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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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Story.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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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상징이 된 눈에서 알콩달콩한 러브씬. 그런데 이게 원작에는 없고 그냥 대충 애드립으로 후다다닥 찍었다고 한다. 1970년에 출판된 소설과 이를 영화화한 영화의 제목. 소설은 에릭 시걸이 썼으며 그의 출세작. 그러나 세월 지나고 보니 오히려 영화가 더 기억에 남더라 할 정도로 영화가 히트를 쳤다.

영화는 1970년 12월 16일 개봉했으며, 한국에서도 1971년 12월에 개봉했다. 감독은 아더 힐러, 남주인공 올리버 역은 라이언 오닐, 여주인공 제니 역은 알리 맥그로우. 배급은 파라마운트.

그 뒤로도 비슷한 제목의 아류작들이 줄줄이 나왔지만 이렇다할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묻혔다.

저 유명한 명대사 사랑이란 미안하단 말을 하지 않는 거야.가 등장하는 영화다.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영화 속 100대 명대사 중 13위다.

제작 비화

2 소개

줄거리는 눈에서 눈물이 흐를 정도로 진부한 클리셰를 따라가고 있다. 명문가의 상속자인 하버드 학부생 올리버가 가난한 이탈리아 이민자 집안 출신인 래드클리프 여대(현재 하버드 학부의 일부) 학생 제니와 도서관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의 사랑은 결혼에 이르게 되지만 이 결혼을 반대한 올리버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의절을 선언하고 원조를 끊어 버린다. 올리버는 자비로 어렵게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하게 되고 제니는 사립학교 교사로 취직하여 둘은 학교 근처에 위치한 집의 꼭대기 층을 얻어 힘들게 생활한다. 마침내 올리버가 로스쿨을 전교 3등으로 졸업하고 뉴욕의 유명 로펌에 취직함으로써 겨우 이제 인생이 피는구나 싶었는데 올리버는 제니가 백혈병 말기라는 충격적인 사실에 직면하게 된다. 주인공은 그제사 좀 더 잘해주지 못한것에 후회하지만, 결국 그녀는 죽고...

사실 그 당시, 국내 영화계 뿐만 아니라, 영미 영화계에서도 이런 신파조 경향의 영화는 드물지 않았고. 딱히 새롭고 극적인 전개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문자 그대로 잘만들어져서 대박을 쳤다. 특히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정말로 적절하면서도 퀄리티 높은 OST[1], 그리고 과장되지 않게, 그러나 정말로 아름답게 두 사람의 사랑을 묘사한 영상미의 삼박자가 어울러져 이런 결과가 나온 것. 특히 너무나 많이 회자되어서 흰 눈밭만 봐도 아! 하고 알아채는 눈밭에서 두 사람이 뒹구는 신만 봐도 그렇다. 진짜 연애하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사실...요즘 같은 세상에 저렇게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연인이 있을까 싶지만.) 연기가 너무 자연스럽다.

게다가 자기가 출세하겠다고 자기 배우자만 실컷 부려먹다가, 출세하면 차버리는 남자주인공들이나, 이용당한 뒤에 얼굴에 점 하나 붙이고 복수귀가 되곤 하는 여주인공들이 등장하는 근래의 국내 드라마와 달리, 영화의 남녀 주인공들은 선량하고 상식적인 인물들이다. 특히 남자주인공은 하버드 학부 졸업 후 로스쿨에 입학하고 변호사가 되기위해 고생하는데, 알바와 공부를 같이 병행하면서 애쓴다. 애초에 여주인공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이 고생을 하는거니...여주인공도 남편 뒷바라지에 고생만 하다가 불치병에 걸려 죽는데도 한마디도 원망을 하지 않는다. 게다가 극 중간에 사이가 나빠진 시아버지와 남편 사이를 화해시키려고 애쓰는 등...진짜 보고 있으면 두 사람이 안타까워 눈물이 펑펑 쏟아질만 하다. 근데 막상 이렇게 칭찬해도, 실제로 이렇게 만들면 뻔하디 뻔한 신파, 비현실적이라고 깎아내릴게 뻔하잖아

결과적으로 이런 사정에 힘입어 영화는 전미 흥행 1억 639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성과를 거뒀고,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대충 전세계적으로도 5000만 달러가 넘는 흥행에 성공했다. 지금이야 워낙 블록버스터들이 판을 치니까 1억불이 크게 인상깊지 않을수도 있지만 당시와 현재의 통화가치를 비교하면 3억 달러 이상은 되는 대박으로 로맨스 영화로서도 가공할 대박이다...ㅎㄷㄷ. 게다가 제작비가 220만 달러이니 미국 흥행만으로도 50배 가까운 흥행이었다.

사실, 파라마운트는 당시 재정난으로 어려움에 처했는데 작가인 에릭 시걸이 각본으로 이걸 만들자고 할때 코웃음쳤다. 다만,파라마운트 간부들은 소설로 내보라고 하여 책으로 먼저 냈는데 알다시피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후다다닥 영화가 만들어진 것. 그리고 이 영화 대박으로 파라마운트 영화사는 기사회생했다.

한국에서도 1971년 12월 15일에 개봉하여 서울관객 24만을 기록하며 대박을 쳤다.

재밌는건 지금 봐도 그리 심심한 영화는 아니란 점. 오히려 주인공들의 외모가 최근 영화들의 배우들의느님의 힘으로 파워업한과 달리 평범해보여서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사실 제작비 아끼느라 당시 듣보잡이던 배우들을 쓰다보니 캐스팅된 일화가 있다.

3 후일담

북미에선 엄청난 인기를 몰았는데, 그 대표적인 증거로 1970년대 태생의 여자 이름이 있다. 수많은 70년대 북미녀들의 이름이 제니퍼인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국내에서도 당연히 엄청난 인기를 끌었는데, 지금도 당시 이 영화를 극장에서 감상한 분들이 아직도 기억하는 영화일듯 하다. 그리고 이 영화 이후부터 뜬금없이 잘 살다가 백혈병이나 불치병에 걸리는 주인공들이 브라운관을 지배하기 시작해 지금까지도 그 명맥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슬픈 사실은 이와 비슷한 스토리를 따라가며 이 영화 이상의 혹은 못지않은 퀄리티를 낸 작품이 별로 많지않다는 것. 그만큼 진부한 전개를 가지고 좋은 작품을 내기 어렵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역으로 말하면 진부한 내용도 잘 만들면 레전드가 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라이언 오닐은 별거 없던 신인 배우에서 훅 떠서 소위 말하는 청춘스타가 되었다. 그러나 정작 그뒤에는 딱히 기억에 남을 만한 작품을 찍지도 못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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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에 만들어진 속편 영화 올리버 스토리(Oliver's story,당연하지만 에릭 시걸이 쓴 소설이 원작이지만 소설은 더 욕먹어 영화가 낫다는 평이다....)도 있다. 제니퍼가 죽고 몇 해가 지나도 여전히 그녀를 잊지 못하고 폐인같이 살던 올리버에게 제니퍼의 부모는 "거꾸로 자네가 죽고 내 딸이 살아있다면 이제 그만 그를 잊고 네 삶을 살아라!"라고 했을 것이라며 이제 제발 제니퍼를 잊고 재혼을 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라고 애원한다. 그래서 조금씩 그녀를 잊던 올리버는 어느 여성과 사랑을 하게 되지만... 이 작품이 그저 그런 평을 받았고 (흥행은 본전치기로 제작비는 600만 달러인데 전 세계적으로 2000만 달러를 겨우 벌었다...) 그 뒤로는 머나먼 다리 등에 조연으로 출연했으나 이혼 스캔들 등을 겪으며 하향세. 지금은 간간히 TV드라마 조연으로나 얼굴을 비치게 되었다.

여주인공이었던 알리 맥그로우는 누아르 영화의 거장 샘 페킨파 감독의 영화 '겟어웨이'에 출연하면서 커리어를 쌓다가, 거기에서 만난 명배우 스티브 매퀸과 결혼했다가 이혼했다. 그 뒤로도 배우와 제작자로도 활동했다. 80년대 대작 미드 '전쟁의 폭풍'이 후기 대표작.참고로 여주인 알리 맥그로우는 1939년생으로 1971년작인 이 영화를 찍을 당시 이미 30대였다. 그런걸 감안하면 백인치고 상당한 동안...현재도 70대인데도 70대 할머니스럽진 않다

감독 아더 힐러(1923.11.22~ 2016.8.17)도 이 작품을 넘는 대박을 거두진 못했다. 그래도 코미디물 '실버스트릭'이라든지 '포츈'이 그럭저럭 흥행에 성공하면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했으며 뮤지컬에도 진출해 피터 오툴과 소피아 로렌이 출연한 '맨 오브 라만차'를 연출하기도 했다. 그는 2001년 영화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진 허숄트 박애상'을 수상했다. 더불어 감독인 아더 힐러는 아내인 그웬 피쳇(1924~2016)과의 순애보로도 유명하다. 바로 어릴적부터 소꿉친구였던 것!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태어나 함께 자랐던 이들은 힐러가 8살때 그웬에게 청혼했다! 그리고 그웬은 단번에 승낙하고 부모에게 가서 우리가 크면 반드시 결혼하겠다고 알렸다고. 그리고 이들은 정말로 각자 25살, 24살인 1948년까지 기다렸다 결혼했고, 68년을 해로했다. 슬하에는 아들 헨리크와 딸 에리카를 뒀는데 2016년 6월 그웬이 먼저 세상을 뜨자 아더 힐러도 폐인처럼 되었다가 결국 석달도 안가 2016년 8월 17일에 만 92세로 아내를 따라갔다. 68년동안 어떠한 스캔도 없이 오로지 한 여자만을 사랑했던 것.


이 영화를 명작으로 만드는 데 크게 일조한 프란시스 레이(1932~ )가 맡은 OST가 인상깊은데, 특히 눈밭 씬에서 쓰였던 Snow Frolic은 한동안 TV에서 뭔가 로맨틱한 씬이 나올때면 마구 틀어대던 음악 중 하나로, 마성의 브금 항목에도 등재돼있을 정도로 유명한 명곡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토미 리 존스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주인공 룸메이트로 나오는데 그의 20대 시절을 볼 수 있다.
  1. 음악을 맡은 프란시스 레이는 프랑스에서 각본을 보고 영화 관계자들과 전화 몇번만 한 것으로 이 음악을 작곡했다.
  2. 그나마 큐브릭의 배리 린든에 주인공으로 나온 것 정도가 인정해 줄만한 커리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