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 요시토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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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릭스 블루웨이브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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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 시절.

이름다니 요시토모 (谷佳知)
생년월일1973년 2월 9일
국적일본
출신지오사카
포지션외야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96년 드래프트 2위
소속팀오릭스 블루웨이브-오릭스 버팔로즈 (1997~2006)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7~2013)
오릭스 버팔로즈 (2014~2015)

1 개요

일본프로야구 선수. 카네다 마사히코, 구대성 등과 함께 2000년대 초 암흑기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마지막 자존심과도 같은 선수였다.

일본 여자 유도 경량급의 레전드 다니 료코[1]의 배우자이기도 하다.

2 오릭스 블루웨이브

고교, 대학, 사회인 야구선수 시절에 이미 가능성을 보였었고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도 참여하여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의 은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그후 오릭스 블루웨이브에 지명받아 1997년에 데뷔했다.

데뷔 첫 시즌부터 101경기에 출장하며 준주전급 활약을 펼쳤고 이듬해부턴 괜찮은 컨택능력을 살려 다구치 소, 스즈키 이치로 등과 함께 팀의 대표 외야수로 활약했다. 전성기 시절의 모습은 가히 오른손 스즈키 이치로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5툴 플레이어로도 주목받았지만, 정작 홈런과 도루를 동시에 많이 기록한 해는 없었다.[2] 2002년엔 팀 타선이 전체적으로 폭망한 가운데 3할 타율을 기록하며 그나마 밥값을 했고 2003년엔 아예 퍼시픽리그 최다안타를 기록하는 등 암흑기 오릭스의 버팀목 역할을 충실히 했다. 하지만 팀이 합병되어 오릭스 버팔로즈 로 팀명이 변경된 이후에는 부상의 여파로 부진하였고 결국 2006년 시즌이 끝나고 요미우리로 트레이드 되었다.

3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7년 시즌에 3할 타율과 두자릿수 홈런, 도루를 기록하며 재기에 성공하였다. 이 당시엔 주로 2번 타자로 활약하였는데 팀의 톱타자였던 다카하시 요시노부와 함께 일본에선 보기 드문 장타형 테이블 세터를 이루었다.[3] 2008년에는 시즌 초반 포지션 변경으로 인한 혼란 때문에 부진했지만 대타로 나오면서 타격감을 되찾았고 마침내는 다카하시 요시노부의 부상을 틈타 주전 자리를 되찾았다. 2009년까지 3년 연속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하며 깨소금 활약을 펼쳤지만, 결국 노쇠화와 초노 히사요시 등과의 주전 경쟁을 이기지 못하고 점점 입지가 줄어들었다.

4 오릭스 버팔로스

2014년에 오릭스로 복귀하였고 2년간 선수생활의 마지막 불꽃을 불태우다 은퇴하였다. 통산 1928안타로 선수생활을 마감했는데, 몇년 전까지만 해도 통산 2000안타 달성이 유력하다는 소리를 들었던 선수였기에 급격히 찾아온 노쇠화가 아쉬울 수밖에 없을 듯.

그의 은퇴로 인해 현재 오릭스 버팔로즈 선수들 중에서 오릭스 블루웨이브 유니폼을 입어본 현역 선수는 완전히 사라졌다.[4]
  1. 결혼 전 본명은 다무라 료코. 동명의 만화에서 유래한 야와라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은메달 이후 84연승을 달리던 도중 1996 애틀랜타 올림픽 결승전에서 만 16세였던 북한의 계순희한테 패배하며 올림픽에서는 그대로 콩라인에 머무르는 듯 했으나, 2000 시드니 올림픽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한을 풀었다.
  2. 2002년엔 41도루를 기록하며 도루왕을 기록했지만 홈런이 5개에 불과했고, 21홈런을 기록한 2003년엔 도루수가 9개로 급감하였다.
  3. 둘이 합쳐서 45홈런(타니 10홈런, 다카하시 35홈런)이나 기록했다. 다만 다카하시는 애시당초 준족이 아닌 탓인지 1번타자임에도 도루를 1개밖에 기록하지 못했다.
  4. 블루웨이브 시절을 겪은 현역 야구선수로는 스즈키 이치로, 구대성, 고토 미츠타카 정도만 남아있는데 불혹을 넘어 지천명에 가까워진 구대성은 말할 것도 없고 나머지 두 선수도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나이를 먹었다. 심지어 고토는 2014년까지 오릭스의 프랜차이즈 선수였으나 시즌 종료 후 방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