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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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시즌 빙그레 이글스 유니폼[1]오릭스 블루웨이브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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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유니폼시드니 블루삭스 유니폼

1996년 한국프로야구 투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이름구대성 (具臺晟 / Dae-Sung Koo)
생년월일1969년 8월 2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대전광역시 동구
출신지신흥초 - 충남중 - 대전고 - 한양대
포지션투수
투타좌투좌타[2]
프로입단1993년 빙그레 이글스 1차 지명
소속팀빙그레-한화 이글스 (1993~2000, 2006~2010)
오릭스 블루웨이브 (2001~2004)
뉴욕 메츠 (2005)
시드니 블루삭스 (2010~2015)[3]
1996년 한국프로야구 MVP
김상호(OB 베어스)구대성(한화 이글스)이승엽(삼성 라이온즈)
1999년 한국시리즈 MVP
정민태(현대 유니콘스)구대성(한화 이글스)톰 퀸란(현대 유니콘스)
1996년 한국프로야구 구원왕
선동열(해태 타이거즈)구대성(한화 이글스)이상훈(LG 트윈스)
1996년 한국프로야구 다승왕
이상훈(LG 트윈스)구대성(한화 이글스)
주형광(롯데 자이언츠)
김현욱(쌍방울 레이더스)
1996년 한국프로야구 승률왕
이상훈(LG 트윈스)구대성(한화 이글스)김현욱(쌍방울 레이더스)
1996년 한국프로야구 최우수 평균 자책점
조계현(해태 타이거즈)구대성(한화 이글스)김현욱(쌍방울 레이더스)
2000년 한국프로야구 최우수 평균 자책점
임창용(삼성 라이온즈)구대성(한화 이글스)박석진(롯데 자이언츠)
빙그레/한화 이글스 등번호 15번
유해덕구대성(1993~2000)지승민(2001~2003)
한화 이글스 등번호 15번
이양기(2004~2005)구대성(2006~2010)유창식(2011~ 2014)

1 선수 소개

대성불패(臺晟不敗)

KBO 리그 역대 최고의 좌완 마무리 투수
KBO 리그를 대표하는 레전드급 혹사의 아이콘
한화의 유일한 한국시리즈 MVP
한화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마무리지은 마무리 투수[4]

한화 이글스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선수 중 한 명이자[5] 대성불패, 혹은 일본 킬러라고 불리는 사나이로 투수 4관왕(다승, 승률, 평균자책점, 세이브포인트)[6]을 달성한 3명[7]중 한 명인 대투수.[8]

이승엽과 더불어서 합법적 병역 브로커로 불리는 선수로, 특히 일본과의 경기에서 강했으며 시드니 올림픽의 154구 완투승은 아직도 인구에 회자된다.

현재는 한국에서 은퇴 후 호주 리그에서 다시 한 번 위력적인 마무리로 대활약하고 있으며, 이상훈, 박찬호, 김병현, 임창용, 이대호, 오승환과 함께 한, 미, 일 야구를 모두 경험해 본 선수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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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타자에게 등을 보인채로 와인드업해 공을 던지는 기묘한 폼[9]으로 투구한다. 즉, 디셉션(Deception)이 좋은 선수. 때문에 도루하기 매우 까다로우며[10] 공 릴리즈까지의 시간도 매우 짧아서 구종 파악에도 힘이 들며, 공을 치는 타자 역시 공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매우 짧아서 치기 어려운 폼으로 정평났다. 이 때문에 투수의 투구시의 버릇(이른바 '쿠세') 등을 통해 구질을 파악하는 경향이 강한 일본 야구에 매우 강한 면모를 보인다. 메츠 시절 익힌 서클 체인지업과의 조합도 일품. 이 서클 체인지업은 훗날 류현진에게 전수하여 잘 써먹기도 했다.

보통 나이를 먹을수록 체력 문제 때문에 폼이 간결해지는데, 구대성은 나이를 먹을수록 등을 더 돌렸다. 국내 복귀 후 투구 폼은 아예 2루를 보고 서있는 수준. 훗날 인터뷰에서는 나이를 먹으면서 구속이 저하되자 타자들에게 최대한 공을 숨기고 싶었다고 밝혔다.[11]이 폼 때문에 왼쪽 무릎에 부상을 입어 KBO 은퇴를 하게 됐지만...
이 비비꼬인 폼과 좌완이면서도 흔치 않은 사이드 암에 가까운 쓰리쿼터형 투수이기 때문에 때문에 좌타자들에게는 거의 저승사자 수준으로 좌타자에게는 극강이었다. 합법 병역 브로커 타자 대표 이승엽은 "선수생활 내내 대성이형 공은 제대로 맞춘적도 없다."라고 할 정도.[12]

탈삼진 능력 또한 매우 뛰어난 투수로서 투수의 탈삼진 능력을 측정하는 K/9(9이닝동안 삼진을 몇 개나 잡는지 측정)수치가 통산 9.75이다. 쉽게 말해 통산으로 따졌을때도 이닝 당 한 명 이상의 타자를 기본 삼진으로 잡는다는 얘기. 이 수치는 한국 프로 야구 통산 1위이다.

프로 데뷔 이전부터의 혹사로 커리어 내내 구위가 지속적으로 하락했지만, '투수라는 보직에 가장 적합한 마인드'로 평가받는 그의 배짱과 승부근성은 그를 혹사에도 불구하고 롱런할 수 있게 했다. 일본전 때의 인터뷰 中 "저는 일본 선수들이 제 공을 제대로 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라고 한것이 단적인 예다.[13]

별명은 유명한 '대성불패'가 대표적으로 이후 그에 버금가는 활약을 보인 창용불패 임창용과는 전성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커리어와[14]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불펜에서의 혹사, 한→일→미→한의 프로야구 커리어 등 은근히 공통점이 많다.
단 쿠옹의 한국 복귀 첫 해 성적에 비해 임창용은 첫 해 잘 나가나 했더니 제2의 임작가 혹은 대방화범이 되었다…

팬들 사이에서는 메이져 진출 시 성인 '구'를 영어로 표기하면 'Koo'라서, '쿠'+(한국 복귀 시 적지 않은 나이로)'옹'='쿠옹'이라는 호칭으로 유명하며, 덕분에 최훈의 프로야구 카툰에서는 쿠우 캐릭터로 나온다(…).

2 선수 경력

구대성/선수 경력 항목 참조.

3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승률ERA피안타피홈런4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WHIP
1993빙그레
이글스
621⅓210-0.6672.531801211661.406
1994한화
이글스
341217812
(5위)
-0.4672.608986212842351.215
199547
(4위)
15541418
(5위)
-0.2223.541271883161
(2위)
77611.284
199655
(2위)
13918
(1위)
324
(2위)
-0.857
(1위)
1.88
(1위)
79733183
(3위)
32290.763
199747102⅔8825
(5위)
-0.5003.1665749134
(5위)
38361.032
199859123⅔8724
(3위)
-0.5332.558755712945351.124
199955119⅓8926
(3위)
-0.4713.0995135313844411.198
200048133⅓6721
(5위)
00.4622.77
(1위)
981355136
(5위)
47411.088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승률ERA피안타피홈런4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WHIP
2001오릭스
블루웨이브
51126⅓7910-0.4384.0696147814358571.322
200222146⅓570-0.4172.52122135114445411.155
200319113⅔680-0.4294.99131235811872631.601
200418116⅔6100-0.3754.3210524529965561.277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승률ERA피안타피홈런4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WHIP
2005뉴욕
메츠
332300060.0003.91222162312101.522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승률ERA피안타피홈런4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WHIP
2006한화
이글스
5969⅓3437
(4위)
10.4291.82564237617141.067
20074342⅓1626
(4위)
00.1433.19413123717151.252
20083841⅓23090.4003.48392162917161.282
200971
(2위)
55⅔00180.0003.72545145624231.168
201074⅔01000.0009.647233652.143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승률ERA피안타피홈런4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WHIP
2010
-11
시드니
블루삭스
18272112
(1위)
00.6671.001401130430.815
2011-121416038
(1위)
00.0003.381927191061.563
2012-131818⅔02070.0002.89190814761.339
2013-1421261111
(1위)
00.5002.082011323661.192
2014-151517014
(4위)
20.0002.12191721441.529
KBO 통산
(13시즌)
5691128⅔6771214
(4위)
180.4862.85
(5위)
8558747212214123571.125
NPB 통산
(4시즌)
110503243410-0.4143.88454742395042402171.326
MLB 통산
(1시즌)
332300060.0003.91222162312101.522
ABL 통산
(5시즌)
86104⅔383590.2722.159144610731251.232
역대수상
년도수상내용
1996년골든글러브 투수부분 수상
한국프로야구 시즌 MVP
1999년한국시리즈 MVP

4 구대성이 보유하고 있는 기록들

  • 한국 유일 7년 연속 20세이브.
  • 한국 유일 9년 연속 두자릿수 세이브.
  • 역대 마무리 투수 중 유일한 MVP.[15]
  • 역대 이닝당 삼진 비율 1위.[16]
  • 평균 자책점 1위를 2번 이상 달성한 4명의 선수 중 한 명.[17]
  • 투수 4관왕 : 구원투수라는 이유 + 비인기 팀 + 기자들의 몰상식함 때문에 요즘은 묻혔지만, 어쨌든 투수 4관왕을 달성한 역대 3명의 투수[18] 중 한 명이다.
  • 다승왕-구원왕을 동시에 차지한 3명의 투수 중 한 명.[19][20]
  • 7년 연속 세자릿수 삼진.[21].
  • 호주 프로야구 리그 초대 세이브 왕 및 통산 세이브 1위(2014년 2월 7일 기준 31개).[22]
  • 9회 2사에서 3점차를 뒤집는 만루홈런의 피해자.(1995년 대삼성전, 상대타자 이동수)

5 기타

직접 들어보자(2분부터)
한미일 야구를 모두 경험해본 자의 간단한 평가.[23] 어? 한국이 제일 쉽다고요? 이분 디스 같은데?

젊었을 적엔 그 김병현과 비교될 정도로 독특한 일화가 많고 성격 역시 쿨한 것으로 유명하다.

담대하고 독특한 성격에 대한 대전고 동창의 증언으로는 원래 야구부가 1953년 우승 이후 한번 이후 팀 성적이 좋지 않아 폐부 위기에 처하자 당시 1,000만원(!)을 스카웃 비용으로 지불하면서 구대성을 데리고 왔다고 한다.
그리고 입학하자마자 휘문고와의 첫 친선 경기 때 팀이 스코어 2:1로 앞선 상황 9회에 마무리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서서 1, 2, 3번 타자를 전부 볼넷으로 내보내 만루를 채우고 다음 3명의 타자를 전부 삼진으로 막았다고 한다. 경기가 끝나고 이유를 물어보니 "왜? 재밌잖아"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칰갤에서 한화투수가 볼질로 주자를 모은 뒤 해결하고 내려가면 이를 '쿠옹놀이'라고 한다. 문제는 한화투수들이 주자를 쌓는 것만 똑같고 못막는다는데 있다

실제 인터뷰에서 밝힌 바로는 마운드 위에서 위기 상황엔 "저녁식사를 뭘로 먹을까"를 생각한다고 한다.

그리고 한화 이글스 홈피에서의 '좋아하는 연예인은?'에 대한 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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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왕ㅋ굳ㅋ

사실 전성기 시절에도 핸드폰이 없었다고 한다. 뒤늦게 핸드폰을 가졌지만 그나마도 핸드폰 번호를 절대 남한테 알려 주지 않는다고 한다.참고. 동료들과 지인들끼리 전화를 걸고 하는 것을 싫어해서 그런다고. 가정적인 면도 있는데 가족을 끔찍히 아낀다고 한다.

또한 꽤나 유명한 도박광으로, 큰 돈을 걸진 않지만 각종 돈을 걸고 하는 게임을 즐긴다고 한다. 특히 도박에 승리할 때의 액션이 크기로 유명하다. 메츠때 동료들의 표현에 따르면 미친 거 같았다고. 그래서 프로야구선수 인터넷 도박 파문이 터졌을 때 도박을 즐겨한다는 점 때문에 구대성의 이름이 거론되었으나, 한화 팬들은 컴맹인 쿠옹이 그럴리 없다고 반박했다. 컴맹이어서 이메일도 제대로 못 쓴다고.

박찬호의 증언에 따르면 100원짜리 동전 가지고 오락실에 죽치고 앉아있었다는 일화도...

또한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서 그런지 돈에 대한 감각이 좀 떨어진다는 평이 있지만 밑의 일화들을 보면 남을 위해 잘 쓰고 본인에게 안 쓰는 대인배이기도 하다.

대학진학 당시에 빙그레에서 3,000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계약을 하고자 했으나 한양대에서 신장이 안 좋았던 아버지를 한양대학교에서 무료로 치료해준다는 조건과 친구들도 함께 진학한다는 조건에 승낙했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으나, 사실 무료 치료가 아니라 구대성의 대학 진학을 바라는 아버지 뜻에 따라 친구들과 함께 진학한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당시 강팀이었던 빙그레는 한국시리즈에 가기만 하면 물을 먹었는데, 구대성이 바로 입단했으면 빙그레 정규리그 우승시즌인 1989년이나 1992년 둘중에 하나는 잡았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IMF 구제 금융기간이면서 선수협 창단 시절인 일본진출 초창기에 당시 선수협결성 초대회장이었던 송진우의 "후배들을 위해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라는 이야기에 선뜻 1천만 원의 기탁금을 내놓았다.[24] 아무 연고도 없던 임수혁을 돕기위해 당시(2002년 12월) 일본에 있었으나 "외부에 알리지 말고 무조건 내 말대로 해달라"라며 한화 구단에게 2천만원을 송금해서 임수혁에게 전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여기 저기에 기탁금, 후원금을 알게 모르게 지원하는 것으로 유명. 오릭스로 진출하기 전까지 대전의 13평짜리 아파트에서 살았다. 그의 아내 또한 검소한 모습으로 다닌다고 한다. 왜 좋은 곳으로 이사를 안 가냐는 말에 쿠옹曰 "나는 여기가 편하다"라고.

대전고를 다녔던 어느 사람의 사연에 따르면 일반 교내 식당에서 밥을 배식받았는데 자리가 없어서 선수 전용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는데[25] 구대성이 아무말 없이 반찬을 나눠 주었다고 한다.# 다만 이 에피소드는 운동부가 있는 학교에서 의례있을 법한 전설(?)을 각색한것으로 추정된다. 대전고에 학생식당이 생긴건 2000년. 학생식당이 생긴 이전에도 야구부식당은 일반학생과 동선이 격리된 야구부숙소내에 있어서 식사시간에도 수업시간에도 보기힘든 야구부원은 보기힘들었다. 하물며 구대성 재학시절인 90,80년대에 학생식당에서 운동부원을 만났다는 에피소드는 믿기힘들다.

IMF 시절 연봉 고과 1위인 구대성이 1억 원을 요구했으나 구단에서는 모기업사정을 고려하여 조정을 요구했다. 그것을 쿨하게 응낙하여 동결하기로 했으나 이 이야기가 구단 수뇌부에 올라가면서 수뇌부에서 구단의 상징인 구대성의 연봉을 맞춰주라는 의견이 나왔고 회장님 지시겠지 구단이 1억 원을 제시하자 역으로 모기업의 어려움을 외면할 수 없다고 거절한 사례가 있다.

또한 송진우, 정민철과 함께 엄청난 짬밥으로 한화 이글스의 벤클 치트키(…)라고 불리기도 했다.

자료 1
아예 벤치 클리어링을 할 엄두를 못 낸다
대표적으로 2006년 한국시리즈 당시 소위 꼰대질과 지나친 다혈질, 흥분을 일삼는 걸로 비판받는 진갑용이 구대성의 공에 몸을 맞자 성질을 내며 방망이를 그대로 들고 마운드로 올라가려고 하다가 구대성이 실투였는데 어쩔 거냐고 대응하자 군소리 못하고 얌전히 1루로 걸어나갔고, 진갑용이 1루에 도착한 뒤에도 진갑용을 꾸짖었다.
진갑용의 벤치 클리어링 비교영상
[1]- 신인 박지훈
[2]- 고려대후배 이택근
[3]- 구대성(찍소리도 못하고 혼난다)

자료 2
전설의 김동주 붕어빵 셔틀 짤방, 한화 치트키 사용 장면
2007년 두산과의 플레이오프 때 일어난 벤치 클리어링 때도 한화 선수들이 전전긍긍하자 느긋하게 등장해 김동주를 상대로 손 한 번 펴보이자 그 천하의 김동주가 조용히 벤치로 돌아가던 장면은 꼭 보자.

친형도 프로야구 선수였다. 쌍방울 레이더스의 우완투수 구대진 선수가 구대성의 형. 대전 신흥초등학교 3학년 때 형을 따라 야구부에 들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구대진은 1991년 7경기 12⅔이닝 1패 4자책점 평균자책점 2.84의 성적을 낸 뒤 재계약 불발로 1년만에 방출되어 은퇴했다.

박찬호대한민국 최고의 좌완투수로 구대성을 꼽았다.

2015년 올스타전 종료 후 정민철 해설위원과 올스타전에서의 에피소드 해명을 위한 전화통화 장면이 방송되었으나 오래돼서 기억을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더불어 최근 근황이 함께 알려졌는데 팔 부상으로 잠시 쉬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부상당한 팔이 오른손(...) 쿠옹:아 왼팔은 너무 싱싱해서 탈이고 이러다 50넘어서도 뛰겠다

5이닝짜리 선발 정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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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5일 한화이글스 홈 개막전 시구자로 나섰다. 현재 기준으로 팀 유일의 우승이었던 1999년 유니폼을 입고 시구했다. 경기 시작 3시간전에 시구 소식이 깜짝 공개되어 타지역 한화팬들이 몹시 안타까워했다고... 시구 영상

정민철이 발언한 바에 따르면,[26] 굉장한 상남자라고 한다. 정민철이 '형, 저 타자가 몸쪽 높은 공을 잘 쳐!'하고 정보를 기껏 전달해주면 대답이 '됐다 그랴~'정민철은 안 빡쳤을까 또한 연이어서 정민철이 기인설을 말했는데, 여름철엔 파카를 입고 몸을 풀었으며, 겨울철엔 반팔을 입고 몸을 풀었다고.(...) 애초에 야구를 겨울에, 그것도 차가운 국내에서 하긴 하는거냐[27]
  1. 그리고 이 사진은 후에 안승민합성되기도 했다. 쓸데없이 감동적이다.
  2. 본디 오른손잡이였지만 어렸을 적 사고로 오른팔이 부러져 왼팔로 공을 던지게 되었다.
  3. 2012 아시아 시리즈 기간 한정으로 퍼스 히트로 일시적으로 트레이드
  4. 2016년 현재까지의 기준으로 한화의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의 마지막 투수였다.
  5. 실제로 구대성이 복귀 후 노쇠화되고 은퇴한 이후 한화의 성적은 쭉 하락세다.
  6. 1996년 당시엔 구원승+세이브를 포인트로 합계해 세이브포인트로 구원투수를 평가했다.
  7. 나머지 2명은 선동열윤석민인데, 이 둘은 트리플 크라운+승률 1위였다.
  8. 탈삼진 타이틀이 없는 건 아쉽지만, 1996년에 구원 투수였음에도 불구하고 186탈삼진으로 탈삼진이 3위였다. 통산 이닝 대비 탈삼진 비율 1위의 기록과 더불어 그가 얼마나 굴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9. 노모 히데오의 토네이도 투구법의 영향을 받았다고 은퇴 전 인터뷰에서 밝혔다.
  10. 투구 준비 시 2루에서 1루까지 여유있게 구경 가능한 폼이다.
  11. kbs n sports 'The 레전드' 대성불패 편 참조
  12. 51타수 6안타, .118
  13. 또 다른 일화가 있는데, 메츠 시절 투수코치가 "몸쪽공을 던지다 상대 타자가 맞아 부상으로 실려나갔다. 다시 몸쪽 공을 던질 수 있겠느냐?"라고 묻자 구대성은 그럴 수 있다고 답했다 한다. 상대팀 타자는 무슨 죄냐 투수코치는 "그렇다면 당신은 정말 뛰어난 투수다."라고 했다 한다.
  14. 단 임창용이 그의 커리어에 비해 상운이 없는 것에 비해 구대성은 챙길 땐 챙겼다.
  15. 당시 MVP 경쟁자가 한국 최초로 30-30을 달성한 신인 박재홍이었다. 참고로 선동열은 MVP를 받았을 당시엔 선발 투수였다.
  16. 2위가 국보 투수 선동열이다.
  17. 다른 3명은 선동열, 류현진 그리고 윤석민.
  18. 다른 2명은 선동열, 윤석민. 이 둘은 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승률 4관왕이다.
  19. 당시의 구원왕의 기준은 세이브수가 아닌 구원승+세이브수인 세이브포인트로 구원왕을 가리는 제도였다. 당대 18승 중 절대 다수가 구원승이었기 때문에 중무리를 하면서 구원왕이 가능했던 것.
  20. 구대성 이전에 송진우가 달성한 것이 최초였고, 이후 신윤호가 2001년에 달성한 것이 마지막. 21세기부터는 마무리 개념이 제대로 잡히기도 했고, 2004년부터는 세이브 포인트가 아닌 세이브 숫자로 구원왕을 가리게 되어 현실적으로 거의 달성이 불가능한 기록이 되었다.
  21. 마무리 투수 중엔 유일하다.
  22. 리그자체가 2010년에 출범한 4년차 신생리그다. 따라서 누적 스탯이 적다.
  23. 다만 처음에만 쉬웠고, 타자들이 익숙해지고 난 뒤에는 똑같이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24. 당시 선수협에 기부한 선수는 회장인 송진우, 부회장인 양준혁과 일본에 진출한 구대성, 정민철, 미국에 있던 이상훈 뿐이었다.
  25. 선수 전용 식당은 일반 구내식당에 비해 반찬이 좋았다고 한다.
  26. 발언지는 엠스플에서 자체제작한 엠스플 텔레비전.
  27. 개인훈련으로 가정하면 가능하긴 하다. 그리고 여름에 파카를 입고 몸을 풀면 몸이 좀 빨리 데워진다는 장점이 있긴 하다. 너무 빨라서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