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식축구 선수
시카고 베어스 No.6 | |
제이 커틀러 (Jay Christopher Cutler) | |
생년월일 | 1983년 4월 29일 |
국적 | 미국 |
출신지 | 조지아주 콜럼버스 |
체격 | 191cm, 100kg |
포지션 | 쿼터백 |
출신대학 | 밴더빌트 대학교 |
프로입단 | 2006년 드래프트 1라운드 11위 덴버 브롱코스 |
소속팀 | 덴버 브롱코스(2006년~2008년) 시카고 베어스(2009년~현재) |
한국에서 이 사람을 검색하려면 쿼터백이라는 단어를 붙여야 한다.
미식축구 NFL 시카고 베어스 소속 쿼터백
덴버 브롱코스의 엇나간 존 엘웨이 사랑의 세번째 피해자.[1]
태어나기는 조지아에서 태어났지만 인디애나주 산타클라라에서 어린시절을 보내며 시카고 베어스팬으로 자랐다.
명문 학교지만 풋볼쪽은 영 아닌 FBS/SEC의 동네북 밴더빌트 대학교에 진학하여 팀의 주전 쿼터백으로 맹활약 하였으며 약체팀 선수임에도 큰 주목을 받았다. 드래프트 컴바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며 당시 2005년 로즈보울에서 역대최고의 명승부를 연출하며 전체 1위 후보로 떠오르던 전미 최고의 쿼터백 유망주들인 USC의 맷 라이너트,텍사스 롱혼스의 빈스 영 다음가는 넘버 3 쿼터백 유망주로 성장했으며, 결국 덴버 브롱코스가 전체 11번으로 선택했다.
1.1 덴버 브롱코스 시절
덴버 브롱코스는 해당 문서에도 설명이 되어있지만, 팀 역사상 최고의 슈퍼스타인 존 엘웨이가 은퇴한 이후 그 후계자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엘웨이 직후 주전이었던 브라이언 그리시가 부상후유증때문에 팀에서 짤렸고, 커틀러가 들어올 당시 주전 쿼터백은 애리조나 카디널스에서 FA로 영입해온 제이크 플러머였는데 리그 최약체팀에서 뛰었던 이력이나 보수적인 정통파 프로스타일 쿼터백과는 거리가 먼 모바일 쿼터백[2]이었기 때문에 엘웨이가 보여준 패싱이나 리더쉽을 그리워하던 팬들은 플러머가 못하기만 하면 맹비난으로 일색하고 그때문에 기대받던 커틀러의 데뷔를 요구하던 팬들도 있었다. 헤드코치 마이크 섀너핸 역시 자기 말을 듣지않고 종종 반항하던 제이크 플러머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점도 이런 문제에 한 몫했는데 예상보다 빠르게 일이 터졌다.
2006년 시즌 후반 7승 2패로 지구 1위를 달리는 도중 2연패를 당하며 7승 4패로 처지자, 그 시점에서 갑자기 팀 하락세의 책임을 물어 제이크 플러머를 밀어내고 제이 커틀러를 주전으로 앉힌 것. 쿼터백항목을 보면 알지만 팀에서 쿼터백 바꾸려면 공격전술 자체를 싹 갈아야 할 정도로 중요한 포지션인데 시즌중에 생초짜 신인을 주전 쿼터백으로 쓴다는 것은 팀내 사정이 어쨌든 너무 위험한 모험인 것이다. 덴버 팬들은 당연히 커틀러파와 플러머파로 나뉘어서 치열하게 대립했고, 전문가들도 너무 모험적이라는 견해가 컸다.
이렇게 제이 커틀러가 공식경기에 데뷔했고, 데뷔전 시애틀 시호크스전에서 패배한 이후 남은 경기에서 2승 2패, 총 2승 3패를 거두고 최종성적 9승 7패로 덴버 브롱코스는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그리고 헤드코치 섀너핸과 커틀러는 엄청난 비난에 직면해야했다.[3]
이런 시행착오 끝에 2007년부터 주전 쿼터백으로 정착한 제이 커틀러는 자기 앞에 뽑혔던 맷 라이너트와 빈스 영이 모두 실패작이라는 비판을 받던 그 시기부터 실력을 보여주며 2007년에는 3497야드 20터치다운 14인터셉트 레이팅 88.1, 2008년에는 4526야드 25터치다운 18인터셉트 레이팅 86로 활약했지만 팀은 수비진의 붕괴로 2007년 7승 9패, 2008년 8승 8패의 성적을 내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고, 팀을 오랫동안 이끌었던 헤드코치 마이크 섀너핸은 책임을 지고 사퇴, 워싱턴 레드스킨스로 이적한다.
이 과정에서 신임 헤드코치 조쉬 맥다니엘은 제이 커틀러의 강하지만 정확도가 떨어져서 인터셉트가 잦았던 커틀러의 패스와 경기 운영, 그리고 클럽하우스에서 리더쉽이 부족하다는 측면등 여러가지 면에서 주전 교체를 생각하고 있었고 이 때문에 팀과 틀어진 커틀러는 결국 2008년 시즌을 마치고 시카고 베어스로 트레이드 된다.
1.2 시카고 베어스 시절
시카고 베어스는 1920년 팀이 창단한 이후부터 줄곧 수비와 러싱공격을 중심으로 플레이하던 팀이라 팀 역사상 3000야드를 던져본 쿼터백이 100년 가까운 역사에 단 4명밖에 없을 정도로 쿼터백과는 인연이 없는 팀이었다. 공교롭게도 트레이드 대상에는 2008년 시카고 베어스의 주전 쿼터백이고 준수한 활약을 했던 퍼듀대학 출신 카일 오튼. 그래서 시카고 베어스에서 역시 그를 영입한데 대해 팀 역사상 최고의 쿼터백을 데려온 것이다라는 찬양과 경기 내외적으로 문제 많고 쿼터백 최악의 환경[4]인 시카고에서 그런 성적이 나올리 없다라는 부정적 시선이 공존했다.
여러 우려끝에 시카고 베어스의 주전이 된 제이 커틀러는 첫해 실망스런 성적을 냈다. 야드수는 시카고 베어스 팀 역사상 단일시즌 2위에 해당하는 3666야드에 커리어 하이인 27개의 터치 다운을 성공시켰지만 인터셉트도 리그 최악인 26회를 던지는 등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였고 결국 팀은 7승 9패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물론 팬들에게 엄청난 까임을 당했지만 35번 쌕을 당할 만큼 시카고 베어스가 덴버 브롱코스에 비해 공격 라인맨들의 쿼터백 보호가 약했고, 러닝백 맷 포르테를 제외하면 와이드 리시버진이 리그 하위권 기량이었기 때문에 그런 서포팅 캐스트의 약함에도 이정도 성적을 낸 것은 대단하다는 전문가들의 쉴드도 있었다.
솔저필드 적응을 마친 제이 커틀러는 2010년 시즌 야드수는 전년도보다 줄어들고 쌕도 52번이나 당했음에도 인터셉트를 줄이며 안정된 경기운영을 보여주었고 수비의 지원에 힘입어 15경기 선발출전해 10승 5패를 기록하며 시카고 베어스를 플레이오프에 올린다. 다만 안습하게도 애런 로저스가 이끄는 그린베이 패커스와의 NFC 챔피언쉽 경기에서 부상으로 경기 중반 아웃되는 무기력한 모습때문에 팬들에게 또 까임을 받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 2011년에는 시즌 후반 부상을 당해 10경기밖에 출장하지 못했다.
2012년에는 지난해부터 덴버 브롱코스에서 이적해왔고 덴버시절때부터 같이 뛰었던 와이드 리시버 브랜든 마셜 콤비와 함께 안정된 활약을 보이며 플레이오프 진출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하지만 시즌 막판 부상으로 주춤한 동안 그린베이 패커스와 미네소타 바이킹스에 역전을 허용해 10승 6패 하고도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1.3 기타
- 재키 로빈슨과 같은 1형 당뇨병이 있다. 2008년 1월 공식적으로 그가 1형 당뇨병임을 진단 받았고, 이 이후로 1형 당뇨병 환자를 위한 복지재단을 창립해 같은 환자들의 치료를 위한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 샌디에이고 차저스의 주전 쿼터백 필립 리버스와 사이가 매우 안좋은데, 그가 차저스와 지구 라이벌 관계인 덴버 브롱코스 소속으로 2008년 먼데이 나잇 풋볼에서 붙었을때 리버스가 그에게 지독한 트래쉬 토크를 했기 때문.
2 보디빌더
제이 커틀러(보디빌더) 참고- ↑ 첫번째는 엘웨이 은퇴 직후 주전으로 나선 브라이언 그리시. 데뷔초 주전 경쟁때 라커룸에서 왕따를 당하기도 했고 본인이 이때문에 외적으로 사고를 많이 쳤다. 망가지게 된건 오클랜드 레이더스항목에 나오는 어깨 탈구 후유증이긴 하지만. 두번째 피해자는 아래 서술할 제이크 플러머.
- ↑ 황당한 사실은, 존 엘웨이 역시 정통파 프로스타일이라기보다는 스크램블을 자주 쓰는 모바일 쿼터백으로 플러머가 플레이 스타일만 보면 오히려 엘웨이와 닮은 선수였다는 것. 그때문에 더 눈에 띄게 까였는지도 모른다.
- ↑ 그리고 피해자 제이크 플러머는 시즌 종료와 함께 탬파베이 버캐니어스로 쫓겨나듯 트레이드 되었는데 이에 빡쳐서 그냥 은퇴해버린다. 32세의 이른 나이에 은퇴한 제이크 플러머는 이후 아메리칸 핸드볼(그 핸드볼이 아니다. 스쿼시 비슷한 타입의 스포츠) 선수로 전업한다.
- ↑ 미식축구도 야외경기이기 때문에 날씨의 영향을 쿼터백이 상당히 받는다. 시카고는 추운 날씨와 강한 바람이 부는데도 야외 경기장을 쓰기 때문에 쿼터백이 패스를 던지기 최악의 환경중 하나고, 덴버는 콜로라도 로키스의 쿠어스 필드 예에서 알 수 있듯 쿼터백의 패스가 평균 5%~10%정도는 더 멀리가는 효과가 있어서 쿼터백에게는 좋은 환경에 속한다. 물론 최상은 바람이나 날씨영향이 전혀 없는 돔경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