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야 카디르

영어: Rebiya Kadeer
위구르어: رابىيە قادىر(라비예 카디르, Rabiye Qadir)
중국어: 热比娅·卡德尔(간체자), 熱比婭·卡德爾(정체자), Rèbǐyà Kǎdé'ěr (한어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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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구르의 여성 독립운동가이자 인권운동가 위구르인의 어머니 [1]

1 생애

1947년 1월 21일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아러타이(阿勒泰)[2]에서 태어났으며, 현재는 미국으로 망명하여 버지니아 주에서 거주하고 있다.

그녀는 처음에 가난한 인생을 살았지만, 세탁 사업을 하면서, 후에 백화점, 무역회사를 경영하는 사업가가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꼭 좋은 인생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여섯 아이를 낳았지만 남편의 학대로 인해 28살에 이혼을 했다.

그 이후 1999년 위구르 독립운동을 했던 남편에게 보내준 신문 기사로 인해 중국에서 국가 기밀 누설죄로 투옥되기도 했다. 하지만 2005년 미국 국무부 장관의 방문을 앞두고 신병치료를 위한 명목으로 가석방되었다. 3월 17일 미국으로 망명하여 가족들을 재회한다.

그 이후에도 위구르 독립운동을 지지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독립을 하되 이슬람 극단주의 성향처럼 폭력으로써가 아닌 오직 평화적으로만 독립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위구르 무장단체인 ETIM의 노선을 반대했다. 2006년에는 노벨 평화상 후보로 지명되었다.

1.1 흑역사?

하지만 이렇게 활약을 벌였던 라비예 카디르도 결국 최대의 흑역사를 남기고 말았는데 하필이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는 것이다. 충격과 공포 더욱이 그녀는 무슬림이기에 야스쿠니를 떠나서 신사참배는 개인적인 부분에서나 종교적인 부분에서도 본다면 이슬람 교리와도 배치될 가능성이 있다.

[1]. 단 이 기사 역시 너무 중국 중심적으로 치중되어 있으므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는 점만 제외하면 나머지는 중립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물론 정확히 말하자면 카디르보다는 자민당과 일본 정치인이 더 문제가 많은 게 사실이고, 일본 또한 그녀의 이런 행동을 이용하는 것 역시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3] 물론 현재 위구르의 상황 및 중국이 위구르에게 벌이는 추태를 보면 카디르를 포함한 위구르인의 반중감정은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반중감정과는 별개로 적어도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거나 참전한 원흉들 일본군이 잠들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데다가, 그것도 참배했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4]

그렇다고 중국의 위구르 탄압이 잘한 것은 전혀 아니며[5], 일본의 만행은 물론, 이런 우경화는 더더욱 비난받아 마땅하다.
결국 중국의 소수민족 탄압과 일본의 극우들이 위구르 독립운동을 선전용으로 쓰면서 중국을 비난하는 점이 이 사건을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솔직히 일본이 중국의 행태를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의문이다.

하지만 결국 인권운동가이기도 한 그녀가 이곳을 참배했다는 사실은 어떻게 보면 씁쓸하기도 하다. 물론 달라이 라마 문서를 보면 달라이 라마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는 내용이 있긴 하지만.
  1. 티베트에는 달라이 라마가 있다면, 위구르에는 이 사람이 유명하다 [2]
  2.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북쪽에 있는 도시이며, 위구르어로는 알타이(ئالتاي شەھىرى , Altay). 阿勒泰는 한자 표기.
  3. 오히려 카디르보다는 일본의 정치나 정치인이 더 문제가 많다.
  4. 참고로 일본이 중국을 싫어하며, 위구르 역시 이런 점에 의해 일본을 호의를 느끼는 듯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와는 별개로, 아무리 위구르인 중에서도 중국을 싫어해도 일본의 과거사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으며,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위구르인도 있다.
  5. 당장 이스라엘의 사례를 생각해보자. 이스라엘을 세운 이슈케나짐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을 학살, 탄압하고 있으며, 그 모습이 자신들이 당했던 홀로코스트와도 절반은 비슷하게 보일 정도로 참혹하다. 중국 역시 난징대학살, 731부대 등을 당했음에도 이런 잔혹한 모습들을 위구르를 포함한 다른 소수민족들에게도 보이니 결국 소수민족 탄압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