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레인저스 시절.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시절.
피츠버그 파이리츠 No.30 | |
네프탈리 펠리즈 안토니오 (Neftalí Feliz Antonio) | |
생년월일 | 1988년 5월 2일 |
국적 | 도미니카 공화국 |
출신지 | 아수아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2005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ATL) |
소속팀 | 텍사스 레인저스 (2009~2015)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2015) 피츠버그 파이리츠 (2016~) |
2010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신인왕 | |||||
앤드류 베일리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 | 네프탈리 펠리즈 (텍사스 레인저스) | → | 제레미 헬릭슨 (탬파베이 레이스) |
1 개요
2 커리어
2.1 마이너리그
2005년 국제 자유계약으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입단했으며, 마이너 시절에는 냉정히 말해 공만 빠른 원석으로 꼽혔다. 그러다 2007년 거포가 필요했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결정으로 엘비스 앤드루스, 맷 해리슨, 재로드 살탈라마키아와 함께 마크 테셰이라 딜에서 텍사스 레인저스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 트레이드는 이후 MLB의 역사에 남을 상대팀 팜 탈탈 털어먹기 트레이드가 되었다.
2008년 텍사스 마이너 시절
당시 트레이드의 표면적 블루칩은 AAA도 거치지 않고 빅리그에 입성해 .284/.333/.411을 찍었지만 브라이언 맥캔의 존재때문에 주전자리를 보장할 수 없던 제로드 살탈라마키아였다. 이미 시즌중에도 살티의 트레이드는 기정사실이었고 단지 어디로 가느냐가 관심사였다. 반면, 알렉스 로드리게스도 팔아넘기고 경영난에 빠진 구단 매각 움직임이 있었던 레인저스는 벅 쇼월터 감독을 해임하고 론 워싱턴을 선임하여 리빌딩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레인저스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트레이드카드가 바로 FA가 2년 남은 마크 테셰이라였고 2006년 14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이 끊어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는 어떻게든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 당시 스캇 쏘먼이라는 허접한 1루수자리를 메꿀 대형 1루수가 필요했고 이들의 이해가 맞아 떨어져 마크 테셰이라를 영입한 것이다. 그리고, 이때 레인저스가 좌완 셋업맨 론 매헤이까지 내주면서 받는 유망주의 등급을 높이려 시도했고 브레이브스는 아직 원석에 불과했던 19세의 패스트볼밖에 던질줄 모르던 펠리즈를 포함해 팀내 최고의 유격수 유망주와 좌완투수 유망주를 내놓았다. 그리고 이들은 살티를 제외하고 모두 빅리그 주전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중 가장 큰 기대를 받던 살탈라마키아는 레인저스에서 부진을 거듭하여 보스턴 레드삭스로 옮기게 되었고 다행히도 레드삭스의 주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2.2 메이저리그
펠리즈는 2009년에 메이저리그에 올라와 중간계투로 31이닝을 소화하며 ERA 1.74를 찍는 수준급의 활약을 펼쳤고, 레인저스는 2010년 첫 풀타임 시즌에 그를 마무리로 기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라지에타가 터졌다! 100mph를 찍는 무시무시한 패스트볼을 앞세운 펠리즈는 레인저스의 뒷문을 단속했고 올스타에 선정되었으며 레인저스의 월드시리즈 진출에 공헌했다. 특히 웬만한 신인 투수들답지 않게 공격적 피칭을 하면서도 삼진에 비해 볼넷이 많지 않은 편이라는건 높이 평가받는 부분이었다. 결국 아메리칸리그 2010 신인왕에도 선정되었다.(NL은 버스터 포지)
하지만 2011년에는 소포모어 징크스라도 겪는 것일까. ERA 자체는 전년도에 비해 다를 것이 없었고 전년도 40세이브에 이어 2년차 징크스를 겪었다면서도 32세이브나 거뒀지만, 팩질볼질을 거듭하며 텍빠들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어서 시즌 내내 까이고 말았다. 이건뭐 오프시즌 동안 펑펑 놀기라도 했는가... 마무리투수로서 9이닝당 볼넷 비율이 4개면 너무나 심각한 점이었다. 특히, 패스트볼 구위는 여전하지만 변화구 완성도가 정체되며 패스트볼만 던지는 투수가 되어버린 것이 불안정의 원인.
결국 시즌 중 레인저스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셋업맨 마이크 애덤스를 트레이드해온데 이어 우에하라 고지, 마이크 곤잘레스 등으로 불펜을 보강해야 했고, 2011년 종료 후 FA시장에서 조 네이선까지 영입했다. 결정적으로 월드시리즈에서 우승까지 스트라이크 단 한 개를 남겨놓은 두 점 차 상황에서 블론세이브를 범해버리면서 팀의 생각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이에 따라 2012년부터는 선발 투수로 보직을 옮기게 되었다.
2012년에는 6월까지 8경기 중 7경기에 선발등판하여 총 42⅔이닝 동안 3.16 ERA와 4.61 FIP, 9이닝당 4.85개의 볼넷 비율, .213 BABIP를 기록하며 그야말로 꾸역꾸역 타자들을 막아냈다. 다만 5월 18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전 등판을 끝으로 부상자 명단에 올라[1] 올스타 브레이크까지 복귀가 요원하게 되었다. 팀은 이 때문에 로이 오스왈트와 계약하여 펠리즈의 공백을 메꾸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7월 말, 토미 존 서저리를 요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2013년에는 9월 복귀하여 4.2이닝을 소화, 무실점을 기록하며 2014년엔 건강한 모습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이 한층 밝아졌다.
헌데 2014년 시범경기에서 구속저하로 부진하며 구단의 속을 태웠고 결국 트리플 A로 좌천되어 시즌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7월달에 콜업돼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고 호아킴 소리아가 트레이드 되면서 다시 마무리 투수로 전향하게 되었다.
2015년 마무리 투수로 시작해 초반에는 그럭저럭 괜찮다 싶더니만 이후 극심한 슬럼프에 시달리면서 결국 마무리 투수 자리를 숀 톨레슨에게 내주고 말았다. 그리고 현지시각으로 7월 3일 지명할당되었다. 이후 11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계약.
하지만 디트로이트서도 7점대 ERA를 기록하며 팀의 몰락에 일조했고 결국 시즌후 구단이 연봉계약을 거부하며 논텐더로 방출되었다.- ↑ 이로써 펠리즈는 2012년 레인저스의 첫 부상자 명단 등재 선수로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