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가치설

1 개요

labor theory of value , 勞動價値理論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을 생산한 노동이 만들어내고, 가치의 크기는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이 결정한다는 학설이다. 인간의 주관적 만족도가 상품가치의 기준이 된다는 효용가치설과 대립되며, 객관적인 가치가 존재한다는 객관가치설의 입장 가운데 하나이다.

2 역사

2.1 고전경제학의 노동가치설

사실 의외로 그 내력을 찾자면 굉장히 오래된 개념이다. 그 원류는 심지어 일설에 따르면 토머스 아퀴나스로 이어진다.

역사적으로 토머스 홉스, 윌리엄 페티, 존 로크 등을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노동에 의한 가치의 규정을 논의했다. 하지만 이론적 체계를 갖춘 노동가치설은 애덤 스미스가 처음으로 제시했다.

스미스는 〈국부론(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에서 교환의 매개물인 화폐는 가치라는 관념이 부여된다고 주장하며, 가치를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로 구분했다. 그리고 교환가치의 척도는 노동이 된다고 주장하며, 가격은 이 교환가치를 화폐로 나타낸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스미스는 경제의 발전에 따라 가격은 임금, 이윤, 지대의 세 요소의 합성으로 복잡하게 구성된다는 별개의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데이비드 리카도는 보다 적극적인 노동가치설을 주장했다. 리카도는 시장에서 희소재(稀少財)를 제외한 상품의 가치는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투하한 노동의 양에 따라 결정되며, 노동의 양은 가격 기구로서 자동적으로 조정되고, 기계도구 등의 고정자본에 투하된 간접노동도 직접노동과 함께 상품가치에 포함된다고 분석해서 스미스의 이론을 보완했다. 그러나 그 역시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의 구성비, 불변자본의 내구력, 자본의 회전속도 등의 영향을 설명해내지 못해서 이윤의 근거를 도출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2.2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노동가치설

이와 같은 고전학파의 노동가치설은 카를 마르크스에 의해 비판적으로 계승되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노동가치설과 그에서 이어지는 잉여가치론(剩餘價値論)로 발전되었다.

마르크스는 오로지 인간의 노동만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며 따라서 유일한 이윤의 원천이라고 전제하고,[1] 가치를 노동의 추상화, 객체화, 물질화로 정의했다. 교환과정에서 모든 상품이 갖는 유일한 공통적 속성은 노동의 산물이라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마르크스는 가치의 현상형태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사용가치와 가치로 나뉜다고 보았다. 또한 마르크스는 가치의 크기가 상품생산에 평균적으로 필요한 시간으로 계산되는 '노동의 양'으로 측정된다고 설명하면서 이를 '사회적 필요노동'이라고 규정했다.

마르크스는 이 노동가치설을 토대로 잉여가치론(剩餘價値論)을 구성하고, 이 잉여가치론을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분석장치(分析裝置)로 삼아 자본주의의 경제적 운동법칙을 밝히는 한편, 자본주의의 착취적 본질 및 그 멸망의 필연성을 주장했다. 《자본론》에서 제시된 마르크스의 경제학은 공산주의 경제학의 기반이 되었으며, 그 전반부인 이른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론(生産樣式論)을 이룬다.

스미스나 리카도 같은 경우는 후대의 마르크스 등과는 달리 노동가치설을 그냥 일종의 가정으로 활용하거나 말년에 들어 노동가치설 특유의 비실증성이나 당위지향적 경향을 인지하고 이를 포기하거나 무시했지만 마르크스는 이를 자신의 경제학의 핵심 토대로 활용했다.

2.3 주류경제학의 노동가치설

현대 주류경제학에서는 그 존재 자체가 부정된다. 주류경제학에서 널리 인정받는 한계효용학적 관점에서 보면, 상품가치는 그 상품소비자에게 줄 수 있는 한계효용에 따라 결정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상품가치는 상대적인 것이고 내재적인 노동시간 따위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상품 생산에 들어가는 노동시간은 생산의 요소로 상품의 희귀성에 영향을 미쳐 결국 한계효용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요소일 뿐 가치의 절대적 척도는 아니다. 굳이 따진다면, 위에서 말한 리카도가 제시한 비교우위 모형의 경우 고전파경제학자로부터 주류경제학이 계승하다시피 한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인데, 저 리카도 모형에서 가정 중 하나로서 쓸 때 잠시 언급하는 정도다. 다만 어차피 자본, 노동의 2요소 모형을 상정해도 특화는 나타난다. 굳이 노동가치설처럼 1요소를 상정하는건 그게 더 단순하고 편해서 그러는 것에 불과하다.

3 비판

3.1 산업혁명 이후에도 성립할 수 있는가?

노동가치설은 농업수공업이 지배적 생산방법이었던 17세기 전반기 산업혁명 이전의 농업경제단계의 생산과정에 바탕을 둔 가치학설이라는 비판이다.

농업 및 수공업이 중심이 된 상황에서는 당연히 노동자의 육체적 노동이 생산의 중심요소가 되어 있었다. 노동가치설은 실제로 이 단계의 경제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우리말 가운데 남아 있는 하루 품, 이틀 품, 하루갈이, 이틀갈이 등의 표현이 이 사실을 잘 보여 준다.

더 결정적인 비판은 노동가치설 특유의 비과학성에 대한 비판이었다.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에 따르면 모든 종류의 형태의 노동을 어떻게든 단일한 기준으로 측정할 수 있도록 하는 절대적인 노동가치라는 개념이 존재한다고 하는데 이에 관한 실증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많은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에 대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은 중력이라는 개념이나 각종 자연과학계의 애드혹 논리처럼 노동가치설을 활용해 자기들의 이론을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현실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이론이 논리적으로 엄밀성, 일관성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새뮤얼슨 등의 비판에 따르면 노동가치설부터 시작해서 마르크스의 한계이윤율저하경향의 법칙, 잉여가치설, 착취 따위의 개념이 수학적으로 전혀 일관되지 않는다. 이 경우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비과학적이라는 비판은 물론 경우에 따라 과학이라기보다 그냥 이데올로기, 유사과학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가능해진다.

이로 인해 60~70년대에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소련이 해체되기 이전에 이미 이론적으로 경제학자들에게 폐기 판정을 받다시피 했다. 물론 일군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이 노동가치설 등을 어떻게 수학적으로 일관되게 전개해야 하는지 여태까지 고생을 해오고 있고, 그 시도 중 하나가 제라르 뒤메닐, 덩컨 폴리 등의 신해석이다. 그러나 신해석도 실상은 노동가치에 대해 답을 미리 정해놓고 수학 문제를 푸는 식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전에 가치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정답을 정해두고 가설을 정하는 것과 경제학의 일반적인 논리 전개 방식인 가설을 정하고 현실에서 답을 찾아가는 귀납적으로 검증하는 건 다른 문제다.[2] 신해석에 관해 소개하고 있는 블로그에 따르면, 전형에 관한 문제를 풀어야 하는 신해석의 전제가 되는 공식부터가 전형을 하고서나 알 수 있는 내용을 억지로 전제한 일종의 순환논리에 불과하다.

그리고 위의 비판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나 혹은 마찬가지로 비주류에 속하는 경제학파인 신리카도 학파로부터 제기된 것이고 주류 경제학은 폴 새뮤얼슨 등을 끝으로 관심을 접다시피 했다.

전형문제를 풀지 않는 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위상은 창조론, 환빠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학계의 인적 자원이나 대학에서 받는 지원의 빈약함을 고려하면 답이 없다.
  1. 여기서 M= C+V+S라는 공식이 나온다. C (Constant capital) = 기계,원료 등 불변자본, V (Variable capital) = 가변자본 (노동력), S (Surplus value) = 잉여가치를 말한다.
  2. 다른 사례를 든다면 가령 재판의 규칙이나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전제하고서 관련 법률에 따라 판결을 내리는 것과 미리 학자가 판결할 내용을 정해두고서 그 논리만 끼워 맞추는 것이 다른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