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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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년 수상자 마더 테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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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수상자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과 드 클레르크 전 대통령
2010년 수상자 류샤오보(본인이 중국 정부에 의해 감금되어 있는 상태여서 상징적인 의미로 빈 의자를 놓고 수상식을 진행했다.)
2014년 수상자 말랄라 유사프자이
2015년 수상자 튀니지 국민4자대화기구(노동계 대표인 총노조, 산업계를 대표하는 산업·무역·수공업연맹 시민단체인 인권연맹 법조계의 변호사회 등 4개의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기구)
1 개요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시상하는 인류의 평화에 이바지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상. 노벨상 안에서도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다른 노벨상들과는 달리 노르웨이에서 수상하는 것이 이색적이다. 노벨이 평화상은 노르웨이에 권한을 이임했기 때문이다. 1901년의 첫 수상자는 적십자를 창립한 스위스의 앙리 뒤낭과 국제 평화 연맹을 창설한 프랑스인 프레데리크 파시이다. 또한 학문적 성취와 무관하게 탈 수 있는 노벨상이기도 하다.[2]
2 노벨평화상 이야기
1948년 마하트마 간디는 노벨 평화상의 유력한 후보였으나 수상자 발표를 며칠 앞두고 암살당했다. 노벨상은 사후에는 수여되지 않기 때문에, 그 해 노벨상은 아무에게도 수여되지 못했다. 간디 역시 당연히 그랬을 것이라는 통념과는 달리,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아돌프 히틀러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 받은적 있다. 하지만 브란트는 나중에 '웃자고 한 일'이라며 후보 추천을 철회했다. #
전두환도 노벨평화상 후보였다. 쿠르드족 학살을 명령한 윈스턴 처칠조차 자신이 노벨평화상 후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한다.
2.1 논란
다른 노벨상들과는 달리 논란이 크다. 중국의 반체제 인사가 수상하기도 하고, 애시당초 '평화'라는 주제로 상을 주는 것이 각 국가의 이해관계와 정치적 문제와 연관되기 때문에 모호할 수밖에 없으며, 평화상 분야에서 다소 모호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노벨상 중에서 가장 낮은 등급으로 취급하는 사람들도 있다. 노벨 친서방상 내지는 노벨 호구상
이 때문에 정치적 수장들의 수상은 항상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대표적으로 베트남 전쟁과 관련되어 상을 받은 헨리 키신저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련으로 상을 받은 양쪽 수장[3]의 수상에 대한 비판이 많다. 1978년 안와르 사다트[4], 메나헴 베긴[5]의 경우도 비슷하다.
1906년에는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러일전쟁의 원활한 해결'을 근거로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동아시아의 어느 반도국가는 그렇게 원활하게 이웃 섬나라에 넘어갔다. 안습
1974년에는 일본의 전 총리 사토 에이사쿠가 비핵 3원칙을 확립했다며 수상되었다. 여기에는 당시 총리 다나카 가쿠에이가 정적 사토를 회유하기 위해 전방위 로비를 벌였다는 설도 있다.
우드로 윌슨도 민족자결주의와 국제 연맹을 제창했다는 이유로 1919년 평화상을 받았다. 물론 민족자결주의는 1차 세계대전 패전국에 합병됐던 나라에게만 해당됐던 얘기지, 승전국의 식민지(예를 들어 인도, 한국[6])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항목 참조.
이오시프 스탈린도 2차대전 종식에 기여했다는 내용으로 1945년과 1948년 노벨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80년대부터는 객관적인 자료와 국제적 인정에 맞추어서 상을 시상하는 등 노력이 많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많이 개선되었다.
특히 80, 90년대에는 레흐 바웬사(1983), 데즈먼드 투투(1984), 달라이 라마(1989), 미하일 고르바초프(1990), 아웅 산 수 지(1991), 넬슨 만델라(1993)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마다 적절하게 상이 주어졌다. 동티모르의 독립운동가들과 아일랜드 평화 협상을 타결시킨 사람들에게도 상이 주어졌다.
그리고 1986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루마니아 태생 유태인계 미국 작가 엘리 비젤(1928~2016)도 논란이 컸다. 홀로코스트를 고발한 책자와 수기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주제에 시오니즘을 찬양하고 팔레스타인 학살을 옹호했기 때문이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서독을 방문해 2차대전 전사자 추모 무덤을 참배한 걸 나치 독일 참배라고 비난하다가 강제 징집자 전사 무덤 참배를 나치라고 하면 서독 모두가 나치라는 주장이라는 비난으로 까였다. 늘그막에는 같은 유태인인 버너드 매도프에게 사기로 많은 재산을 잃었다.
2000년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상을 수상했는데, 수상 이유를 놓고 논란이 일어났다.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이끌어 냈다는 것이 노벨상위원회가 밝힌 사유였는데, 남북정상회담의 뒤에는 대북송금 특검이 있었고,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라는 것도 북한의 핵개발을 통해 상당부분 무효화 되었다. 결국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는데, 자세한 건 아래 한국 노벨평화상 수상자 항목(한국은?) 참고.
2009년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상을 받게 되었다. 이로써 빌 클린턴을 제외한 지미 카터 이래 모든 민주당 행정부의 지도자들은 평화상을 한 번씩 받게 되었다. 그래봐야 카터와 오바마밖에 없지만.[7] 그런 것 때문에 노벨평화상은 신뢰를 잃고 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특히 버락 오바마의 경우 대다수의 사람들이 "오바마가 당선 된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걸 받음? 뭘 했는데?" 라고 반응할 정도로 뜬금 없었다는 평. 오바마 본인도 조금 당황한 듯하다.(...) 혹자는 "eh, he got rid of bush(에이, 쟤가 부시를 쫓아냈잖아)" 로 모든 걸 설명하기도 했다 몇몇 사람들의 말로는 "아직 한 일의 결과도 안 나왔는데 받아도 너무 이르게 받았다" 라는 듯. 논문 발표도 안 했는데 노벨상 받는 거랄까.
2010년에는 천안문 6.4 항쟁(천안문 사태)와 관련된 인사인 류샤오보가 수상했다. 그런데 이분은 감옥에 있으며, 앞으로 나오기도 힘든 상황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이 결정되었다. 처음에는 못 믿겠다는 반응이었지만, 실제로 확정되어 버리자 중국의 높으신 분들 위주로 난리가 났으며, 수상 발표가 난 뒤 '우리는 이번 노벨평화상 인정할 수 없다.'라면서 국제문제로까지 만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참류가 수상한 이후 중국에서 류의 가족, 친지, 지지자 등 200명이 넘는 사람에게 출국금지 크리를 먹였는데 그 이유는 노벨상을 대신 받는 걸 못하기 위해서라고.
2010년 12월 10일. 중국 정부는 류샤오보 본인은 물론, 류샤오보의 모든 가족, 친척들과 인권운동가 등 수백여명을 출국금지를 시켰기 때문에, 결국 노벨평화상 수상은 공석으로 진행되었다. 노벨위원회 측에서는 타국에서 활동하는 중국 인권 운동가에게 대리수상을 시켰을 수도 있지만, 특별히 상징적으로 빈 의자에다 노벨평화상 메달을 수여하였다. 빈 자리에 노벨평화상을 수여한 것은 1935년 나치 히틀러 시절 카를 폰 오시에츠키 수상자 이후 처음이며, 현장에 참여했던 인원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서 3분 동안 기립박수를 쳤다.
게다가 여기서 끝나지 않았는데, 2012년 12월에 발표된 AP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류샤오보가 수상자로 발표된 직후부터 26개월째 아무런 법적근거도 없이 아내를 가택연금 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전화, 인터넷도 모두 차단한 채 외부와의 접촉을 금하게 하고 있고, 24시간 10여명의 건장한 감시자들에 의해 철통같은 감시를 받고 있다고 한다.
중국이 이 노벨평화상에 맞붙기 위해 만든 게 공자평화상. 국제적으로 무시당하는 건 두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타이완에서조차 무시당한다. 결국 이 상은 폐지되었지만 대신 다른 상이 만들어진다고... 자세한 것은 공자평화상 항목 참조.
2012년에는 유럽연합이 수상했는데, 유로화 사태 등으로 인해 유럽 전체가 분란에 휩싸인 가운데 유럽연합 자체에 대해 적대적인 여론이 점점 커지는터라 부적절한 수상이라고 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2.2 개인만 받는가?
한 개인이 아닌 집단이 받는 경우도 있다. 1910년의 국제 평화국, 1963년의 국제 적십자사,1977년의 국제앰네스티, 1999년의 국경 없는 의사회, 2001년의 UN, 2007년의 IPCC(International Panel on Climate Change,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 2012년 유럽연합, 2013년 화학무기금지기구(OPCW(Organisation for the Prohibition of Chemical Weapons)) 2015년의 튀니지 국민4자대화기구 등이 좋은 예이다.
2.3 한국은?
한국에서는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에 '한국과 동아시아 전반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공로 그리고 남북화해와 평화에 대한 노력'으로 노벨평화상을 받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이것이 한국인이 받은 최초이자 유일한 노벨상이다. 그리고, 동티모르에서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학살된 사건을 APEC 등의 국제무대에서 주도적으로 막을 것을 건의해 결국 학살을 막아낸 것도 수상의 이유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이 때문에 동티모르에서는 아직도 대한민국에 대한 평가가 후하다.
몇몇 사람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북평화 때문에 상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것의 공도 있지만 사실상 김대중은 박정희와 전두환의 독재시절부터 민주주의 운동을 하면서 위협을 받고, 미국에 피신하여 그곳에서 보호를 받을 정도로 노력을 하였기 때문에 그만한 자격을 인정받은 것이다. [8]
이에 대해서 많은 왜곡이 있는데 노벨상 추천을 받기 위해 국정원 등을 통해 공작을 벌였다는 '김대중 대통령 노벨상 수상 로비' 설이 대표적이다. 당시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김 대통령이 자기가 노벨상 타기 위해 로비를 했다'라는 주장을 한 것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김대중은 노벨상을 받아도 안되고 노벨상을 받더라도 반납해야 한다' 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노벨위원회 위원장인 군나르 베르게는 "난 한국인에게 노벨상을 주지말라고 한국인들에게 로비 시도를 받았다. 노벨상은 로비가 불가능하고 로비를 하려고 하면 더 엄정하게 심사한다. 한국인은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 김대중의 노벨상 수상을 반대하는 편지 수천통이 전달되었다."라는 말을 했을 정도.
당시 한나라당 이신범 전 위원을 필두로 한나라당 원외위원장들이 오슬로에까지 가서 김대중 노벨상 저지 시위를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무슨 국제망신을이에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나라의 위신이 깎일 수 있는 당내 일부의 모난 행동이 한나라당의 공식적인 입장인 것처럼 외부에 비쳐지는 것이 부담스럽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김대중은 1987년 독일의 빌리 브란트 수상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후 사민당 동료의원 80여명과 함께 김대중을 추천한 뒤 줄곧 해외의 유력인사로부터 총 15번이나 평화상 후보로 추천받았다. 선거에서 이겨서 대통령으로 당선이 된 이후 벌인 로비를 통해 추천을 받았다는 주장이 얼마나 근거 없는 말인지 알 수 있다.
또한, 노벨 평화상은 노벨상 중에서도 노벨이 상을 만들게 된 의지와 가장 가까운 중요한 상이었던데다 2000년, 새천년 최초수상자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런 상징성이 있는 수상을 일부의 음해처럼, 부정한 방법으로 받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최초로 위원회에서 반대 의견 없이 만장일치로 수상이 결정되었다.[9]
대한민국의 극우세력들의 경우,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 때문에 노벨평화상에 대해 평가절하하는 사람도 있고 노벨평화상을 로비로 탔다는 불가능한 헛소문을 유포하기도 하며 나무위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또 다른 인물인 넬슨 만델라에 대해서도 폄하하기도 한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리뉴얼되기 이전, 광화문점 입구에는 여러 나라의 노벨상 수상자들의 캐리커처를 국가별로 진열해놓고, 한 자리는 "한국인 수상자를 기다립니다"라는 문구를 써 놓고 비워뒀다. 그러다가 2000년부터는 김대중의 캐리커처가 들어가게 되었고 '다음 수상자를 기다립니다' 라는 문구가 다시 써졌다.
한편, 2013년에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회장님 조용기 목사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건의한다는 기사가 떴었다. 아 씨바 할말을 잃었습니다
3 역대 수상자
역대 수상자 일람은 노벨평화상/수상자 항목을 참고바람.- ↑ 수상 당시 아웅산 수지 여사는 미얀마 군사정권에 의해 가택연금 상태였고, 가족이 대신 수상했다. 사진 속의 모습은 수치 여사가 복권된 후인 2012년.
- ↑ 이에 혹자는 바보도 탈 수 있는 노벨상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 ↑ 야시르 아라파트, 이츠하크 라빈, 시몬 페레스
- ↑ 군부 독재자로 이집트에서 악명이 높았다
- ↑ 팔레스타인에서는 히틀러 같은 인물이다 또한 극단적 시오니즘 테러 단체인 이르군(Irgun)간부이기도 했다!!
- ↑ 3.1 운동이 바로 이 민족자결주의 선언에서 삘을 받고 발생한 운동이었다.
- ↑ 다만 클린턴 정부 시절 부통령이었던 앨 고어가 2007년에 수상했다.
- ↑ 당시 박정희가 김대중을 암살하려고 했을 당시 미국에서 경고를 했고, 마이클 잭슨 같은 경우는 김대중이 미국에 피신했을 때 그의 행동에 감명을 받아 나중에 대통령 취임식 당시에 방문할 정도였다.
- ↑ 당시 가이르 룬데슈타트 노벨위원회 사무총장은 인터뷰에서 "남북정상회담이 김대중 대통령 수상의 유일한 결정요인이 아니었다. 우리는 수년동안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김 대통령의 투쟁노력을 추적해 왔다."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