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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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트 게일어: Raibeart I na h-Alba
영어: Robert I of Scotland

스코틀랜드 왕국의 .(1274 ~ 1329)

본명은 로버트 더 브루스(영어로는 Robert the Bruce, 게일어로는 라퍼르트 브루스-Raibeart Brus).

스코틀랜드 노르만계 혈통의 귀족 가문인 브루스 가문 출신으로 한때 잉글랜드에 의해 복속당할 위기에 처한 스코틀랜드를 구한 영웅이다. 데이비드 1세의 6세손으로 던켈드 왕가의 방계 왕족이었다.

1 생애

스코틀랜드의 왕 알렉산더 3세(Alexander III, Alasdair III)가 급작스럽게 사망하고 그 후계자였던 마거릿(Margaret, Mairead à Nirribhidh)이 어린 나이에 병사한 이후에 사실상 스코틀랜드 왕족이었던 던켈드 가문(Dunkeld, Dùn Chailleann)의 맥이 끊겨버렸고 곧 유력한 귀족들은 왕위를 계승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이때 잉글랜드에드워드 1세가 스코틀랜드 귀족들의 왕위 계승 분쟁을 이용하여 스코틀랜드를 지배하려 들었고 결국 스코틀랜드의 종주권은 에드워드 1세에게 넘어갔다.

로버트 1세는 당시 대부분의 스코틀랜드 귀족들과 마찬가지로 에드워드 1세에게 굴복하였고 한때 그의 휘하에 있기도 하였으나 후에 다른 귀족을 말다툼끝에 우발적으로 살해한 후에 마음을 고쳐 스코틀랜드를 독립시키기로 결심한다. 에드워드 1세의 지배에 맞서서 1306년에 스스로를 스코틀랜드의 왕으로 자칭하고 나섰으나 에드워드 1세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로버트 1세는 오히려 패퇴하여 가족들이 포로로 잡히고, 본인은 아일랜드로 망명하는 등 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다시 세력을 길러서 돌아와 1314년, 베넉번 전투에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에드워드 1세의 아들인 에드워드 2세의 군대와 대결하게 되었다. 이때에 적당히 청야전술을 사용하면서 기병을 이용한 기습과 보병 대열을 사용한 뛰어난 전술로 잉글랜드군을 격파하고 불리하게 돌아가던 전세를 역전시켰다.

이후에도 잉글랜드의 침략을 수차례 물리쳤다. 그리하여 결국 1328년 에드워드 3세 때에는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인정받았으며 스코틀랜드 왕위 또한 정식으로 인정받았고 이듬해에 사망하였다. 그의 뒤를 이은 데이비드 2세는 결국 후계자를 남기지 못했고 그의 딸 마거릿과 윌터 스튜어트 사이에서 태어난 외손자 로버트 스튜어트가 로버트 2세로 즉위하게 된다.

2 평가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위해 에드워드 1세 때부터 에드워드 3세 때까지 3세대의 잉글랜드 왕들과 싸워 온 그야말로 근성의 사나이(...). 오늘날에도 스코틀랜드 독립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사실상 왕위 계승이 끊어져 잉글랜드에게 그대로 잡아먹힐뻔한 스코틀랜드를 구원한 구국의 영웅이므로 많은 활약상과 일화를 남겼다.

로버트 1세가 잉글랜드의 군대를 격파한 베넉번 지방에는 아직도 전투 당시에 로버트 1세가 직접 깃발을 세우는데 사용했다는 '보어의 돌'이 남아있으며 1960년에 만들어진 스코틀랜드의 국가 '스코틀랜드의 꽃'은 베넉번 전투에서 그가 거두었던 승리와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노래한 것이다.

의외로 본인의 무술 실력도 상당한 편이었다. 도피생활중 에드워드 1세의 추격자가 쫓아올 때나 배신자들이 잡으려고 들 때 상당한 무쌍을 찍은 적도 많고, 베넉번 전투 중에는 직접 군대를 사열하던 중 귀족 출신의 기사 헨리 드 보헌이 공격해왔을 때 일대일로 맞서 싸워 죽였고 같이 있던 종자까지 죽여버렸다.[1] 이때 왕이 직접 기사와 결투를 벌여 이기는 모습을 보고 스코틀랜드 병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졌지만 함께 출정했던 귀족들은 왕이 그렇게 몸을 막 굴리면 어떡하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3 대중 매체에서의 모습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서는 주인공으로 등장한 스코틀랜드의 독립전쟁 영웅이었던 윌리엄 월레스의 동지로 묘사된다. 윌리엄 월레스의 높은 이상을 받들어 그를 후원하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서 그를 배신하게 된다. 그러나 후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윌리엄 월레스를 자신의 성으로 불러들여 재기시키고자 했지만 에드워드 1세와 그의 눈에 밉보일까봐 두려워하던 귀족들의 함정에 걸려 오히려 윌리엄 월레스를 붙잡혀 가게 만든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윌리엄 월레스와 함께 싸웠던 동료들과 스코틀랜드 귀족들을 규합하여 베넉번에서 잉글랜드 군대를 격퇴하고 자유를 쟁취하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역사를 각색했기에 그대로 믿으면 안되고 실제론 윌레스와 좀 복잡한 관계다. 일단 브루스 가문 자체가 스코틀랜드 혈통이 끊기고 왕위계승 분쟁이 심하게 일어나자 잉글랜드를 견제하는 아군으로서 서로 싸우지 않았으나 왕이 되려던 로버트 1세에겐 평민들과 하급기사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는 윌레스가 다분히 방해되기도 하였고, 월레스와 정치노선이나 출신도 많이 차이나는 편이니... 애당초 둘간에 영화에서 보이던 무언가 끈끈한 접촉 같은건 별로 없고, 필요하면 협력하고 필요없으면 소 닭보듯 하는 사이에 가까웠다.

한국 내에서 출간된 위인 일화집 중 로버트 1세의 일화를 담고 있는 내용이 있는데 거미가 계속해서 그물이 끊어지는 상황 속에서도 계속 그물을 쳐 결국 완성시키는 것을 보고 용기를 얻어 게속 대항하기를 선택했다는 이야기. 그러나 이 이야기는 본래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더글라스 경의 설화였으나, 19세기 즈음에 로버트 1세의 이야기로 와전되었다고 한다. 애시당초 확실한 역사적 근거가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지만, 거기에 이야기의 주인공마저도 와전된 것.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많은 영국인들마저도 대부분 다 로버트 1세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다(...).[2]

수십년째 스코틀랜드 20 파운드화의 전속지폐모델(...)로도 활약하고 있다.
  1. 평균수명이 낮은 건 평균수명의 함정에 들어가면 나온다. 고대에도 40세면 한창 싸울 나이였다. 그럼에도 이런 무용을 발휘한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2. 참조1 참조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