롭 핼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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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의 이미지를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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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쿨 힙합퍼 같은 느낌의최근 사진.

Robert John Arthur Halford
출생1951년 8월 25일
고향영국 서튼 콜드 필드
활동1969년 ~
장르헤비메탈, 스래시 메탈, 스피드 메탈, 하드록
포지션보컬리스트
밴드주다스 프리스트, Fight, Halford 등
사이트[1]
Rob Halford, "The Metal God"[1]

1 개요

고음병들의 우상 끝판왕
영국헤비메탈 밴드 주다스 프리스트의 보컬이자 핵심멤버. 본디 원년멤버는 아니었으나, 아무튼 메이져 데뷔 이전에 가입했기 때문에 보통 롭 핼포드, 글렌 팁튼, K.K.다우닝, 이언 힐, 데이브 홀랜드[2]를 원년멤버로 친다.

2 생애

2.1 유년기 ~ 주다스 프리스트 가입 전

1951년 영국의 서튼 콜드 필드에서 태어나 버밍엄의 월솔에서 자랐다. 리틀 리처드, 로버트 플랜트, 재니스 조플린 등의 영향을 받았고, 아테네 우드, 히로시마 등의 밴드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 전에는 잠시 성인용품 상점에서 일했다고 한다. 그의 특유의 패션은 여기서 영감을 얻은 것.

2.2 주다스 프리스트

그러던 중롭 핼포드는 그의 여동생 수 핼포드와 교제 중이던 베이시스트 이안 힐의 추천으로 밴드 주다스 프리스트에 보컬리스트로서 전에 활동하던 히로시마라는 밴드에서 활동하던 드러머 존 힌치와 함께 가입하게 된다.

그 후 1974년 1집 Rocka Rolla을 발매하고 1980년까지 주다스 프리스트와 함꺼 정규 앨범 Sad Wings of Destiny, Sin After Sin, Stained ClassKilling machine(Hell Bent for Leather)과 첫 라이브 앨범 Unleashed in the East를 발표한다.

그리고 1980년, 기념비적인 헤비메탈 명반 British Steel을 발표하며 주다스 프리스트 시대의 신호탄을 쐈다. 이 때 주다스 프리스트에게 Metal Gods라는 별칭이 붙었는데, 이 음반에 있던 동명의 곡 덕분이다.

이후 Point of Entry앨범을 발표하지만 전작과 뒤에 발표될 명반들 덕에 묻히는 감이 없잖아 있다(...).
그리고 그 뒤 발표된 것이 Screaming for Vengeans. 앨범 자체의 질도 훌륭할 뿐더러 You've Got Another Thing Coming이 세계적으로 히트하며 주다스 프리스트의 가장 성공한 앨범으로 남았다.
다음 발표된 Defenders of the Faith 역시 수작인데, 메탈 팬들과 평단에게서 '주다스 프리스트 스타일'의 완성이라는 평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노래의 음역은 점점 올라가기만 한다...

이후 글램 메탈적인 요소와 신시사이저를 감미한 Turbo와 이후 Painkiller의 강력한 사운드를 실험한 Ram It Down을 발표한다. 이 두 앨범은 그리 고평가받는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롭의 보컬은 변함없이 훌륭한 음역과 표현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후 1991년, 80년대 있던 신시사이저 음을 거의 모든 곡에서배제하고 Painkiller를 발표한다. 음악 스타일과 함께, Ram It Down 이후 퇴물이라는 이미지였던 주다스 프리스트의 평가도 완전히 뒤바뀌며 제 2의 전성기를 맞는다. 이 때 롭은 처음으로 머리를 전부 밀기도 했다. 머리를 유지하는 게 짜증났다고...

91년 Painkiller 투어 도중 8월 토론토에서의 공연에서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공연을 하던 도중 떨어져서 코가 깨진 적이 있는데(정신을 차린 후 공연을 마저 다 끝냈다고 한다. 오오 대인배) 비하인드 더 뮤직 에피소드에서 이것이 롭과 주다스 프리스트 간의 불화를 야기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롭이 인터뷰에서 그건 그냥 사고였고 롭이 밴드를 떠나는 데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라 설명했다.

롭은 20년간을 주다스 프리스트에서 일해 왔지만, 91년 7월 4일 제한적인 업무(원문 restrictive practices)를 이유로 소니를 고발한다 발표했다. 결국 1992년 롭 핼포드는 주다스 프리스트를 탈퇴한다.

2.3 Fight, Halford 그리고 복귀

주다스 프리스트 탈퇴 후, 주다스 프리스트에서 드러머 스콧 트래비스를, 이후 베이시스트기타리스트를 영입 후 Fight란 밴드를 만들어 두 앨범을 발표한다.

이후 2wo란 프로젝트를 거쳤다 자신의 이름을 딴 Halford라는 밴드를 조직해 다시 메탈 활동을 개시한다. 이후 Resurrection이라는 앨범을 발매하고, Metal 2000 tour에 아이언 메이든, 퀸스라이크과 함께 참여한다.

하지만 롭 핼포드랑 주다스 프리스트 둘 다 죽쑨 후 주다스 프리스트와 재결합했다. 2014년 Redeemer of soul도 발표하며 현재까지 정력적인 활동 중이다.

3 가창력

언터쳐블 헤비메탈 보컬리스트이면서도 고음 보컬만을 무조건적으로 숭상하는 부류의 팬들 때문에 이상하게 까이기도 한다. 고음병 환자들이 까이는 이유는 소리의 무게나 표현력, 중음이 비는 현상 등을 무시한 채 음계 높은 걸로만 킹왕짱을 따지기 때문인데, 롭은 그런 것들도 좋은데 고음도 탁월한 것이기 때문. 빠가 까를 만든다라는 표현이 가장 걸맞을 인물 중 하나.

특징은 시원한 고음처리인데, 롭이 그렇게까지 추앙받는 이유는 고음이 '악마적인 고음'이기 때문이다. 이미 1집의 수록곡인 Run of the mill에서 그의 역량이 입증되었다. 사실 음역으로만 따지면 롭보다 넓고 높이 올라가는 보컬도 있으나, 롭의 고음은 먼가 사악하면서도칭찬인가 금속성이 가미된 고음을 내기 때문. 그의 보컬톤은 JP의 음악적 색깔 그 자체였다. 롭 핼포드가 탈퇴하고 팀 '리퍼' 오웬스가 가입한 당시의 앨범들이 죄다 혹평을 받았던 것이 증거라면 증거.[3] 밀도가 높은 고음과(음역이 아닌 밀도 기준으로는 전성기가 페인킬러 투어와 Fight이다) 비지 않는 파워풀한 중음 그리고 훌륭한 전달력으로 무장한 궁극체라는 점도 무서운 점. 안정적이고 예리한 고음과 막강한 파사지오 연결로 무장했던 초기의 보컬도 경이적이었지만, 역시 롭 핼포드 하면 떠오르는 것은 커리어 중반 들어 개발한 스타카토 위주의 강력한 비브라토 되겠다.


1986년 텍사스 라이브. 아..이 때부터 이마가 보이기 시작하는군

1991년 operation rock n roll 투어 당시의 부틀렉 실황. 1990년도 페인킬러 투어 공연들에서 전반적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여 욕을 상당히 많이 먹었는데, 그 당시 핼포드는 몸상태도 좋지 않았고 미국 학부모로부터 걸린 소송에 대응한다고 컨디션도 제대로 추스리지 못해 투어를 할 마땅한 상태가 아니었다고 한다.그리고 개똥같은 레코딩도 한몫 했지 결국 1991년도 중반에 이르러서야 거의 완전한 폼으로 귀환했는데, 그 결과는 바로 위의 링크된 공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폼 찾자마자 탈퇴한 건 안비밀


2011년 에피탑 투어 중에 부른 Painkiller. 당시 나이 만 60세.

현재 나이가 환갑이 넘었는데 오히려 목상태는 2005년 리트리뷰션 투어 당시보다 나아지고 있다. 2003년부터 2005년 사이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서 빠른 속도로 역량이 쇠퇴했었던 것에 비추어보면 정말이지 다행.

여담으로 팀 오웬스도 결코 실력이 나쁜 보컬은 아니었다. 무겁고 헤비한 스타일의 프로다운 프로였으나, JP 스타일은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롭 핼포드와 차이가 있는 보컬임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핼포드 따라잡기를 시도한 게 오히려 역효과가 된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그의 역량은 아이스드 어스의 The glorious burden과 Framing armageddon-Something wicked part 1에서 확인할 수 있다.

4 트리비아

1992년 공식적으로 JP에서 탈퇴한 후, 롭은 자기 이름으로 새로 헤비메탈 그룹을 냈으나[4], 남아있는 프리스트 멤버들이나 롭이나 이후 행보가 시원찮긴 매한가지였다. 본래 쥬다스 시절 거의 모든 곡은 팁튼과 다우닝, 그리고 롭(주로 가사)의 협의로 만들어졌는데, 서로 잘났다고 찢어졌으니 제대로 된 물건이 나올 리가 없었다. 결국 2003년 재결합을 선언, 2004년 투어를 시작으로 프리스트 활동을 재개했다. 복귀작인 Angel of Retribution은 마침내 롭 핼포드와 JP의 재결합이라는 거대 떡밥을 현실화시킨 앨범으로, 이미 나이가 든 상태임에도 상당한 파워를 보여주는 핼포드의 보컬과 전형적인 JP 스타일의 곡들이 잘 어우러진 편. 물론 전성기의 그 정도 역량은 아니지만.

2008년 새 앨범 'Nostradamus'의 월드 투어를 통해 내한했다. 환갑을 앞둔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파워가 넘쳤으며, 모든 곡을 연짱으로 달리면서도(중간에 옷 갈아입거나, 장치준비로 1~2분 쉬는거 빼고) 삑사리 한번 내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5] 다만 이 앨범 자체는 헤비메탈 앨범으로서는 평가가 몹시 갈린다. 초창기 최고의 명반 Sad Wings Of Destiny를 연상시킨다는 의견부터 리퍼 시절보다 더 안 좋다는 의견까지...

2012년 2월 4일 에피탑 투어의 일환으로 내환했고, 2008년 공연보다는 대체로 나은어? 보컬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2014년 새로운 기타리스트와 함께 발표한 신보인 Redeemer of Souls는 두 전작에 비해 확연히 나은 반응을 얻었다. 내용물은 주다스 프리스트의 전 디스코그라피를 아우르는 자가 복제의 성격이 강하지만, 그 수준은 실망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대부분의 평가. 대중적으로도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롭 핼포드의 보컬 역시 여전히 스튜디오에서는 곡예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보여주고는 한다.

2015년 3월 16일 내한한다고 한다. 2014년 신보 투어에서 보여주었던 컨디션이 상당히 좋아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베이시스트인 이언 힐과는 처남-매부지간이다. 롭의 여동생이 이언 힐의 아내. 롭이 갈등을 빚고 밴드를 나가면서 서로 사이가 불편해졌으나, 재결합하면서 일단은 화해했다고 한다.

머리가 조금씩 벗겨지기 시작했는데(정확히는 이마가 조금씩 넓어지기 시작), 90년 Painkiller 활동 중 아예 머리를 밀어버렸고, 이후로는 대머리 이미지로 정착되었다. 젊었을 적에도 머리를 길게 유지하는 경우는 드물긴 했다. 1~2집 활동, 그리고 86~88년 활동 정도가 장발을 선보인 케이스.88년쯤 가면 벗겨진 게 꽤 넒어진 것 같기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대표적인 게이이다. Killing machine[6]이후 Studs & Leather 패션을 대중에게 선보였는데, (사정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은 이를 보고 주다스 프리스트의 헤비한 이미지에 어울리는 훌륭한 복장이라고 생각했으나 소수의 사람들은 롭의 섹슈얼리티를 눈치채게 되었다. 이는 다름아닌 게이의 패션이었던 것. 이후로 팬들 사이에는 롭이 게이라는 사실이 공공연한 비밀이었으나, 본인은 1998년에 가서야 MTV의 인터뷰에서 게이임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근래 들어서는 동성애자로서 충분히 그를 존중해주고 있는 메탈 씬의 분위기에 발맞추어 성에 대한 이야기에도 피하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는 모양새.

한 뉴스 기사에서 JP가 공연이 끝나면 그루피들과 함께 광란의 마약 파티를 벌인다고 공격하자, "나는 결코 그러지 않는다. 공연 후에는 호텔방에 쳐박혀서 검열삭제를 하는 게 전부."라고 대응했다고. 그도 그럴게 그루피는 여자인걸(...) 어떤 뮤지션은 그와의 작업 후일담으로, 그가 만취한 상태에서 '나랑 놀래?'라는 유혹(?)의 추파를 던져 웃음이 빵 터져서 난감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커밍아웃 이후의 심신의 변화를 묻는 인터뷰 질문에 자신에게 용기를 얻었다는 감사의 편지들이 올 때면 뿌듯함과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며, 자신의 대중적 인지도나 위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꽂히는 만큼 바르고 모범이 되도록 행동하려 한다고 대답했다. 이와 같이 마초적인 분위기가 짙은 메탈 씬에서도 게이인 그는 존중받고 있다.

파일: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아조시.jpg

일본의 베이비 메탈과 만남을 가졌다. 파일 이름이....?
  1. 동명의 곡을 발표한 이후 이것은 프리스트, 그중에서도 특히 롭을 가리키는 별칭으로 자리잡았다. 그가 헤비메탈 보컬 역사상 전무후무할 영향력과 팬덤을 지닌 인물임을 자타공인의 이 별칭을 통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2. 데이브 홀랜드는 메이져 초기앨범인 Sin after sin 시절에는 멤버가 아니었고, 88년작 Ram it down 앨범 참가를 마지막으로 탈퇴했다(탈퇴 이유는 솔로 활동으로 추측된다. 정작 거의 다 망했지만). 어쨌든 처음으로 장기간에 걸쳐 고정적으로 활동한 프리스트 드러머이기 때문에 원년멤버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 탈퇴 후 잠잠하게 지내더니 갑자기 한 소년을 성추행해 구속당했다는 이야기로 다시 매스컴 등장.(...)
  3. 물론 수록곡 자체가 실망스럽다는 평도 많았다. 사실상 JP의 정체성인 트윈 기타 솔로도 실종되었으니..
  4. 파이트가 그 시작이었고, 정통 헤비메탈 색이 빠진 2wo, 그리고 자기 이름을 건 핼포드로 이어졌다. 이중 최고의 평가를 받는 것은 핼포드.
  5. 전성기만큼의 무대는 아니었다는 의견도 있었다. 머 나이가 나이니만큼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지만..
  6. Killing machine 앨범은 두 개의 이름이 있는데, 다른 하나의 이름은 Hell bent for leat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