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폴트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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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페르디난트 3세레오폴트 1세요제프 1세

1640. 6. 9 ~ 1705. 5. 5
재위 : 1658~1705

전쟁으로 시작해 전쟁으로 끝났다는 평까지 들을 정도로 치세가 모두 전쟁으로 도배되었던, 유럽의 격동기를 살았던 신성 로마 제국황제. 페르디난트 3세와 마리아 안나[1]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원래는 형이 제위를 계승할 예정이었기에, 어린 나이서부터 가톨릭 신학교로 들어가 종교인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2]레오폴트는 프랑스어를 싫어해 궁중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다. 형 페르디난트 4세가 1654년 이른 나이에 천연두로 급사하면서 갑작스레 제위계승을 준비하게 되었고, 뒤이어 아버지 페르디난트 3세가 1657년에 죽으면서 얼떨결에 1658년 황제가 되었다.

그가 만 18세의 어린 나이로 제위에 오른 데다, 30년전쟁으로 피폐해진 오스트리아를 맡아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었다. 거기다 합스부르크 오스트리아의 영원한 원수, 프랑스부르봉 왕조는 그의 제위계승을 방해하는 공작까지 펼쳤다. 프랑스의 재상이었던 마자랭이 바이에른의 선제후 페르디난트 마리아를 황제에 옹립하려 한 것이다.

결국 레오폴트 1세는 프랑스로부터 제위계승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조건으로 같은 합스부르크 왕가인 스페인에 대한 지원을 포기하는 실책을 저지르고 말았다. 한 술 더 떠, 프랑스와 스페인 영토를 균등분할하기로 합의한 사실까지 탄로나면서 스페인에서의 감정이 크게 나빠졌다.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의 단절은 이때부터 시작된 셈. 레오폴트는 그 대신 라인 연맹[3]에 가담하였다.

스웨덴 왕 칼 10세가 헝가리의 게오르그 라코치[4]와 짜고 오스트리아를 공격하자 폴란드와 연합하여 대항하기도 했다.

거기다 영원한 숙적 프랑스에선, 태양왕이라 불린 루이 14세의 통치하에 적극적인 확장정책을 펼치면서 오스트리아와 잦은 충돌을 벌이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여러 차례 불리한 상황에 놓이곤 했다. 거기다가 프랑스가 이교도오스만 제국과 공수동맹까지 맺어, 오스만으로부터 여러 차례 공세를 받았다. 1663년에 오스만 제국과 전쟁을 벌였을 때는 향후 20년간 서로 침략하지 않는다는 조약을 맺었다. 1683년 2차 빈 포위때에는 일찌감치 피난을 떠나기도 했다. 다행히 폴란드 왕 얀 소비에스키의 도움으로 위기는 벗어날 수 있었다. 그 후 뛰어난 장군인 사부아 공자 외젠의 활약으로 오스만 제국을 몰아내면서 1699년 카를로비츠 조약을 맺어 헝가리를 완전히 지배하게 된다. 그와 더불어 헝가리 의회에게 합스부르크 가가 헝가리의 왕위를 세습한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하지만 1697년 프랑스와의 전쟁을 끝낼 때는 슈트라스부르크를 프랑스에 내줘야 했다.

그러면서도 잦은 전쟁으로 파탄난 재정을 메꾸기 위해 헝가리 지방을 착취하다 대규모 반란에 직면해, 착취한 거보다 더 큰 전비를 쓰는가 하면(…), 대외전쟁에서 제후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보니 이들에게 저자세로 나가며 우대책을 써야하기도 했다. 1663년에는 제국의회가 해산되고 레겐스부르크 회의가 새로 만들어졌다. 또 하노버 공작이 선제후가 되었다. 이는 안 그래도 결속력이 약한 신성 로마 제국에 큰 타격이었다. 이 와중에 브란덴부르크 선제후에 왕의 지위를 내려 프로이센을 공식적으로 출범시켰는데, 반 세기 후에 일어난 일을 생각한다면….

그걸로 부족해 철저한 가톨릭 국가답게 신교에 대한 탄압에 더더욱 박차를 가해서 상공업의 발전도 지지부진. 오스트리아의 상공인 계층은 죄다 프랑스[5]네덜란드 등지[6]로 빠져나가게 되었다.

그나마 오스트리아가 낳은 불세출의 명장인 사부아 공자 외젠 덕분에 여러 차례 위기를 넘기고 오히려 큰 승리를 거두기도 하였으나 거듭된 전쟁과 외교의 실패는 제국에 서서히 어두운 그림자를 가져다 주었다.

말년에는 자신이 버리다시피 한 스페인 왕위가 부르봉 왕조에 간다는 사실에 스페인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고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에 개입하여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었으나 전쟁 중인 1705년에 죽었다.

그는 증손자 요제프 2세와 마찬가지로 음악에 조예가 깊어 오라토리오나 무용조곡들을 작곡했으며 사냥과 승마에도 취미가 있었다. 레오폴트 1세는 세 번 결혼하였는데 첫째 황후는 스페인 국왕 펠리페 4세의 딸 마르가레테 테레사였고 두번째 황후는 티롤의 클라우디아 펠리시타스였는데 두 부인 다 22살에 사망했다(...). 세번째 황후는 팔츠의 엘레노오레였는데 10명의 자녀들을 낳았다. 요제프 1세카를 6세가 이 두 사람에게서 태어난 아들이다.
  1. 스페인 왕 펠리페 3세의 딸
  2. 그렇다고 순수한 종교인은 아니다. 왕위계승에서 밀린 유럽 왕실의 일원들은 이렇게 교회에 들어갔다 이후 대주교나 추기경까지 올라가서 다른 의미로 권력을 가지게 된다. 일본의 다이묘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차남 이하는 승려가 되는게 관례였다.
  3. 독일 제후들의 연합
  4. 헝가리 왕위를 찬탈하려고 했다.
  5. 낭트칙령이 폐지된 건 1685년이라 그때까진 주로 프랑스로 도피했다.
  6. 여긴 프랑스가 위그노 학살 할때부터 전통의 종교적 망명의 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