이곳 공주의 금성여고를 다녔다. 대전광역시 문서에도 박세리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27. 모두의 유채꽃 10화 소개에서 밝혀졌다.
  28. 기업명을 공주의 옛 지명인 웅진에서 따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