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루이스 클락 "루" 브록 (Louis Clark "Lou" Brock) |
생년월일 | 1939년 6월 18일 |
국적 | 미국 |
출신지 | 아칸소 주 엘도라도 |
포지션 | 좌익수 |
투타 | 좌투좌타 |
프로입단 | 1961년 시카고 컵스 입단 |
소속팀 | 시카고 컵스(1961~1964)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1964~1979)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영구결번 | |||||
1 | 2 | 6 | 9 | 10 | 14 |
아지 스미스 | 레드 셰인딘스트 | 스탠 뮤지얼 | 에노스 슬로터 | 토니 라 루사 | 켄 보이어 |
17 | 20 | 24 | 42 | 45 | 85 |
디지 딘 | 루 브록 | 화이트 허조그 | 브루스 수터 재키 로빈슨 | 밥 깁슨 | 어거스트 부시 |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루 브록 | |
헌액 연도 | 1985년 |
헌액 방식 | 기자단(BBWAA) 투표 |
투표 결과 | 79.75% (1회) |
1 소개
메이저리그의 원조 대도
1960, 70년대에 활약하며 통산 3023안타 938도루를 기록한 도루의 달인. 그의 938도루는 리키 헨더슨이 1991년 5월 1일 939도루로 경신하기 전까지 메이저리그 최다 도루기록이었으며 리키 헨더슨이 기록을 깬 이후에도 브록의 도루는 메이저리그 역대 2위, 내셔널리그 역대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까지 루 브록보다 많은 통산 도루수를 기록한 야구선수는 메이저리그의 리키 핸더슨, 일본의 후쿠모토 유타카 둘 뿐이다.
통산 성적은 19시즌 동안 타율 .293, 출루율 .343, 장타율 .410, OPS .753, 순장타율 .118, 3023안타, 149홈런, 938도루, BB/K 0.44, wRC+ 109를 기록했다.
2 어린 시절
브록은 1939년 아칸소 주의 엘도라도라는 도시에 태어났다. 브록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는데, 그의 아버지는 브록이 태어나자 가족을 버리고 도망쳤으며,브록은 루이지애나 주의 농장에서 일하는 어머니의 밑에서 자랐다. 브록은 당시 대부분의 흑인들이 그렇듯이,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다행히 어릴 때부터 야구와 농구에 두각을 나타내던 브록은 대학교 2학년이었던 1958년, 대학리그에서 .645의 타율을 기록해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1959년에는 시카고에서 열린 팬암대회에 미국 국가대표로 출전하는 등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런 브록에게 메이저리그이 구단들이 관심을 가졌는데, 그 중 시카고 컵스가 1961년 브록과 3천달러에 계약하며 브록은 선수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3 선수 시절
컵스에 입단한 브록은 마이너리그에서 타율 .361, 181안타를 기록하며 리그를 씹어먹고 1962년부터 1군에 콜업되어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뛰게 되었다.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뛰게 된 1962년 타율 .263, 9홈런 16도루, 1963년에는 타율 .258, 9홈런, 24도루를 기록하며 쏠쏠한 활약을 하였고 1964년 시즌 도중 컵스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3:3 트레이드로 카디널스로 이적하게된다.
당시 카디널스의 감독이었던 자니 킨 감독은 브록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고 브록의 잠재력을 끌어올렸다. 그 결과 브록은 라지에타가 터졌다.
컵스에서 타율 .251 54안타 2홈런 10도루로 저조한 성적을 보이던 브록은 카디널스에서 타율 .348 146안타 12홈런 33도루를 기록하며 잠재력이 폭발한다. 다음해인 1965년에는 .288 182안타 16홈런 63도루,1966년에는 .285 183안타 15홈런 74도루를 기록하며 도루왕을 차지, 메이저리그의 최고의 리드오프로 떠올랐다.
1967년 카디널스는 타율.299 206안타 21홈런 52도루로 20-20 클럽에 가입과 동시에 도루왕을 차지한 브록과 에이스 밥 깁슨, 좌완 신성 스티브 칼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이적한 올란도 세페다의 활약에 힘입어 내셔널리그 우승을 차지한데에 이어, 월드시리즈에 진출해 보스턴 레드삭스를 4승 3패로 꺾고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브록 역시 월드시리즈에서 타율 .414, 7도루를 기록하며 팀의 3년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공헌했다.
다음 해인 1968년 브록은 타율 .279 184안타 6홈런으로 타격면에서 아쉬운 시즌을 보냈지만,도루는 62개를 기록하며 3년 연속 도루왕을 차지했다. 소속팀인 카디널스도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으나,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 3승4패로 패하며 2년 연속 월드시리즈 우승에 실패했다.
브록은 당시 메이저리그 최고의 1번타자 중 한명이었지만 선구안은 최악에 가까워서 매년 100개 이상의 삼진을 당했다. 하지만 나이가 30대에 들어서면서 삼진은 줄어들고 볼넷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브록은 1973년을 제외하고 1970년부터 1976년까지 3할대 타율을 기록했는데 특히 1974년에는 35살의 나이에 타율.306 195안타, 118도루를 기록하며 내셔널리그 통산 최다도루 1위에 올랐다.[1]
1975년에는 .309 163안타 56도루를 기록했으나 신시내티 레즈의 조 모건과 신예들에게 밀려 도루 순위에서 2위 밖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브록은 8월 24일 통산 800번째 도루를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역사상 2번째로 800도루의 고지를 밟았다.[2]
1976년에도 브록은 타율.301 150안타 56도루를 기록했으나 도루왕에 실패했다. 하지만 이듬해인 1977년 8월 29일, 통산 893번째 도루로 타이 콥을 넘어서 메이저리그 통산 도루 1위에 올랐다.[3]
1978년 브록은 타율.221 66안타 17도루로 데뷔 후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이에 주위에서는 브록에게 은퇴를 권했지만 브록은 떠밀려서 은퇴하는건 바라지않는다며 거절했다. 1979년 타율 .304 123안타 21도루로 재기에 성공했는데 8월 13일에는 개인 통산 3000안타를 기록했고, 이후 23안타를 더 치며 시즌을 마무리하였고 더 이상 이룰 것이 없다는 말을 남기고 은퇴했다.
4 그 이후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900도루의 고지를 돌파했으며 통산 최다도루 기록을 세웠기에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서는 당연히 첫 턴에 들어갔다.
2015년 11월 11일,당뇨 합병증으로 인해 왼쪽다리를 절단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