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라 슈스케

野村秋介

1935년 2월 14일 - 1993년 10월 20일

1 개요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우익 민족주의 논객이자 활동가. 도쿄에서 태어나 요코하마에서 자랐다. 젊은 시절, 폭력배로 생활하다 감옥에 수감. 미카미 다카시(三上 卓)[1]의 문하생을 만난 것을 계기로 우익 운동의 길에 뛰어든다. 급진적인 우익 활동가로 고노 이치로 저택 방화사건, 경단련 습격 사건등을 일으켰으며, 1986년에는 필리핀 민족 해방전선에 납치된 사진가 이시카와 나오키를 구출하는데 힘쓰기도 했다.
그리고 1993년 10월 20일. 아사히 신문이 자신이 이끌던 우익단체 '바람의 모임'을 비난한 것에 대해 분노하여 아사히 신문 본사에 난입, 경영진의 사죄를 촉구하며 권총 자살했다.

2 일화

  • 고노 이치로 저택 방화사건으로 감옥에 투옥되었을때, 같이 생활하던 좌익재일 조선인이 성실한 근무 태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자 관리 부장에게 항의. 조선인은 1개월도 지나지 않아 가석방 되었다고 한다. 이에 감사를 표하는 조선인에게 노무라는 "나의 힘은 없다. 그대 자신의 삶의 방식 이랄까 자세가 나를 감동시키고 관리 부장도 감동시켰다" 라고 대답.
  • 일반적으로 신우익으로 분류되는 인물이지만 본인은 이러한 평가에 반대. 스스로를 '신 낭만주의자'라고 칭했다.
  • 아사히 신문사에서 자결했을 때 동행 한 당시 18 세였던 아들에게 "지금까지는 엄마가 너를 지켰다. 이제 네가 엄마를 지켜라"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3 그 외

일본의 명배우인 스기와라 분타와 말년까지 교류하고 있었음이 최근 밝혀졌다.

미시마 유키오와 함께 현대 일본의 반미 우익에게 깊은 존경을 받는 인물로, 사 후 일년 뒤인 1994년부터 매년 그를 기리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1. 일본의 군인. 해군 중위로 5.15 사건, 삼무 사건에 가담했으며, '쇼와 유신의 노래(청년 일본의 노래)'의 작사.작곡가이기도 하다.
  2. 사실 안중근의 경우, 열렬한 아시아주의자로서 대동아 공영의 이상에는 찬동하고 있던 인물이었다. 다만 이토 히로부미가 그러한 이상을 실현시킬 수 없다고 판단하여 그를 암살한 것. 이 점을 고려해볼때, 한국의 민족주의자들이 안중근을 존경하고, 일본의 우익이 그를 비판하는 형태는 다소 아이러니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