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니 콜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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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로니 콜먼 (Ronnie Coleman)
출생1964년 5월 13일
신장178cm
체중135kg
미스터 올림피아8회

Yeah buddy! Light Weight baby!!!

1 개요

괴물같은 거대함이 90년대 이래 프로 보디빌딩계의 대세가 된 이후 그 거대함의 정점을 찍은 선수였다. 흔히 보디빌더하면 떠올리는 무지막지한 근육량과 일반인은 엄두도 못내는 중량을 번쩍번쩍 들어올리는 근력에서는 누구보다 그러한 이미지에 잘 부합되는 보디빌더이다. 전성기 시절 수상 기록도 기록이지만 트레이닝때 질러대는 특유의 괴성같은 본인의 캐릭터를 만든 특징들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기도 한 선수였다.

2 커리어

루이지애나주 출생으로 텍사스 그램블링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했으며 대학 미식축구나 파워 리프팅 선수로도 활약했었다. 졸업도 무려 우등생으로 할 정도로 근육 이미지와는 달리 머리도 좋았던 듯. 그러나 졸업 후 본인은 딱히 진로를 확실히 정하지 못해 일단 되는대로 텍사스에서 경찰관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그의 어마어마한 근력을 보고 주변에서 파워 리프팅을 해보라는 권유를 받아 파워리프팅을 시작했으나 본인은 트레이닝 하던 중 이참에 보디빌딩을 해보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아예 보디빌더로 전향하게 된다.

이후 경찰관일을 파트타임으로 유지하면서 보디빌더 커리어를 쌓아나가 곧 프로에 입성하고 1998년에 출전한 미스터 올림피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이후 경찰관을 관두고 본격적으로 보디빌더로 활약하면서 올림피아 대회를 포함 각종 프로 대회를 휩쓸기 시작하여 무려 8회 올림피아 우승으로 리 헤이니와 역대 최다 동률을 이루고, 프로 대회 총 26회 우승으로 역대 최다 수상자로 등극하게 된다.

2000년대 초에는 제이 커틀러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하면서 보디빌딩 역사에서 가장 치열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기도 했었다. 둘의 대결은 몇몇 연도에서는 커틀러가 이겼어야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올만큼 아슬아슬했으나 2006년까지 콜먼이 커틀러를 만년 2위 콩라인 신세로 밀어내면서 올림피아의 왕좌를 쭉 지켜나간다.[1] 그러나 2005년 역대 최고의 괴물도 부상을 겪어 신체 컨디셔닝이 무너지게 되면서 2006년에는 커틀러에게 왕좌를 내어주게 된다.[2] 이후 2007년 은퇴를 결정한다.

3 트레이닝 스타일

무대 위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사이즈도 사이즈이지만 로니 콜먼을 더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바로 무시무시한 괴력을 발휘하는 트레이닝 때문이다. 많은 보디빌더들이 부상 방지 목적 등으로 머신 운동[3]을 많이 병행하는 것과 달리 그는 고중량 프리웨이트가 위주의 되는 트레이닝을 고수했는데, 여기서 문제는 그에게 고중량이란 중량이 파워리프팅에서나 볼 법할 중량이라는 것.

올림피아의 평생 라이벌이었던 제이커틀러가 적당한 중량으로 정확한 자세, 적절한 머신과 프리웨이트를 조합한 트래이닝을 고집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로니 콜먼은 프리웨이트 위주의 고중량 고반복(!!!)트래이닝을 했다.[4] 로니 콜먼과 제이 커틀러의 라이벌리가 한창일 당시, 머슬 앤 피트니스 지에서는 너무나도 상이한 두 선수의 훈련법을 비교하는 기사가 주를 이룰 정도였다.

로니 콜먼의 대표적인 트레이닝은 142kg 워킹런지(...) 90kg 덤벨컬(...), 220kg 바벨프레스(...), 360kg 데드리프트(...)와 같은 무지막지한 무게로 근육에 자극을 주는 훈련법을 선호했다.

그리고 그의 트레이닝을 얘기할 때 절대 빼먹을 수 없는게 바로 세트 시작전 질러대는 자기 최면같은 괴성이다. "Yeah buddy!!"라면서 시작한 뒤 "Light weight!!!!"이라고 외치는데 그러면 정말로 어떤 중량이건 그의 앞에서 하나의 "가벼운 기구"가 되버린다. (...)

예를 들면 이런 식. 무려 1톤이나 되는 레그 프레스를 "Light weight"을 외쳐준 뒤 세트를 쳐버렸다. 그리고 벤치 프레스하러 온 사람들은 로니 콜먼이 플레이트 다 가져가 구경만 했다 한다.

또다른 입이 떡 벌어지는 그의 데드리프트 영상. 800 파운드는 대략 363 킬로그램인데 저 무게가 light weight여서인지 1회 반복도 아닌 2회 반복을 해주셨다. 추가로 이 날 콜먼은 저 데드리프트 후 웬만한 고수들이나 들어올릴 데드리프트 무게인 220kg를 잡고 바벨 로우를, 그 다음에는 250kg짜리 T바 로우를 하고 집에 갔다. (...)

4 기타

2004년 방한한 적이 있었다. 경기도 안산의 한 헬스클럽에서 방문행사를 하고 묶고 있던 호텔에서 아침으로 달걀 12개로 만든 오믈렛을 주문하고, 일반 팬케잌의 3배크기의 팬케이크를 20인분량 정도 먹어치우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행사중에 아줌씨들이 몰려들어 콜먼의 근육을 만지작 거리기도 했다. 한국 아줌씨들의 위엄 아래에도 언급되지만 안에 캡슐이 가득한 약통을 보여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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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한해서 시범을 보이는 로니 콜먼. 미스터 올림피아 직후 내한이라 시즌중처럼 몸매가 튼실하다.

한국에 와서 약물사용에 대한 질문을 받자, 솔직히 "자신은 물론 프로 보디빌더들은 다 사용한다"며 쿨하게 인정. 하지만 "절대로 의사의 권고에 따르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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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초기(1991) 의 로니 콜먼. 프로레슬러를 연상케하는 전성기와는 달리 날렵한 모습이다. 스테로이드가 얼마나 사람의 외모를 바꿀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안타깝게도 2014년 고관절 양쪽 모두를 인공 고관절로 대체하는 수술을 받았다. [5]선수 시절 당한 부상 때문은 아니고 유전적인 원인이 크다고 하는데, 전성기 때 그가 들어올리던 초인적인 중량들을 생각하면 트레이닝 때문에 악화된 것으로도 보인다. 다행히 수술 후 회복이 잘 되서 다시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성격이 낙천적이고 유쾌해서 대중들은 물론 다른 동료들과도 사이가 좋았다. 특히 라이벌이었던 제이 커틀러와도 친한 사이로, 후대 올림피아 수상자인 필 히스와 만년 2위 카이 그린이 비슷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면서도 서로 원수지간인 것과 대조된다.

캘리포니아 베니스의 골드 짐처럼 그가 트레이닝하던 텍사스 알링턴의 메트로플렉스 짐도 보디빌딩계의 명소가 됐다. 콜먼이 당시 트레이닝하던 때의 영상을 보면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90년대 힙합과 수십년은 묵은 듯이 보이는 낡은 기구들이 특징이다. 현재 브렌치 워렌과 조니 잭슨이 함께 트레이닝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1. 이러한 만년 챔피언과 만년 2위 라이벌 관계는 후대의 필 히스카이 그린으로 이어진다.
  2. 보디빌더들은 다른 스포츠와는 달리 대부분 30대 중반 전성기를 찍고 40대 이후로 서서히 내려오게 된다. 이 때 이미 로니 콜먼이 불혹을 넘긴 나이인 것을 고려하면 정점에서 오래 롱런한 것이었다.
  3. 고중량 프리웨이트는 부상위험이 크다
  4. 물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고중량이지만 로니 콜먼에게는 아주 높은 중량은 아니라는 점. 중량과 횟수는 당연하게도 반비례한다.
  5. 이건 스테로이드 사용자의 대표적 부작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