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스턴 애스트로스 시절
이름 | 로이 오스왈트 (Roy Edward Oswalt) |
생년월일 | 1977년 8월 29일 |
국적 | 미국 |
출신지 | 미시시피주, 쿠시스코 |
포지션 | 선발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98년 드래프트 23라운드 휴스턴 애스트로스 지명 |
소속팀 | 휴스턴 애스트로스(2001~2010) 필라델피아 필리스(2010~2011) 텍사스 레인저스(2012) 콜로라도 로키스(2013) |
2005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MVP | |||||
알버트 푸홀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 | 로이 오스왈트 (휴스턴 애스트로스) | → | 제프 수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선발투수. 통산커리어
13년 빅리그 통산 163승 102패 평균자책점 3.36 2245.1이닝 1852 탈삼진
1 선수 생활
1.1 빅리그 데뷔 전
1996년 드래프트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오스왈트를 자기들만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뒤로 남겨뒀고 결국 23라운드에서 오스왈트를 지명했다. 휴스턴에 입단한 오스왈트는 마이너리그에서 착실히 경험을 쌓았으며 그렉 매덕스의 형인 마이크 매덕스[1]에게 여러가지 노하우를 전수받으며 그 가능성을 높여갔다. 99년 시즌까지는 고질적인 어깨 통증으로 고생하였으나 시즌이 끝난 후 자기 집에서 트럭을 고치다가 감전, 그 이후로 어깨 통증이 없어져서 마이너리그를 정ㅋ벅ㅋ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같은 이야기가 있다. 관련뉴스
이 결과는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바로 효과가 나타났으며 [2]대한민국을 누르며(...) 미국이 금메달을 차지하는데 일등 공신이 된다. 이때 오스왈트의 낮은 라운드를 보고[3] 한국 몇몇 구단에서 접촉해봤으나 당연히 무시했다는 루머가 있다.
1.2 메이저리그 커리어
이듬해 2001년 메이저리그에 콜업되어 14승 3패로 준수한 성적을 거두며 빅리그에서 활동을 시작했으며[4] 2004년과 2005년 연속으로 20승을 달성하기도 하였고 2006년에는 내셔널리그에서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04년 시즌 전에 휴스턴이 로저 클레멘스와 앤디 페티트라는 거물들을 영입했으나 개막전 선발로 오스왈트를 낙점할 정도였고, 05년에는 팀의 내셔널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확고부동한 에이스였다. 클레멘스가 후계자로 지목하기도 했는데 나중에 오스왈트가 약물을 복용한 선수들을 맹비난 했다는 걸 생각하면...
이후 2회 WBC에 출전하여 네덜란드 전에는 승리투수가 되었지만 컨디션 난조로 4강전이었던 일본과의 경기에서 패전투수가 되었다. WBC 이후 부상등으로 후반에 시즌 아웃, 데뷔시즌부터 이어져오던 연속 10승 기록도 8년에서 멈추고 만다. 그냥 2009 시즌자체를 말아먹었다.
별명은 데뷔시즌의 임팩트있는 활약과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생각나게 하는 투구폼으로 '화이트 페드로'라고 불리었지만 [5] 2003시즌 부상으로 풀타임을 소화하지 못한이후에는 투구폼을 완전히 뜯어고쳤다. 그리고 페드로처럼 빈약한 하드웨어때문에 오래못갈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나 투심의 비율이 늘어서 그렇지 패스트볼구속을 꾸준히 유지하며 여전히 A급 투수로써 군림하고 있다. 다만 정점을 찍은 후부터는 조금씩 하락세가 시작되고 있으며 잔부상도 늘어가고 있다는것이 흠이다.
휴스턴에서의 말년은 팀 자체가 몰락하면서 안습의 대명사로 떠올랐지만, 그 커리어 전체로 따지자면 휴스턴 타선의 빵빵한 도움을 받으며 20승을 두 번이나 기록하는 등 운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꾸준히 A급 투수로써 군림해왔지만 한 시즌 리그전체를 지배하는 장악력을 보이지 못했다.[6] 그렇다보니 사이영상등의 수상실적은 명성에 비해 부족한 편.
2010시즌 지난시즌의 부진은 "투수들의 악몽" WBC때문이라는것을 입증하며 준수한 성적을 보이다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트레이드. 로이 할러데이, 콜 해멀스등과 일명 H20로 불리는 막강한 선발진을 구상했으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밀리며 리그챔피언쉽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오프시즌에 필라델피아가 또다른 에이스급 투수 클리프 리를 영입하면서 판타스틱4라는 막강 선발진을 구축, 메이저리그 팬들의 기대를 모았지만 2011년에는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골골대는 사이 트리오에 추가된 루키 밴스 월리에게 판타스틱4의 자리를 내줬고 사실상의 커리어 로우를 찍는 등 부진을 보였다. 디비전시리즈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게도 패했고, 탈락한 필리스는 오스왈트의 2012년 $16M 옵션을 거부했다.
2011년 종료 후 FA 시장에서 오스왈트는 보스턴 레드삭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텍사스 레인저스 등 많은 팀들과 염문설을 뿌렸음에도 실제로는 외면당했다. 결국 풀시즌 계약을 포기하고 과거 로저 클레멘스, 페드로 마르티네즈가 그랬듯이 시즌 중 계약을 추진했고 2012년 5월 말에 텍사스 레인저스와 1년 500만달러의 계약을 맺었다. 마이너에서는 다소 부진했지만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인터리그 홈경기에서 첫 등판해서는 6⅔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며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이후 경기에서는 부진을 거듭, 불펜으로 강등되었고 한번은 등판을 거부하기까지 해서 많이 까였다.
결국 2013년 초에는 실업자 신세가 되었다. 다시 메이저리그로 돌아오기는 힘들어 보인다는 평이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오스왈트 본인은 여지껏 겪어본 적이 없는 최상의 몸상태라면서 필리스행을 기원하고 있지만 그 가능성이 높아보이진 않는다. 결국 2013년 5월이 되어서야 콜로라도 로키스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맺으면서 현역에 복귀하였다. 만일 이번에도 뭔가 보여주지 못하면 은퇴 수순이 될 전망.
드디어 2013년 6월 20일 워싱턴 내셔널스전에서 첫 등판을 하였다. 5이닝동안 삼진을 11개나 잡아냈지만 안타도 9개를 내줘 4실점하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첫끗발이 개끗발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폭풍 4연패하고 마이너리그로 강등, 9월에 다시 콜업되었지만 또 여지없이 쳐맞았다. 결국 시즌 스탯은 0승 6패 ERA 8.63의 안습한 결말. 별다른 반전이 없다면 메이저리그에서 다시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인 수준으로 추락했다.
1.3 은퇴
결국 2014 시즌을 앞두고 팀들이 더 이상 자신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은퇴 선언을 했다. 2014년 2월 중순이 되어서야 은퇴 선언을 한 것을 보면 선수 생활을 연장하기 위해 본인도 나름 노력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더 이상 그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하는 팀이 없는 현실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이후 같은 시기에 은퇴한 랜스 버크먼과 함께 친정이었던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1일 계약을 맺고 4월 6일 홈구장인 미닛 메이드 파크에서 동반 은퇴식을 하기로 했다. 안그래도 팀이 몇년새 안습인데 2000년대 중반의 전성기를 주도한 투타 에이스 선수들이 떠나는걸 보면서 팬들은 울상을 짓는중.
2 피칭 스타일
오스왈트의 주 무기는 90마일 초중반의 패스트볼[7]과 메이저리그 최고로 평가받는 커브[8]를 주무기로 하며 다른 변화구들도 수준급으로 다룰 수 있다. 페드로 마르티네즈와 비슷하게 쓰리쿼터에 가까우며 스타일도 매우 공격적이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투구스타일을 많이 고쳤기에 선수 생활 후반기의 투구는 그다지 공격적이라고 할 순 없다.
3 이모저모
- 05년 NLCS에서 맹활약하고 구단주가 오스왈트에게 불도저를 선물해서 #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후 휴스턴 소속이었던 헌터 펜스는 인터뷰에서 그 불도저 타 봤냐는 질문을 받았다. #
- 한때 은퇴설이 있었다. 근데 이건 마크 벌리도 그렇고 카를로스 잠브라노도 그렇고...
이 나이대 에이스 종특그도 그럴 것이, 오스왈트는 어릴 때 벌목공이었던 아버지의 일을 자주 도울 정도로 효자로 알려져 있다. 오스왈트를 야구의 길로 인도 한 것도 바로 아버지였기 때문. 그래서 비교적 이른 나이에 은퇴하여 가족과 함께하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결국 2014년 2월 11일 은퇴를 선언하면서 가족과 좀더 시간을 보낼것으로 보인다.
- 2019년 명예의 전당 후보로 등장하게 되는데 8년 연속을 포함해 9번의 10승 시즌을 기록하는 등 약물의 도움없이 2000년대 가장 꾸준한 투수 중 한 명으로 활약했으나 누적스탯과 수상기록이 부족한 탓에 입성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MLB) | ||||||||||||||
년도 | 소속팀 | 경기수 | 승 | 패 | ERA | 피안타 | 사사구 | 탈삼진 | 이닝 | WHIP | WAR | 연봉 | ||
2001 | 휴스턴 애스트로스 | 28 | 14 | 3 | 2.73 | 126 | 26 | 144 | 141.2 | 1.05 | 4.7 | |||
2002 | 35 | 19 | 9 | 3.01 | 215 | 66 | 208 | 233.0 | 1.18 | 6.9 | 30만 달러 | |||
2003 | 21 | 10 | 5 | 2.97 | 116 | 29 | 108 | 127.1 | 1.13 | 2.9 | 50만 달러 | |||
2004 | 35 | 20 | 10 | 3.49 | 233 | 67 | 206 | 237.0 | 1.24 | 4.0 | 325만 달러 | |||
2005 | 35 | 20 | 12 | 2.94 | 243 | 51 | 184 | 241.2 | 1.20 | 5.9 | 590만 달러 | |||
2006 | 33 | 15 | 8 | 2.98 | 220 | 42 | 166 | 220.2 | 1.16 | 5.9 | 1100만 달러 | |||
2007 | 33 | 14 | 7 | 3.18 | 221 | 66 | 154 | 212.0 | 1.32 | 6.7 | 1300만 달러 | |||
2008 | 32 | 17 | 10 | 3.54 | 199 | 49 | 165 | 208.2 | 1.17 | 3.8 | 1300만 달러 | |||
2009 | 30 | 8 | 6 | 4.12 | 183 | 46 | 138 | 181.1 | 1.24 | 2.4 | 1400만 달러 | |||
년도 | 소속팀 | 경기수 | 승 | 패 | ERA | 피안타 | 사사구 | 탈삼진 | 이닝 | WHIP | WAR | 연봉 | ||
2010 | 휴스턴 애스트로스 | 20 | 6 | 12 | 3.42 | 109 | 36 | 120 | 129.0 | 1.10 | 2.4 | 1500만 달러 | ||
2010 | 필라델피아 필리스 | 13 | 7 | 1 | 1.74 | 53 | 21 | 73 | 82.2 | 0.89 | 3.2 | |||
통산 | 2010시즌 | 33 | 13 | 13 | 2.76 | 162 | 57 | 193 | 211.2 | 1.02 | 5.6 | 1500만 달러 | ||
년도 | 소속팀 | 경기수 | 승 | 패 | ERA | 피안타 | 사사구 | 탈삼진 | 이닝 | WHIP | WAR | 연봉 | ||
2011 | 필라델피아 필리스 | 23 | 9 | 10 | 3.69 | 153 | 35 | 93 | 139.0 | 1.33 | 2.2 | 1600만 달러 | ||
년도 | 소속팀 | 경기수 | 승 | 패 | ERA | 피안타 | 사사구 | 탈삼진 | 이닝 | WHIP | WAR | 연봉 | ||
2012 | 텍사스 레인저스 | 17 | 4 | 3 | 5.80 | 79 | 11 | 59 | 59.0 | 1.52 | -1 | 500만 달러 | ||
년도 | 소속팀 | 경기수 | 승 | 패 | ERA | 피안타 | 사사구 | 탈삼진 | 이닝 | WHIP | WAR | 연봉 | ||
2013 | 콜로라도 로키스 | 9 | 0 | 6 | 8.63 | 49 | 9 | 34 | 32.1 | 1.79 | - 10 | |||
통산 | '13시즌 | 365 | 163 | 102 | 3.36 | 2199 | 554 | 1852 | 2245.1 | 1.21 | 49.9 | 9695만 달러 |
- ↑ 마이크 매덕스는 동생 그렉에 비해 통산 커리어는 많이 뒤쳐지지만 지도자로서는 최고의 투수코치로 손꼽힌다.
- ↑ 이때 김재박 감독이 오스왈트를 탐낸다는 기사가 뜨기도 했었다
- ↑ 라운드만 낮았지 휴스턴이 애지중지 키우던 유망주다. 라운드가 낮았던 이유는 2006년까지 존재했던 드래프트 & 팔로우를 거쳤던 선수였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고졸 선수에 한해, 4년제가 아닌 JUCO(2년제 대학)로 진학할 경우 드래프트 지명일부터 1년이 지나기 전까지 지명팀이 계약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던 제도로 가능성이 불확실한 고졸 선수를 1년 지켜보고 지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몇몇 팀이 즐겨 쓰던 방식 중 하나였다.
- ↑ 방어율도 2.73, 141.2이닝으로 신인왕수상이 당연시 되는 성적이었지만 같은 해 데뷔한 푸홀스가 MVP급 성적을 찍어버렸다.
하여튼 헌터 펜스도 그렇고 휴스턴은 신인왕 복이 없다. - ↑ 다만 물건너 웹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별명이다
- ↑ 한시즌 오스왈트와 비슷한성적이나 그이상의 성적을 찍은 선수를 뽑자면 리그에서 5 ~ 10명정도는 뽑을 수 있다.
- ↑ 한때 시즌 평속 94마일을 찍을정도였고, 투심 비중을 높인 후에도 포심의 평균 구속은 93마일 대를 유지했다.
- ↑ 일반적인 커브와 자신만의 그립으로 구사하는 커브 이렇게 2가지가 있다. 특히 오스왈트 특유의 커브는 벌목공인 그의 아버지가 몸 담았던 벌목공 야구팀의 동료가 전수한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