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野戰術
Scorched Earth
전시 방어측에서 사용하는 대표적인 전술. 견벽청야(堅壁淸野), 청야수성(淸野守城)라고도 불리운다. 초토화(焦土化)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1 설명
방어군이 적군의 손에 들어간다면 유용하게 쓰일만한 모든 물자를 없애버리면서 후퇴해서, 적군에게 보급의 한계를 강요하는 전술.
고대의 전장은 현대에 비해서 보급이 훨씬 어려웠다.[1] 이 때문에 군대의 보급에서 물자의 현지조달, 즉 약탈(혹은 현지구매)의 비중이 매우 높았다. 괜히 손자가 손자병법 작전편에서 적한테서 노획한 물자는 아군 물자의 20배에 달한다고 말한 게 아니다. 물자 획득 + 물자 수송비용 절감 + 적군의 물자 감소라는 삼중 효과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아군의 입장에서 너 주느니 차라리 다 불살라버리련다라는 정신으로 자군의 보급물자를 비롯한 민가의 가옥, 우물, 수확이 가능한 식량 따위 같이 침입한 적군이 아군의 영지에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 물자들을 아군 스스로 불태우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 놓음으로써 적군의 원활한 보급을 봉쇄하는 것이 가능하다.
우선 군량과 무기 같은 필수 전쟁물자는 다른 거점으로 전부 옮기고, 만약 시간이나 인력이 여의치 않아 옮길 수 없으면 개의치 말고 확실하게 불태운다. 마찬가지로 논과 밭을 뒤엎거나 불사르고, 더하여 강염기성 또는 강산성의 물질을 사용해서 토양도 철저하게 파투한다.[2] 우물에는 독을 타고 쌓아 놓은 저수지는 허물며, 강의 상류에 인분이나 가축의 분뇨나 풀과 낙엽을 썩힌 거름같은 오염원을 투입해서 식수를 고갈시킨다. 옷가지를 비롯한 모든 생활용품도 태우고 역시 집들도 모두 허문다. 마지막으로 주민들을 보복과 약탈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방어시설이나 섬으로 대피시킨다.[3]
특히 이런 전술은 미리 쓰는 것이 아니라 적이 며칠에서 하루 정도 거리에 있을 때 또는 첨병이 발견하더라도 본진이 그 소식을 알 땐 이미 도착한 후일 정도의 거리에서 실시할때 그 위력은 최고로 막강하다. "왔더니 황폐하더라."가 바로 이 작전의 포인트. 특히 겨울에 이 짓을 하면 정말 미친다. 눈으로 인해 보급이 어렵고, 추운 겨울날 음식은 병사들의 건강 때문에 중요하다. 황야가 된 도시를 점거해야 하지만, 무리해서 점거한다고 하여도 자신의 입장에선 득될 것은 없다. 이 상황은 도시도, 황야도 아닌 상태의 땅을 점령한 것이기 때문에 글자 뜻 그대로 계륵이다. 강행군에 대응해 쓰면 더더욱 미친다. 강행에 병력은 소모되는데 반대로 소득은 전혀 없으니. 더구나 상대가 지도도 제대로 없고 대군을 동원한 경우 엄청나게 치명적이다. 고대부터 정주민들이 쓰는 필살기 같은 전술로 이걸 사용하면 별다른 전투도 없이 상대방의 군대가 빠르게 죽어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단 기동력이 정주민보다 훨씬 우수한 유목민이면 오히려 반대의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더 무서운 점은 더 많은 물자를 동원하는 것 외에는 이에 대항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베르킨게토릭스도 청야전술로 게르고비아에서 무적을 자랑하던 카이사르를 패주시켰고, 단, 베르킨게토릭스는 이후 청야전술을 포기하고 야전을 걸었다가 참패했다. 작전의 영역에서 아직까지도 일인자라 불릴 수 있는 영웅 나폴레옹마저 청야전술에 결국 졌다. 유일한 단점은 순종적인 백성들이 아니면 창끝이 거꾸로 향할 수도 있다는 점. 당연히 생산력도 떨어지는 시대에 청야전술 쓰라고 하면 보상을 해준다는 보장도 없고 엄청난 반발을 불러오게 된다. 실제로 가진 게 많은 문명들은 거의 쓰지 않았다.
다만 산업 기반을 통째로 파괴하는 극단적인 형태는 아니더라도, 적에게 물자와 설비를 그대로 내주는 것은 당연히 해서는 안될 일이니 후퇴하면서 물자를 수거하고 시설을 파괴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2 결점
- 청야전술이라는 전술 자체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없애버리는 것이 기본인 만큼 전후의 피해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고 자국의 역량이 안되면 청야전술 쓰다가 같이 굶어죽는다는 것이다. 땅이 넓지 않으면 아예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전술이라서 방어자가 엄청나게 불리한 경우가 아니라면 쉽게 사용할 수 없는 전술이다.
대표적으로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어설프게 따라하다가 남한산성에서 쫄쫄 굶고 GG쳤다.[4] 청야전을 애용한 고구려조차 수, 당과의 연이은 전쟁으로 인해 자국의 식량사정이 상당히 악화되었을 정도이다. 당의 경우 오히려 이를 역이용해서 '소수정예 수만단위 병력 침공 → 고구려 청야전술 → 적당히 두들기다 철수 → 얼마 안가 다시 침공'의 패턴으로 고구려를 소모전으로 몰고갔다. 수만 단위 병력은 당에겐 별 거 아니지만 고구려에겐 상당히 위협적[5]이란 점을 고려한 셈. 실제로 당시 자치통감이나 삼국사기 기록같은 걸 보면 일부의 군사를 파견하여 저들의 강역을 교대해 가며 공격하면 고구려는 그때마다 보루로 들어갈테니 몇년이면 압록강 북쪽은 안싸워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면서 대놓고 소모전 들어가자는 건의가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청야전술의 단점이 실제로 이루어진게 여몽전쟁기간. 가히 청야전술의 결점이 모두 노출되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제로 산성이나 섬으로 옮기는데 백성들이 반발했고 이로 인해 중앙에서 대장군을 직접 파견 이라 쓰고 진압이라 읽는다 해야 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 재물을 불태우고 옮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문제는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백성들이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되었고 그와중에 비축해놓은 식량까지 부족해 이동한 백성들의 8~9할이 굶어죽었다고 한다. 상황이 악화되면서 관리를 죽이고 몽골군에 자진항복하는 경우도 많았다.
- 물질적인 것만이 전투의 모든것은 아니다.
- 정말 아무것도 안 남기고 다 태워버릴 경우 사실상 모든 것을 잃어버릴 현지 주민의 격렬한 저항에 직면할 수 있으며, 아군의 보급이 원활하지 못하거나 부족할 경우 다른 방법으로 보급할 방법이 사라지는 셈이 되므로 모든 병사들의 멘탈이 상부의 행동을 이해할수 있는 정규~최정예 수준이 아니면 병사들 대다수가 며칠만에 모랄빵으로 직결되어 탈영할 수도 있고 아니면 적군한테 붙어버리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따라서 어느 정도는 물자를 남길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남는 물자가 많아질수록 청야전술의 성공률은 떨어지고 청야전술의 시행기간도 늘어나게 된다.
- 청야전술에 필요한 시간이 의외로 길다.
- 기본적으로 청야전술의 시간은 청야전술을 위해 물자를 수거하거나 파괴하는 시간 + 침공군의 식량과 물자가 떨어지는 시간이다. 따라서 이 전술을 사용하는 측의 경우에는 생고생하면서 자신의 물자를 수거하거나 개박살낸 후, 침공군의 물자와 식량이 없어질 때까지 적의 맹공을 견뎌야 하는 고생길이 보장된다. 만일 이 기간을 견디지 못하고 적의 공격에 성이 함락되거나 하면 그 때까지의 고생은 무용지물이 되며, 덤으로 굶주림에 시달린 적의 가혹한 보복에 시달리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청야전술에 필요한 시간은 늘어나기만 하지 줄어들기는 어렵다는 특성을 가진다. 침공한 적 병력이 충분한 물자와 식량을 가지고 있으면 당연히 방어측이 견뎌야 할 시간이 늘어난다. 그리고 침공군도 청야전술의 위험에서 벗어나려고 각종 시도를 하게 되는데, 이런 과정중에 아군 식량을 숨겨둔 비밀저장고를 알아채고 함락시킨다는 등의 사건이 벌어지면 이 시점에서 청야전술은 실패했으며, 오히려 아군이 식량부족에 시달리는 역대박이 난다. 그리고 적의 증원군이 물자를 가지고 온다든지 하면 청야전술에 필요한 시간이 엄청나게 늘어난다. 그리고 극단적인 사례지만, 제갈량의 북벌이나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처럼 침공군이 목표를 포위한 상태에서 둔전을 건설하는 등 아예 눌러앉아버리면 청야전술은 사실상 실패한다.
이에 비해서 청야전술에 필요한 시간을 줄이는 방법은 힘들고 어려우며, 성공하더라도 효과가 적다. 예를 들자면 침공군의 물자저장소를 습격한다든지, 적의 보급대를 공격한다든지, 적의 신경을 혼란하게 만들기 위해 자잘한 습격을 가하는 방법 등이 있는데, 적이 진짜로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나름대로 호위와 경계병력을 늘리는 등 대응방법을 실행하기 때문에 수비측의 입장에서는 안그래도 숫자가 부족한 정예병력이 보급부족상태에서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기동을 한 끝에 정확하고 효율적인 공격을 해야 하는 부담을 가지게 된다. 물론 질을 숫자로 메우기 위해 인해전술을 써서 민간인이나 민병대, 게릴라까지 동원할 수는 있으나, 이렇게 하면 성공적인 결과를 얻더라도 아군측에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하게 된다.
-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 청야전술을 쓴 끝에 국력이 무너지고 경제가 개발살나는 것은 앞에서 설명했으니 일단 넘어가더라도, 청야전술이 성공한 시점에서의 혼란도 만만치 않다. 특히 침공군이 붕괴하더라도 남아있는 패잔병이 큰 문제다. 일단 청야전술 초기라도 배고파서 화난 군인한테 개발살날 현지인은 죽기 싫으면 미리 피해야 된다. 살인, 약탈, 강간을 넘어 학살당할 수 있고, 심할 경우 적군들이 식인을 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특히나 패주중인 패잔병들이 수가 많아질 경우 막장 of 막장으로 가버릴 때가 있는데, 이때는 정말 눈에 띄면 끝장난다는 걸 역사가 보여준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그래서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조선군이 청야전술을 결정하자 민간인들이 들고 일어나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물론 이 민간인들은 조선군한테 설득당하긴 한다. 사실 청야전술이 민간인을 전쟁에 끌어들이는 비도덕적인, 지양해야 할 전술로 치부된 것은 지극히 최근의 일이다. 인권이 발달하고, 전쟁범죄라는 개념이 생긴 현대에는 전후까지 민간인의 심각한 피해를 유발하게 될 청야전술은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 당연한 일이지만 상대방 군대도 머리를 쓴다.
- A군대와 B군대가 싸울 때 A군대가 청야전술을 쓰는 것을 B군대가 가만히 보고 있을 확률이 없다는 것이다. 우회경로가 있다면 피하는게 정상이지만, 그런거 없는 1직선 도로라면 A군들이 청야전술을 시도하기 전에 B군은 기습을 강행해서 타격을 주거나, 유언비어를 살포하거나, 야간에 기습적으로 강행군을 해서 적진 코앞까지 가거나, 공수부대를 투입하거나, 특수부대를 잠입시키는거나, 원거리 무기를 배치해서 피하는데 급급하게 만드는 등 이로인해 A군들이 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청야전술을 펼치지 못하게할 다양한 행동을 할 수 있다. 예로 과거 러시아(표트르 대제 제위초 그가 허수아비 차르시절)에서 타타르족 정벌을 할때 1차 정벌은 실패했는데, 그 원인중 하나는 타타르족이 초원을 불태워버려 말먹일 풀이없었던 것이 있었다. 그래서 수년 후 2차 정벌을 시도했는데, 이때는 영리하게도 미리 선발대를 보내 초원에 불을 놓아 태우게 한후, 본진이 도착했을 즈음엔 새로운 풀들이 자라있게 한 적도 있다.[6] 하지만 2차 정벌 결과도 실패... 당시 실권자의 이러한 타타르족 정벌 실패와 더불어 갖가지 삽질로 인해 결국 표트르 대제가 권력을 찾게되기는 한다.
그리고, 해당 지역이 진격로의 중간에 위치하고, 상대방 군대의 목표가 해당 지역을 지나서 수도등의 중요 목적지로 향하는 것일 경우, 청야전술을 쓴다는 것이 미리 알려지면 적군이 진격로를 아예 바꿔버려서 정작 적에게는 별 피해 없이 아군 물자만 손실을 보는 사태가 종종 발생한다.
- 위에도 언급된 백성(=주민)들의 반발.
- 과거에는 군대가 더 영향력이 강했기에 군말없이 가능했으나, 현대전에서는 옛말이다, 예를 들면 북한은 남한의 물자를 뺏어쓰는 전술을 구상해놨기에,
일단 북한군이 개전 시에 공세를 시작할 수 있을지 여부는 둘째치고이에 대응해 청야전술을 쓰면 된다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요즘은 과거가 아니다.[7][8] 청야전술을 실시하면 이에 기겁한 주민이 있는가 한편 군의 통제를 벗어난 주민이 SNS등을 이용해서 이 사실이 빠르게 퍼져나갈게 뻔하고 이에 반발할 주민들이 생길것은 당연하다. 알다시피 청야전술은 다 불살라버리는건데, 이걸 주민들이 가만히 놔두는가에 문제가 좀 있다. 그래봐야 북한편 들어줄 사람은 전혀 없지만, 자신들의 터가 불살라지는건 두고볼 사람은 없다.아마 보상이라도 제대로 되면 좋겠지만 그런거 없다극소수의 좀 이상한거 주워 먹은 듯한 종북주의자들 제외하고는 국민 전반에 대한민국이란 헌정 질서에 대한 소속감이 확고한 한국[9]도 이런 걱정이 들 정도인데, 애초에 국가 이데올로기가 제대로 발달 못 했고, 현지 주민들에게 집권 체제의 정통성 자체가 심각한 도전을 받는 중동이나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 바로 위 항목과 접목시켜 생각해 보라. 안그래도 마음에 안 드는, 국군이라기 보다 차라리 점령군 취급을 받는 관군이 와서 집, 재산, 삶의 터전, 고향 다 싸그리 버리고 불태운 다음 움직이라고 강제하는데 그 옆에서는 적군이 "우리가 싸우는 대상은 당신들을 억압하는 폭군 누구누구지 이 나라의 인민들이 아니다! 우리가 처들어와도 당신들의 재산과 목숨은 일체 보장할 것이니 괴뢰군의 소개 명령을 거부하라!"라고 삐라 뿌리거나 요즘 같으면 SNS로 막 선동질을 해댄다면....
3 활용예
대(對)레지스탕스 전술로 공격자들이 쓰기도 한다. 레지스탕스는 전적으로 민간의 보급에 의존하기 때문에, 이 경우 후방이 된 적지의 레지스탕스가 말라죽는다. 이와 관련된 유명한 비유로 마오쩌둥이 민간인을 물, 게릴라를 물고기에 각각 비유한 예시가 있다. 거기다 반대로 밀릴시엔 적군이 당하므로 아군의 보급이 빵빵하면 쓸 수 있다. 이 작전이 성공한 경우가 대한제국 말기 일본군이 호남 지방의 의병을 몰살시킨 남한대토벌작전과 청산리 대첩 이후 경신참변. 두 작전의 결과로 의병과 만주 지역의 독립군들은 커다란 피해를 입고 사실상 소멸하거나, 시베리아 등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여기에서 확대된 것이 총력전 상황에서 공격자가 방어자의 전쟁 수행 능력과 의지를 꺾기 위해 산업,경제 시설들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것이다. RTS에서 적 진영에 들어오면 제일 중요한 것이 일꾼을 죽이고, 주요 테크 건물을 개발살내는 것과 비슷하다. 근대 이전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없지 않았지만 공식적으로 이런 전술을 처음 사용한 것은 미국 남북전쟁 당시 윌리엄 테쿰세 셔먼이 남부연맹의 주요 도시 및 산업 시설을 초토화시킨 것으로 꼽는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이는 폭격기를 이용한 전략 폭격으로도 발전한다.
대표적인 청야전술의 활용 예는 다음과 같다. 잘보면 고구려와 러시아가 전문이다
- 갈리아 전쟁의 베르생제토릭스가 사용.
- 삼국시대에 동탁이 장안으로 천도하며 낙양성 소거. 연의에는 이후 유비의 촉 침공때 유장의 부하중 하나가 건의했다가 기각된다.
-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으로 유명한 2차 고구려-수 전쟁
- 1차 고구려-당 전쟁
- 강감찬의 3차 여요전쟁 전쟁
- 베트남 쩐흥다오의 대 몽골 작전
- 블라드 가시공의 대 오스만 전쟁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러시아 원정 당시 러시아군의 청야전
-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소련군의 초토화전술
- 겨울전쟁 당시의 핀란드군
- 중일전쟁의 삼광 작전[10]
- 한국전쟁의 장진호 전투와 흥남 철수에서 미군[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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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 굶겨 죽이기 -
토탈 워: 아틸라의 서로마 제국 -
이승만의 보도연맹 학살 -
북한은 2차 한국전쟁을 대비해 24시간 청야전술을 벌이고 있다.
4 대중문화 속의 청야전술
4.1 은하영웅전설
작전 입안자는 은하제국의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그리고 이 작전을 승인한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은하영웅전설 1권에서 이제르론 요새를 정ㅋ벅ㅋ한 자유행성동맹군이 자신감이 올라 대규모 제국령 침공작전을 벌이자, 제국은 우주구급 청야전술을 실시한다. 동맹군이 점령할 만한 변방 행성들의 식량과 같은 물자들을 모조리 긁어내어 후방으로 빼돌리고[12] 군대는 철수하여 일부러 대량의 유인행성을 넘겨준 것.
끝내 제국의 압제에 시달리는 민중을 해방하기 위한 전쟁임을 대의명분으로 삼던 동맹군은 점령지역 주민들을 먹여살리느라 죽어났다. 수백년에 걸친 전쟁으로 국가 경제력이 매우 악화했는데 원정나간 약 3천만명인 아군의 보급도 미칠 노릇인데, 약 수천만에서 수억명인 제국신민들의 식량까지 책임져야 했으니 얼마 못가서 각지에 분산 주둔한 모든 동맹함대의 정말 막대한 보급품 요청이 이제르론 요새로 들어왔다. 보급담당 카젤느 소장은 기겁, 동맹 본국에서는 막대한 전비소모로 분노한 평화파가 아이고 주전파 이 ㅄ들이 국가를 다 말아먹네 주전파들을 비난했음에도 주전파들이 뭐라 반박도 못했다.
제국 현지에 주둔한 원정 함대들이 심각한 보급품 부족을 계속 호소하자[13] 부랴부랴 막대한 보급품을 지닌 대규모 수송함대를 보내나 제국 별동함대가 모조리 격침, 물자는 다 박살난다. 끝내 이제르론 사령부는 "추가 보급이 갈 때까지 부족한 군보급품은 현지에서 줬던 거 다시 약탈 징발하라."라는 막장 지시를 내린다. 굶어죽을 수는 없으니 각 함대가 정말 주민들에게 나누어줬던 물자들을 다시 징발하는 해괴한 일이 일어나, 이 막장을 본 제국 주민들은 당연히 분노해 각지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덤으로 모든 물자를 날려먹은 동맹 함대는 물자 부족에 시달리다가 제국 함대의 반격 작전에 몰살했다. 끝내 자유행성동맹은 이 작전 1번에 수억명이 몇 년을 쓸 양의 보급물자와 다시는 못 돌이킬 약 2천만명의 장병과 몇만 척에 달하는 함선을 잃었다. 그리고 다시는 이 피해를 못 복구하고 멸망했다.
재밌는 점은 라인하르트는 동맹군이 점령한 행성을 탈환하자마자 그곳에 식량과 물자를 보급하도록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그런데 이때 식량과 물자를 자기 이름으로 보급하도록 해서 일석이조의 수확을 거두게 된다. 사실 청야전술을 지시한 인물은 라인하르트 본인이므로 책임을 져야 하겠지만 오히려 자신의 이름을 높이게 된 셈.
이와는 별개로 물자징발과 동맹군 점령 제국군 재탈환 시기에 있었던 거주민들의 재산권 손실이나 작중에서도 묘사되는 동맹군과의 분쟁에 따른 수많은 부상과 인명피해를 생각해보면, 도의적인 비난이나 책임까지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자마자 때마침 황제가 사망하고, 그 직후 계속해서 벌어진 권력투쟁 과정 속에서 이런 문제들이 더이상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 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14]
물론 이것은 제국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고 수백년에 걸쳐 전제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자세히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동맹군이 빠져나가고 재점령된 변방 행정의 신민들에게 다시 식량과 생활필수 장비들이 제공되었을 것이라는 점은 상식적으로 당연한 일이다. 라인하르트가 제국의 대권을 잡은 후에도 이 사건이 문제가 된 일이 없었다는 점에서 무난하게 안정화가 되었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라인하르트가 전쟁중에 범한 가장 큰 실책은 제국령 침공작전 당시의 청야작전이 아닌 립슈타트 전쟁 말기에 벌어진 행성 베스타란트 학살 건이다.[15]
4.2 게임 삼국지10 의 전술
삼국지 10에서 이런 전술로 멍청한 인공지능을 관광보낼 수 있다. 사용이 가능한 경우는 대체로 상대 세력이 거대 세력이고 자기 세력은 약소하지만 도시 하나를 뺐을 정도의 전력은 있고 전선이 도시 하나 정도로 적은 경우. 먼저 적의 최전방 도시 하나를 공격해 뺏은 후 그 도시의 모든 금과 군량과 병력을 아군의 후방으로 수송해 텅 빈 도시로 만들어버린다. 그러면 곧 적이 도시를 공격해 오는데, 병력도 뭣도 없는 그 도시는 곧바로 함락된다. 그럼 컴퓨터는 아니 여긴 물자가 없네 하고 자신들의 후방 도시에서 그 도시로 물자를 수송해온다. 그럼 다시 그 도시를 공격해 함락시킨 후 물자를 빼돌리고 도로 비워준다. 이 과정을 무한 반복하면 결국 적의 총물자를 거의 다 빼돌리는 게 가능해진다. 현실의 청야전술과의 차이점은 아군이 점점 더 부유해진다는 점. 이런 전술은 삼국지10에서는 물자를 수송하면 그 즉시 물자가 텔레포트해버리는 삼국지10의 오버테크놀로지때문이고 물자 수송도 수송부대가 직접 옮겨야 하는 삼국지 9과 삼국지11에선 불가능하다. 아예 불가능하진 않다
4.3 던전 앤 파이터에서
사도 불을 먹는 안톤을 끝장내기 위해서 안톤이 전기를 빼먹고 있는 황도의 최중요 시설인 파워스테이션의 5개 발전소 코레, 푸르츠, 트롬베, 그란디네, 슬로트를 모조리 박살 내버린다. 파워스테이션을 점거딩해 카르텔에게 손도 못쓰고 당한 겐트가 안톤 하나 잡기 위해 국가기반시설을 완전히 날려버렸다.
5 관련 항목
- ↑ 생산력의 한계, 보관기술의 부재, 교통수단의 미비가 가장 대표적인 원인이다.
- ↑ 실제로 제3차 포에니 전쟁이후 로마가 카르타고 토양에 소금을 뿌려 다시 못 일어나도록 멸망시킨 사례가 있다.
- ↑ 원균이 무기며 식량을 모조리 물에 밀어넣었다며 비판하지만 다른 쪽으로 보면 쉴드칠 구석이 있는게 일단 물자를 보호하기엔 시간이 조금 적었고 무엇보다도 수군을 포기하고 육군으로 맞장뜨자고 한건 조정이었다. 명령을 어긴 승장은 죽여버리고 명령에 따른 패장은 옹호하는게 이때 조정이었다. 당연히 물에서 물러나는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그러고도 싸울 생각을 하지 않은게 문제였지만
- ↑ 사실 이 경우에는 아예 한양까지 직통으로 밀어붙이는 방법이 발견되어, 치명적인 취약점이 드러난 상태였기 때문에 청야전 자체가 불가능했다.
- ↑ 수만명의 적군은 고구려 중앙정부에서 작정하고 나서야 할정도의 군세로 중앙집권제도 아니고 쿠데타로 집권한 연개소문의 정치적 약점상 국경지대에 이에 대응할 정예군을 상시 주둔시킬 수도 없는 고구려에겐 대응방법이 없는, 알면서도 당할수밖에 없는 최악의 전략이다.
- ↑ 실제로 화전이라하는 농경의 한 방법이다.
- ↑ 사실 옛날과 같은 극단적인 청야전술은 현대에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럴경우 일단 치워 날라야할 물자가 말도 안되게 커지기 때문. 일반 가정집이 이사할때도 트럭을 동원한다는 걸 생각해보자.
- ↑ 덤으로 중국군하고 같이 쳐들어오는 게 아니라면 청야전술을 쓸 필요도 없다. 윗동네 망상에 우리가 따라갈 이유가 없는거. 이미 국가간 전력을 한정지어보면 윗동네하고 우리군의 전력은 차이 많이 난다. 거기에 천조국 군대까지 있으니.
- ↑ 당연한 말이지만 현대 정권에 대한 불만과 대한민국이란 국가 자체에 대한 부정은 차원이 다르다
- ↑ 이에 맞선 팔로군 역시 청야전술로 맞불을 놓았는데, 일본군은 보급물자따윈 약탈로 충당하는 것이 교리였던지라(...) 앞서 자신이 수행한 삼광 작전의 후폭풍까지 합쳐져서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된다.
- ↑ 배에 싣지 못하는 모든 물자들을 폭파시켜서 없앴다.
- ↑ 당연히 주민들은 반발했지만 식량등의 물자는 동맹군이 줄것이라고 말하며 설득했다.
- ↑ 자기들 쓸 물자를 주둔지의 주민들에게까지 나눠줘서였다. 원정군 총병력보다도 점령지 민중들이 많으니, 정작 동맹정부가 예정에도 없이 급하게 부랴부랴 보낸 보급선단이 갈 때까지도 버티기 간당간당했다.
- ↑ 물론 물자 보급을 재개한 것도 라인하르트 본인이므로 어느 정도는 만회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민중을 괴롭힌 건 사실이다. 물론 이 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비상시라는 점도 있고(침략자는 어찌되었든 동맹 쪽이므로) 동맹 점령 지역을 탈환하자마자 바로 물자를 보급하거나 본인이 스스로에게 변명을 하는 점을 보면 어느 정도 찝찝한 일을 했다는 것을 본인도 인지는 하고 있었다.
- ↑ 물론 일차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인물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지만 라인하르트 역시 도의적인 책임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