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1853년 이래 러시아의 남하에 반대하며 1907년까지 50년 이상 대치했는데, 러시아의 광대한 국토와, 영국의 드넓은 식민제국 구도 때문에 양국은 유라시아 대륙전체에서 대립했다. 이걸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이라고 부르는데, 크림 전쟁에서 패배한 러시아가 동쪽으로 방향을 돌려 중앙아시아와 페르시아를 거쳐 인도양으로 나오려고 하자, 영국은 이를 전력을 다해서 저지하려고 했다.
1877년, 영국령 인도 제국을 선포한 영국은 러시아가 중앙아시아로 나올 낌새를 보이자 선수를 치기로 하고, 1878년 아프가니스탄에 침공해 전쟁을 일으켰다. 이 전쟁에서 영국은 아프간 정복에는 실패했는데[1], 러시아는 히바 칸국을 1884년 병합하고 아프간 국경지대를 공격하는 등 영국과 위기가 고조되었다.[2]
거문도 점령으로 러시아는 극동의 방위정책을 육군 중심주의로 전환하고, 중앙아시아로의 진출이 좌절된 상황에서 만주 전역을 점령하고 송화강 이북 하얼빈, 전 북만주를 뺏으려 하였으며 더 나아가 만주, 조선을 정복해 극동으로 남하하려고 했지만 이것도 러일전쟁으로 실패하게 되자, 러시아는 이전과 달리 꽤 약세에 처한 입장에서 영국과 협상을 맺고 중앙아시아에서의 영역권을 분할했다. 이것이 1907년의 영-러 협상으로 이를 계기로 50년 이상 지속된 영국-러시아의 그레이트 게임은 종식되었다.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시키는 데 성공한 영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인도 제국에 완전히 병탄할 야욕을 품고 아프가니스탄을 찝적거렸으나, 이후 20세기 후반 소련을, 21세기 초반 미국을 물먹이게 될 '제국의 무덤' 아프간 전설의 서막을 알리는 결과만을 남긴 채 아프간 지배에는 실패하고 보호국으로 삼는 데 만족해야 했다. 이리하여 영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영국령 인도 제국의 국경을 명확히 구분할 필요성을 느끼고, 1914년 '듀랜드 라인'협정을 아프가니스탄의 왕과 맺게되어 현대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의 국경선이 되었다.
오늘날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국경은 1893년에 영국이 멋대로 설정한 이 듀랜드 라인(Durand Line)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인데, 골 때리는 건 이 경계선이라는 게 제국주의 열강이 그어놓은 경계선들이 거의 다 그렇듯이, 듀랜드 라인도 이 일대에 거주하던 파슈툰 부족의 동의 없이 멋대로 국경선을 그은 거라 아프간의 3분의 1 가량의 영토랑 절반 이상의 파슈툰족 인구가 파키스탄에 편입되어버렸다. 애초부터 아프간의 주류민족인 파슈툰(Pashtun)을 분할시켜 그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데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현재 파키스탄의 파슈툰족이 아프간의 파슈툰족보다 더 많다.[3] 즉 서북변경지방의 주민들인 파슈툰인들은 불과 백 년 전까지만 해도 파슈툰인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는데 졸지에 외세에 의해 파키스탄 사람이 되버렸으니 펀자브인들로 이루어진 파키스탄 중앙정부의 압제를 받아들일 리가 없는 것이다. 결국 북서변경지역에서는 파슈툰족이 맹렬히 파슈투니스탄 분리주의를 일으키고 있다. 더 나아가 주지하다시피 탈레반이 이슬람 원리주의 성향의 파슈툰족이 주류인 테러단체다.
결국 21세기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수행에 있어 무수한 트러블을 야기시키고 있다. 탈레반, 알카에다 등 각종 무장조직, 테러단체들이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북부의 파슈툰족 밀집지역을 자유롭게 오가면서 북서 파슈툰족을 위협하는가 하면 그들을 기반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