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디지 딘(Jay Hanna "Dizzy" Dean) |
생몰월일 | 1910년 1월 16일~1974년 7월 17일 |
국적 | 미국 |
출신지 | 아칸소 주 루카스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소속 팀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1930,1932~1937) 시카고 컵스(1938~1941)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1947) |
1934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MVP | |||||
칼 허벨 (뉴욕 자이언츠) | → | 디지 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 | 개비 하트넷 (시카고 컵스) | |
1934.35년 메이저리그 다승왕 | |||||
칼 허벨 (뉴욕 자이언츠) | → | 디지 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 | 칼 허벨 (뉴욕 자이언츠) | |
1932~35년 메이저리그 탈삼진왕 | |||||
빌 할라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 | 디지 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 | 반 뭉고 (브루클린 다저스) |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디지 딘 | |
헌액 연도 | 1953년 |
헌액 방식 | 기자단(BBWAA) 투표 |
투표 결과 | 79.17% (9회)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영구결번 | |||||
1 | 2 | 6 | 9 | 10 | 14 |
아지 스미스 | 레드 셰인딘스트 | 스탠 뮤지얼 | 에노스 슬로터 | 토니 라 루사 | 켄 보이어 |
17 | 20 | 24 | 42 | 45 | 85 |
디지 딘 | 루 브록 | 화이트 허조그 | 브루스 수터 재키 로빈슨 | 밥 깁슨 | 어거스트 부시 |
1 소개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前 야구선수.1930년대를 대표하는 투수중 하나였다.닉 스위셔,마크 피드리치등과 더불어 메이저리그 역사상 손꼽히는 독특한 이미지의 선수 중 한명.
2 유년 시절
1910년 아칸소 주 루카스에서 태어난 디지 딘은 16살때 학교에서 더 이상 배울것이 없다고 판단해 학교를 그만두고 나이를 속여서 군대에 들어갔다(...)하지만 이후 그가 나이를 속여 군대에 입대했다는 사실이 들어나자 딘은 군에서 쫒겨났다.군에서 쫒겨난 이후 딘은 18살에 야구를 시작했고,당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단장 브랜치 리키의 눈에 띄어 카디널스에 입단해 선수 생활을 시작한다.[1]
3 선수 시절
2년간 마이너리그에 뛰던 딘은 1932년 메이저리그로 콜업되어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자리잡는다.딘이 처음으로 1군 무대를 밟을때 기자들이 그에게 이름을 물어 봤는데,딘은 한 쪽에는 본명을,다른 한 쪽에는 가명을 알려줬다(...)
딘은 풀타임 첫 해인 1932년 18승 15패 191탈삼진 방어율 3.30을 기록하며 탈삼진,이닝,완봉 부문 1위에 올랐다.다음해인 1933년에는 20승 18패 199삼진 방어율 3.04을 기록하며 탈삼진,완투 부문에서 1위에 올랐으며 당시 한 경기 최다 탈삼진 기록이었던 16탈삼진을 17탈삼진으로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1934년,딘은 자신의 동생이었던 폴 딘과 함께 45승을 만들어내겠다고 호언장담했다.딘은 9월 22일 브루클린 다저스와의 더블헤더에서 1차전 선발투수로 올라와 완봉승을 따내며 시즌27승을 거두었다.2차전에는 동생 폴이 나와 다저스를 상대로 노히트노런을 기록,시즌 18승을 챙기며 약속대로 45승을 만들어내는데에 성공했다.이후 디지 딘과 폴 딘은 각각 3승과 1승씩 더 따내며 디지 딘은 30승 7패,동생 폴 딘은 19승 11패로 시즌을 마무리했다.또한 이들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 각각 2승씩 따내며 카디널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특히 디지 딘은 6차전에 대주자로 나왔다가 머리에 공을 맞고 의식불명상태로 실려갔으나 7차전에 선발투수로 등판해 완봉승을 거두었다. 이쯤 되면 사람인지 의심스러워진다디지 딘은 그해 내셔널리그 MVP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다음 해에도 딘 형제는 각각 28승,19승을 따냈다.디지 딘은 다승,탈삼진,이닝,완투 부문에서 1위에 올랐고,2년 연속 MVP수상을 노렸으나 시카고 컵스의 개비 하트넷에게 밀려 수상에 실패했다.
다음 해인 1936년,동생 폴은 연봉협상으로 인해 구단과 마찰을 빚다가 시즌을 늦게 시작했고,무리하게 던지다가 어깨가 망가져 이후 데뷔 후 2년간 냈던 성적의 절반도 못거두고 7년후 은퇴했다.하지만 디지 딘은 승승장구해서 그 해 24승 13패 190탈삼진 방어율 3.17으로 다승 2위,이닝,탈삼진 1위에 올랐고 칼 허벨에 이어 MVP투표에서 2위를 차지했다.
1937년,디지 딘은 올스타전에 내셔널리그 선발투수로 출전했다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소속의 얼 애버릴의 라인드라이브 타고에 맞아 발가락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다.하지만 딘은 부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무리하게 던지다가 어깨에도 부상을 입었다.이후 딘의 부상이 심각하다는걸 알아챈 카디널스는 딘을 시카고 컵스에 넘겼다.딘은 이적 첫 시즌 7승 1패 방어율 1.81을 기록하며 컵스의 리그 우승에 공헌했다.하지만 이후 딘은 전성기때의 기량을 되찾지 못하고 2년간 9승을 거두는 등 부진하다가 1941년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은퇴 당시 딘의 나이는 31살이었다.
4 은퇴 후
딘은 은퇴 이후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의 전속 해설가가 되어 모두까기 인형 식 해설과 문법과 어법,철자가 맞지 않는 엉터리 영어를 구사하며 많은(?)인기를 끌었다.
디지 딘은 1953년 79.17%의 득표율로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그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시절 달았던 등번호인 17번은 영구결번 되었다.
이후 딘은 해설가에서 물러나 조용히 살다가 갑작스러운 심장 마비로 1974년 7월 17일 세상을 떠났다.향년 75세.
5 기행의 사나이
위에서 서술했듯이 딘은 선수시절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 아래는 딘이 남긴 일화들이다.
- 1934년,딘은 포수 사인 보기가 귀찮다는 이유로 사인 없이 경기를 하겠다고 했다.그리고는 상대팀 감독에게 찾아가 "나 오늘 직구만 던질거니까 그런줄 아셈" 이라고 했다.그리고 딘은 그 경기에서 4피안타 완봉승을 거두었다.
- 1934년 월드시리즈에서 딘은 상대팀인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선수들에게 공을 어떻게 치는지 보여주겠다며 날카로운 타격을 보여주었다.그러자 보고있던 행크 그린버그는 껄껄 웃으며 입이 벌어질 정도의 타구를 날렸고,데꿀멍한 딘은 "그래,그렇게 치는거야"라고 말하고는 도망갔다.
- 1935년,어린이 병원에 방문한 딘은 어린이들 앞에서 다음 경기때 빌 테리를 삼진으로 잡아내겠다고 호언장담했고 정말로 빌 테리를 삼진으로 잡아냈다.
- 1937년,딘은 경기 도중에 주심으로 부터 보크 선언을 받았다.이에 정신줄을 놓은 딘은 1번 타자부터 8번타자까지 모두 맞춘 뒤 9번 타자인 투수를 거르고 다시 1번타자에게 빈볼을 던지는 패기를 보여주었다.물론 결과는 벤치 클리어링.