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마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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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島事件 (みしまじけん)

1970년 11월 25일, 일본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헌법개정과 자위대 궐기를 주장하며 할복한 사건. 다테노카이 사건이라고도 한다.

11월 25일, 미시마 유키오다테노카이 멤버 4명은 이치가야에 있는 자위대 동부방면 총감실을 방문했다. 명목은 우수대원의 포상이었지만...그곳에서 총감인 육장(중장) 마츠다 켄리와 이야기를 나누던 미시마는 자신이 가진 명검 세키노 마고로쿠를 마츠다 켄리에게 자랑하듯이 보여주었다. 마츠다 켄리가 칼집에 손을 댄 순간 다테노카이 멤버들이 그를 포박해 인질로 삼았다.

소란이 일어나자 자위대 간부 8명이 사태를 파악하려고 총감실로 들어가려하자 이들은 일본도로 맞서 쫓아냈다. 간부 중 어떤이는 심각한 장애를 입을정도로 손목에 부상을 입기까지 했다.

이후 미시마는 모여든 자위대 병사들이나 언론인들을 상대로 30분간 연설을 하겠다고 나서서 발코니로 나가 헌법을 개정하고 자위대가 궐기할것을 주장하는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하지만 자위대 간부들은 "야! 이 시발놈아! 점심시간인데 왜 밥도 못 먹게 깽판 부리고 지랄이야!!"라고 불만을 터트리거나 일부는 "저 병신은 왜 비겁하게 총감을 인질로 잡아!?"라는 등 미시마의 연설에 온갖 비난과 야유을 터트렸다. 미시마의 연설 내용자체에 동감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어서 일부에선 "머리 좀 식히쇼!"라고 한다던지 "바카야로!"라는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더군다나 헬리콥터 소리까지 겹쳐서 30분을 연설하겠다던 미시마는 결국 7분만에 연설을 접어야 했다.

이 생쇼를 텔레비전으로 지켜본 일본의 여류작가 노가미 야에코(野上彌生子)는 "너무 비통하다. 미시마 씨에게 마이크를 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 "쇼와사"라는 책을 저술한 미즈키 시게루는 "자위대 병사들이 미시마의 연설을 듣기 싫어한 것은 전후의 개인주의와 향락주의 탓"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솔직히 그런 연설을 진지하게 듣는것 자체가 병크다.[1] 하긴 점심시간이었다는 데 배고픈데 밥도 안 먹고 그딴 연설 듣는 건 어딘가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젠장, 점심도 못 먹고 이게 무슨 꼴이야! 자위대 열 받네!'

이하는 연설 전문[2]
일본어 전문은 [1]에서 볼 수 있다.

"이 상황에서 내가 자위대에 이야기해서 유감스럽다. 그러나 나는 자위대라는 존재를, 자위대를 믿었다. 일본은 경제적 번영에 몰두하여 마침내 정신적 공황에 빠지고, 정치는 모략(謀略)과 기오심(欺傲心)이………. 이것이 일본이다. 자위대만이라도 일본의 정신을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자위대라는 존재에 ………."
《조용히 들어라! 조용히 들어!》

"자위대가 일본의………, 일본의 큰 뿌리(大本)를 고쳐서 나쁠 것은 없다."

"나는 이러한 현실을 느꼈다. 일본 근본이 왜곡되어 있다. 아무도 이 현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일본 근본이 왜곡되어 있음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 그래서 자위대가 일본 왜곡을 바로 고쳐야 한다. 그래서………."

《조용히 들어라! 조용히 들어!》

"그 때문에 나는 자위대를 응원했다."

《조용히 하라고 했는데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겠나? 조용히 해라!》

"그래서 말인데, 지난해 10월 21일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지난해 10월 21일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지난해 10월 21일, 신주쿠에서 반전데모가 일어났는데 경찰력에게 완전히 제압당했다. 그 일을 목격한 날에 나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이런다고 헌법이 개정되지 않을 거라고 느꼈다."

"왜냐 하면 소위 자민당이라는 것이, 자민당이라는 것이 경찰 권력을 가지고 어떤 데모든 진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치안출동은 필요 없어졌다. 치안출동이 필요 없어졌단 말이다. 치안출동이 필요 없어졌다는 것은 곧 헌법개정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논리가 이해가 되는가?………."

"제군들은 이미 지난 해 10월 21일 이후로 헌법을 지키는 군대가 되었다. 자위대가 지난 20년간 피와 땀으로 기다린 헌법개정 기회는 사라졌다. 헌법개정은 이미 정치 프로그램에서 제외되었다. 마침내 사리지고 말았다. 왜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는가?"

"나는 지난해 10월 21일부터 1년 동안 자위대가 화내기를 기다렸다. 이제는 더 이상 헌법개정 기회는 없다! 자위대가 국군이 되는 날은 사라졌다! 건군 본의는 없다! 그것이 가장 개탄스럽다. 자위대에게 건군 본의는 무엇인가? 일본을 지키는 일. 일본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인가? 일본을 지킨다는 것은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와 문화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잘 들어라! 잘 들어! 조용히! 조용히 해! 얘기를 들어라! 여기 남자 한 놈이 목숨을 걸고 제군들에게 외치고 있다. 알겠는가? 알겠는가?》

"지금 일본인이 일어나지 않으면, 자위대가 일어나지 않으면 헌법개정은 없다. 제군들은 영원히 미국 군대가 되고 만다."

"시빌 컨트롤(문민통제, civil control)……… 시빌 컨트롤에 중독되었다. 시빌 컨트롤이란 새 헌법 아래에서 억압받는 것만이 다는 아니다."

"……… 그래서 나는 4년을 기다렸다. 4년을 기다렸단 말이다. 자위대가 일어나는 날을……… 그랬던 자위대의……… 최후의 30분, 최후의 30분을……… 기다리겠다."

"제군들은 무사(武士)다. 제군들은 무사(武士)다. 무사(武士)가 자기를 부정하는 헌법을 왜 지키는가? 왜 자기를 부정하는 헌법을 위해 일하고 자기를 부정하는 헌법에 순종하는가? 헌법이 존재하는 한, 제군들은 영원히 구제받지 못한다."

"지금 헌법은 끝없는 정치적 모략을 통해 제군들이 합헌(合憲)인 것처럼 위장했으나, 자위대는 위헌(違憲)이다. 자위대는 위헌(違憲)이다. 너희들도 위헌(違憲)이다. 마침내 자위대가 헌법을 지키는 군대가 되었다는 사실을 왜 인식하지 못 하는가! 나는 제군들이 그것을 부정하는 날을 오랫동안 기다렸다. 제군들은 사소한 것에 눈이 어두워 진정 일본을 위해 들고일어날 때를 놓쳐버렸다."

【그럼 왜 우리 총감(總監)님에게 부상을 입힌건가?】

"저항했기 때문이다. 제군들이 일본을 허수아비로 만든 헌법에 순종했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제군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나와 함께 들고 일어날 놈은 없는가?"

"...한 놈도 없군. 좋다! 무(武)는 칼이다. 자신의 사명이지………."

【그래도 무사인가! 그래도 무사인가!】

"이제 제군들이 헌법개정을 위해 들고 일어나지 않겠다는 것을 충분히 알겠다. 이것으로 자위대에게 품은 내 꿈은 사라졌다. 여기서 천황폐하만세를 부르겠다."

        "천황 폐하 만세! 천황 폐하 만세! 천황 폐하 만세!"

어째 초중반부 내용에 조용히 하란 말이 반이나 들어간다..?

계획한 대로 할복으로 자살을 결심한 미시마는 웃통을 벗고 자신의 배에 단도를 찔러넣었다. 원래는 할복을 하고 배에서 흘러나온 자신의 유서를 쓸 작정이었는데, 고통이 너무 심해서 글씨를 쓰는 것은 도저히 무리였다고 한다(…).

그리고 목을 치기로 되어있던 모리타 마사카쓰가 자신도 할복해야 되어서 떨었던지, 미시마의 목을 내리치는데 2번이나 실패했다.[3] 결국 검도 유단자였던 코우가 히로야스가 미시마의 목을 내리쳤다. 후에 경시청 검시결과에 따르면 미시마는 칼로 배를 가른 뒤 내장을 꺼냈고 이 고통을 이기려고 혀를 깨물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일본 웹에서 단순한 검색어를 통해 볼 수 있는 미시마 유키오의 시신이나 자살 현장 사진을 보면 흑백사진임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처참함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절단된 유키오의 머리는 비교적 편안한 표정이지만... 할복현장은 완전히 피바다에다 깔끔하게 썰리지 못한 시신이 나뒹굴고 있는 지옥도 그 자체였다. 흑백사진이지만 정말이지 처참하기 이를 때 없다. 두 사람이 할복하면서 얼마나 고통에 몸부림쳤는지 난장판이다.

잘린 미시마 유키오의 머리. 피가 나오는 사진은 아니나 섬뜩할 수 있으니 주의 바람.
자살현장 사진. 목 잘린 시체가 단면까지 모자이크도 되지 않은 채 나오고 (미시마와 모리타의) 잘린 목 2개가 나뒹구는 것도 그대로 나오니 심신미약자는 절대 보지 말것!!

이 사건 이후, 일본에서는 미시마가 왜 그런 할복자살을 했는지를 두고 갖가지 분석이 제기되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것이야 미시마가 외친대로 일본의 평화헌법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다지만, 미시마 자신도 늙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 그랬다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로 미시마는 언젠가 "내가 나카이 카후[4]처럼 늙는다는것은 상상하지도 못하겠다."라고 말한적이 있다고 한다. 또는 영웅주의에 심취해서 그랬다는 분석도 있다. 어떤 글에서 미시마는 "사이고 다카모리는 50살에 영웅으로 죽었다. 지금의 나이라면 나도 영웅의 최후 연령에 도달한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라고 적었다고 한다. (참고로 사망 당시 그는 45세였다.)

하긴, 만약 미시마 유키오가 자살하지 않았어도 살아있을 거란 장담은 못하기도 하였다. 애초에 자위대원에게 칼로 상해를 입힌 점에서 중형은 확정이었다. 만약에 사형이 선고 되지 않는다고 해도 중형을 피할 길이 없었고 그렇게 되면 외부활동을 전혀 못하게 되므로 사실상 죽은 것과 마찬가지 상태가 되어버린다.

사건 이후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총감실 현장을 방문했다. 미시마와 절친했던 이시하라 신타로도 현장을 찾긴 했지만 총감실까지 들어가지는 않았다고 한다.

미시마가 자살할 때 쓴 세키노 마고로쿠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자로 한때 미시마와 검도로 친분을 쌓았던 초재생능력자 후나사카 히로시에게서 받은 것으로, 미시마 사후 손에 돌아오게 되었는데 이때 후나사카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런 한심한 작자 같으니라고, 차라리 이 칼로 야쿠자나 베지 그래? 뭣하러 자살을 하냐?"

그리고는 후나사카는 그 칼에 "자살밖에 못하는 칼"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이후 후나사카 히로시는 <세키노 마고로쿠-미시마 유키오, 그 죽음의 비밀>(関ノ孫六―三島由紀夫、その死の秘密)이라는 책을 저술하여 미시마 유키오가 어떻게 그러한 인간이 되었는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덧붙여, 김지하 시인은 '아주까리 신풍'이라는 시를 통해 미시마 유키오의 자살을 풍자하기도 하였다.

아주까리 神風(신풍) - 三島由紀夫에게

김지하

별것 아니여
조선놈 피 먹고 피는 국화꽃이여
빼앗아 간 쇠그릇 녹여버린 일본도란 말이여
뭐가 대단해 너 몰랐더냐
비장처절하고 아암 처절하고말고 처절비장하고
처절한 神風(신풍)도 별것 아니여
조선놈 아주까리 미친 듯이 퍼먹고 미쳐버린
바람이지, 미쳐버린
네 죽음은 식민지
주리고 병들어 묶인 채 외치며 불타는 식민지의
죽음들 위에 내리는 비여
역사의 죽음 부르는
군가여 별것 아니여
벌거벗은 女軍(여군)이 벌거벗은 갈보들 틈에 우뚝 서
제멋대로 불러대는 미친 미친 군가여
  1. 참고로 미즈키 시게루는 항목 보면 알겠지만 태평양 전쟁터에 끌려가 왼팔을 잃으신 분이고 거기다 위안부 증언만화까지 그린 사람이다.
  2. <>속의 글은 그가 떠드는 군중들에게 호통치는 대목,[]는 자위대원들의 항의.
  3. 혹은 칼이 부러져서 그랬다는 이야기도 있다지만...더군다나 피를 봤는지라 극도의 공포와 흥분상태였고, 그러니 칼을 제대로 휘두를 리가 있나...
  4. 일본의 대표적인 관능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