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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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대한민국의 여권법에 의한 여행금지국가(특별여행경보 제외)

리비아

소말리아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예멘

이라크

필리핀[*참조 잠보앙가, 술루 군도, 바실란, 타위타위 군도 한정.]
여권법 외의 별도의 대한민국 법률로 출입이 금지된 지역

북한
(국가보안법)

남극
(남극활동법)
남아시아의 국가 및 지역

아프가니스탄

네팔

부탄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

차고스 제도
(영국)

몰디브

스리랑카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د افغانستان اسلامي جمهوریت (파슈토어)
جمهوری اسلامی افغانستان (다리어)
국기205px-Flag_of_Afghanistan.svg.png
국장200px-Emblem_of_Afghanistan.svg.png
표어أشهد أن لا إله إلاَّ الله و أشهد أن محمد رسول الله
(알라 외에는 신이 없으며 무함마드는 그의 사도다)
면적(㎢)652,230
인구32,564,342명 (2015년)
수도카불 (کابل, Kabul)
시차UTC+4.5
화폐아프가니 (AFN)
1인당 GDP명목 615$(2015)
정치체제단일 국가, 대통령제 이슬람 공화국
대통령아슈라프 가니
임기2014년 9월 29일 ~ 2019년 9월 29일 (예정)
최고행정관압둘라 압둘라
공용어다리어(50%), 파슈토어(35%), 튀르크어(11%),
기타 30여 개의 방언
국교이슬람
대한수교현황남북한 동시 수교(남한 1973~1978/2002, 북한 1978)

다리 페르시아어 : جمهوری اسلامی افغانستان (좀후리예 에슬러미예 아프거니스턴)
파슈토어 : د افغانستان اسلامي جمهوریت (다 아프가니스탄 이슬라미 좀호리야트)
타지크어 : Ҷумҳурии Исломии Афғонистон (줌후리이 이슬로미이 아프고니스톤)
우즈베크어 : Afgʻoniston Islom Respublikasi (아프거니스턴 이슬럼 레스푸블리카스)
투르크멘어 : Owganystan Yslam Respublikasy (오브가느스탄 으슬람 레스푸블리카스)


1 개요

중앙아시아중동, 남아시아 사이에 위치한 내륙국. 주요 도시는 수도카불칸다하르, 헤랏, 마자르샤리프 등이 있다. 2015년 1월 초 기준 카불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의 치안이 극도록 악화되었다. 애초에 이 지역에서 치안을 유지하는 곳이 있다는 것 자체를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서 아프가니스탄의 홈 경기는 다른 나라(보통 이란이나 타지키스탄)에서 한다(...) 역사도 그야말로 근성과 투쟁의 역사.

이 문서에 아프간이나 아프칸, 아프카니스탄 등으로도 검색해도 모두 여기로 들어올 수 있고 흔히 아프가니스탄을 줄여서 '아프간'이라고도 부르지만, '아프칸', '아프카니스탄'은 모두 잘못된 표현들이므로 '아프간', 또는 그냥 원래 이름인 '아프가니스탄'으로 부르는 게 맞는 표현이다.

여담으로 국명이 'Af...'로 시작하므로 올림픽에서 입장할 때 개최국이 아닌 이상 라틴 알파벳을 쓰는 나라들에서는 그리스 다음으로 들어올 확률이 가장 높다. 동계올림픽에는 참가할 일이 없기에 아직까진 한국에 올 일이 없다. 서울 올림픽에서는 가나다 순이었기에 91번째로 입장했다. 참가국 명단 참조. 그리고 외교부 지정 여행금지국가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나머지 나라들은 소말리아, 예멘, 시리아, 이라크, 리비아.

이러한 사태는 외국도 비슷하며 참고로 일본의 경우 북한을 '여행 연기를 추천함' 단계에 두는 반면 아프가니스탄은 '대피 권고' 단계다.

외교부 및 NSC 등 정부합동부처 심의에서 아프가니스탄을 여행금지국으로 지정했기 때문에, 예외적 여권사용 허가 승인을 받지 않은 입국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주재국 화폐인 아프가니(AFN)을 사용하지만, 달러 역시 널리 통용되는 편이다.

이슬람 근본주의 독재 정권 이전에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도 자유롭게 살았다. 극단적 & 비유적으로 표현해서, 꽤 미국스러워 보이는[3] 시절이 있었다는 의미. 아니, 동시대 대한민국보다도 훨씬 세련되어 보인다.

2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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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감 없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있는 탱크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인간과 자연의 조화

힌두쿠시 산맥에 인접해있으며 대부분의 지역은 매우 높은 고산 지대[4]이며 메마른 지역이다. 최고봉 노샤크 산은 무려 7,492m라는 높이를 자랑하며, 그 외에는 북부 아무다리야강 유역을 제외하고는 높은 산으로 덮여있다. 서남부 쪽에 넓은 평지가 하나더 있긴 하지만 그곳은 완전히 사막이다. 참고. 기후는 주로 온대기후로 건조하고 연교차와 일교차가 크며,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탁한 공기로 인해 호흡기 질환 등이 자주 유행하는 편이다. 해발 1,791m의 고지에 위치한 카불의 경우 1월 평균기온 -2.3℃, 7월 평균기온 23.7℃에 연강수량은 312mm[5]이다. 겨울에는 서울보다 약간 따뜻한 수준으로,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가끔 영하 20도도 기록된다고 한다. 이는 여름도 마찬가지로 평균기온은 서울보다 약간 시원하나 40도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산이 많고 나라 자체가 넓은지라 기온 편차도 꽤 큰데, 중부 산지의 차그차란(چغچران)의 경우 1월 평균기온이 -9.4℃로 모스크바(-6.5℃)보다도 더 춥고, 심지어 영하 46도가 기록된 적도 있다. 반면 서부 사막 지대에 있는 자란지(زرنج)의 경우 7월 평균기온은 35.0℃로 미국의 피닉스(34.9℃)와 비슷한 수준이며, 가장 높게는 영상 51℃까지 기록된 바 있다.

그리고 무슨 연유에선지 저격의 명소(?). 베트남 전쟁카를로스 헤스콕이 세운 세계 초장거리 저격 기록은 한동안의 긴 공백 끝에 전부 이 나라에서 깨지고 있다. McMillan Tac-50이 이 나라에서 한 전투에 두번이나 저격 기록을 갱신하고, 그 뒤론 L115A3가, 그 뒤로는 또 Barrett M82이 깨는 등, 진짜 저격의 명소인가 싶다.

3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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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역사만 보자면 가히 중앙아시아베트남, 아니 베트남동남아아프가니스탄일 정도.
거의 모든 정치체제를 근 30년간 경험한 파란만장한 국가[6]

비단길이 지나가는 경로였던 터라 여러 민족들이 오고 가는 곳이었다. 그 말은 이 지역의 주민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정복자의 군대들과 계속해서 전쟁을 벌이든가, 아니면 자기들이 정복을 하든가'라는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고대에는 그리스계 왕조와 페르시아계 왕조의 지배를 번갈아 받았다. 이슬람이 도래한 후 이슬람 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나, 칭기즈 칸의 침공으로 몽골 제국, 일 칸국의 지배를 받는다. 일 칸국이 무너진 후에는 티무르 제국, 무굴 제국의 지배를 받는 등 정말 다양하게 지배당했다.

18세기 자체적인 왕조인 두라니 왕조가 세워지나 내분으로 멸망하고 시대는 제국주의 시대로 접어든다. 영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식민지로 삼으려 하였으나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끝에 포기하고 퇴각하였다.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아프가니스탄은 점진적인 개혁을 통해 안정기를 맞았다.









아프가니스탄 왕국 시대의 사진들. 과거 팔레비 왕조 시절의 이란 사진과도 비슷한 모습이다. 어라? 동시대 우리나라보다 잘 살았던 거 같은데?[7] 이 사진의 시기들과 현재를 비교하면 아프가니스탄이 얼마나 추락했는지를 알수 있다.


탈레반이 집권하고 난 뒤의 아프가니스탄. 위의 사진과 비교하면 정말 충격적이다. 참고로 바로 위의 사진과 같은 장소다.

위 비교 사진은 서방 권력의 영향 아래 있는 아프가니스탄이 현재 보수적인 집단 지배 하의 아프가니스탄보다 얼마나 풍요로웠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서아시아=갑갑한 사막 복장, 구식 건물이라는 고정관념을 확실하게 깨는 사진이라 임팩트가 워낙 크기 때문. 하지만 실제 아프가니스탄에 거주했던 사람 말에 따르면 당시(1950~60년대)에도 마찬가지로 전통 복식 착용이 대세였다고 한다. 레딧에 올라온 코멘트를 참조하자.[#] 위의 사진은 아프가니스탄의 개방 구역에서 촬영된 사진으로 서방에 대한 프로파간다 목적으로 이 구역만 특별히 전통을 따르지 않는 복식과 생활양식이 어느정도 보장되었던 것이라고도 한다. 한편으로는 어디서나 이런 옷과 문물들이 유행이기는 했으나, 청년층에서만 유행했다는 의견도 있다. 사진의 상징적인 의미 때문에 다소 남용되고 있는 사진이라 잘 가려서 보아야 할 듯 싶다. 사실 당시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아직 인구의 90% 정도가 농촌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총리였던 무함마드 다우드가 무혈 쿠데타를 일으켜 아프가니스탄 공화국을 세웠다. 다우드는 소련과 우호적인 관계를 추진하였으나 정작 자국 내 공산주의자들은 탄압했고, 결국 공산주의 정당인 인민민주당이 쿠데타를 일으켜 인민민주당 공산정권이 들어섰다. 그러나 공산정권은 지나치게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하여 보수적인 이슬람교 지도자들의 반발을 샀다.

이로 인해 아프가니스탄 공산정권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인접한 소련 내 공화국들의 정치적 혼란을 우려한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에 개입,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일으키나 결국 퇴각하고 말았다. 소련이 퇴각한 후 이슬람 세력인 무자헤딘은 공산정권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무자헤딘은 혼란상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내분으로 찢겨지고 말았고 그 가운데 악명 높은 이슬람 극단주의 집단 탈레반이 등장하였다. 탈레반은 수도 카불에 입성하였고, 내전의 혼란에 지친 주민들 역시 초기에는 탈레반을 지지하였다.

미국은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통해 빈 라덴 제거라는 목적은 이뤘으나 여전히 전투를 치르고 있다. 워낙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으로 모든 게 다 막장인 곳이며 현지인들과 점령군이 서로를 불신하다 보니 세계의 내로라 하는 특수부대들도 피를 상당히 보는 중이고(특히 네이비 씰) 전쟁이 언제 끝난다는 가망도 없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병력 지원에 대해 난색을 표하고 있다. 현지 정부의 치안 병력, 즉 , 경찰, 민병대도 수틀리면 언제 연합군의 뒤통수를 칠지 모르는 상황. 아프간 침공 이후 하미드 카르자이(حامد کرزی)의 새 과도정부가 들어서 있지만 여전히 상태는 좋지 않다.

3.1 제국의 무덤

한마디로 영국소련미국도 모두 GG 실패했다.

큰 나라가 국력만 믿고 여기를 쳤다가 좋은 꼴 본 일이 거의 없다. 위에 나온 몽골, 그리고 무굴 제국 정도가 대부분의 영토를 직접 지배했고, 오래 지배한 외세 왕조는 무굴 제국 뿐이다. 이는 아프간의 지리적 환경과도 연관이 깊은데 나라 전체가 거대한 산지인 데다 그 험준함도 무시무시한 수준이라 점령군이 적은 비용으로 장기적인 주둔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지형이기 때문이다. 이는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현재까지도 나오는 문제점으로 현대에서 과학 기술을 믿고 쳐들어 온 미국과 소련도 결국 산세의 험난함으로 버티며 기습을 하는 게릴라들의 저항에 질려버려 떠나버렸다.

1차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4500명의 영-인도군 병력은 12000명의 민간인과 함께 죽음의 골짜기를 통과하여 후퇴하려다가 포로로 잡히거나 자살하거나 전멸, 의사 1명만 간신히 살아왔다. 나중에 다시 쳐들어간 영국은 이기긴 했지만 절대로 직접 가서 주둔하고 지배하지 않고 전투만 이긴 뒤 물러나서 허수아비 왕조를 조종하는 것으로 만족했다.[8]

그러나 이와 달리 직접 지배하려 든 소련은 오랜 개입 끝에 막대한 피해를 보고 여러 내부 문제까지 겹치며 아예 체제가 붕괴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군(탈레반)과의 전면전은 역시 손쉽게 승리했으나 몽골과는 달리 이곳을 점령하려 들었으므로 피해가 막심해지고 있다. 사실 미국의 피해는 아프가니스탄에게 그동안 호되게 당해오던 다른 제국들에 비하면 엄살에 가까우나 걸프 전쟁 때 무적 전설을 보여주면서 걸프전보다 피해가 많이 나는 전쟁은 졸전이라는 인식이 국민들에게 박히는 역효과가 나버린 바람에 애먹고 있다. 또한 잡으려던 알 카에다도 못 잡고 탈레반은 다시 강성해지는 등 지금도 엿먹고 있다. 그나마 미국은 2011년 5월 2일, 10년만에 오사마 빈 라덴을 죽이는데 성공했으나 정작 파키스탄에서 해냈을 뿐이며 여전히 탈레반 세력은 건재하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영국)은 2014년 12월부터 아프가니스탄에서 모든 전투병력을 철수시키고 있다. 결국 이라크처럼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미국은 공연히 10년 이상 막대한 전비를 퍼부어 국고에 구멍나게 만들고 무고한 민간인 피해를 엄청나게 일으켰을 뿐 탈레반 제거나 민주주의의 정착 같은 목표의 달성에는 완전히 실패했다. 그나마 빈 라덴을 잡아 체면치레에는 성공했지만 그마저도 아프가니스탄이 아닌 파키스탄에서 해냈기에 이러자면 뭐하러 여기로 와 전쟁하느냐 볼멘 소리가 많았다. 결국 미군은 완전철수와 같이 전쟁 종결을 선포하면서 러시아로부터 늬들도 결국 똑같았다는 비웃음을 받으며 물러나야 했다. 베트남 전쟁 때처럼 미국 극우들이 반발했으나 그들도 결사적으로 항전을 외치진 못했다.

비슷한 나라로 베트남이 꼽힌다. 강대국인 미국, 프랑스, 중국에게 치욕적인 패전을 안겨주었다. 또한 베트남에서는 중국(3차 베트남 전쟁 말고... 1000년 가까이 중국이 베트남을 지배한 옛 역사를 말한 것)이 그나마 체면치레 했듯이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영국이 그나마 체면치레 했다는 점을 보면 정말 비슷하다. 반면 소련, 미국, 프랑스는 체면치레도 못하고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에서 굴욕적으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4 정치

부패인식지수에서는 소말리아북한과 함께 8점(100점 만점)을 기록, 꼴찌를 차지했지만 2014년 부패인식지수 결과 아프가니스탄 점수가 12점으로 향상되어 꼴찌를 탈출하였다.

오랜 내전전쟁으로 수도 없이 피를 흘렸고 장기간에 걸친 전쟁과 외세 침략으로 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이란이나 파키스탄 등 이웃 인접국가들을 떠도는 난민들이 속출하고 있으며 탈레반과 외국군, 여러 지역 무장 군벌간 전투와 유혈 충돌은 끓이질 않고 있고 탈레반 정권을 몰아내고 들어선 현 카르자이 정부는 부정부패로 찌들어 있는 등 나라 꼴은 그야말로 말이 아니다. 이런 현재의 모습에 많은 아프간인들이 희망을 잃고 심지어 비교적 평화로웠던 옛날 자히르샤 왕정 시절이 살기 좋았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렇듯 일각에선 왕정 붕괴 후 내전과 유혈 대학살, 외세 개입, 침략으로 헬게이트로 전락했다가 1993년 왕정이 복고되면서 나름대로 안정을 되찾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캄보디아처럼 이 나라도 왕정으로 복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허나 32년에 거친 전쟁과 내전으로 찢어질 대로 찢어지고 법보다는 군벌과 부족 세력들의 힘이 강력해지다시피 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왕정이 복고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9]


2010년 총선에 한 표를 행사한 아프간 유권자. 따봉

하지만 현재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대통령제가 도입되었다. 2004년 첫 대선에서 하미드 카르자이 당시 자치정부 수반이 쉽게 당선되었고, 2009년 대선에서 재선되었다. 2009년 대선에서는 2위 압둘라 압둘라 전 장관이 30.59%라는 무시 못할 득표율을 올리기도 했다. 마침내 기나긴 카르자이 독재 시대가 끝나고[10], 2014 대선에서 아슈라프 가니 후보가 당선되었다. 사실상 2001년부터 아프가니스탄을 이끌어온 카불 시장 카르자이 시대가 막을 내리는 것. 하지만 2014년 대선은 부정선거 의혹으로 점철되었다. 1차 투표에서 1위를 했던 압둘라 후보가 결선 투표에서 역전당했기 때문. 결국 아슈라프 가니와 압둘라 압둘라 두 후보가 공동정부 구성에 합의하여, 아슈라프 가니가 대통령을, 압둘라가 최고행정관을 맡게 되었다.

5 경제

마르코 폴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푸른색'이라고 부른 보석, 라피스 라줄리의 최상품은 바로 이 아프가니스탄 북부 바다흐샨 주에서 나온다. 자그마치 6000년 동안 라피스 라줄리를 캔 광산 사르-이 상그(سر سنگ, Sar-i Sang)라는 광산도 있다고.

철이나 망간, 여러 광물자원이 엄청나게 매장되어 있으며 힌두쿠시 산맥 쪽에는 우라늄도 엄청나게 매장되어 있어서 미국은 핵 관련 문제 이란의 핵개발을 미치도록 걱정하는 이스라엘과 유태인들의 압력 만으로도 100% 완전 포기는 어렵다고 평가한다. 다만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탈레반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11] 손을 뗄 가능성이 확실하다. 석유가 나긴 하지만 생산량이 극히 미미한 수준이고, 현재 미국 자본이 파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을 잇는 오일 파이프라인을 아프가니스탄에 놓기 위한 지속적인 물밑 작업을 벌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은 아프리카 밖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다. 초강대국들과의 싸움에 모든 힘을 쏟아낸 아프가니스탄은 이후 거짓말처럼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1인당 GDP[12]는 668달러로 세계에서 14번째로 가난한 나라며, 이는 남한의 1/40, 미국의 1/80에 불과하다. 심지어 북한(696$)보다도 조금 낮은 정도. 인간개발지수는 0.374로 끝에서 13번째다. 이 인간개발지수는 앙골라에티오피아보다도 낮다.

2016년 유럽 연합(EU)와 아프가니스탄이 공동 주최한 '아프간 지원 회의'에서 2020년 52억달러 지원키로 결정되었다. [#]

5.1 마약 수출국

아프가니스탄은 세계 최대의 아편 생산국이다. 이미 17세기에도 아편 재료인 양귀비 재배로 알아주는 기록이 있을 정도. 1960년대 안정적인 생활을 할 당시에도 시골 지역에선 여러 생필품 부족 및 생활난으로 양귀비는 활발하게 재배되었으며 왕실이 금지하려고 했으나, 금지했더라면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키거나 굶어죽는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금지를 전면 취소할 정도로 양귀비가 생활에 깊숙히 들어온 곳이 많다.

결국 단속한다고 해도 마약은 민병대의 주요 수입원 1등[13]을 차지하고 있으며 대부분 소비되는 아편 계열의 마약은 아프가니스탄산이 많다. 덕분에 한때는 전세계 아편 생산량의 80%(자료마다 다르지만 어떤 자료는 전세계 생산량의 약 93%)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 지역을 골든 크레센트(황금 초승달)라 한다.

아편 생산량이 많은 이유는 아편의 원료가 되는 양귀비가 건조한 기후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건조한 아프가니스탄의 기후와 맞아 떨어지고, 또 양귀비가 각종 해충에 강해서 다른 농산물보다 재배하기 쉽기 때문에 농부들이 유혹에 빠진다. 또 아프가니스탄의 대부분이 산지라서 적발이 힘든 점도 있고 전쟁으로 인한 치안 부재 상태로 인해 아프가니스탄은 완벽한 아편 생산지가 되었다. 재배 지역은 헬만드 주가 가장 많으며, 그 밖에도 칸다하르 주와 파라 주 같은 여러 지역이 엄청난 수를 재배하고 있다.

과거에는 탈레반이 아편 생산을 금지하였지만, 미국과의 전쟁 이후 오히려 탈레반이 자금 확보를 위해 아편 생산을 독려하고 있다. 미국은 아편 생산을 금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아프가니스탄 농부에게 보조금 지원 형식으로 공식적으로는 많은 양의 아편 농장을 일반 농장으로 바꾸고 있고 또 세계적인 곡물 가격 상승의 영향으로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다고 여겼으나 실제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양귀비를 재배하다가 밀을 심은 이들이 한탄하길 "양귀비 재배로 받은 돈 절반을 겨우 버는데 누가 미쳤다고 이걸 재배하겠는가!?"

국제 밀값이 올라봐야 정작 그들에게 돌아온 돈이 기대 이하였고 여기도 중간업자들 및 정부요인들이 더 많이 차지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밀이나 석류 같은 합법 작물을 재배하는 농민들이 팔러 갈 때 검문소를 지나칠 때마다 뇌물을 요구하니 열 터진 사람들은 이나 석류를 죄다 엎어버리는 시위를 벌일 정도로 썩은 공권력도 마약 퇴치를 가로막고 있다. 그리고 아편이라는 것이 원래 음지에서 거래되는 것을 볼 때 아직도 많은 아편 농장이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될 뿐 아니라, 단속해야 할 현지 경찰들도 많은 수가 연루되어 있으며 이들이 뇌물도 받고 단속도 무마시키며 아예 겉으로는 밀이나 다른 곡물을 심고 잘 안 보이는 험난한 곳에는 한가득 양귀비를 키우는 곳이 허다하다.

게다가 미국이 허구헌 날 탈레반 자금줄을 끊고자 지원하는 돈도 정작 단속보단 극히 일부의 주머니로 들어가 사라지며, 단속 수준도 뇌물을 못 바치는 집안, 가장을 잃고 이거 재배로 벌어먹는 집안의 밭을 급습하여 무작정 양귀비를 베어버리는 것인데 이런 행위도 목숨을 걸고 해야 한다. 탈레반이 아니라 이젠 자체적으로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저항할 정도로 증오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9년 마약단속 경찰 트럭이 지뢰에 터져 23명이 죽기도 했고 양귀비 밭에 지뢰를 심어두기도 하여 단속 경찰이 죽는 경우도 종종 터진다. 더불어 마약 단속반의 적발에 불만을 품고 탈레반으로 들어가버리는 이들까지 생겨나서 미국의 고민을 늘리고 있다.

마약 단속에 대하여 되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아프가니스탄 사람을 죽이려는 미국에게 매수된 매국노들의 짓으로 여기며 증오하는데 마약 단속반들 또한 현지인들에겐 도적이라고 악명이 높기에[14] 아이들이나 여자들이 마약단속반들에게 돌팔매질을 할 정도로 단속이 어렵다.

더불어, 마약 단속을 넘어서 재료가 되는 양귀비 꽃이 생필품인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주식인 이나 식용유비누 같은 생필품을 돈이 있어도 구하기 어려운 시골이 가득한 아프간에서 양귀비가 모든 걸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양귀비 꽃잎은 과거 오스만 제국이나 여러 지역에서 잼을 만들어 먹었고 씨앗을 갈아서 빵으로 만들어 먹을 수도 있거니와, 식용유로도 만들 수 있으며 마약을 추출하고 남은 줄기는 말렸다가 장작으로 쓰며 남은 재는 비누로도 만들 수 있다. 게다가 마약을 다 파는 게 아니라 병원도 의약품도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 비상약으로 쓰이는 경우도 허다하다.[15]

단순히 양귀비를 불태우거나 훼손하는 단속이나 다른 농작물을 대신 심으라는 종전의 행위는 일절 도움이 안된다. 그렇게 해봐야 들어오는 돈도 더 적고 무엇보다 위에 열거한 생필품 자체를 구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즉 저런 문제까지 다 해결해야지 마약 단속에 도움이 되는데 열악한 곳에 물자를 수송하는 문제도 어렵지만 애써서 겨우 수송해봐야 물자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16]이므로 양귀비가 많은 지역에서 재배될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미국은 양귀비들을 아예 돈주고 사서 불태우는 작전까지 구사했다가 비난 여론에 밀려 포기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미군 내부에선 차라리 우리가 양귀비를 사는 게 괜히 헛돈 버리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주장이 거센 상황이다.

참고로 현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의 이복아우이던 아흐마드 왈리 카르자이(احمد ولي کرزی)의 별명은 마약왕이었다. 카르자이가 파키스탄의 전 무샤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파키스탄이 마약 유통을 단속 못한다고 불평하자 "당신 동생이나 잘 단속하쇼"라는 비웃음을 들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왈리 카르자이 자신도 나에겐 마약이 있기에 아무나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고 자신만만했으나 2011년 7월 12일 경호원들이 배신하여 총알 수십여 발을 맞고 끔살당했다. 그리고 탈레반이 경호원들을 매수 및 협박했다고 발표하면서 여전히 헬게이트 아프가니스탄을 증명해버렸다.

어찌됐든 현 정부든 탈레반이든 권력층이 마약 거래에 깊이 관련되어 있고 저런 생활 문제가 깊숙히 들어간 아프가니스탄에서 마약 재배가 사라질 일은 영원히 없어 보인다. 국제사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4년도 아프가니스탄의 양귀비 생샨량은 약 6400t을 기록하여 지난해보다 재배량이 17% 늘었는데 이는 사상 최대의 재배 수치를 기록한 것이다.

6 사회

이슬람 나라들 중에서도 엄청나게 폐쇄적이다. 샤리아를 공식 법률로 하는 것을 지지하는 여론이 99%나 되는 등 이웃나라 파키스탄과 함께 원리주의 성향이 강하다. 이란에서 만든 드라마 가지고도 저질이니 퇴폐적이라고 까대는 나라이니 말이 필요할까. 그러나 이란 항목을 봐도 알겠지만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나라들과 견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슬람 공화국 출범 이후에도 이란은 여전히 중동에서 민주주의와 여성 인권에서 그나마 순위권 안에 드는 나라이기도 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여성 가수 뮤직비디오 제작 및 여성 가수 연예계 활동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나라가 이란이다

2015년 1월 기준 여성 가수 뮤직비디오 제작 및 공중파 송신이 가능해졌으나, 가슴골이나 다리가 조금만 보여도 모자이크 처리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상상력을 자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비록 이란에서는 히잡 차림으로 하라는 제한이 있긴 해도, 니캅 차림으로조차 연예계고 뭐고 사회 활동을 죄다 금지하는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이란 드라마나 뮤직비디오 같은 영상매체는 저질이라고 발악할 만하다(...) 그나마 권투에 한해서는 여성이 니캅이나 히잡을 벗고 활동할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이다. 태권도도 허용은 되지만 히잡은 하고 뛰어야 한다고... 그래도 탈레반 시절 때는 두 종목 모두 여성이 할 수도 없고, 걸린다면 하거나 가르쳐 준 사람까지 동반 처형될 각오를 해야 했다. 이래저래 한국에서 파견나온 태권도 사범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고... 태권도 가르치다 탈레반에 걸려서 고문당한 사람도 있다.

6.1 여성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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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70년대 사진에 미니스커트를 입으며 다닌 여성분들이 50년 뒤에는 할머니가 되어서 니캅을 착용하고 다니게 되었다. 과연 70년대 여성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예상했을까? 그리고 현재 할머니들은 과거의 자유롭던 자신을 돌아보며 어떤생각을 할까?

탈레반이 패퇴한 직후에는 다소 여성인권이 개선되는 조짐을 보이면서 여성부가 설치되었고, 여성 학생들의 비율도 크게 증가했으며 여성국회의원의 숫자도 100명에 육박하는 수준이 되었지만 2014년 쯤에 이르면 오히려 보수 세력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여성인권은 후퇴하는 상황이다. 2013년에는 조혼과 강제결혼을 범죄로 정하고, 여성을 사고 파는 행위를 금지한 여권 신장 법안이 이슬람 교리에 어긋나고 여성의 불복종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의회에서 부결되었다.[17] 2014년에는 친척의 범죄 행위를 증언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이 만들어져서 가정 내 폭력에 대해서 처벌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기사]. 게다가 2016년 3월 9일에 여성이 화형당한 사건이 발생되었지만, 법원은 용의자들을 무기징역에서 징역 20년, 10년을 선고하는 사건이 발생되었다.[#] 아직까지는 여성인권이 최악이지만, 아프간은 여성경찰인력을 1만명으로 끌어올리려는 계획을 하는 중이고 2천명이상의 여성경찰이 활동중이다.[#]

6.2 민족과 언어

아프가니스탄은 기본적으로 다민족 국가이며 페르시아계가 3/4이상을 차지하나, 파슈토어와 다리어는 같은 이란어군에 속하기는 해도 상당히 달라서 원할한 의사소통은 힘들다. 파슈토어를 쓰는 주류 민족인 파슈툰인이 대략 전체 인구의 40~45% 정도로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다수 민족이지만, 이웃 국가인 파키스탄에서는 산악지대에 사는 비주류민족 대우를 받고 있다.[18] 그 다음으로 다리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타지크인(페르시아인 중 순니파)이 대략 30~35% 정도를 차지한다. 그 다음으로는 우즈베크인과 아이마크인, 하자라인이 각각 1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우즈벡인은 튀르크 계통으로 페르시아 백인종과 투르크계가 섞였으며 과거 킵차크 칸국의 후손인 우즈베크 칸국의 일원이었다. 즉 칭기즈 칸의 아들 주치의 후손들이다. 이들의 외모는 동양인과 백인을 짬뽕시킨 듯하다.

하자라인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 몽골군의 후손인 투르크타타르인들로 간주되고 있는데 몽골 제국은 애초 생활권이 같던 몽골인투르크인의 연합이었고 군사력의 주축은 투르크계 타타르 및 위구르인이다. 몽골의 호라즘 침공 당시 몽골군들은 현재의 아프가니스탄에 해당하는 발흐헤라트, 가즈나를 비롯한 여러 도시들을 황폐화시키며 주민들을 학살하고 옥토를 사막화시켰다 하는 전력도 있고, 외모도 전형적인 동양인처럼 생겨 눈에 잘 띄며 종교적으로 소수파인 시아파이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심한 따돌림을 받고 있는 민족이다. 물론 투르크멘이나 우즈벡 등 몽골 형질이 강한 다른 투르크계도 아리아계인 파슈툰인에게 갈굼 당한 건 마찬가지라서 북부 동맹군을 구성해 파슈툰인의 탈레반과 싸웠다.

그 외에 아이마크[19], 투르크멘, 키르기스[20], 발루치, 아랍인, 펀자브인 등이 있다. 심지어는 소련-아프간 전쟁당시에 이주한 1천 명 정도의 러시아인도 존재해 있다.[21]

다민족국가라서 언어도 다양하지만, 공용어는 다수 인구가 사용하는 파슈토어다리어이다. 다리어는 타지크어와 마찬가지로 사실상 페르시아어의 방언 수준이며, 파슈토어도 분류상 이란계 언어이기 때문에 페르시아어와 비교적 가까운 편이다. 소수민족이나 외국 이주민 등으로 인해 우즈베크어, 투르크멘어, 타지크어, 하자라어, 키르기스어가 사용되기도 한다. 러시아어 사용자도 극소수 존재한다. 탈레반이 집권하기 전까지 일부 러시아어 신문과 미디어가 존재했지만, 탈레반에 의해 폐쇄되었다.

교육은 파슈토어와 다리어로 이루어지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파슈토어 또는 다리어로 수업을 받고, 4학년 때 두 언어 모두 배운다. 교과서 역시 이 교육 시스템에 맞게 발행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다리어 학교 1학년 다리어 교과서].

7 문화

7.1 스포츠

그나마 6~70년대 안정을 누릴 땐 축구가 역시 인기가 많았지만 오랜 전쟁으로 리그나 여러가지가 죄다 사라졌다. 탈레반은 축구를 용서받을 수 없는 종목으로 규정하고 축구경기장을 처형장으로 쓰는 등 막장을 보여주었다. 탈레반이 여자 월드컵 축구를 싫어합니다 그나마 아프간 전쟁 이후 국제대회에 나왔으나 큰 골차로 대패하는 일이 많다.

자세한 것은 아프가니스탄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조.

그 밖에 권투가 인기가 있다고 한다. 탈레반조차도 권투를 금지하진 못했을 정도였다고... 하지만 탈레반 항목을 참고하면 알겠지만 권투도 이들의 막장 때문에 타격을 받았다.

또한 태권도도 꽤 잘하는데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로훌라 릭파이가 조국에 올림픽 역사상 첫 메달을 안겨줬다].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에서 태권도와 한국의 인기는 상상 초월이며, 현재 약 1,000명이 넘는 선수가 활동하고 있다. 자발적 한류.

8 외교

8.1 러시아와의 관계

러시아와는 친소련파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왕정이 무너진 일과 소련-아프간 전쟁을 겪으면서 사이가 좋지 못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이가 나쁜 건 아니고 2014년에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합병할 당시 크림 반도와 세바스토폴을 러시아의 영토로 인정한 경우도 있다. 소련-아프간 전쟁 당시에 1만 명 이상의 러시아인들이 잠시 체류했지만, 이후 대부분이 떠나고 극소수가 거주하고 있다. 최근에 아프간 정부가 러시아에 군사 원조를 요청하면서 26년만에 복귀 여부가 주목받고 있다. [#] 그리고 러시아는 아프간에 15년만에 첫 군사 원조를 했다.[#]

8.2 중국과의 관계

중국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중국도 아프간에 800억원대의 군사원조를 하기로 하면서 중국의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그리고 미국이 아프간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서 중국이 적극적인 지원과 개입도 나서기 시작했다.[#] 2015년 5월 12일에 도하에서 열린 중국-아랍국가 협력포럼에서 남중국해 영유권분쟁에서 중국을 지지했다.[#] 그리고 중국, 파키스탄, 타지키스탄과 함께 반테러 협력체제를 구축하기도 했다.[#] 유엔 연설에서는 중국이 파키스탄의 테러범 지원 활동을 제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8.3 파키스탄과의 관계

파키스탄에도 아프간과 마찬가지로 북부지역에 파슈툰족들이 거주하고 있고 아프간 내전당시에 내전을 피해 파키스탄에 피난민들이 이주하기도 한다. 하지만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있고 2016년 6월 13일에 파키스탄의 국경강화에 따른 반발로 국경분쟁이 있었다.[#]

8.4 한국과의 관계

아프가니스탄은 1973년대한민국과 처음 수교하였으나 5년만에 1978년 아프가니스탄에 좌경 성향의 사회주의 정부가 수립되면서 그해 단교하였다.[22] 그러나 2002년 탈레반 정권 붕괴 이후 과도정부가 수립되면서 2002년에 재수교하였으며 동년에 열린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도 참가하였다. 한때 미국에게 전투병 파병 요청도 받았으나 여러 문제로 어렵겠다며 흐지부지 거절(!)하고 이라크 전쟁 때 파병 논란과 달리 이건 아예 언론적으로 묻혀졌다 2007년까지 공병, 의무부대인 다산부대, 동의부대가 활동하다가 파병기한이 연장되지 않아 철수했는데 2010년 오쉬노 부대가 재파병되어 파르완주에서 지방재건팀(PRT)으로 활동하였으나 현재 철수하였다.

북한과는 1978년에 수교하였다.

2007년에는 대한민국의 선교 활동을 간 개신교 선교사들의 피랍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이전부터 아프가니스탄 평화 축제 사건 등을 일으키며 따가운 눈총을 받았던 대한민국 개신교계는 결국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를 일으키며 아프가니스탄과 한국 양쪽 모두에서 개신교에 대한 반감만을 키우고 말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외교통상부가 여행금지국가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으니, 목숨이 아깝다면 가지 말자.


9 국가 상징물

9.1 국기

워낙에 정치 상황이 막장이라 국기도 자주 바뀌었다. [역대 아프가니스탄의 국기]. 124년간 22개. 대략 6년마다 한번씩 바뀐 꼴. 영국령 때는 주로 검은색이었다. 1931년부터 1973년까지 아프가니스탄 왕국 국기를 제외하면 내전기에 거의 3년마다 한번씩 국기(11개)가 바뀌었다. 돌고돌아 다시 비슷한 문양으로 돌아오는데 근 30년이나 걸렸다. 참고로 1996~1997년 국기는 로딩이 안 되는 게 아니라 진짜 하얀색 국기였다.

10 창작물에서의 아프가니스탄

옛날부터 유명한 분쟁 지역이다 보니 여러 매체에서 등장하고 있다. 요즘부터 주목받은 소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영국, 소련 등 내로라 하는 제국들이 여기서 발리고 가다보니 과거에도 매체에 수없이 등장했다. 일반인에게 가장 유명한 작품은 역시 셜록 홈즈 시리즈일 것이다. 왓슨 박사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했다가 부상을 입고 퇴역한 군인으로 나온다. 이 설정은 위에도 있는 영국군이 전멸하고 의사 1명만 살아돌아온 사건에서 따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후 BBC에서 셜록 홈즈를 재해석한 드라마 셜록을 만들었는데, 이때도 왓슨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상이군인으로 나온다. 200년 가까운 갭이 있는데도 똑같은 설정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데서 이 나라가 겪은 수난의 역사가 그대로 드러난다.

또한 80년대에는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문에 주목받기도 했다. 람보 3가 대표적. 이 당시 아프가니스탄인들은 소련 침략자에 맞서 싸우는 정의의 전사들로 묘사되었으나 지금은... 또한 풀 메탈 패닉 시리즈에서도 등장한다. 여기서는 블랙 테크놀러지의 힘으로 이 전쟁에서 소련이 승리했다고 나온다. 주인공인 사가라 소스케가 어렸을 적 반군으로 활동한 곳으로 나온다.

현대에는 유명한 분쟁 지역이다 보니 현대전을 배경으로 한 미디어에서 상당히 자주 등장한다. 2000년대 중반엔 잠시 이라크가 이 역할을 했으나 이라크가 비교적 안정되고 미군이 철수함에 따라 다시 "요즘 분쟁지역"으로 나온다.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에서 튜토리얼 미션의 배경이 되는 곳이 이 나라의 마자르 지역이다. 여기선 GLA가 대량 살상 무기 공장을 지으며 깽판을 벌이는 것도 모자라 미군기지까지 털기도 하고 오프닝씬에선 미군 헬기 세 대를 격추하기도 한다.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2에도 등장하는데, 사방팔방에 칼레드 알 아사드의 포스터가 붙어있는 등, 2016년에도 여전히 막장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메달 오브 아너의 주 배경이다.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2에선 과거 회상 장면과 현재 시점의 미션에서 둘 다 등장한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막장 분쟁지역... 지못미.

클로저스의 NPC인 송은이 경정이 이곳에서 붙잡혀 총을 만들던 장인을 구출하면서 게릴라 1부대랑 전투를 했다(...)

할레드 호세이니 작가의 연을 쫓는 아이, 천 개의 찬란한 태양, 그리고 산이 울렸다는 아프가니스탄을 주 배경으로 삼고 있다.

메탈기어 솔리드 V 더 팬텀 페인의 주 배경 중 하나이기도 하다. 폭스 엔진을 통해 상당히 광범위하게 구현하고 있다.

11 참조 서적


《[아프가니스탄: 알렉산더 대왕부터 탈레반까지의 전쟁사]》,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역: 알렉산드로스 대왕부터 시작해서 몽골 제국영국, 소련, 지금의 미국으로 이어지는 아프가니스탄의 대외 항쟁사와 아프간 전사들의 용맹, 아프간의 영토 확장 역사 등을 다룬 책이다.
  1. 전 지역
  2. [#]
  3. 당연히 좋은 의미다.
  4. 한국군 소속으로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아프가니스탄으로 간 채수문 중령은 아프가니스탄 힌두쿠시 산맥을 지나며 본 풍경을 말하길, '이 전쟁을 미국이 이긴다는 소리가 엄청나게 많았지만, 높고 복잡한 산들만 봐도 쏙 들어간다. 괜히 힌두쿠시(힌두교인들이 죽어간 무덤이라는 뜻)라고 불린 게 아니고 소련도 괜히 고전한 곳이 아니다. 지금 미군도 이곳에 대대로 살던 지역민들이 없다면 들어가지도 못하는 곳이다. 위성장치? 최첨단 장비들조차 이 산과 고원들에선 먹통이 되기에 미군들도 절대로 자기들만 안 들어온다'라고 썼다. 이해가 안 간다면 실화 기반 영화 론 서바이버에서 주인공 일행이 전화 한방을 못 때려서 그 생고생을 하다 겨우 한명만 살아남은 것을 떠올리자. 장갑차나 차량은 절대로 못 들어간다. 험난한 산악길을 오로지 헬리콥터만 타고 이동해야 하는 현실이다. 이런 경험을 겪어서인지 채중령은 나중에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한국군 전투병 파병 논란에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5. 강수량은 비교적 겨울과 봄에 많은 편이다.
  6. 군주제(아프가니스탄 왕국. 1919~1973), 공화제(아프가니스탄 공화국. 1973~1978), 공산주의(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 1978~1992), 신정체제(탈레반 정권. 1992~1996),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아미르국(1996~2001), 그리고 다시 공화제(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2001~현재).
  7. 70년대 초반까지의 아프가니스탄과 한국의 1인당 GDP[#]를 비교해 보면, 1965년까지는 한국이 앞서다가 1966~67년 아프가니스탄이 한국을 근소하게 추월했다. 그러나 1968년 한국이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추월한 이래 두 나라 사이의 격차는 넘사벽급으로 벌어지게 되었다.
  8. 을사늑약처럼 외교권만 강탈하였다.
  9. 물론 아프가니스탄이 왕정복고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쪽도 캄보디아와 같이 국제연합(UN) 등에서 UN 평화유지군이나 감시단 등을 파견하여 분쟁에 개입한다면 캄보디아처럼 왕정복고 이후 지금의 심각한 내전 상황이 종결되거나 혹은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주처럼 왕정 폐지 후 전국에 난립하여 온갖 폭탄 테러와 게릴라 전, 양민학살 등을 자행하는 탈레반이나 여러 지역 무장 단체들이나 지방 군벌 세력들이 약화되어 붕괴될 가능성도 꽤 있다. 전 국왕이었던 자히르샤가 2007년 사망하긴 했지만 아들이나 손자, 이외 왕족 후손들이 꽤 살아있어 이들을 새 왕으로 앉혀 입헌 군주제를 채택할 가능성도 있다.
  10. 카르자이 정부는 미국의 괴뢰 정부 취급을 당했는데 임기 말 갑자기 미국과 대립각을 세웠으나... 그대로 임기가 끝나게 되었다.
  11. 현 아프간 정부 전복시키고 Again 1996을 하는 것까지는 상관없지만 외국의 테러 집단과 다시 손 잡는 일이 없을 것. 이란 등 소위 '불량국가' 들과 거리를 둘 것을 약속하는 정도는 되어야 한다.
  12. UN 추산(2014)
  13. 매해 최대 40억 달러 추정. 이 정도 돈이라면 탈레반 및 부족들이 무장에 엄청난 수익이 되며 나아가 그것은 정부군 및 미군 희생을 부채질한다.
  14. 내셔널 지오그래픽 기자들이 현지 취재를 하는데 마약 단속반들이 벌이는 행패도 문제임을 보여주었다. 외국 기자가 보는 앞에서 그들은 식사 시간이 되자 단속 대상이 아닌 사람들의 밭에서 채소까지 훔쳐서 싸온 도시락과 같이 지들끼리 실컷 먹어버렸단다. 기자들이 하도 어이 없어서 "돈도 안 주고 멋대로 훔쳐먹어도 되냐?" 따졌더니 한다는 소리가 "어차피 우릴 싫어하는데 뭐하러 좋게 대해주냐?"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고 한다. 이러니 현지인들은 탈레반을 따라서 저런 놈들을 죽여버리는 게 낫다며 무섭도록 증오하고 있다.
  15. 가난한 나라들에서 흔히 보는 일이다. 심지어 5~60년대 한국 시골에서도 병원 갈 돈도 없고, 병원 가기도 어려운 지역에서 몰래 심은 양귀비에서 추출한 아편을 극소수량으로 약 대신 쓰기도 했다.
  16. 보나마나 그걸 일부가 가로채서 배를 채울 게 뻔하다. 종전에 시행하던 밀이나 여러 농작물 씨앗조차도 도중에 상당수가 착복되어 사라졌다.
  17. 물론 당연하겠지만 이건 핑계고 실제로는 정부 관료들이나 고위직들 가운데 상당수가 성매매에 관련되어서 있어서라는 게 대체적인 중론이다. 바차바지라고 해서 어린 남자애를 가지고 성매매를 하는 풍습이 돈 꽤나 있는 고위직들을 중심으로 은근히 펴져있지만 제대로 처벌이 받지 않을 정도라 여성인권이 제대로 지켜질 리가...
  18. 반대로 파키스탄의 주민족인 펀자브족은 인도의 펀자브 지방에 걸쳐 존재한다. 사실 이 두 민족의 터전에 정가운데가 국경으로 그어진 꼴.
  19. 똑같이 페르시아어를 쓰고 수니파 이슬람을 믿는 타지크인과 합쳐서 계산하기도 한다. 차이점이라면 타지크인들은 정주 농경민이었으나 아이마크인은 유목민이었다는 점.
  20. 아프가니스탄 최동단 지역의 툭 튀어나온 지역에 거의 고립된 상태로 거주한다고 한다. 지나치게 고립되고 외진 동네인지라 이 지역은 전쟁의 여파도 별로 미치지 않았다고 한다. 투르크계인 이들 역시 외모가 동양적이다.
  21. 내전 당시에 1만 명 이상 증가하다가 소련군 철수 이후에 대부분이 철수하고 일부 극소수가 거주하고 있다.
  22. 1988년 서울올림픽 때는 자국 선수단을 공식 파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