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컵스 No.36 | |
조지프 마이클 네이선 (Joseph Michael Nathan) | |
생년월일 | 1974년 11월 22일 |
국적 | 미국 |
출신지 | 텍사스 주 휴스턴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95년 드래프트 6라운드 (SF) |
소속팀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1999~2003) 미네소타 트윈스 (2004~2011) 텍사스 레인저스 (2012~2013)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2014~2015) 시카고 컵스 (2016~) |
목차
1 소개
메이저리그의 마무리 투수.
원래 포지션은 유격수였다. 하지만, 야구 재능을 그리 특출나지 않아서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그냥 야구 경력이 끝날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 고등학교 야구부 코치가 자신의 동창이 일하는 스토니브룩 대학교(Stony Brook University) 야구부 코치에게 그를 소개시켜 주면서 운 좋게 야구부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당시 이 야구부는 디비전 3에 소속된 야구부(...) 프로로서 경력을 이어가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었고, 네이선은 어쨌든 그렇게라도 야구 경력을 이어갔다.
그래도 유격수로서 제법 괜찮은 모습을 보였는데, 정작 1995년 드래프트에서 그를 지명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스카우트는 그에게서 투수의 자질을 발견했다. 유격수로서 다져진 팔을 보고, 직접 피칭 테스트를 시킨 후, 그를 6라운드에서 지명해 투수로 전향시켰다.
2 메이저리그 데뷔
그렇게 투수로서 경력을 시작해 마침내 1999년 드디어 메이저리그 무대에 입성할 수 있었다. 원래는 유망한 선발 투수였다. 데뷔전에서 7이닝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된 것을 시작으로 1999년과 2000년 선발로서 그럭저럭 메이저리그에 남을 정도의 활약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빼어난 성적까지는 아니었는데, 2000년 시즌 도중 어깨를 다치면서 결국 2001년은 통채로 쉬게 되었다. 그리고 이 여파는 2002년까지 이어져서 2002년에도 거의 메이저리그 무대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2003년 구원 투수로 완전히 전향해 맹활약하기에 이른다. 팀의 서부 지구 우승에 큰 기여를 했는데, 중간 계투로 출전해서 12승을 거둔 것. 하지만 정작 디비전 시리즈에서 플로리다 말린스 상대로 무너지면서 팀 패배의 원흉이 되고 말았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포수 보강을 노리던 샌프란시스코는 A.J. 피어진스키를 영입하기 위해 그와 프란시스코 리리아노, 브루프 본저를 내주게 되었다.
그러나 이 결정은 미네소타에게는 축복이 되었다.
이미 계투로서 가능성을 보여준 상황에서 팀의 신뢰가 가자, 네이선은 그야말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2004년 이적 첫 해 44세이브를 거둔 것을 시작으로, 2009년까지 246세이브를 거두면서 팀의 부동의 마무리로 자리잡은 것. 마무리가 안정된 미네소타는 여러 차례 플레이오프에 오르며, AL 중부지구의 강자로 자리잡기에 이른다. 리리아노가 선발로 정착하고, 반대로 피어진스키가 샌프란시스코 팀워크를 해치는 선수가 되면서 이 트레이드는 미네소타의 일방적인 완승.
그러나 2010년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토미 존 서저리를 받으면서 2010년을 통채로 다시 쉬게 되었다. 팀은 공백을 메우기 위해 워싱턴 내셔널스로부터 마무리 투수 맷 캡스를 공수해왔고, 네이선은 한 해를 재활에만 매진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1년 다소 빠르게 컴백해서 마무리를 맡았지만, 초반 부진에 시달리며 스스로 마무리 자리를 내놓았다. 그러나 캡스 역시 심각한 부진에 시달리자, 구위를 회복한 그가 다시 마무리를 맡았고, 마무리로서 다시 안정감을 보이고 있다.
미네소타의 마무리가 된 2004년부터 부상으로 쓰러지기 전인 2009년까지 6시즌동안 매년 35세이브 이상을 거두며, 평균자책도 놀랍게도 가장 높은 것이 2005년의 2.70일 뿐, 대부분 1점대 아니면, 2점대 초반을 기록하고 있다. 안정된 제구력과 삼진을 바탕으로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원래는 직구가 주무기였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차 슬라이더와 커브의 비중을 높히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약점은 PO에서의 부진. 샌프란시스코로부터 버림받는 계기가 된 2003년 디비전 시리즈의 부진 외에도 포스트시즌에서는 정규시즌만큼의 안정감을 보인 적이 거의 없다. 2004년 디비전시리즈와 2009년 디비전시리즈에서 블론세이브를 저지르면서 미네소타의 뉴욕 양키스 징크스에 일조했다. 통산 포스트시즌 성적이 2010년까지 2패 1세이브 평균자책 7.88. 이 때문에 은근히 저평가받는 분위기다.
2011년 이후 FA가 되었고, 2년 14.5m + 14년 옵션 계약으로 네프탈리 펠리즈를 선발로 돌리려는 텍사스 레인저스와 계약했다. 12-13 2년간 올린 성적은 9승 7패 2.09 80세이브로 다시 수준급 마무리로 돌아왔다. 레인저스에서의 좋은 성적때문인지 레인저스와의 계약이 끝나는 2013년 말에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2년 20M 계약을 맺었다.
300세이브 달성의 순간. |
하지만 데뷔한 이래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6월 5일 현재 13세이브 4블론으로 괜찮아 보이지만 무실점세이브가 거의 없어 볼넷,피안타율등 모든 수치가 크게 하락했다. BABIP가 커리어 평균보다 5푼정도 높긴하지만 FIP도 5점대라서..과연 조 네이선이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가 기대되는 상황. 그리고 디트로이트가 호아킴 소리아를 영입하면서 사실상 마무리에서 밀려났다고 봐도 될듯... 그러나 아스무스 감독이 마무리는 네이선이라고 선언한 상태라 일단 마무리는 유지 되었다. 그리고 소리아가 이적이후에 똑같이 불을 지르자 마무리자리는 어찌어찌 유지하고있다. 마리아노 리베라가 은퇴하면서 2014시즌 전 현역 세이브 1위(341세이브)가 되었다/
2015년에는 1경기 등판하고 팔꿈치 통증으로 토미 존 서저리를 받았고 시즌 이후에는 옵션 사용이 거부되 FA가 되었다. 하지만 나이가 40이 넘은 상태라 받아줄 곳이 있을지 의문. 하지만 예상을 깨고 뒷문 강화를 노리던 시카고 컵스가 네이선을 영입했다.
그러나 시카고 컵스가 아롤디스 채프먼을 영입하며 입지가 좁아졌고, 결국 지명할당되었다. 그런데 뒷문이 불안하다고 여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마이너 계약을 제시하며 그는 친정팀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3 트리비아
앞에서 언급한 모교인 스토니브룩 대학교 출신의 유일한 메이저리그 선수다. 그래서 모교에서 그의 등번호는 영구결번되었다. 아무도 받아주지 않을 때, 그를 받아주었기 때문인지 모교를 위해 장학금을 기부했고, 그를 구해준 그의 스승들의 학교에 역시 기부금을 내서, 학교 야구장 이름이 조 네이선 야구장이다. 아울러 그의 이름을 딴 자선재단이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