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에 훌리건이 있다면 한국에는 강릉 정기전이 있다!!
1 개요
대한민국 강원도 강릉시에 소재한 강릉제일고등학교[1]와 강릉중앙고등학교[2]의 축구 더비. 매년 강릉 단오제 행사때 벌어진다.
2 역사
고연전/연고전처럼 처음에는 상농전/농상전으로 불리었었다. 과거 6, 70년대에는 지금은 폐교된 주문진수산공업고등학교(주문진 수고)[3]도 함께 참여하여 삼파전 양상을 띄곤 했지만, 1976년에 주문진 수고가 빠지면서 현재의 형태로 자리잡았다. 이후 강릉상고의 이름이 강릉제일고로 바뀌면서 일농전/농일전으로 불리다가 강릉농고가 강릉중앙고로 바뀌자 강릉 정기전으로 불리고 있다.
아래는 이 더비매치의 위엄(?)을 보여주는 사례.
"...두 학교의 숙명적인 축구 전쟁은 194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5년 강릉농공고가 축구부를 만들자 6년 뒤 강릉상고 역시 축구팀을 조직하면서부터다. 전국대회 지역예선이나 강원도 지역대회에 참가해 맞붙곤 했지만 처음부터 두 학교의 축구시합이 투석전을 동반하는 살벌한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한다.61년 노암 공설운동장이 설립돼 축구가 강릉의 최고 인기 스포츠로 자리잡으면서 두 학교 간 대결 양상도 차츰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경기 후 승부에 불만을 품은 재학생과 동문들의 투석전도 빈번해졌다. 60년대 강릉농공고를 졸업생 말에 의하면 "그땐 수업 빼먹고 돌 주우러 가기 바빴지. 시합 끝나면 정해진 순서처럼 투석전으로 이어졌으니까"라고 당시를 기억했다.
그래도 강릉 시민 전체가 두 학교 간 축구 시합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자 강릉시 축구협회가 나서 두 학교 축구 시합을 아예 정기전으로 할 것을 주선했다. 두 학교의 합의로 76년 협회 주관하에 단오제 시기에 맞춰 '강릉 농.상 정기전'이 시작됐고, 78년부터는 봄.가을로 대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문제는 갈수록 심해지는 두 학교 간의 앙숙 관계였다.
마침내 82년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대형 사고가 터졌다. 당시 6월 25일 춘계대회가 끝난 뒤 패배한 강릉농공고 학생들이 분풀이로 강릉상고로 진입하여 학교를 엉망으로 만들고 교문을 떼어 강릉 남대천에 버리자 이에 질세라 강릉상고 학생들이 강릉농공고로 쳐들어 간 것. 경찰이 사태 진압에 나섰으나 남대천을 사이에 두고 양측 학생들이 벌인 치열한 싸움은 며칠 동안 강릉시 전체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고 한다. 결국 이 사건의 후유증으로 농.상전은 이후 6년간이나 중단되고 말았다.
89년 재개된 상.농전은 2년 만에 경비 과다 부담을 이유로 다시 중단되는 우여곡절을 겪다 94년 두 학교 동창회 주관으로 부활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3 인기
요즘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하면 아래 링크 클릭. 고교 축구 대회에 기업 스폰서가 들어온다(...). 폭력은 없어졌지만 그 중요도와 열기만 놓고 보면 대한 민국 축구 더비중 이만한 것도 없다. ##
하긴 시작년도를 따지면 1970년대로 1980년대에 출범한 K리그 저리가라할 정도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으니...이러한 동네에서 뒤늦게 2008년이 되어서야 K리그 프로축구팀 강원 FC가 창단한 게 미스터리로 느껴질 정도. 요새 기준으로 한해 수십억을 써야 하는데 열기만으로 그정도 돈이 모이기는 힘들었을거라는
강원 FC 창단이후 제일고와 중앙고를 거르고 강릉문성고가 강원 FC의 유스팀으로 지정될뻔 했으나[4] 어른들의 사정으로 문성고가 빠지고 결국 강릉제일고가 유스로 지정되었다. 그 후 프로축구팀의 관리를 받는 제일고등학교에 비해 강릉중앙고가 밀리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관련글
결국 이때문에 강릉중앙고측에서 형평성 문제와 이에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전력차 문제를 제기하며 정기전 참가를 거부해, 2014년과 2015년에는 정기전이 무산되었다. 클럽 당 유스팀을 하나씩만 두는 축구 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이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는 정기전 자체가 역사속으로 사라질 수도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2016년에 다시 열리기는 했다.
4 부정적인 면
이러한 위엄이 있는 것도, 떠들썩한 동네잔치인 것도 사실이지만 마냥 좋기만한 행사인 건 아니다.
- 강릉 정기전이 재개된 이후에 알아서 자제들 했다지만 그래도 농공고등학교나 상업고등학교나 주먹 좀 쓴다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옛적 농상/상농 시절 경기결과에 따라 재학생끼리의 폭력 사태 혹은 혈기를 주체 못한 졸업생끼리의 폭력 사태는 그냥 부대행사라 할 수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강릉이 태백산맥 너머 영동지역의 중심이다보니 동문들이 강원도 전체에 퍼져있고 이들이 붙는다면 어디든 따라붙는다는 사실. 이때문에 전국대회 예선전을 중립경기로 치렀는데 거기서도 원정팬들이 싸움질을 했었다고(...).
물론 지금은 상고가 제일고로 바뀌면서 인문계가 되면서 그런거 없다물론 인문계에도 아직도 일진놀이하면서 여자나 만나는 놈들 있다
- 강압적인 응원 문화도 문제 중 하나였다. 양 학교 다 자존심이니 어쩌니 하며 응원전이 치열했고 전교생을 동원한 질서정연하며 변화무쌍한 응원은 그야말로 하나의 볼거리라 졸업생들과 시민들은 무척 높은 수준의 응원을 보며 즐겼다지만 그 완성도는 어디서 비롯되었겠는가?[5]
- 응원 자체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경기 일정에 맞춰 개월 단위의 준비기간을 거쳐 응원에만 몰두하며 학업은 뒷전으로 미루고, 뭐 쌍방 다 공부라고는 죽어도 안 하는 학교로 유명했던 건 차치하더라도, 학생들이 그 뜨거운 햇빛 아래 날이면 날마다 몇 시간이고 강제동원이 되었어야 했는가? 응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준비물의 구입부터 시작해서 강제적인 참가의 강요와 도주하는 학생들을 감시하고 제재하며, 훈련하는 과정에서 교사들의 묵인, 방조 아래 학생들 자체적으로 상하적 선후배 관계를 바탕으로 극히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수단을 사용해 부조리한 문화를 주입해 왔다. 양학교에 만연했던 수직적인 선후배 문화는 양 학교 공히 응원의 주축이라 할 수 있으며 다른 학교로 따지면 1진이라 할 수 있는 응원단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교내 폭력, 금품 갈취 등으로 이루어지는 학생들 간의 상하관계는 응원단을 중심으로 성립된다고 봐야 하며 그 원흉이라 할 수 있는 응원단 내부에서는 다른 교내 조직들보다 한층 높은 강도의 폭력이 행해진다. 최근 상업고등학교가 교명을 제일고로 개명하며 인문계로 전환함에 따라 제일고등학교에선 이 응원문화가 한층 약해졌으나 아직도 몇 시간을 할애하여
몸도 약한 인문계학생들을 땡볕에서 괴상한 구호나 외치고 하고 있으며 심지어 중앙고등학교에는 아직도 강압적인 분위기나 일부분 폭행이 형성중이다.[6]
- 교사들의 묵인, 방조에는 후원금의 문제도 의문으로 제기할 수 있다. 거친 남학생들을 교사가 통제하는 것보다 차라리 같은 학생들에게 그 통제를 맡기는 편이 더 편하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지만 [7], 긴 세월 동안 수업은 제쳐 두고 응원 준비에 심혈을 기울였던 것은 이상하다. 특히 이 축구 정기전이 양학교에게 있어 큰 행사이며 타지로 떠나있던 동문들도 이 행사를 위해 한데 모이며 경기의 질뿐 아니라 응원전의 질을 통해 졸업생들 나름대로 학교의 명예 등을 가늠했던 것, 또한 경기가 끝나면 굳게 조직된 각 학교 동문회를 통해 거액의 후원금이 들어오는 것은 과연 이 행사와 학생들의 강제적 동원 이면에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인지에 관해 의문을 자아낸다.
- 또한 이 수직적 문화가 몇십년이고 대물림된 것, 좀 과장되게 말하면 그러한 강압적인 선후배 문화 자체가 두 학교 졸업자들이 많은 수를 차지하는 강릉시 전체에 만연케한 것이 과연 옳은 일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읍면 지역이 아닌 강릉시내에 남학생이 통학 가능한 고등학교는 현재 강릉고, 명륜고, 제일고, 농공고, 경포고, 문성고가 있다. 경포고와 문성고는 비교적 역사가 짧으며 남녀공학이라곤 하지만 여학생 비율이 말도 안 되게 높게 배정하는 것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4개 학교가 남학생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이 중 인문계 명문고인 강릉고는 유학생 비율도 있고 대개의 학생이 타지로 나간다는 것, 또다른 인문계인 명륜고도 강릉에 머무르는 비율이 크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강릉시내의 경제, 상업적 주도권은 농공고와 제일고가 양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주민들은 별로 의식하고 있지 않지만 이 강압적이고 수직적 관계에 바탕한 인간관계는 강릉 시내의 경제, 상업활동에 있어서 일종의 카르텔로 작용하고 있다.
5 백호기와의 공통점
제주특별자치도의 백호기 청소년 축구대회가 이와 매우 흡사하다. 좁은 지역사회와 낙후한 교육문화, 지역 정치인(혹은 토호)들을 대거 배출하는 몇몇 제주시[8]내 남고들의 강한 연고의식(혹은 패거리주의), 그리고 이러한 연고의식을 백호기라는 스포츠 더비를 통해 재생산하는 학교, 교사, 그리고 선후배문화가 그렇다. 몇몇 학교는 사관학교 응원을 본따서 만든 일종의 매스게임을 학교의 자랑으로 여기며 홍보영상에도 활용하지만, 신흥 응원 강호(?)인 남고 출신인 한 위키러는 그 응원문화 자체보다도 그것을 너무나도 절대시하는 학생들의 의식에 심각성을 느꼈다고 했다. 백호기 기간에는 응원문화에 대한 비판을 입 밖에 내놓을 수 없으며[9], 다소간의 선배의 폭력도 교사들이 승인해준다. 군대문화가 파고들었던 구시대의 학교문화의 잔재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이러한 응원연습 외에도 제주시의 남고들의 경우 공식적인 절차로서 신입생들에게 학생회가 '선배교육'이라고 불리우는 군기잡기 행사를 시행하는 병크까지도 저질러 왔다. 신병 군기잡기도 아니고... [10] 응원연습 역시 선배교육의 연장선 혹은 대체물로서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11]- ↑ 구 강릉상고
- ↑ 구 강릉농고
- ↑ 현재는 학교 부지에 강원도립대학이 위치해 있다.
- ↑ 이는 강릉제일고와 강릉중앙고 두쪽중 한쪽을 선택하는 순간 반대쪽에서 강한 반발을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 ↑ 당장 북한의 대표적인 매스게임만 봐도 완성도를 위해서 수십만명이 강제로 동원되어서 군대를 능가하는 통제하에 수개월을 응원에 매달린다.
- ↑ 이러한 강압적인 연습, 연습과정에서의 구타와 욕설등 북한의 아리랑 연습과정과 매우 흡사하다. 기사를 참조하라.
- ↑ 보통 일진이나 폭력적인 선배를 통해 학생들을 통제하는 기법을 활용하는 교사들이 많은데, 매우 비교육적이며 교사의 직무를 포기한 처사이다. 편하긴 하겠지. 내리갈굼
- ↑ 과거에는 자치시였으나 이제는 행정시이다
- ↑ 당연히 교사와 선배의 탄압 때문
- ↑ 근래까지도 확인되었고 실태는 추가바람
- ↑ 강원도나 제주도같은 작은 사회는 외떨어진 곳이라 교육문화가 상당히 낙후된 편이라고 한다. 따라서 육지의 대도시들처럼 학생인권조례라든지 하는 인권신장 노력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편이라고 한다. 체벌은 당연히 존재하고, 육지의 학교에서라면 진보적 언론에서 이슈화했을 법한 사건들이 몇년전까지 엄연히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