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매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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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의 영화배우

1.1 소개

20세기 할리우드가 배출한 최고의 배우들 중 한 명.

Terrence Steve McQueen
1930.3.24~1980.11.7

주로 60~70년대를 풍미했던 뛰어난 영화배우. 지금 기준으로 봐도 연기력은 말할 것도 없고, 외모도 전혀 꿇리지 않는다. 외모는 10~20대들이 많이 좋아하는 꽃미남이 아니라 땀내 나는 거친 이미지지만, 오히려 남성적 매력이 강렬하게 풍긴다. 북미(北美) 등지에서 인기 있는 외모랄까. 의외로 일본에서는 활동 당시 인기 순위에서 줄곧 상위권에 있었다. 일본에서 광고도 찍고 여러 번 왔던 덕이기도. 그는 실제로도 속도광에 골초에 마초였다. 그래서인지 충동적이라서 결혼과 이혼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그는 세대를 풍미한 터프 가이 배우로 남을 것이다. 1980년 폐암으로 사망했다.

사실 저런 매퀸[1]의 특성들은 모두 그의 인생에서 자연스레 배어나온 것이었으니….

매퀸은 서커스단에서 스턴트맨을 하던 아버지와 방탕한 창부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다. 어머니는 홀로 그를 키우게 되었으나, 그를 바로 친정에 맡겨버린다. 그렇게 매퀸은 그의 삼촌 밑에서 자라게 되는데, 이 삼촌은 꽤나 괜찮은 사람이었던 듯, 매퀸은 후에 술회하길 "나는 남자로서의 모든 것을 그에게 배웠다." 라고 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핏줄에 흐르는 속도광 기질이 나왔는지, 소년시절부터 자전거를 타고 마구 질주하였다곤 한다.

평화는 얼마 못가 창부 어머니가 새신랑을 들이곤 매퀸을 다시 집으로 데려온다. 이때부터 그의 좌충우돌이 시작되는데, 새아빠라고 데려온 사람들이 모조리 망나니에 폭력을 휘두르던 이들이라 매퀸은 밖에서 나돌곤 했다. 15세에 벌써 그는 길거리에서 몇몇 어린 양아치들과 어울리며 도둑질을 저질렀다. 매퀸은 스타가 된 이후에도 자신의 새아빠를 "개새끼"라고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새아빠가 엄마를 무지하게 패놓은 걸로 모자라, 매퀸을 계단 밑으로 던져버리는데, 이에 매퀸은 새아빠에게, "한번만 더 내 몸에 손을 댄다면 내 맹세하는데 당신을 죽여버리겠어"(…) 라고 협박한다. 망나니 새아빠도 이런 반응에 쇼크를 먹었는지, 엄마를 설득시켜 매퀸을 소년원에 보내게 된다.

소년원에서 몇 년을 썩은 매퀸은 나오자마자 미합중국 해병대로 입대하여, 몇 년을 떠돌이 생활을 한다. 이 소년원 생활과 군 생활은 원래 보스 기질이 있던 매퀸을 더욱 강인하게 만들었고, 불굴의 해병 정신은 나중에 배우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역시나 매퀸은 매퀸이었는지(…) 곱게 군 생활을 하진 않았다. 이병에서 일병으로 진급[2]했다가 사고 쳐서 강등되기를 7번이나 거듭한다든지, 주말 휴가를 가서 애인과 노느라 2주간 안 돌아오다 헌병대에 붙잡혀 영창에 간다든지...하지만 혹한기 훈련 사고에서 해병 전우 다섯 명을 구하기도 하는 등 할 때는 잘 했고, 대통령 경비 임무로 옮긴 후에 50년에 명예 제대를 했다. 이후 매퀸은 액터스 아카데미에 들어가게 되고, 얼마 되지도 않아 대스타가 된다.

1963년 라이프지는 스티브 맥퀸을 다음과 같은 칭찬으로 평했다. "잘난 체하는 캐그니, 텁털한 보가트, 거칠게 다듬은 다이아몬드의 가필드를 겸비한 배우".

남자 중에 남자였던지 자연인으로서도 온갖 마초성을 내뿜었던 터라 뒷얘기가 상당히 많다.

첫째로는 미친 듯한 속도광에 운동광. 이는 아버지부터가 스턴트 운전수였던 만큼 핏줄에 흐르는 기질이었던 듯싶다. 모터사이클에 완전히 미쳐있었고, 버기카, 스포츠카, 경비행기 등 다양한 것들을 모는 데 미쳐있었고 소질도 있었다. 평생 오토바이 201대, 자동차 55대, 비행기 5대 등, 아무튼 질주할 수 있는 모든 장비를 수집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동료 제임스 코번은 "커다란 장난감을 즐기는 덩치 큰 어린아이" 라고 했다 전해진다. 그러나 유명해지고 돈 많이 벌었다 하여 사치를 부린 사람은 결코 아니다. 사실 그는 이 특별한 취미 외에는 소문난 구두쇠로 유명했고, 또 자신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 때문인지, 불우한 어린아이들을 돕는 데 거금을 쾌척했던 사나이였다.

그의 영화들 중 하나도, 그의 카레이싱에 대한 열망을 보여주는 듯한 영화로서, 스턴트 없이 위험한 장면들을 그가 직접 소화하며 혼신을 다해 찍은 《르망》이었다. 영화 자체는 여러 곡절로 인해 망했다는 평을 듣지만.

두 번째로는 여성편력이 있다. 결혼과 이혼을 밥 먹듯 했고, 좀 더 나이 먹어서는 당시 잘나가던 영화 제작자 로버트 에반스의 아내였던 당대 최고의 스타 알리 맥그로를 꼬셔 결혼에 성공한다. 둘의 결혼은 얼마 가지 못했다. 다음 부인이었던 바바라와는 1년밖에 살지 못하고 요절한다.

세 번째로는 오기에 가까운 자존심과 자신감이 있었다. 그는 아무것도 없는 신인 시절부터 자신이 최고라는 생각에, 자신의 비중을 당당하게 요구하곤 했다고 한다. 폴 뉴먼과의 라이벌 구도로도 유명했다. 후에 대성공한 이후로는, 오히려 쉬고 싶다며 쏟아지는 출연 요청을 모조리 거부하고 은거하기도 했다. 건방지다거나 오만방자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이런 그의 자신감은 주변 많은 이들을 질리게 만들기도 했다.

영화를 찍을 때마다 출연 조건으로 대량의 물품을 공짜로 줄 것을 요구하는 기행(?)으로 유명했다. 대개 볼펜, 청바지, 일회용 면도기 같은 값싼 생필품이나 학용품 종류를 수십 상자씩 챙기곤 하여, 저 인간이 왜 저러나 하는 궁금증을 유발했는데…

알고 보니 이 물건들을 한 소년원에 기증하고 있었다. 극히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매퀸 자신도 소년원 생활을 했고, 대성한 후에도 그 시절을 잊지 않았던 것.

그의 최후는 꽤나 쓸쓸했다. 그는 석면[3]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폐암에 걸려, 이를 몇 년간 비밀에 부치고 두문불출한 채 치료법을 찾아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 말기에 들어 그는 멕시코에 가서 비과학적인 치료를 받아보기도 했지만 결국 암은 멈출 수가 없었고, 비쩍 마른 채 쉰 살로 삶을 마감한다. 죽기 직전 목사에게 자신의 오만했던 삶으로도 천국에 갈수 있냐고 애원했던 일화가 있다고 카더라.

출연할 뻔 했던 영화들이 후덜덜하다. 《람보》, 《지옥의 묵시록》, 《티파니에서 아침을》, 《내일을 향해 쏴라》, 《프렌치 커넥션》, 《더티 해리》, 《대부》, 《죠스》, 《보디가드》 등등…

1.2 작품들

  • 《블롭》 (1958년)
1988년에 꽤 고어적으로 리메이크된 《우주 생명체 블롭》 원작으로 SF 호러영화. 여기서 주인공을 맡는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를 리메이크한 영화. 여기서 역으로 나온다. 엘머 번스타인이 작곡한 주제곡이 유명하다.
  • 《지옥의 영웅》 (1962년)
돈 시겔 감독의 전쟁 영화.
탈옥영화의 수많은 클리셰를 제공한 영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수용소 탈출 실화를 그렸다.
  • 《신시내티 키드》 (1965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나 《밤의 열기 속으로》 등의 영화로 유명한 노먼 주이슨의 영화. 폴 뉴먼에게 《허슬러》가 있다면, 스티븐 매퀸에게는 《신시내티 키드》가 있다.
  • 《산 파블로》 (1966년)
1920년대 중국을 배경으로, 현지에서 미국의 이권 보장을 위해 활동하던, 미합중국 해군의 강상 포함 USS Sand Pebbles에 부임한 기관중사 홀맨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 주인공 홀맨 중사는 군 생활을 10년간 하면서 근무지를 7번이나 옮길 만큼[4] 적응력이 떨어지는 인물인데, 스티브 매퀸 자신의 해군 시절 모습이 어느 정도 투영된 듯하다. 영화 자체는 중국인을 야만적으로 그리고 제국주의를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 《네바다 스미스》 (1966년)
정통 서부극으로, 건달 셋에게 부모를 잃은 청년이 원수들을 하나하나 찾아 복수하는 영화이다. 허나 마지막에는 복수의 부질없음을 깨닫고, 마지막 원수를 '죽일 가치도 없다' 라며 그냥 보내주며 영화가 끝난다.
  •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 (1968년)
노먼 주이슨의 영화. 상대역은 보니와 클라이드로 스타덤에 오른 페이 더너웨이였다. 개봉 당시 평가는 좋지는 않았지만, 후대로 갈수록 소위 컬트 무비로 재평가를 받아, 99년에는 피어스 브로스넌과 르네 루소 주연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감독 할 애슈비가 편집을 맡은 작품이기도 하다.
피터 예이츠의 영화. 자동차 추격 장면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작품이다. 여기서 속도광 매퀸은 직접 운전을 했다. 이 영화는 《더티 해리》와 《프렌치 커넥션》과 더불어 형사 영화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 《르망》 (1971년)
생각 없이 달리는 자동차 경주를 다룬 영화. 이 영화는 속도광 매퀸의 꿈의 프로젝트였지만, 존 스터지스 감독의 하차, 제작비 초과, 스태프들의 파업 등으로 악몽이 되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내내 미친듯이 자동차만 몬다. 거의 다큐멘터리 느낌이 날 정도. 서킷 자동차 경주 영화가 대부분 재미가 없지만, 이건 더럽게도 재미가 없다. 흥행 실적도 좋지 않아서, 돈이 떨어진 매퀸은 일본에 가서 혼다 오토바이 광고를 찍었다.
  • 《주니어 보너》 (1972년)
샘 페킨파가 감독한 영화로는 폭력적인 스토리가 아니지만, 옛날 시대를 그리워하는 인물이 나오는 건 공통적인 요소.
  • 겟어웨이》 (1972년) 국내 개봉 당시엔 게터웨이라고 쓰기도 했다..
매퀸은 당시 파라마운트 사장이었던 로버트 에반스의 아내였던 알리 맥그로우[5]를 유혹해 남편과 이혼시키고 결혼하여. 실사판 NTR을 찍었다. 그리고 이 영화에 함께 부부로 출연했는데 나중에는 이혼했다. 영화 자체는 괜찮다. [6]
라이벌인 폴 뉴먼과 크레딧에 누가 먼저 나오느냐로 싸우다가 결국 동시에 나오는 방법을 썼다.
그의 유작.

2 영국의 영화감독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
제 85회
(2012년)
제 86회
(2013년)
제 87회
(2014년)
벤 애플렉
조지 클루니
그랜트 헤슬로브
(아르고)
스티브 매퀸
데드 가드너
제러미 클레이너
브래드 피트
안소니 카타가스
(노예 12년)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존 레셔
제임스 W. 스코치도폴
(버드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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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10.9.~

영국 흑인으로 풀 네임은 Steven Rodney McQueen. 런던에서 태어났으며, 그레나다계 흑인이라고 한다. 원래는 미술 전공자였지만, 비디오 아트를 거쳐 영화계에 투신한 케이스다. 비디오 아트 시절에도 상당히 유명해서, 감독 데뷔 전에도 2002년에 이미 영국 왕실에서 훈장을 수여받고, 아프가니스탄 전쟁 기록 예술가로도 활동하기도. 흑인 감독 중엔 스파이크 리와 더불어 유명한 편이다. 할리우드 연출계가 상당히 백인 일색이긴 하지만.

대표작으로는 《헝거》, 《셰임》, 《노예 12년》이 있다. 《헝거》로 칸 영화제 황금카메라 상을 수상하면서 화려하게 데뷔했으며, 《노예 12년》으로 2014년도 골든글로브 작품상, 뉴욕 비평가협회 감독상, 미국 영화제작자협회 작품상, 그리고 흑인 최초의 제 86회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등을 수상하였다.

아일랜드의 영화배우 마이클 패스벤더와 자주 협업하는데, 《헝거》와 《셰임》은 패스벤더가 주인공이며, 《노예 12년》 역시 마이클 패스벤더가 작품의 한 축. 이쯤 하면 팻시가 그의 페르소나라고 봐도 될 듯하다.

감독의 특색으로 인간의 육체를 매우 중요한 매개체로 다루는 경향이 있다. 초기 비디오 아트에서 극명하게 드러났고, 데뷔작 《헝거》에서는 IRA 요원이 단식 투쟁을 하면서 말라가는 육체와 지저분한 분비물들을 통해, 정치적 저항과 정신적인 피폐함을 드러냈으며, 《셰임》에서는 반대로 넘쳐흐르는 욕망에 중독되어버린 육체가 기계적으로 욕망을 탐닉하지만, 결국 진정한 소통을 이룰 수 없어 슬픔에 빠진 개인을 다루고 있다. 《노예 12년》에서도, 지식인이 육체에 가해지는 끔찍한 고통을 통해 시대의 잔학성을 체득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영화 내에서 노출 장면이 잦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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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학창 시절엔 축구부에 속해 있었고, 토트넘 핫스퍼의 팬으로 알려져있다. 상당히 멋쟁이여서 패션 잡지에도 자주 불려가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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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12년》에서 추이텔 에지오포와. 동네 아저씨다.[7]

대영 제국 3등급 훈장(CBE)을 수여받았다.
  1. 북미에서의 발음은 매쿠인에 가깝지만, 이를 굉장히 빨리 발음하면 매퀸 비슷하게 들리긴 한다. 그러나 영어권 원어민들 대다수는 한국식으로 매퀸이나 맥퀸이라고 하면 못 알아듣는다.
  2. private - private first class : 미군 계급 체계는 각 군마다 조금씩 다르며, 우리 나라 이병-일병과 1:1 대응하지는 않는다. 전시 외엔 지원병 제도라 전부 직업 군인이기도 하고.
  3. 당시에는 석면이 위험한 물질이라는 인식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레이싱용 방호복, 장갑에 석면이 자주 쓰였다.
  4. 육군과 달리(사실, 한국과 달리 미 육군은 장교보다 턴은 길어도 부사관도 부대를 계속 옮긴다.) 해군은 함정과 육상을 오가야 하므로 근무지 이동이 잦은 편이나, 이 정도면 그 정도가 심한 편. 10년 근무자면 보통 3~5회 정도 옮겼을 것이다.
  5. 영화 《러브 스토리》에서 여주인공 역을 맡았다.
  6. 94년에 알렉 볼드윈 - 킴 베이싱어 부부 배우 주연으로 리메이크 되었는데, 원작보다 못하다는 평. 이 부부도 곧 이혼했다. 평행이론?
  7. 에지오포도 국적은 영국이다. 이쪽은 나이지리아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