楯の會
1968년에 미시마 유키오가 결성한 민간조직.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방패회".
일본이 좌익 세력에 침략당할 경우를 대비한다(…)는 해괴한 목표로 만들어진 극우 조직이다. 일단은 민병대라고 할 수 있을지도.
정원은 100명으로, 일본군의 체계와 흡사하게 10명을 하나의 반으로 묶어 총 10개 반으로 편성되었다.
1966년 12월에 우익 대학생들과 면담을 한 미시마는 1967년 4월부터 약 5개월에 거쳐 자위대 체험 입대를 완수하면서 좌익의 간접침략에 대항하는 방위대를 구상했고, 1968년 3월 와세다대학 학생 모치마루 히로시의 협력을 받아 와세다대학을 중심으로 20명의 대학생을 모아 육상자위대에 체험 입대했으며 같은 해 7월에 2기생을 맞이해 다시 체험 입대를 했다.
이후 1968년 10월 5일, 미시마는 공식적으로 방패회를 결성하고 모치마루를 초대 학생장에 임명했다. 회원은 주로 대학생 중에서 미시마가 직접 면접을 통해 선발했으며 선발된 인원에게는 제복과 전투복이 지급되었다. 급여는 무급이었다. 덧붙여 방패회의 휘장은 미시마가 직접 디자인했다고 한다.
모든 회원들은 월 1회의 예회에 참석해야 했으며 처음 가입한 후에는 자위대에서 1개월 간 군사훈련을 받고, 이듬해에도 다시 리프레셔 코스를 받아야 했다. 또한 매년 11월 3일에 국립극장 옥상에서 퍼레이드를 하도록 되어 있었다.
운영비는 대부분 미시마 개인의 재산으로 충당했으며, 자민당에서 자금 원조 제안이 있었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1969년 9월, 미시마와의 의견 충돌로 학생장 모치마루가 탈퇴하자 제2대 학생장에 와세다대학 학생 모리타 마사카츠(1945년 7월 25일생)가 취임했다. 같은 해 10월 21일, 국제 반전의 날을 기회로 궐기 행동을 구상했다.
1969년 12월, 회원 88명 중 13명을 선발해 헌법 연구회를 발족했다. 평화헌법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들은 1971년 2월, 원고용지 200매 분량에 달하는 유신법안 순서를 만들었다.
1970년 11월 25일, 방패회는 미시마 사건을 터뜨린다. 미시마는 마사카츠를 비롯한 4명의 회원과 함께 육상자위대 이치가야 주둔지를 급습한 뒤 자위대원들을 불러모아 헌법 개정과 자위대의 궐기를 호소하는 연설을 했으나 호응을 얻지 못하자 모리타와 함께 할복한다. 궐기 계획은 4명 이외의 회원에게는 일절 알려져 있지 않았다.
이후 1971년 2월 28일, 방패회는 미시마 사건의 영향으로 해산을 선언. 회원들은 지급받은 제복을 미시마의 아내 히라오카 요코(平岡瑤子)에게 반납했다.
좀비 아포칼립스 소설 세계대전Z에도 이 집단을 오마쥬한 방패회가 등장한다. 이쪽은 맹인 검객자토이치이 설립한 좀비 퇴치 집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