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울 몬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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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Raúl Ramón Mondesí Avelino
생년월일1971년 3월 12일
국적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지San Cristóbal
포지션우익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88년 LA 다저스 자유계약.
소속팀로스앤젤레스 다저스(1993~1999)
토론토 블루제이스(2000~2002)
뉴욕 양키스 (2002~2003)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003)
피츠버그 파이리츠, 애너하임 에인절스 (2004)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2005)
1994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신인왕
마이크 피아자
(LA 다저스)
라울 몬데시
(LA 다저스)
노모 히데오
(LA 다저스)

커리어

1 개요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던 前 야구선수. 1990년대 LA 다저스의 스타플레이어였으며, 30-30을 두 차례 달성하는 등 리그에서도 알아주는 5툴 플레이어로 이름을 날렸으나 개인의 인성 문제나 복잡한 사생활 등으로 본인의 재능을 오랫동안 발휘하지 못하고 은퇴한 선수.

2 선수 생활

1988년 LA 다저스에 자유계약으로 입단한 몬데시는 1994부터 팀의 주전 우익수로 자리잡아 .306 16홈런 56타점의 성적으로 내셔널리그 신인왕에 오른다.[1] 이듬해인 1995년에는 .285 26홈런 88타점 27도루의 성적으로 생애 첫 올스타전 출장과 더불어 골드글러브까지 수상했고, 1996년에도 .297 24홈런 88타점으로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며 팀의 간판선수로 자리잡게 된다.

1997년에는 .310 30홈런 87타점 32도루라는 훌륭한 성적을 기록하며 30-30 달성과 더불어 두 번째 골드글러브를 수상하는 등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1998년에는 .279 30홈런 90타점의 성적을 기록했고, 1999년에는 .253 33홈런 99타점 36도루로 두 번째 30-30 달성에 성공한다. 하지만 99년을 끝으로 감독과의 불화, 훈련 태만 등의 이유로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트레이드된다.[2] 트레이드 이후에도 그럭저럭 제몫을 하긴 했지만 그의 기량은 점점 후퇴하기 시작했고 이후 여러 팀을 전전하는 저니맨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피츠버그 파이리츠에 있었던 2004년에는 시즌 초 개인사를 이유로 팀을 이탈해 고국인 도미니카로 돌아가버리며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결국 몬데시는 2005시즌을 끝으로 만 34세라는 이른 나이에 은퇴하게 된다.

통산 성적은 .273/.331/.485 1589안타 271홈런 860타점 229도루.

3 선수로서의 평가

말년의 저니맨 생활에도 불구하고 통산 OPS .815라는 괜찮은 기록을 남긴 강타자였으며, 젊을 때는 무지막지한 강견을 바탕으로 골드글러브를 두 번 수상한 뛰어난 우익수이기도 했다.[3] 스테로이드 파문에서도 연루된 바 없기에 약물 논란에서도 자유로운 편.

문제는 멘탈이었는데, 방탕한 사생활과 더불어 선수로서 훈련에 임하는 자세 등 여러 단점이 있었고 결국 여기에 발목을 잡히며 이른 나이에 은퇴할 수밖에 없었다. 야만없이지만 그가 가진 재능을 100% 발휘할 수 있었더라면 후일 도미니카를 대표하는 타자가 된 블라디미르 게레로 못지 않은 성적을 남겼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설명들보다도, 대한민국에서는 박찬호의 특급 도우미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이 때는 정말 다저스가 크보 제9구단 소리를 들을 정도로 국민들에게 대단한 인기를 자랑했고 이 때의 선수들이 펼친 맹활약에 대한 기억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어서, 2014년 기준 대한민국에서 대충 30대 초중반이 넘은 성인 남성들은 라울 몬데시와 더불어 마이크 피아자, 게리 셰필드, 숀 그린, 채드 크루터, 에릭 캐로스, 제프 쇼(...) 등의 선수들은 이름만 대도 감탄 또는 한탄을 내뱉으며 박찬호가 나왔을 때 얼마나 잘했는지 정확하게 기억한다. 몬데시, 셰필드, 그린의 경우는 한국 오면 박지성 친구 에브라에 버금가는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찬호 도우미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다저스 역대 세이브 2위에 올라있는 제프 쇼지만 그는 박찬호 경기에 올라와서 심심하면 불장난을 친 원조 불쇼일 뿐이고(...)[4] 마이크 피아자는 명예의 전당 입성 여부와 상관없이 그저 타격만 잘했을 뿐 볼배합은 최악이고 도루저지도 못하는 소녀어깨 포수였을 뿐이다.(...)[5]

4 기타

멘탈이 안 좋았든 어쨌든 90년대에 다저스에서 신인왕을 차지하는 등 강타자로 활약한 점이 있어서 다저스 팬들에게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듯 하다. 2007년에 몬데시가 다저스타디움을 방문했을 때에는 팬들이 기립박수와 함께 라우우우우우우우우우울!!!을 외치기도 했다.

선수생활이 끝난 후에는 과거의 나태했던 선수생활을 반성하며 정당활동에 뛰어들어 도미니카 혁명당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0년에는 고향 산 크리스토발 시에서 6년 임기의 시장에 당선되어 이젠 몬데시 시장님이시다!

아들인 라울 몬데시 주니어와 아달베르토 몬데시도 야구선수다. 특히 아달베르토는 2011년 현재 도미니카를 비롯해 국제 자유계약 선수 시장에서도 수준급으로 평가받던 16세 유격수 유망주로서 7월 말에 200만 달러라는 웬만한 드랩 1라운더 급의 계약금을 받고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계약, 수준급 유망주로 성장하고 있다. 라울 몬데시 주니어도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되며 밀워키의 루키 리그에 있다가 2012년 오프 시즌에 탬파베이의 우완 투수인 버크 배든홉과 트레이드되었다. 그리고 2015년 월드 시리즈의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엔트리에 등록이 되면서 역대 메이저리그 사상 최초월드 시리즈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선수가 되었다. 10월 30일 월드 시리즈 3차전에서 5회초 대타로 나왔지만 삼진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로열스가 월드 시리즈 우승을 거머쥐면서 아들은 월드 시리즈 한타석만 나와 삼진을 당하고서도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를 거머쥐었다. 아버지는 1535경기를 뛰면서 얻지 못한 걸 아들은 한타석만 나오고 공짜로 얻었다. 그런데 이후 몬데시 주니어가 금지약물 위반으로 50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았다. 감기약에 금지약물 성분이 있다는 걸 확인하지 못했다고 하고는 있지만...[6]

여담으로 한화 이글스가 2005년에 몬데시를 영입하려 추진했지만 실패했다고.
  1. 92년부터 이어진 다저스의 내셔널리그 신인왕 5연패 대기록에서 세번째 수상자였다. 5명의 순서는 92년 에릭 캐로스 → 93년 마이크 피아자 → 94년 라울 몬데시 → 95년 노모 히데오 → 96년 토드 홀랜스워스.
  2. 참고로 이 때 트레이드 상대가 그 유명한 숀 그린이었다.
  3. 거의 현 시대의 스즈키 이치로추신수, 제프 프랑코어, 블라디미르 게레로 같은 리그 정상급의 우익수 송구를 자랑했다고 한다.
  4. 그러나 제프 쇼 문서에도 설명했듯이 이 부분은 심하게 과장되었다.
  5. 이 부분은 박찬호와의 호흡 때문에 괜히 피아자의 수비력이 너프되어보이는 것도 있다. 마이크 피아자 항목 참조.
  6. 80경기가 아니라 50경기인 이유는 감기약 복용이라는 것을 입증한 것 때문에 30경기를 경감받은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