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워싱턴


한국팬들에게 익숙할 텍사스 레인저스 감독 시절



근황(...) 뭔가다른 사람 같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No.38
로날드 '론' 워싱턴 (Ronald 'Ron' Washington)
생년월일1952년 4월 29일
국적미국
출신지루이지애나뉴올리언스
포지션유격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71년 드래프트 캔자스시티 로얄스 지명
소속팀로스앤젤레스 다저스(1997)
미네소타 트윈스(1981~1986)
볼티모어 오리올스(1987)
클리블랜드 인디언스(1988)
휴스턴 애스트로스(1989)
지도자오클랜드 어슬레틱스 주루코치 (1996~2006, 2015~)
텍사스 레인저스 감독 (2007~2014)

1 개요

메이저리그의 옛 유격수이자 텍사스 레인저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감독. 추신수:?

2 야구 인생

2.1 선수 경력

고등학교 졸업반이었던 1970년 7월 캔자스시티 로얄스에게 지명을 받고 프로 경력을 시작하지만 그저그런 선수였던지 무려 10년이라는 세월을 로얄스, 다저스, 메츠 산하의 마이너팀에서 보내야만 했다. 그 중간이었던 1977년 한 차례 메이저리그의 맛을 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9월의 로스터가 40인으로 확장됨에 따라 콜업된 것이었고[1] 실질적으로 메이저리그에 정착하게 된 것은 1981년 미네소타 트윈스에 입단한 이후. 그렇지만 미네소타 트윈스에 뛰던 것도 주전이 아닌 어디까지나 백업으로였고, 1986시즌 이후 트윈스를 떠난 뒤로는 한 시즌이 끝날 때 마다 팀을 옮기는 저니맨 생활을 하다 1989년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끝으로 그의 메이저리그 경력은 단절되고, 이듬해인 1990년 애스트로스의 산하 트리플 A팀에서 은퇴한다. 메이저리그에서의 커리어는 통산 146타점 20홈런 타율 0.261. 정말 미미한 성적이다...

2.2 코치 경력

선수 생활 은퇴 이후 뉴욕 메츠의 프런트 직에서 활동하던 론 워싱턴은 아트 하우[2]가 감독으로 재직하던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1루 주루 겸 수비 코치로 1996년 부임한다. 다음해인 1997년부터는 3루 주루 전담 코치로 보직을 이동해서[3] 2006년까지 10년동안 활동한다. 이 시기 워싱턴이 키워낸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골든그러브 6회 수상에 빛나는 3루수 에릭 차베스비록 돈을 쫓아 오클랜드를 버리긴 했지만 유격수 미겔 테하다. 특히나 차베스는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워싱턴 당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것입니다."라고 고마움을 표할 정도. 또한 빌리 빈머니볼 운영과정에서도 한 몫을 톡톡히 했는데 포수 출신이었던 스캇 해티버그를 쓸 만한 1루수로 개조시킨게 대표적. 그런데 정작 영화판에서는 구식 야구관에 찌들어 빌리 빈에게 난색을 표하는 것처럼 그려졌다. 지못미[4]

2.3 감독 경력

텍사스에서 삽질을 거듭하던 벅 쇼월터가 경질하고 한달가량 지난 2006년 11월 6일, 레인저스는 론 워싱턴을 그들의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했음을 발표한다. 레인저스 부기 초임 당시에는 팬들의 반응이 미적지근했는데, 팀의 프랜차이즈 선수 몇몇과 충돌이 있었기 때문. 대표적인게 바로 팀의 중심타자였던 마크 테세이라와 포수였던 제럴드 레어드. 결국 테세이라는 2007시즌 중간에 팀과의 계약연장을 거부한 채로 애틀란타 브레이브스로 트레이드되고 레어드 역시 다음해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로 이적한다.[5] 심지어 2010 시즌을 앞두고는 코카인 양성 반응이 나와서 충격과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코카인 복용 고백' 론 워싱턴 감독 "큰 실수를 저질렀다" (...) 다행히 본인이 깊은 반성을 하면서 사과를 했고 이에 레인저스 구단측도 별다른 처벌을 가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같은 해 텍사스 레인저스를 가을 야구로 이끌면서 이 모든 비판을 잠재우는데 성공한다. 성적만 좋으면 모든게 용서되는건 어딜가나 마찬가지 템파베이 레이스와 디비전 시리즈를 3승 2패로 승리하면서 레인저스에게 구단 역사상 최초의 플레이오프 시리즈 승리를 안겨준 데 이어 뉴욕 양키스와의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클리프 리의 호투에 힘입어 양키 스타디움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독서실로 만들고는 대망의 월드시리즈에 진출한다. 월드시리즈 진출에 성공한 역대 세번째 흑인 감독. 다만 월드시리즈에서는 팀 린스컴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게 막혀 콩라인... 그렇지만 워싱턴의 지도력을 인정한 레인저스 프런트는 워싱턴과의 계약을 2년 연장한다. 절치부심한 워싱턴과 레인저스는 다음해인 2011년에도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지만 3승 2패로 앞선 6차전에서 우승까지 불과 1아웃[6]을 남겨둔 상황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게 충격적인 대역전패를 당하고 이 충격을 극복하지 못한 채로 7차전에서도 패배하면서 또다시 콩라인에 그치고 만다. 가을야구에서는 아쉬움이 이어졌지만 워싱턴의 지도력에는 찬사가 이어졌고 이를 바탕으로 2012년 메이저리그 올스타 경기에서는 아메리칸 리그 팀의 감독을 맡기도 한다.[7] 2012 시즌 중에는 통산 582승을 거두면서 바비 발렌타인의 기록을 넘어서 레인저스의 최다승 감독이 되는 영예도 누린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4년 연속 시즌 90승 이상을 기록하면서 2014년에는 이번에야말로 대권에 도전하겠다고 프린스 필더추신수를 영입하면서 의지를 불태웠지만 망했어요. 주전 선수들이 투수진, 야수진을 가리지 않고 부상으로 드러눕는 통에 무려 64명의 선수가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들락날락하는 진기록을 세우면서 67승 95패로 아메리카 리그에서 당당하게 꼴찌를 차지하지만 다행히 콜로라도와 애리조나 덕분에 메이저리그 전체 꼴찌는 면했다. 드래프트 1픽 생각하면 오히려 손해 아닌가? 어정쩡한 하위보다는 확실한 꼴찌가 낫지... 결국 론 워싱턴은 9월 6일 감독직을 사퇴한다. 그런데 뜬금없게도 워싱턴 본인의 섹스스캔들이 이 감독직 사퇴와 연관되어 루머로 떠오른다.[8] 애초의 사퇴 이유가 성적이 아니라 일신상의 사유였고 본인이 아내에게 미안하다라는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에서는 거의 루머가 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 TEX 워싱턴 전 감독 "아내에게 미안.." 성폭행 인정?

2.4 감독직 사퇴 이후

2015년 2월 고향인 뉴올리언스 대학교 야구부의 코치[9]로 활동하다가 5월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수비 인스트럭터로 10년만에 복귀했다. 이어 8월에는 3루 코치로 임명된다.
  1. 그런데 표본이 적긴 하지만 이 콜업된 시기에 꽤나 잘했다. 19타수 7안타로 타율 0.368... 기회를 왜 더 안준 것인지 의문..
  2. 여담으로 하우는 워싱턴이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뛰던 시절 감독이었다. 이 때의 인연이 계기가 된 듯.
  3. 여전히 수비코치는 겸했다.
  4. 다만 처음엔 빈의 아이디어에 난색을 표했지만, 나중에 결정이 되자 빌리 못지 않게 해티버그의 자신감을 북돋아주고, 지도에 힘을 쓴다. 진짜로 반대했다기보단, 그냥 투덜거리면서도 뜻에 따르는 것처럼 그려진 것. 여담이지만 해티버그의 집에 찾아갔을 당시 해티버그가 "제가 지암비를 대체한다구요? 팬들은 어쩌구요?" 라고 하고 여기에 워싱턴은 "그래, 팬들 중 한명에게 1루보는 걸 가르치는 건 어때?" 라고 개드립을 날렸다. 여기에 빈도 피식하고 만다.
  5. 훗날 레어드와의 갈등에 대해서 워싱턴은 자기가 어린 선수에게 너무 많은 부담감을 줬다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6. 정확히 말하자면 1스트라이크였다. 아이고 아까워라...
  7. 2014 시즌 종결 후 있을 NPB 올스타와의 경기에서 MLB 올스타팀을 이끌 감독으로도 내정됐지만 본인의 사임 크리...
  8. 정확히는 여기자를 성추행했다는 소문이다.
  9. 일종의 재능기부 형식인지 무료로 활동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